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화보

 

오늘 우리 공화국에는 남쪽땅에서 살다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공화국의 품에 안겨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로력영웅, 교수, 박사로 성장하여 복된 삶을 누려가고있는 사람들이 많다.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프랑스어문학강좌 목명수선생도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1941년 11월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한 선생이 량부모를 다 잃은것은 9살밖에 안되였던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던 아버지가 미제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후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북으로 들어왔건만 어머니마저 인차 세상을 떠나 그들 3형제는 졸지에 고아의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하지만 어머니조국은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들을 따뜻이 품에 안아키워주었다. 불비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나라에서는 그들모두를 학원으로 불러 공부시켜주었으며 그후에는 외국으로 보내여 전쟁의 포화를 모르고 배우며 자랄수 있게 해주었다.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에게 더 마음쓰는 친어머니의 심정으로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던 전쟁시기는 물론 전후에도 그들에게 철따라 새 교복과 학용품도 보내주며 세심히 돌보아주었다.

어머니의 젖줄기와도 같은 따뜻한 사랑을 자양분으로 하여 자란 그는 조국에 돌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희망대로 대학교단에 나섰다.

이 나날 선생은 학생들을 실력있는 인재들로 키우는 사업에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쳤으며 교육사업에 이바지할 교재들과 참고서들도 많이 집필하였을뿐아니라 여러 국제회의들에 참가하여 나라의 대외적권위를 높이는데도 기여하였다.

나라에서는 한생을 후대교육사업에 바쳐온 그를 교수, 박사로 내세워주고 전국지식인대회를 비롯한 국가적인 대회들에도 불러주었으며 김일성주석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표창까지 안겨주었다. 그의 형제들도 대학을 졸업하고 과학연구기관의 연구사로, 중앙기관의 일군으로 값높은 삶을 누렸다.

70고령의 목명수선생은 참된 삶을 안겨준 어머니조국을 위해 오늘도 청춘의 열정과 패기에 넘쳐 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보람찬 인생길을 이어가고있다.

사진 로남철, 글 박철남

강좌교원들과 교수경험을 나누는 목명수선생

목명수선생은 언제나 학생들속에 있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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