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1
조국통일범민족련합
조국통일범민족련합(략칭《범민련》)은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싸우는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애국적이며 거족적인 통일운동련합체이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범민족대회의 결의에 따라 1990년 11월 20일에 결성되였다.
범민련은 전민족의 대단결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는것을 목적으로 하며 북과 남이 합의하여 온 세상에 선포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지침으로 삼는다. 범민련은 조국통일3대원칙을 지지하고 자기의 강령과 규약을 승인하는 북과 남, 해외의 애국적인 정당, 단체 및 개별적인사들로 구성하고 민주주의원칙 및 북과 남, 해외 3자합의제에 의하여 조직되고 운영되며 여기에 참가한 정당, 단체는 동등한 자격과 권리, 의무를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한 운동에서 공동행동을 취한다. 범민련에는 최고의결기구로 조국통일범민족대회와 그를 대신하는 북과 남, 해외중앙위원련석회의 그리고 범민련 공동의장단, 공동사무국 등이 있다. 범민련은 지역조직으로서 북과 남, 해외에 각각 지역본부를 두고 해외본부밑에는 일본, 미국, 카나다, 유럽, 로씨야, 중국, 오스트랄리아 등에 지역지부를 두고있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1991년 1월 25일에, 남측본부는 1995년 2월 25일에, 해외본부는 1990년 12월 16일에 결성되였다. 범민련 해외본부는 일본 도꾜에 있다.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은 1985년 12월 남조선청년학생들이 광주시에 있는 미제의 사상문화적침투기관인 《문화원》을 점거하고 벌린 반미, 반《정부》투쟁이다.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반미자주화와 반파쑈민주화투쟁이 앙양되고있는 가운데 전남대학교와 전북대학교 학생들은 1985년 12월 2일 오전 광주시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점거하고 미국대사와의 면담과 《도청》광장에서 《민정당》측과의 대토론회 개최 등을 요구해나섰다. 학생들중 6명이 먼저 도서《열람객》으로 가장하고 《문화원》안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3명의 학생들이 기미를 차린 경찰관들로부터 제지를 받자 놈들을 밀어제치고 현관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먼저 들어간 학생들이 뒤쫓아오는 경찰들에게 건전지 2개를 던지며 《폭발물이다》라고 소리치자 놀란 경찰관들이 주춤하는 순간 학생들은 원장실을 순식간에 점거하였다. 학생들은 문을 안으로 잠그고 길가쪽 유리창에 《삼민헌법 쟁취하자》, 《민중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입개방 철페하라》 등의 벽보들을 내붙였다. 학생들은 흰바탕에 붉은색으로 《삼민》이라고 쓴 머리띠를 두르고 《미국의 수입개방요구 철페》 등의 구호를 웨치며 롱성에 들어갔다. 학생들은 《미국은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미국행정부에 보내는 글》, 《미국은 우리의 생존권을 짓밟는 수입개방압력을 중단하라》는 내용이 담긴 《왜 우리는 미국문화원에 들어가야만 했는가》, 《경고장》 등 4종의 인쇄물을 창밖으로 뿌렸다.
파쑈도당이 수많은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미국문화원》을 포위하고 위협공갈하였으나 학생들은 의자와 책상으로 바리케드를 쌓고 화염병으로 방어태세를 취하면서 9시간이상 롱성을 계속하였다.
광주《미국문화원》은 이 점거투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두차례(1980. 12. 9, 1982. 11. 20)에 걸쳐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의 공격에 의하여 불길에 휩싸였다. 광주《미국문화원》점거투쟁은 날로 세차게 벌어진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단 청
우리 나라의 단청은 유난히도 화려하다.
특히 붉은색, 검은색, 황금색을 주로 사용하는 일본의 단청에 비하면 그 화려함의 정도가 단연 두드러진다.
우리 나라의 문화에서는 화려한 색채를 쓰는 일이 흔하지 않는데 유독 단청에서만 최대한의 화려함을 나타내고있다.
단청이라는 말은 건물채색의 특징에서 생긴것이다.
건물채색에서 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부분은 푸른색을 위주로 사용하고 빛을 많이 받는 바깥쪽은 붉은색을 사용했기때문에 단청이라고 한다.
그늘진쪽에 밝은색을 쓰지 않고 오히려 어두운색을 썼고 밝은 바깥쪽에다 다시 밝은색을 칠한 리유는 어두운색은 그늘진곳에서, 밝은색은 환한 곳에서 색감의 맛이 잘 살기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해놓으면 그늘진 곳은 더 들어가보이고 로출된쪽은 더 돌출되여보이므로 물체의 립체감을 두드러지게 나타낼수 있다는데서였다.
단청이라고 하면 먼저 절간을 떠올리게 되는데 단청은 절간뿐아니라 궁궐이나 사당 등에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의 집에 단청을 하는것은 엄격히 제한하였다.
이러한 금지법은 세나라시기부터 있었다.
민 족 당 과 ― 엿
우리 나라에서 엿에 대한 력사기록은 리조시기부터 보이지만 《삼국유사》에 다과(당과류)가 설날제사음식의 하나로 쓰이였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당과류의 하나인 엿도 당시에 있었다고 추측된다.
엿이라는 말은 《잇다》 즉 잡아당겨도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데로부터 유래되였다.
엿은 흰쌀이나 흰찹쌀 등 여러가지 낟알을 가지고 만드는데 재료에 따라 흰쌀엿, 찹쌀엿, 수수엿, 찰기장엿, 감자엿, 고구마엿 등이 있다.
전통적인 엿 만드는 방법은 《규합총서》, 《고사신서》, 《산림경제》, 《부인필지》 등 여러 력사책들에 씌여있다.
엿은 지방마다 특색있게 만들기도 하였는데 평안도의 단고기엿, 황해도의 무우엿, 강원도의 고구마엿, 제주도의 꿩엿, 닭엿 등이 이름났다.
엿은 낟알의 전분을 당화시켜서 만들었기때문에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날뿐아니라 영양성분이 많은 여러가지 재료를 배합한것으로 하여 주요당분원천으로, 영양식품으로 리용되여왔다.
물엿(조청)은 주로 음식가공과 고려약을 만드는 보조재료로, 강엿(졸여서 굳힌것)과 흰엿은 간식으로 많이 리용되였다.
우리 나라 엿은 그 우수성으로 하여 16세기말에는 해외에까지 전파되였다.
엿은 오늘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기본당과의 하나로 널리 리용되고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