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 5.1절

 

전세계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인 5.1절이 123번째년륜을 새기고있다.

1886년 5월 1일 미국의 시카고로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억압을 반대하여 파업과 시위를 단행하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의 로동을 강요하는 자본가들을 반대하여 8시간로동제실시의 구호를 높이 들었다. 자본가들과 경찰들은 시위자들에게 마구 총질하여 수백명의 로동자들의 생명을 빼앗아갔다. 시카고의 참극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며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밑에서 신음하던 전세계로동계급의 쌓이고 쌓인 분노를 폭발시켰다. 세계 여러나라 로동자들은 8시간로동제실시의 구호를 들고 자본가들의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여 싸우다 피흘린 시카고로동자들에게 전투적련대성을 표시하는 파업과 시위를 벌렸다. 이러한 로동계급의 단결 된 투쟁은 자본가들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하였다.

1889년 7월 프랑스의 빠리에서 열린 제2국제당 창립대회에서는 로동계급의 자주권을 찾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운 시카고로동자들의 의로운 투쟁을 기념하여 매해 5월 1일을 전세계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로 기념할것을 결정하였다.

이때로부터 전세계근로자들은 이날을 자본의 억압과 착취를 반대하며 생존의 권리와 민주주의적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자기들의 단결의 전투적위력을 시위하는 날로 국제자본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련대성을 강화하는 날로 기념하고있다.

우리 공화국에서는 이날을 국가적명절로   정하고 자주, 평화, 친선의 리념에 기초한 다채로운 행사들을 진행하고있다.

 

1

천여년의 력사를 가진 대학 -고려성균관

 

세계적으로 력사가 제일 오랜 대학인 고려성균관은 992년에 창립되였다. 개성시 방직동에 자리잡고있는 고려성균관은 당시에는 국자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고려시기 최고교육기관으로 세워진  국자감의 교육목적은 봉건관리양성이였다. 그후 그 이름은 여러번 바뀌여져 13세기에는 성균감으로 불리우다가 14세기에 성균관으로 고쳐졌다.

성균관에서는 학생들에게 봉건통치리념인 유교를 주입시키고 그들이 장차 봉건관리로서의  일정한 실무적자질을 갖추도록 할 목적으로 교육내용을 편성하고 《론어》를 비롯한 유교경전들과 률학(법학), 산학(수학), 서학(글씨쓰는 법) 등 전문지식을 가르쳤다. 물론 당시 교육의 목적과 내용에서는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면할수 없었지만 성균관의 창립과 그 운영은 우리 민족이 일찍부터 교육에 얼마나 큰 힘을 넣어왔는가를 력사적사실로 실증해주고있다.

성균관에서는 강의실과 합숙, 식당을 다 갖추어놓고 나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수 있는 인재후비들을 수많이 키워냈다. 력사문헌들에 수많은 애국명장들과 학자들이 고려성균관에서 공부하고 과거에 급제하였다고 씌여있는것만 보아도 그것을 잘 알수 있다.

고려의 성균관은 16세기말 임진조국전쟁시기 일본침략자들에 의하여 불타버렸다.

현재 개성에 있는 건물은 그때 불에 탔던것을 원상그대로 다시 건설한것이다.

력사에 파묻혀 빛을 잃었던 고려성균관은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에 떠받들려 자기의 천여년력사를 되찾게 되였다. 이곳을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학부와 학과의 명칭, 학생수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고나서 몸소 붓을 드시고 《고려성균관》이라고  친필도 써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의 손길아래 고려성균관은 나라의 경공업발전을 떠메고나갈 인재후비들을 키우는 종합대학으로 자랑떨치고있다.

2

제주도인민봉기

 

미제침략자들이 조작한 5. 10망국단독선거를 반대하여 1948년 4월 3일 제주도인민들이 일으킨 반미구국항쟁이다, 《4. 3인민봉기》라고도 한다.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민족분렬책동과 식민지예속화정책을 감행하여온 미제는 1947년 10월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상정시키고 그 간판을 도용하여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꾸며냈으며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감시밑에  남조선에서 5. 10망국단선을 실시하고 괴뢰정부를 조작하려고 책동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는 국토량단과 민족분렬이 영구화될 엄중한 위기가 조성되였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의 전체 조선인민들에게 민족분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조선인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조선최고립법기관을 선거하고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수립할것을 호소하시였다. 남조선로동계급과 함께 제주도인민들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의 《입국》을 반대배격하는 1948년 2. 7구국투쟁에 일떠섰다.

미제국주의자들은 2. 7구국투쟁을 전후하여 제주도에서만도 무려 1만여명의 애국자들을 체포, 투옥, 학살하였다. 그러나 인민들은 5. 10망국단선을 반대하는 투쟁에 더욱 힘차게 일떠섰다. 1948년 3월말부터 제주도인민들은 2. 7구국투쟁때 탈취한 무기로 인민무장자위대를 편성하고 한나산을 중심으로 하여 산악지대에 들어가 근거지를 꾸리였으며 4월 3일 새벽 무장항쟁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미제를 타도하라!》, 《단선단정 결사반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은 철거하라》, 《인민의 원쑤 반동무리들을 처단하라》, 《주권은 인민위원회에로》 등 구호를 웨치며 도처에서 경찰지서들을 습격하고 경찰들과 주구놈들을 처단하였으며 미제에 의하여 강제해산당하였던 인민위원회들을 다시 복구하였다. 30만의 도내 인민들중 24만을 망라한 봉기군중들은 적극적인 투쟁으로써 제주도에서의 망국단독선거를 완전히 파탄시켰으며 적들의 통치질서를 마비상태에 완전히 빠뜨리게 하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제주도인민들의 투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수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도내 부락의 절반이상이나 되는 295개의 부락에 불을 지르고 7만여명의 인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였다. 그러나 원쑤들의 그 어떠한 발악과 학살만행도 제주도인민들의 투지를 꺾을수 없었다.

제주도인민들의 영웅적투쟁은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야수적폭압으로 계속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제주도인민봉기는 외세의 간섭을 철저히 배격하고 민족자주적인 힘에 의하여 조국의 통일독립을 이룩하려는 제주도인민들의 한결같은 지향과 완강한 투지를 뚜렷이 보여주었으며 미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