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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혁명활동시기의 연고자 황귀헌과 그의 딸을 만나주시고 기념사진을 찍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 [주체69(1980)년 11월 13일]
강산에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4월이 오면 나의 마음은 저절로 어버이수령 김일성주석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31년전의 그날에로 달려가군 합니다. 주체69(1980)년 11월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였습니다. 나의 어머니 황귀헌으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께서 길림을 중심으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1920년대에 길림소년회 핵심성원으로서 수령님의 지도를 받으며 일제의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에도 참가한 녀성이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시절의 어머니를 잊지 않으시고 중국에서 살고있던 우리 어머니를 자주 조국으로 불러 만나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감회깊은 회고도 해주시였습니다. 이날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모녀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시계도 선물로 안겨주시며 앞으로 조국에 오고싶으면 또 오라고 다정한 말씀도 해주시였습니다. 친부모보다 따사로운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의 손길에 이끌려 어머니와 우리 형제모두는 1982년 4월 드디여 조국의 품에 안겼으며 수령님의 탄생 7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행운도 지니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이 가족별로 새 집에서 살림을 펴고 생활하며 하루빨리 안착할수 있게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을뿐아니라 어머니를 항일혁명투사들과 한자리에 세워 자주 만나주시며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머니가 90이 넘도록 살아계시는 전기간 최상최대의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고 돌아가시였을 때에는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고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시였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영생하는 삶을 주시고 그 자식들의 운명까지도 다 맡아 보살펴주시였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를 출판보도부문의 책임일군으로 내세워주시고 뜻밖의 차사고로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에는 외국에서 수년간이나 치료받고 다시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하여주시였으며 완쾌되여 조국에 돌아왔을 때에는 소원대로 김일성화김정일화온실에서 위인칭송의 꽃들을 가꾸며 여생을 보내도록 해주시였습니다. 제 나이 어느덧 60고개를 넘어섰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힘이 진한다 해도 저는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그날에 다진 맹세대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를 끝까지 받들어 앞으로도 보답의 년륜만을 아로새겨가겠습니다. 조선김일성화김정일화위원회 보급선전국장 배 민 옥
불멸의 꽃 축전준비사업에 여념이 없는 배민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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