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몽

 

참, 사랑이란 얼마나 신비한것인가!

그것은 서로 상대의 움직임 하나 지어 숨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주시하고 감촉하게 하면서도 한편 그들을 얼마나 순진한 바보로 만드는것인가? 아직은 그것이 사랑이라는것을 감각하지도 못하는 이 순진한 청춘들을 오로지 달콤한 꿈속으로만 무작정 잡아끄는것이니, 그 신묘한 그물에 휩싸이며는 분별력을 잃어버리기가 일쑤다.

을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기가 어째서 지금 이러는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야속한 맘과 어울리는, 어쩐지 이상야릇한 기쁨에 휩싸이게 되는것을 감촉한다.

《저… 오늘 임금님으로부터 말을 하사받으셨다지요?》

례을나는 나직이 물었다.

주몽은 을나의 물음을 듣고서야 얼굴에 환한 빛을 담았다.

《음, 그렇소. 바로 저 말이요. 그래 우리 어머님도 아십디까?》

례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몽을 바라보았다. 례을나를 지켜보던 주몽은 저도 모르게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이였다. 그는 다시금 옷섶에 끼워두었던 바늘을 뽑아쥐고 바라보았다.

그러는 주몽을 잠시 바라보던 을나는 개울에 들어서서 말잔등에 물을 뿌리며 닦아줄 차비하였다.

부루나는 을나가 곁에 다가가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법 아는체 한다. 말은 령물이여서 남녀를 가리며 그들사이도 곧잘 알아본다던 말이 롱말이 아닌듯 했다. 을나는 삽삽하게 대해주는 부루나가 더욱 기꺼웠다. 무심중 웃음이 피여났다. 쉴새없이 그냥, 구름처럼 웃음이 피여났다.

《을나, 방금 목욕을 시켰소!》 주몽은 혹시 말이 갈갤가보아 주의를 주었다.

을나는 주몽을 곁눈질해보며 방긋이 웃었다. 그의 뺨이 무르녹은 복숭아처럼 발기우리해졌다.

《사람이고 말이고 깨끗하면 할수록 좋지 않소이까?》

《그건 을나가 생각해낸거요?》

주몽은 놀라운 빛을 띠우며 물었다.

《어쨌소이까? 무엇이 잘못되였소이까?》

《잘못이야 뭘, 그저 우리 어머님이 노상 그런 말씀하시기에…》

주몽은 말을 얼버무렸다.

《저도 어머님한테서 배웠소이다. 저같은 말괄랭이가 뭐 그런걸 생각하오이까?》

《그렇소?! 하, 하》 주몽은 뿌듯한 기쁨이 샘솟듯함을 느끼며 껄껄 웃었다.

을나는 도톰한 입술에 웃음을 지으며 솔로 말잔등을 쓸어주고나서 물었다.

《한가지 부탁이 있소이다. 들어주시겠소이까?》

《부탁?》

《그렇소이다. 이제 이 말이 원기를 회복한 다음에 나도 탈수 있게 해주시겠소이까?》

《을나가 탈수 있는 공손한 말이 될가?》

《못 탄다는 법이야 없지 않소이까? 다른것이라면 몰라도 소녀는 이 말을 한번 타보고싶소이다.》

을나는 새초롬해진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머리를 추스르자 검고 긴 함초롬한 머리카락이 어깨너머로 흩어져 넘어갔다.

이런 처녀도 또 처음 보지, 역시 을나다운 고집이다.

《그러다 떨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별치않소이다.》

《거참, …정 소원이라면 태워주지.》

《약속하셨소이다?!》

을나의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주몽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하하 웃었다. 을나의 활달하고 고집스러운 모습, 진실하고 소박한 모습이 주몽의 넓은 가슴에 봄빛을 뿌리고있었다.

강웃쪽 수림속에서 말을 탄 세사람이 강기슭을 따라 내려왔다.

주몽은 손바닥채양을 하고 그들을 살펴보았다. 오이, 마리, 협부였다.

주몽을 발견한 그들은 냅다 달려왔다.

주몽앞에 이른 세사람은 동시에 말에서 뛰여내렸다.

《주몽형, 기쁘겠소이다.》 하고 오이가 웃음을 머금고 말하였다.

《주몽형이 하사받은 말이 바로 저것이오이까?》 협부가 부루나를 손짓하며 물었다.

《자네들은 어떻게 그걸 알았나? 참, 빠르기도 하군!…》 주몽이 롱삼아 말했다.

《주몽형에 대한 일인데 우리가 모를수 있소이까?》 하고 마리가 말하며 제 말이 맞지 않느냐듯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오이와 마리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하여튼 고맙네!》 주몽은 벗들의 세심한 배려에 뜨거운 정이 솟구침을 느꼈다.

《난 말이야, 저 말이 장차 주몽형의것이 되리라는것을 미리 알고있었거던…》 하고 마리가 장한듯 뽐내며 말하였다.

《자네가?! 거, 모를 일인데… 가마에 끓는것이 죽인지 떡인지 어떻게 아나? 흥, 떡이 되니 떡인줄 알았겠지?》

오이가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자네, 협부도 그렇게 생각하나? 응?》 하고 오이의 미심쩍어하는 모습을 띠여보던 마리가 협부에게 손짓하며 물었다.

협부는 씨물씨물 웃기만 했다.

《그렇단 말이지? 흥,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고 하니 전번에 말떼를 보았는데 글쎄 저 말이 별로 파리해지지 않았겠나? 골격이나 색갈이 기가 막힌 절따말인데… 자, 이걸 놓고 이 마리가 생각했지, (주몽형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저 말이 주몽형의것으로 되고싶어서 저렇게 여위였다는걸 제꺽 알거야.) 하고 말이야. 오이, 자넨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마리가 큰소리로 오이에게 호통쳤다.

그러자 오이는 별치않다는듯 《자넨 확실히 어려…》 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뭐라구?》

《그렇지 않구. 세살 난 아이들도 다 아는걸 무슨 저만 아는체 하면서…》

《그게 어쨌단 말인가, 나만 아는걸 안다고 했는데…》

두 친구의 재담을 듣고있던 주몽과 협부는 껄껄 웃었다.

오이와 마리도 자기들의 익살에 겨워 하하 웃어댔다.

호탕한 네 사나이의 웃음소리가 물새들을 놀래우며 강반으로 퍼져날았다.

부루나쪽으로 무심히 얼굴을 돌리던 협부가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저기, 을나가 아니요?》 그 소리에 오이와 마리도 놀란 눈길을 던졌다.

갑자기 세 사나이의 눈길을 받은 을나는 한껏 얼굴이 붉어졌다.

오이가 자기의 머리를 툭- 쳤다.

《아차, 그런걸 이 우둔한 곰은 제노라고 우쭐거렸는걸? 그래도 주몽형의 일에 제가 제일먼저 알았다고 기뻐했단 말이요.》

《그건 나도 같아.》 하고 마리가 울상짓는체 한다.

《자네들은 공연히 질투하는군, 응당한걸 가지구…》 협부가 끼여들며 말하자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을나도 지지 않고 사내들의 롱담에 야릇한 쾌감을 느끼듯 말대꾸했다.

《오빠들은 말타고 오면서 어째서 이제야 오셨소이까?》

을나의 말에 세 친구는 서로 입을 삐죽거리며 마주보았다.

《저-것 보지?!》

《대단-하구만!》

《음, 막 으쓱해지는걸…》

세 친구는 중구난방으로 시까슬러대더니 눈을 끔벅끔벅거리였다. 이런 때 보면 꼭 아이들 같았다.

을나는 그만 말뒤로 사라져버렸다.

부루나는 마치 세 친구를 책망하듯 앞발을 들었다가 철썩- 물을 찼다.

《저것 보지. 가재는 게편이요, 초록은 동색이라, 하하하-》

그들은 또다시 통쾌하게 웃어댔다.

《자, 그만하게, 우리 어머님이 어느새 아시고 가보라고 해서 왔다더군.》

주몽이 변명하듯 말하였다.

《그렇소이까?!》 세 친구는 웃음을 거두었다.

《하여튼 을나가 우리보다 낫소이다!》 하고 협부가 정색해서 말했다.

주몽과 그의 친구들은 붉은 노을이 비낀 강기슭의 풀판에 앉았다.

《주몽형, 듣자오니 오늘 대소왕자도 목장순행길에 따라나섰다고 하오이다?》 하고 마리가 주몽에게 물었다.

《그렇더군.》

《뭐, 별다른 기미를 느끼지 못했소이까?》

《아니…》 주몽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대소왕자가 나를 곱지 않게 본다는거야 비밀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나?》

《점심에 저의 아버지가 얼핏 하시는 말씀 들으니 대소왕자의 옥감이 이번 순행길로 해서 한결 토라진것 같소이다. 이건 그저 제 추측이긴 하옵니다…》

마리가 말꼬리를 흐렸다.

《아까 오면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마리, 공연한 걱정이 아닐가? 주몽형이 대소왕자에게 욕될 일을 한것도 아니고 또 대왕이 직접 말을 하사한것인데…》 오이가 자기 생각을 비쳤다.

《그렇게만 볼것도 아니요. 오이, 자넨 아름드리 참나무도 구새에 넘어지고 바위도 바람과 이끼에 갈라진다는 소릴 못 들었나?》 협부가 이마를 찌프리고 오이를 나무랐다.

오이는 덤덤히 그 말을 듣고있다가 우드득 이를 갈았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제까짓것들 무슨 일 칠려구? 제가 공연히 주몽형한테 트집을 걸다가 대가리 바스러지지 않나보지, 까짓거…》

오이의 거친 말투에 마리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오이, 대소는 태자가 될 왕자라는걸 알아야 하네.》

세 친구의 오가는 말을 듣던 주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들 하게. 왕자들이 설사 그렇다고 한들 트집에 걸리지 않는다면 어쩔 도리가 없지, 난 그들의 모해를 한두번만 받지 않았네. 그것 참, 그들이 어째서 나하고 죽기내기로 해보자고 하는지 난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걸…》

주몽은 쓰겁게 웃었다. 주몽은 마리와 협부의 진중한 우려와 오이의 극진한 호의를 감사하게 받았다. 그럴수록 세 친구와 더불어 포부를 펴고싶은 마음 더욱 굳어졌다.

한편 오이, 마리, 협부는 대소왕자들과 주몽형사이에 눈에 띄우지 않는 군렬이 장차 위험천만한 일을 배태하게 되리라는것을 페부로 느끼며 긴장해지였다.

그것은 어느 한사람의 신상에 닥치는 위험만이 아니라 자기들전체에 미치는 위기였다.

《어쨌든 주몽형은 특별히 조심하소이다. 우린 형이 너무 대범한것이 오히려 불안스럽소이다.》 마리가 진정으로 권했다.

주몽은 세 친구를 말없이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요즈음 생각이 많네. 수천년 단군선인의 뜻이 꽃피던 이 땅에 지금에 와서 사방에서 제나름의 영웅들이 거품처럼 솟아올라 리기의 울타리를 치고 제나름의 나라들을 만들어 후세들을 욕보이고있네. 이제 이 모양이 계속된다면 하나의 우리 겨레, 우리 강토는 신성한 선인의 자취를 망각하고 전멸하게 될걸세.

이걸 보고 뜻이 있고 담이 있는 사나이라면 어찌 수수방관할수 있겠나?

내 생각에는 단군선인의 후손들은 모두가 하나의 마음으로 통하리라고 믿네.

이 통하는 마음을 묶어세우면 능히 이 성스러운 땅이 다시금 번영할걸세!》

세 친구는 주몽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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