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화보

풍치수려한 평양의 모란봉에 있는 칠성문은 고구려시기 평양성 내성의 북문이였다. 6세기 중엽에 처음 세운 후 고려때에 고쳐짓고 1711년, 1764년에 다시 지었다. 칠성문이란 이름은 북두칠성쪽에 있는 북문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문은 성벽의 연장으로 되는 축대와 그우에 세운 문루로 되여있으며 량쪽성벽을 약 10m쯤 사이나게 어기게 쌓고 그 두 성벽사이를 이으면서 가로세웠다.

이 성문에서는 한쪽성벽을 성문앞쪽으로 내밀어쌓고 그끝을 보강하여 옹성으로 리용하였다.

축대는 다듬은 돌로 정연하게 쌓고 거기에 무지개문길을 냈다. 축대우에는 성가퀴를 쌓았으며 문루를 세웠다. 문루는 정면 3간(7. 38m), 측면 2간(4. 36m)의 홑처마합각집이다. 문루의 바깥쪽으로 돌아가면서 세운 흘림기둥은 가운데간을 넓혀 중심을 강조하였다. 가운데간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집안은 통천정으로 하면서 시원히 틔워놓았다. 건물에는 화려한 모루단청을 입혀 그 품위를 높이였다. 문루는 규모가 작은편이나 구조가 간결하면서 밑부분의 복잡한 구조와 잘 어울리여 위엄있게 보인다.

칠성문에는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한 우리 인민의 자랑찬 투쟁력사가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들은 1010년 이 성문앞에서 거란침입군에 섬멸적타격을 주었으며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평양성을 일시 강점하였던 왜적들을 칠성문으로 맨 먼저 쳐들어가 격멸소탕하였다.

칠성문에는 어버이수령 김일성주석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주체35(1946)년 3월과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찾으신 뜻깊은 사적이 깃들어있다. 오늘 칠성문은 훌륭히 보존관리되고있으며 근로자들을 애국주의로 교양하는 장소로, 문화휴식터로 리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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