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몽
검과 창으로 무장한 군사들이 밤낮으로 지키고있는 내성의 문에 늙은 녀인이 나타났다. 지켜선 군사들에게 뭐라고 말하고난 녀인은 내성을 나와 성주위에 깊이 판 해자우에 놓인 나무다리를 조심스레 건넜다. 녀인은 창검을 세우고 서있는 군사들의 사이를 지나 중성을 통과했다. 내성과 중성을 지나치자 녀인은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걷기 시작하였다.
저쯤 외성의 높다란 성벽이 바라보이자 녀인은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가에 잔주름이 가득하고 광대뼈가 두드러진 녀인이였다. 반쯤 탈린 락엽이 어디선가 날아와 녀인의 옆을 스쳐 탈탈 굴러간다. 녀인은 골목길에서 한 아이를 만나 무어라고 물어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녀인의 발길이 주몽의 집쪽으로 잡아들었다. 주몽의 집이 나타나자 녀인은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다가 뭐라고 중얼거리며 흐린 눈을 슴벅이였다. 그리고는 다시 주위를 살피고 마침내 뜨락으로 들어섰다. 문은 꼭 닫겨있고 뜨락은 조용한데 분명 방안에는 인적이 있다.
《후궁마마 계시와요?》 하고 녀인은 떨리는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방안에서 들리던 인기척이 그쳤다.
늙은 녀인은 다시금 《저, 후궁마마 계시와요?》 하고 조금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자 부엌문이 열리며 달같이 환하게 생긴 처녀가 내다본다. 순간 손님은 쭈빗거렸다.
《누구를 찾으시오이까?》 하고 처녀가 상냥하게 묻는다.
《저, 이 댁이 이전에 후궁마마로 계시던 류화…》
《그렇소이다!》
《아, 그렇사와요? 그럼 후궁마마님 계신갑쇼?》
《네, 계시오이다!》
처녀가 방안에 대고 찾으니 방문이 열리며 류화가 나섰다. 늙은이는 류화를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라보며 뭐라고 입술을 우물우물하였다.
《누구시오이까?》 하고 류화는 늙은이를 찬찬히 살피였다. 차츰 류화의 얼굴에 놀란 빛이 나타났다.
《아니, 이게 누구세요, 유모가 아니예요?》
류화는 문을 열어젖히고 버선발로 나와 늙은이를 맞이한다. 부엌에 있던 처녀는 상그레 웃으며 두사람을 바라보고있었다.
《그간 편안하시와요?》 하며 늙은이가 절을 한다.
류화도 맞절을 한다.
《저야 편안하지요 뭐, 유모는 어때요? 그새 퍽 늙었군요.》
류화는 늙은이의 손을 잡고 쓰다듬는다.
《후궁마마, 세월이 많이 흘렀사와요. 쇤네가 줄창 궁안에 잡혀있다보니 어느새 머리칼이 파뿌리가 되였사와요.》
《그렇군요. 하긴 주몽이 벌써 어른이 되였으니 왜 안 그러시겠어요…》
주몽의 소리가 나오자 늙은이의 눈이 빛을 뿌렸다. 늙은이는 손등으로 눈을 닦으며 물었다.
《참, 아드님도 편안하시와요?》
《그럼요, 어찌나 컸는지 집천정이 낮아졌답니다.》
늙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을 찾았어요? 아마 우리가 만난지도 퍼그나 됐지요?》
류화의 말에 늙은이는 다시금 눈굽을 훔쳤다.
《그러게 말이오이다. 이제는 이십년이 가까와오는가보아요. 다 큰 도련님을 무척 보고싶었사와요.》
《그런데 어쩌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주몽이 집을 떠났을적에 오셨으니…》
《어디 먼데 갔사와요?》
《말떼를 방목하러 갔어요.》
《그렇군요.》
늙은이가 한숨을 풀었다. 류화가 민망한 눈길을 주며 위로하였다.
《모처럼 오신 길 참 안되였군요. 하지만 주몽은 못 보시더라도 푹 쉬고 가세요.》
《그만두소이다. 후궁마마, 저는 몰래 궁을 빠져나왔사와요.》
《몰래 빠져나오다니요? 원, 무슨 말씀이예요?》
《아니 정말이와요. 어디 저같은게 나들이다닐 형편이 되오이까? 안에서 저를 찾게 되면 불티가 올가 두렵소이다.》
늙은이는 불안스러운 눈길로 사위를 살폈다. 류화는 광대뼈가 더욱 두드러진 녀인을 바라보았다. 자식 한점없이 온갖 잡일에 시달리며 바짝 말라가는 늙은이다. 이 녀인이 어떻게 되여 불쑥 집을 찾아오게 되였을가?
《쇤네는 그저 잠간 앉았다가 갈가 하와요.》
《어서 들어와 편히 앉으세요, 어서.》
《고맙사와요.》
늙은이는 방으로 들어와 앉았다. 그리고는 방안을 두루 살피다가 주몽의 옷가지에 눈길을 멈추고 뗄줄 모른다. 이윽고 늙은이는 류화를 바라보며 조심히 말꼭지를 뗐다.
《마님, 아까 부엌의 처녀는 누구오이까?》
《저, 먼 친척의… 아들이 없을 때 가끔 같이 있어요.》
《예… 그런걸 난 또…》 하며 늙은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잠시 궁싯거리던 녀인이 다시 물었다.
《후궁마마, 저… 도련님이 장가드신다는게 사실이오이까?》
《장가를요?》 류화는 뜻밖의 말에 놀랐다. 그의 눈길이 부엌쪽으로 향한다.
《아니, 나는 처음 듣는데요? 혹시 주몽이 좋아하는 처녀를 두고 하는 말씀이세요?》
《좋아하는 처녀라며는 그… 공주오이까?》
《공주는 또 뭐예요?》
《임금님의 따님말씀이와요.》
《참, 전혀 모를 말씀만 하시는군요. 주몽이 좋아한다는 처녀도 뭐, 정식으로 말난것은 아니고 그저 눈치가 다를뿐인데요.》 하며 류화는 다시금 부엌쪽을 살피였다.
류화가 캄캄한 밤중이니 늙은이는 오히려 뜻밖이라는듯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쇤네는 우연히 대소왕자님과 대이왕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주몽도련님을 공주와 혼인시키려 한다고 하오이다.》
《대소와 대이왕자가요?》
《그렇소이다. 저도 처음에는 그저 그런가부다 했사와요. 아이때 떨구었다놔서 좀 얼떨하긴 해도 공주니까 시집 못 가랴, 헌신도 짝이 있다는데 했사와요. 그런데 신랑될 사람이 주몽도련님이라는게 아니오이까?》
《저런, 그게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일가요?》
《글쎄 가을뻐꾸기인지 봄뻐꾸기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사실인것 같아요. 대소왕자님이 부왕에게 말씀드려 공주를 주몽에게 시집보내자고 하니 대이왕자가 어떻게 말먹이군에게 보내는가 하지 않소이까? 그러니 대소왕자님도 주몽도련님이 비록 부왕의 피를 잇지는 않았어도 당당히 북국왕의 왕자이고 또 이미 궁성에서 같이 자란 처지라 부마가 되여도 세상의 웃음거리는 사지 않을것이라 하지 않소이까?》
《대소왕자가요? 정말 알다가도 모를 말씀이예요. …》
류화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공주가 시집을 가니 마니 하는 소리도 그렇지만 하필 왕자가 나서서 비뚤이 공주를 주몽에게 시집보내자고 했다는 소리가 영 귀에 선 소리다. 혹시 이 유모가 늙어 망녕된 소리를 하는게 아닐가? 아니, 이 유모는 아직 그럴 늙은이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