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를 지켜(2)
《있으면 있는대로 다 줍시다.》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는 장개석국민당군대의 전면침공을 저지시키고 파국의 위기에 직면하였던 동북혁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중국혁명가들에게 사심없는 지원을 주시였다.
당시 국민당군대의 침공에 맞서싸워야 할 동북민주련군 부대들에 있어서 제일 걸린것은 무기와 탄약이였다.
모택동이 파견한 특사로부터 중국공산당의 요청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기와 탄약을 해결해줄것을 쾌히 수락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지금 중국혁명이 큰 시련을 겪고있다고, 우리는 국제주의전사로서 이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다고 하시면서 나는 중국에 무상원조를 주기로 하였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병기창에 일제침략자들로부터 빼앗은 무기와 탄약이 얼마나 보관되여있는가를 알아보시고 10만명을 무장시킬수 있는 무기를 중국에 보내주자고 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은 너무도 아름차서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당시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와 그 주구 리승만괴뢰도당이 무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면서 전쟁도발책동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조건에서 하루빨리 정규무력을 건설해야 했던 우리에게 더없이 귀중한것이 무기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몇천정도 아니고 무려 10만명을 무장시킬수 있는 무기를 주자고 하시니 일군들이 어찌 선뜻 대답을 올릴수 있었겠는가.
그들의 생각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나라 혁명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세계혁명에도 충실해야 한다고,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이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는 때에 우리는 진심으로 중국혁명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있으면 있는대로 다 줍시다.》라고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중국에 보낼 총과 포, 탄약을 비롯한 군수물자의 수송대책까지 구체적으로 세워주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무기들을 접수하여 전선의 각 부대들에 분배해주는 임무를 수행한 중국의 한 일군은 후날 《무기가 없어 창이나 곤봉을 메고다니던 많은 전사들이 총을 받아안고 환성을 올렸고 춤을 추며 기뻐하였다. 감격없이는 볼수 없는 광경이였다.》라고 감회깊이 추억하였다.
그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사람들로 포부대와 공병부대를 무어 동북전선에 파견하시고 성능높은 폭약을 생산하여 동북해방전쟁 전기간 보장할데 대한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중국에서 그처럼 우려하던 군복문제도 위대한 수령님의 사심없는 지원에 의하여 해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동분구 지휘성원들이 군복문제때문에 고심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는 곧 3 000필의 군복천과 1 000여벌의 피복, 많은 량의 의약품들을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주보중이 자기의 안해를 보내여 동북민주련군 장병들이 신발이 부족하여 곤난을 겪고있는 사정을 말씀드리였을 때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신발공장들에서 다른 신발생산을 일체 중지하고 중국전우들에게 보낼 신발만 생산할데 대한 긴급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중국의 문헌자료에 의하면 1946년 여름부터 1948년까지 2년반동안 조선에서 중국에 제공한 군수물자들은 무려 2 000여차량분에 달한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혁명을 지원하여주시던 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면서 못 먹고 못 입어도 혁명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국적을 따지지 않고 먹어라, 쓰라 하던 때가 좋았다고, 공산주의자들은 언제 어떤 환경에서나 국제주의적의무와 의리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런 숭고한 뜻을 지니신 우리 수령님이시였기에 해방후 건국의 초행길을 걷는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중국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동서고금에 없는 국제주의적련대와 지원의 력사를 수놓으시였던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