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화보

력사학박사학위증서를 수여받는 김용수비전향장기수. 우의 사진은 선생이 집필한 도서들의 일부

 

난 날; 1932년 9월 30일

난 곳; 경상북도 경주시

옥중투쟁기간; 27년

 

나는 얼마전 만사람의 축복속에 력사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천근만근의 무게와 같이 느껴지는 박사증과 함께 금빛으로 빛나는 박사메달을 수여받던 그날 나는 감격에 북받쳐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였다.

1932년 9월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라산리(당시)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여난탓에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나였다. 해방후 한가닥의 희망을 안고 서울에 가 신문배달과 행상 등 온갖 고생을 다하며 다녔다는것이 고작 야간중학이였다.

미군과 돈있고 권세있는자들이 살판치는 남조선사회에서 나같은 가난뱅이들이 대학공부를 하겠다는것은 하늘의 별을 따겠다는것만치나 허황한것이였다.

천대와 멸시, 가난과 설음속에 몸부림치던 나에게 배움의 넓은 길을 열어준 품은 다름아닌 공화국의 품,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의 따사로운 품이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의용군으로 조선인민군에 입대하여 공화국의 품에 안긴 나는 태양의 존함으로 빛나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마음껏 공부하였고 졸업후에는 대학의 교단에까지 서게 되였다.

공화국의 품에 안겨 생활한 나날은 비록 길지 않았지만 그 하루하루는 나의 한생에서 가장 잊을수 없는 보람차고 행복한 나날이였다.

하기에 나는 조국통일의 길에 나섰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27년간의 옥중고초를 겪으면서도 신념과 의지를 지켜낼수 있었고 승리자가 되여 어머니조국의 품,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품에 떳떳이 안길수 있게 되였다.

사랑과 의리의 최고화신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에 무엇으로 보답할것인가 하고 모대기던 나는 어제날의 교단에 선 심정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과외학습교재들인 《회화를 통한 중국어학습》, 《영어일상생활회화》 등을 집필하였고 최근에는 지식인들을 위한 상식도서인 《세계유래상식사전》을 완성하여 내놓았다.

그런데 고마운 어머니조국에서는 보답의 마음을 안고 이룩한 자그마한 이 성과를 귀중히 여겨 공화국영웅메달과 조국통일상메달이 빛나는 가슴에 또다시 박사메달을 안겨주었다.

나는 어머니조국이 안겨준 이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한시도 잊지 않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나의 적은 힘이나마 깡그리 다 바치련다.

비전향장기수 김용수

 

이름있는 교수, 박사들과 력사학론문을 놓고 토론하고있는 김용수선생

 

행복한 김용수선생의 가정. 딸 하나를 데리고 수십년간 남편을 기다려온 올해 74살의 부인 허정복은

1974년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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