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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날; 1925. 4. 8.

난 곳; 경상남도 량산시

옥중투쟁기간; 20년

나는 1925년 경상남도 량산군 하북면 초산리(당시)에서 시골선비의 자식으로 태여났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탓에 나는 어려서부터 높고 험한 산판을 오르내리며 나무짐을 져날라야 했고 고사리같은 손에 농쟁기를 들고 땅을 뚜져야 했다. 어깨에 피멍이 들고 손바닥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을 했지만 차례진것이란 갈수록 더해만 가는 천대와 멸시뿐이였다.

조국의 해방과 함께 설음많던 나에게도 환희의 새 생활은 찾아왔다. 해방초기 나는 군공산당에서 사업하면서 남녘땅에도 이북과 같이 인민이 주인된 새세상을 세우기 위해 있는 힘껏 일하였고 이 나날에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을 높이 모시고 따르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살아갈 참된 길임을 신념으로 새겨안게 되였다.

내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빨찌산투쟁에 참가했다가 적들에게 체포되여 20년간 모진 옥중고초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싸워 승리자로 될수 있은것도 이런 굳은 신념이 내 가슴속깊이에 자리잡고있었기때문이였다.

사랑과 의리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수십년세월 감옥살이에 시들어버린 락엽같이 되였던 나와 우리 비전향장기수모두를 넓으신 한품에 안아 사랑의 금방석에 앉혀주신지도 어느덧 10년세월이 흘렀다.

그 10년세월은 혁명전사들에 대한 어버이장군님의 대해같은 은정이 날이 갈수록 더더욱 뜨겁게 안겨진 사랑의 세월이였으며 우리 비전향장기수들이 자기 수령, 자기 당, 자기 조국의 위대함과 강대함을 직접 눈앞에 목격하면서 가슴속에 간직한 신념이 천만번 정당하였음을 절감하게 해준 나날이기도 하였다.

그렇다. 어제도 오늘도 나의 신념, 우리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나는 어제날에 그러했던것처럼 이 몸을 신념과 의지의 강자,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로 값높이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과 향도의 우리 당을 따르고 받드는 길에 나의 여생을 깡그리 다 바쳐나갈것이다.

 

비전향장기수 석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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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혁명력사를 자자구구 깊이 새겨가는 석용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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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서예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있는 선생은 자주 평양학생소년궁전의 서예소조실을 찾아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군 한다.

가족들과 함께 휴식의 한때를 보내고있는 석용화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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