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주  몽

 

례나루의 눈길이 꼿꼿해지며 손녀의 붉어지는 얼굴을 더듬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도대체 저 을나가 수집음을 타는것부터가 수상쩍다. 평시에 좀해서는 볼수 없는 일이였다. 저 애가 혹시 주몽을 련모하고있는게 아닐가?

《너는 모르쇠 하지만 네 얼굴은 다 말하고있느니라. 이 할애비를 속일 생각일랑 말아라.》

《저…》 하며 례을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례나루는 속으로 피는 웃음을 감추고 짐짓 놀라운듯 물었다.

《아니, 한갖 규방처녀가 어찌 목동을 련모할수 있느냐? 허, 변괴로군… 그래 무슨 인연이라도 있었느냐?》

《저, 그건…》

을나는 도톰한 아래입술을 깨물었다.

《주몽이 나에게서 3년동안 무예와 학문을 착실히 닦는다고 했더니 딴전을 부렸구나. 무예와 학문을 하면서 처녀를 넘겨다봐?》

을나의 얼굴이 익은 꽈리로 변해갔다. 어찌나 붉어지는지 금시 빨간 물이 튀여나올듯 싶었다.

《아니, 그이는 모르오이다. 저 혼자…》

을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례나루는 더이상 손녀를 다긋는게 맹랑하다고 생각하였다. 분명 손녀의 가슴속에는 누구도 모르게 주몽에 대한 련모의 싹이 자라고있는게다. 주책없는 꼬챙이질로 손녀의 부푸는 가슴에 자리잡은 봄망울을 파헤치고싶지 않았다. 무릇 사나이의 가슴에는 천하가 깃들고 처녀의 가슴에는 그 사내가 깃드는 법이다. 사나이의 가슴에 깃든 웅지는 당당히 헤쳐 영웅의 값을 사겠지만 처녀의 가슴에 깃든 정은 그 무엇으로 살수도, 꺾을수도 없는것이다. 아무리 무엄한 할애비앞이란들 어찌 그것을 스스럼없이 펴낼수 있으랴.

《참 인연이란 묘하군…》

례나루는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을나야, 이 삼일신고를 주몽에게 전해주지? 그에게 내가 이미 단군교8리는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을나의 굳어지던 낯이 비로소 풀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실〉, 〈신의〉, 〈사랑〉, 〈구제〉, 〈복락〉, 〈불행〉, 〈보은〉, 〈응답〉의 8리말이나이까?》

《허허, 녀석… 그래 그래…》

《알겠나이다. 할아버님의 분부를 기꺼이 받겠나이다.》

《오냐.》

례나루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례을나는 풋망아지마냥 방을 뛰쳐나갔다.

《주몽은 소부리언덕 근처에 있을게다.》하는 례나루의 목소리는 어느새 자기의 방안문을 열고 들어가는 을나의 등에서 울렸다. 자기의 방에 들어간 례을나는 덤벼치며 면의를 입고 청동거울을 집어 자기의 모습을 슬쩍 비쳐보고는 뜨락으로 나왔다. 마구간에서 과하마를 끌어내여 타고 말구종도 없이 집을 나섰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간밤에 온 비로 미역을 감은 산천은 한결 싱싱하였다. 례을나는 머리우로 쪼롱쪼롱소리를 지르며 날아가는 새떼를 한참이나 올려다보며 방긋 웃었다. 처녀의 가슴은 햇구름마냥 뭉게뭉게 부풀어올랐다.

키는 작아도 날래고 힘센 과하마는 오늘따라 들떠있는 을나가 놀랍다는듯 큰 눈을 디룩거리며 귀바퀴를 쫑긋거렸다.

을나는 과하마의 갈기털을 쓸어주며 친우에게나 하듯이 중얼거렸다.

《하마트면 할아버지앞에서 터놓을번 하였지 뭐 큰일날번 했지, 응? 정말이야! 호-》

코살을 찡그려보이는 을나의 눈앞에는 주몽을 련모하느냐 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 혼날번 했어…》

주몽은 을나 혼자만이 간직하고있는거다. 그 누구도 알아차려서는 안돼! 거칠것없이 보이던 을나에게 생겨난 이 야릇한 거리낌은 봄날의 대지에 피여오르는 아지랑이였다. 이게 뭘가? 누구에게나 숨기고싶고 그래서 오직 저 혼자만 두고두고 누리고싶은 이 마음, 그려보고싶고 만나보고싶은 마음이 쏜살이 되여 날아가는, 이게 무엇인지. 례을나는 나직이 노래를 불렀다.

 

가지는 세개요

잎은 다섯인데

해빛이 가리운

음달에서 산다오

나를 찾으려거든

단나무밑을 살펴보시라

 

언제인가 할아버지가 배워준 노래였다. 저 남쪽의 구려사람들이 부른다는 인삼노래가 어째서 을나의 입에서 떠날줄 모를가?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그 많은 노래중에서 그 인삼노래가 샘물처럼 퐁퐁 솟구치니 이상하지? 을나는 눈감고 아웅하는거다. 인삼노래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주몽이 아닌가?

해빛이 가리운 음달에서 살아도 귀하디 귀한 인삼! 바로 그게 주몽이 아니던가? 새빠진 소리, 아니 그런게 아니다.

주몽은 목동이다. 그런 총각을 사랑한다고 하면 세상은 얼마나 놀랄가? 삶과 죽음의 나락만큼이나 넘기 힘든 그 지경! 하지만 례을나는 그 지경을 비웃으며 선뜻 저쪽 나락으로 발을 딛고 팔을 벌린것이다. 아무리 뭇사람들이 비웃고 아우성쳐도 례을나에게는 그 지경이 아름다운것을 어찌하랴. 봄날의 대지처럼 부푸는 처녀의 가슴은 사랑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 바로 그 사랑은 주몽이였다. 하늘을 우러러 우뚝 선 주몽의 모습은 을나에게 비쳐진 어쩔수 없는 해님이였다. 그에게만 갈수 있다면 권세와 부귀를 다 버린대도 행복한것이다. 지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쳐도 을나는 마다하지 않을것이다.

자기가 철없는 계집애여서 그런것이 아닐가 하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떤 반발심이 일어나 례을나의 가슴을 뛰놀게 하였다.

인삼노래는 그 반발을 부추기며 어두워지려는 마음을 몰아내는 향기였다.

 

해빛이 가리운

음달에서 산다오

나를 찾으려거든

단나무밑을 살펴보시라

 

주몽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것은 바로 례을나자기만이 알고있다. 넓으나넓은 세상이 한갖 목동으로 알고있는 그를 례을나 자기는 다르게 안다. 자기만이 알고있다고 믿고있는 주몽의 그 참됨과 억세인 기상을 례을나는 버릴수 없다! 버릴수 없는 그 매혹은 언제부터 시작되였던가? 례을나는 가벼운 숨을 내쉬며 그때를 더듬었다. 그것은 삼년전 《영고》때였다.

쿠- 쿵, 쿵…

천둥같은 북소리가 바글바글 모여든 사람들우로 퍼져갔다. 형형색색의 인파가 아글바글거리여 귀가 멍멍하고 눈앞이 핑- 핑 돌았다. 을나는 자기가 어떻게 이 《영고》구경을 나왔는지 알수 없었다. 어리벙벙해서 내키는대로 흐르던 을나의 눈길이 문득 저쯤 앞에 있는 한 아이에게 멈추어섰다. 열두살 났을가? 어느 촌에서 굴러온것이 분명한데 녀석은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풍맞은 놈처럼 우뚝우뚝 놀란다. 그 모양이 어쩐지 웃음을 자아냈다. 재미있는 아이였다. 곰팽이가 푸르스름하게 낀데다가 우글쭈글해지고 털이 빠진 마고자를 입고 머리가 수팜송이처럼 푸수수한 꼬락서니가 볼만 하였다. 녀석은 북소리 울릴 때마다 내우하는 계집이 젖가슴 가리듯 옷섶을 끄당겨놓군 하였다. 그러나 인차 헤자자 벌려지는 그사이로 팥알같은 젖꼭지와 때가 재들재들한 배꼽이 거리낌없이 내다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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