|
나에게는 오늘도 우리 온 가족이 소중하게 간직하고있는 하나의 증서가 있다. 오래동안 총련에서 통일애국사업에 헌신하여온 아버지에게 수여된 애국렬사증이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버지의 렬사증을 볼 때마다 지나온 나의 한생이 돌이켜지고 그때마다 조국의 귀중함을 절감하군 한다. 제주도가 고향인 내가 조국이란 무엇이며 조국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깨달은것은 해방후 제주도인민들의 영웅적인 4. 3인민봉기를 겪으면서였다.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일가족은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으려는 미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는 성스러운 투쟁에 용약 뛰여들었다. 항쟁에 참가하였다는 《죄》로 큰아버지와 삼촌 등 일가친척 10여명이 원쑤들에게 무참히 학살당하고 우리 온 집안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부터 나의 마음속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정사를 펴시는 공화국의 품, 착취와 압박이 없고 누구에게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담보해주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기어이 안기리라는 결심이 굳게 자리잡게 되였다.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불태우던 나는 1957년 11월 비록 귀국의 배길이 열리기 전이였지만 풍랑사나운 바다길에 서슴없이 올랐다. 그때 나를 바래우며 힘과 용기를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수 없다. 이렇게 조국의 품에 안긴 나는 그렇게 소원하던 대학공부도 하고 졸업후에는 희망대로 교단에도 서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나는 나라의 경공업발전을 떠메고나갈 인재들을 키워내는 보람찬 사업에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쳤다. 그런데도 조국은 별로 한 일도 없는 나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을 비롯하여 높은 급의 국가수훈들을 안겨주었으며 교수, 박사로까지 내세워주었다. 참으로 조국의 품에 안겨 흘러온 지난 50여년간은 인생의 참된 보람과 행복을 마음껏 누려온 잊지 못할 나날이였다. 하기에 아버지는 생전에 우리 자식들에게 늘 위대한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우리 장군님께서 선군으로 지켜가시는 고마운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끝없이 사랑하고 빛내여나가야 한다고 당부하시군 하였다. 나는 아버지의 이 당부를 언제나 잊지 않고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오늘의 대고조진군에서 자기의 몫을 당당히 하는 경공업부문의 인재들을 더 많이 키워내는데 나의 적은 힘이나마 깡그리 바치련다.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교수, 박사 김주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