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주 몽
조심스러운 발자취소리가 들렸다. 누구인가 후궁 우씨의 방으로 오고있었다. 긴장해있던 우씨였지만 정작 문소리가 살며시 나자 눈초리가 꼿꼿해졌다. 후궁 우씨는 문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귀고리가 자르릉 소리를 냈다. 우씨의 귀고리는 순금이였는데 가는 금줄로 넝쿨이 엉킨 모양의 틀을 좌우대칭되게 엮은 다음 우아래 두개 단으로 18개의 금구슬알을 꿰여매달고 맨밑에 둥근 비취옥을 매단것이였다. 비취옥이 가볍게 그네를 뛰였다.
우씨의 눈길이 방금 들어선 사람을 더듬었다. 문에 가리웠던 비단장막을 헤치고 이쪽을 보는 사람은 다행히도 우씨가 제일 신임하는 시비였다. 시비는 휘장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우씨의 방안을 재빨리 훑었다. 우씨는 시비의 거동에서 어떤 심상치 않은것을 느꼈다. 우씨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시비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우씨에게 소리없이 다가온 시비가 다시한번 방안을 휘둘러보고 나직하게 말했다.
《후궁마마, 왔소이다.》
《그 장사군이 직접 왔더냐?》
《아니오이다. 심부름군이 왔소이다.》
《또?》
《후궁마마. 아무리 부왕마마가 순행중이라 하더라도 조심하여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건 네 소리냐, 아니면 그 연나라인지 제나라인지 하는 오랑캐장사군 말이냐?》
시비가 눈을 내리깔며 어여쁜 앵두입술을 오물오물거렸다.
《됐다. 그렇다 하고, 약속한것은?》
시비는 후궁의 곁으로 바싹 다가와 귀속말로 소곤소곤거렸다.
우씨는 시비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침내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후궁은 손가락에 낀 금가락지며 옥가락지 그리고 팔찌를 만지작거리다가 《좋아, 그렇게 하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오랑캐장사군이 명도전이나 일화전으로 하지 않고 굳이 우리 부여의 구슬로 하겠다면 그렇게 하기로 해. 우리 부여의 구슬이 그렇게도 좋은가?》
《후궁마마, 그 사람들은 우리 부여의 구슬을 동주(동쪽나라에서 나는 구슬)라고 하면서 그것을 귀하기가 천금과 같은 보물로 여긴다고 하오이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아마 만금, 아니 억만금쯤 걸치고있는것으로 되겠지?》
《후궁마마께서 롱담도 곧잘 하시오이다.》
《네앞이니 내가 숨길게 있냐?》
후궁 우씨는 만족스럽게 자기의 차림을 더듬어보았다.
과연 후궁 우씨는 값으로 치면 억만금은 나갈것이다. 그 생김은 둘째치고라도 겉의 치레거리가 황홀하기 그지없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야말로 값진 보물들로 꾸며놓았다. 비취옥이 달린 순금제귀걸이도 그러하지만 목걸이 또한 진품중의 진품이다. 그 목걸이는 정교하게 가공한 266개의 마노구슬과 그 사이사이에 6개의 금구슬을 꿰여 만들었는데 불그스레한 마노구슬이 령롱한 빛과 누런 금구슬의 눈부신 빛이 서로 조화되면서 사람의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치레거리도 금과 은구슬로 황홀하지만 입고있는 옷도 보통때 입는 옷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갈 때나 입는 모직옷이다. 그것은 보통모직옷과 달랐다. 그저 발이 고와서만이 아니다. 후궁마마가 입고있는 모직옷은 날실은 양털로, 씨실은 개털로 짠것이였다. 발에 걸친 갓신도 흰돈의 가죽으로 맵시있게 만든것이였다. 이 모든것은 물론 후궁마마만이 누려볼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왕후라고 하더라도, 정실이건 후실이건간에 차림과 치레도 사람나름이다.
금와왕의 정실, 그러니까 대소의 어머니는 생전에 후궁인 우씨처럼 화려하지 못하였다. 골골 앓기 잘하던 정실인지라 마음껏 치레하는데 관심을 쏟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후궁인 우씨는 그와 달랐다.
후궁 우씨가 생각하는 녀자란, 특히 왕후란 치장의 극치를 이루어야만 한다는것이였다. 단순히 남자의 눈을 끌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녀자라는 존재가치자체가 우아하고 황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하늘이 준 녀자의 특권이라고 우씨는 생각하였다. 얼굴, 몸매와 함께 치레로 꾸며지는 아름다움은 녀자자체나 왕후의 몸값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하늘이 점지한 령물인 사람, 그 령물중의 령물인 왕과 그 지경인 나라를 떨치게 하는데서 없어서는 안될 일이였다.
이러한 리치를 금와왕은 잘 모른다. 금와왕은 오직 비파형강철단검이나 장검, 그리고 말에 대해서 호기를 느낀다. 그것만이 진품으로 된다고 생각하지 왕후의 치장거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녀자를 즐겨하지 않는다는것은 아니였다. 후궁 우씨가 보건대 금와왕은 호걸풍이라 주색에 그 누구도 따를자 없으리만치 밝힌다. 그럴수록 더욱 치장에 관심을 돌리는 우씨였다. 그러자면 후궁의 앞으로 차례지는 비용을 가지고서는 엄청나게 부족하였다. 그리하여 우씨는 스스로가 남모르게 치레거리비용을 마련하고 탕진하였다. 후궁 우씨의 아름다움을 돋굴수 있다면 그 제공자가 오랑캐이든 하호나 노예이든 가리지 않는다. 우씨는 절대로 그런걸 꺼리지 않는다. 그런것은 정사를 한다는 남자들이나 알 일이다. 후궁을 위한 일은 곧 왕을 위한 일이요, 왕을 위한것은 곧 나라와 백성을 위한것이 아니겠는가.
마침내 후궁 우씨는 시비에게 분부를 내렸다.
《그 오랑캐장사군이 우리 나라 구슬을 요구한다면 내 이름으로 국고에서 내도록 해라. 모자라면 대왕의 어명을 빌어 조처하도록 하고…
대신 받기로 한 비단은 그네들에게도 제일 값진 진품이여야 한다고 해라.》
시비는 배시시 웃음을 짓고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비밀의 장사거래를 마무리하고난 우씨의 기분은 사뭇 흥그러워졌다.
한동안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던 우씨는 문득 생각나는것이 있어 몸종을 불렀다.
《대이왕자께서는 아직 오시지 않으셨느냐?》
《예.》
《들어오시면 내가 찾는다고 해라.》
《들었사와요.》
대이왕자는 대소왕자의 방에서 물러나자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네가 맏이면 다냐? 늘쌍 계집애처럼 양양거리는 주제에… 사나이라는게 좀 대범한데가 있어야지, 그게 뭐야? 네가 정실왕후의 몸에서 나보다 몇해 앞서 낳았다는것밖에 볼게 있냐. 그리고도 태자자리는 꼭 제것인것처럼… 나는 이 대이왕자는 비록 후궁마마의 몸에서 낳았지만 너보다는 낫다. 네가 하나를 세면 나는 열을 안다.
네가 서쪽 쥬신국에서 왔다는 그 사람을 만나고 무슨 말을 했으며 거기서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내가 모를줄 알고? 겁쟁이 같은게, 네가 검술이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태자는 고사하고 왕자로도 안돼. 이 대이가 태자가 되지 못할줄 알고? 두고보자. 내가 태자가 되고 왕이 되지 못한다면 대이가 아니다.
쥬신국사람을 찾아라? 일은 제가 저지르고 안달복달 나에게 짜증을 내? 꼴 좋다. 그게 나를 보고 항상 무식하다고 비웃어주는 너, 그 알량한 형의 본때야?
대이왕자는 허리에 찬 검을 꾹 쥐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어마마마의 몸종이 대이가 들어서기 바쁘게 쪼르르 달려와 아까부터 후궁마마가 왕자를 기다리고계신다고 전하였다.
대이왕자는 우뚝 멈추어섰다. 왕자의 입술이 움찔움찔거렸다. 후궁 우씨는 대이왕자를 낳은 생모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대하기가 묘하다. 대이왕자는 생모앞에 설 때마다 항상 자기를 바보취급하는듯 한 느낌을 받는것이다. 어릴 때는 몰랐으나 제법 목고대의 울대가 살아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아리숭한 반발감이 들군 하였다. 그것이 비록 부왕마마인 금와왕에게 대하는 후궁마마의 태도에서도 나타나기때문에, 후궁마마는 천성이 남자들을 바보로 알고 떡주무르듯 하는가보다 하고 자제하지만 비위는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어쩔수없이 복종하게 되는 왕자였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이왕자자신조차 묘하다고 생각되는 처신도 실은 후궁마마의 말을 고분고분 들었기때문이였다. 서쪽에서 온 사람을 대소왕자가 만나고 그 사람이 서쪽 쥬신국에 원군을 청했을 때 대소왕자가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는것도 사실은 대이왕자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후궁마마의 명철한 훈시였다. 놀랍게도 그후 일의 진전은 사실상 어마마마의 점괘에 따라 되였다. 대소왕자가 그 서쪽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해버리려고 할것이라는것도 신통했고 그 죽게 된 사람을 놓아주되 주몽쪽으로 가게 하면 반드시 주몽이 구원하게 되리라는것도 들어맞았다. 대이는 주몽이 그 서쪽사람을 숨겼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대소왕자와 주몽사이에 틀림없는 암투가 벌어지리라는 말도 그럴듯 해보였다.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