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해마다 이역땅에서 우리 민족최대의 명절인 태양절을 맞고 보내지만 올해의 태양절은 저에게 있어 류다른 감회를 안겨줍니다.

그것은 아마도 올해가 다름아닌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이 되는 뜻깊은 해여서 더욱 그러한가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인 1993년 7월에 중국에 사는 우리 4형제는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을 맞으며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성의를 다하여 마련한 2건의 수예품들을 삼가 선물로 올리였습니다.

우리들이 미흡하나마 지성어린 선물을 마련한것은 일찌기 부모들을 여의고 해외에 사는 우리들에게 조선공민의 참된 삶을 안겨주시고 조국통일과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한평생을 바쳐오시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만년장수를 삼가 축원하는 절절한 마음에서 우러나온것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민으로서 응당한 일을 한 우리 4남매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여 친히 꽃병도자기와 남자양복, 조선치마저고리들을 선물로 보내주실줄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국경너머 머나먼 남의 나라땅에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친히 보내주신 대원수님들의 사랑이 깃든 선물들을 받아안고 감격에 흐느껴울던 일이며 그후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에 우리들이 올린 선물들이 전시되여있는것을 목격하고 솟구치는 격정을 금치 못하던 일들이 지금도 마치 어제런듯 기억속에 생생합니다.

지난해 조국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 1돐 추모행사에 참가하고 새로 건립된 국가선물관을 참관하던 저는 그곳에 근 20년전에 우리 4남매가 백두산대원수님들을 흠모하여 선물로 올린 수예작품들이 정히 전시되여있는것을 보았습니다.

순간 받아안은 충격과 감회를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소박한 지성을 국제친선전람관에 전시하시여 세상에 크게 내세워주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사랑그대로 우리들의 지성을 새로 일떠선 국가선물관을 통해 대대로 전해지게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다함없는 고마움이 가슴속에 차올랐습니다.

온 나라 인민들과 남녘겨레들, 해외동포들의 한결같은 지성이 온갖 진귀한 보물들로 모여 빛을 뿌리는 국가선물관은 백두의 정기를 한몸에 안으시고 수령영생위업을 빛나게 실현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고매한 업적과 수령, 당, 대중이 혼연일체를 이룬 내 조국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하여주는 로동당시대의 또하나의 대기념비적창조물입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신 영광의 길림땅에 사는 영예를 안고 20년전에 위대한 대원수님들께 지성어린 선물들을 마련하여 올리던 그날의 그 마음으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우리는 반드시 필승불패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안고 재중조선인총련합회의 두리에 뭉쳐 주체조국, 선군조선의 어엿한 해외공민된 도리와 본분을 다해가리라는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집니다.

 

길림시지부 김명희부지부장

1

조국통일의 찬란한 새날을 기어이 안아오기 위한

통일성전에 적극 떨쳐나설것이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기어코 핵전쟁을 일으킬 흉계밑에 미국본토와 태평양공군기지들에 있는 《B-52》와 《B-2A》전략폭격기들을 비롯한 핵전쟁수단들을 남조선에 대대적으로 끌어들이면서 하늘과 땅, 바다에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선제공격의 기회를 노리고있다.

미제상전의 부추김밑에 괴뢰군부호전광들은 동족대결광기를 부리다 못해 감히 우리의 최고존엄을 해치려는 릉지처참할 특대형 도발음모까지 꾸미고있다.

험악한 사태에 대처하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작전회의를 긴급소집하시고 미국이 무모한 불질을 해댄다면 그 아성인 미국본토는 물론 태평양작전전구안의 미제침략군기지들과 남조선주둔 미군기지들을 무자비하게 타격할데 대한 중대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이는 세기와 세기를 이어온 반미대결전의 준엄한 력사에 종지부를 찍고 피맺힌 원한을 가슴후련히 풀며 선군의 위력으로 조국통일의 찬연한 새날을 앞당기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확고부동한 의지이고 우리 천만군민의 드팀없는 최종결심이다.

우리 전체 재중조선인청년들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내리신 애국애족의 단호한 중대결심과 당중앙위원회 3월전원회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찬동하며 그 실천을 위해 적극 투쟁해나갈것이다.

공화국정부는 이미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이 평화적인 위성발사와 자주적인 핵시험을 걸고들며 반공화국 《제재》소동에 미쳐날뛰는것과 관련하여 그 부당성과 엄중한 후과에 대해 알아들을만큼 경고도 하였고 시간도 주었다.

그러나 우리 공화국의 인내와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조성된 정세를 북침핵전쟁도발의 기회로 악용하면서 로골적인 핵공갈위협에 매달리다못해 감히 우리 공화국에 선불질해보려고 시도하고있다.

미제의 핵공갈에는 무자비한 핵공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전면전쟁으로! 이것이 바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억척불변의 립장이며 대답이다.

이 땅에서 평화의 파괴자, 전쟁의 도발자, 동족대결의 광신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조국통일의 찬란한 새날을 기어이 안아오기 위한 통일성전에 적극 떨쳐나설것이다.

재중조선인청년련합회

주체102(2013)년 4월 6일

 

3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선군혁명령도따라 끝없이 계승발전할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탄생일인 4월 15일이 오면 태양절을 기념하기 위해 길림육문중학교에 모셔수령님동상앞에 서군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의 밝은 미래와 휘황한 설계도를 안겨주시고 그 실현을 위해 불면불휴의 심혈을 기울여 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군 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우리 인민들의 행복한 생활을 위하여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걷고걸으신 현지지도의 길은 참으로 다 헤아릴수 없습니다.

그이께서 찾으신 인민경제 여러 부문과 인민군부대들을 비롯하여 조국의 방방곡곡을 찾으신 단위수는 2만 600여개이고 그 날자수는 8 650여일에 달하며 걸으신 현지지도로정의 총연장길이는 144만 5 000여리나 되여 백두산에서 한나산까지 301회나 왕복한것과 같고 지구를 14바퀴반이나 돈것과 맞먹는 거리입니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과 같이 멀고도 험한 장정의 길에서 조국과 민족, 인민을 위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절세의 위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락후와 빈궁만이 지배하던 조국땅우에 사회주의강국, 인민의 지상락원을 안아오기 위하여 걸으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경애하는 김정일대원수님의 헌신의 자욱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남아있을것이며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오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령도업적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보며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선군령도따라 세기를 이어온 반미대결전을 총결산하고 삼천리강토우에 천하제일강국을 기어이 일떠세울 신심과 용기에 가득차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은 대원수님들의 유훈을 관철하여 주체100년대의 새로운 승리의 길을 곧바로 이어가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탁월한 선군혁명령도에 의하여 길히 빛날것입니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해림시 김영일

4

성스러운 애국사업에 한생을 바쳐온 녕안시지부 리보배지부장

 

지난시기 산설고 물설은 광활한 이국광야에 가랑잎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우리 재중동포들은 민족의 영원한 태양이신 대원수님들의 품에 안겨 그리고 또 한분의 선군태양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사랑속에 해외공민의 참된 삶을 마음껏 누려가고있다.

영명하신 백두산대원수님들의 손길아래 주체의 해외동포조직인 재중조선인총련합회가 결성된지도 어언 22년, 그 무수한 세월의 년륜속에 조국과 인민을 위한 충성의 애국사업에 한생을 다바쳐온 열정적인 우리 공민들을 일일이 꼽자면 헤아릴수 없다.

우리는 이 지면을 통해 재중공민사업의 원로들의 한사람인 흑룡강성 녕안시 리보배지부장(현재 고문직에서 사업함)에 대하여 소개하려 한다.

인간의 삶은 조국과 련결된 유기체와 같다. 조국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도 있는것이다.

몸은 비록 조국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마음속에 언제나 그리운 조국을 안고살 때 그의 삶은 조국과 잇닿아있게 되고 조국의 영예속에 그의 삶도 빛나게 된다.

자기의 조국이 없을 때 그 인간은 비록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재부의 향연을 누릴지 몰라도 한갖 비루한 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조국을 마음속에 안고사는 기둥이라고 했고 생의 젖줄기라고도 했다.

리보배공민, 그는 1932년 강원도 원산시 출생이다.

1951년 8월 안변군에서 사범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해 9월 법동군 제1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다음해인 1952년 10월에는 영광스럽게도 조선로동당에 입당하였다.

그는 1954년에 조선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는 전태섭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으나 얼마후 남편이 중병에 걸려 전적으로 그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가정적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오래동안 병치료를 받아왔으나 별로 효과가 없어 부득불 남편 전태섭은 1956년에 감정제대되였으며 리보배녀성은 제대된 남편의 의향에 따라 2살난 어린애를 데리고 지금의 중국 녕안시에 오게 되였다.

동경성 소학교 교원으로 취직하여 일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언제나 떠나온 고향에 대한 애수에 가득 젖었으며 친척, 친우, 이웃들이 그리워 조국이 있는 먼 산발너머 하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군 하는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생활고속에서 한두끼정도의 배고픔은 참을수 있어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참을수 없었다.

이러한 때 조국에서 비쳐온 따스한 해빛이 그에게 스며들었다.

뜻밖에도 중국 베이징주재 조선대사관의 령사부장이 현지에까지 내려와 그를 책임자로 하는 녕안공민학습조를 무어주었던것이였다.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무상의 영광과 믿음에 눈시울을 적시였다.

그는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 왔으나 어머니조국은 언제나 그를 잊지 않고 있었던것이였다.

끝없는 행복속에 조국의 귀중한 정기간행물들을 무상으로 보급받으면서 그는 거기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로작들과 날에 날마다 비약하는 조국소식들을 공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그 와중에 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예상치 못한 세월의 동란을 겪게 되였다.

말과 글로는 도저히 형언할수 없는 시련을 숙명적인것으로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환경속에서도 그는 조국이 내세워준 공민학습조책임자로서의 위치와 사업방도를 순간도 잊은적이 없었으며 피로써 맺어진 전통적인 조중친선의 뉴대를 더욱 강화하는 사업에도 항시적으로 마음의 탕개를 늦추지 않았다.

소나기 뒤끝에는 반드시 찬란한 해살이 대지를 밝혀주는 법이다.

시련의 시기는 지나가고 마침내 주재국 해당부문에서는 혁명의 선대수령들께서 마련하신 전통적인 조중친선을 귀중히 여기며 생활상 어려운 우리 공민들을 도와나서는 미풍이 재현되였다.

이를 기화로 리보배책임자가 수행하여야 할 급선무는 무엇보다 공민조직을 시급히 확대강화하는것이였다.

그때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안타까운것은 녕안에 몇세대를 제외하고는 등록된 우리 공민들이 별로 없는것이였다.

밥 짓는것도 쌀과 물, 땔나무 등이 구비되여야 하는것인데 불과 몇명의 공민들만 가지고서야 어떻게 공민조직이라 할수 있으며 그런 조직 또한 어떻게 그 운영이 가능하겠는가.

하여 그는 당시 주소도, 번지도, 문패도 없이 녕안땅에 저마끔 뿔뿔히 흩어져사는 우리 공민들을 찾아 길을 떠났다.

당시는 70년대초, 그 시기에 산 사람이라면 아직도 누구나 생생히 기억하고있듯이 통신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던 어려운 세월이였다.

번듯한 아스팔트포장길은 도시에만 뻗어있고 농촌뻐스나 택시같은것은 소설과 영화에서 듣고 보군 하던 그런 시기였다.

하지만 리보배책임자는 한갖 이름없는 녀성의 몸으로 공민들을 찾아 하루에도 수십리 험한 농촌길과 산길을 도보로 헤매였다.

그의 발은 물집이 생기고 터갈라져 썩살이 가득 배겼다. 신발밑창이 닳아져 맨발로 피흘리면서도 다리를 절며 걷고 또 걸었다.

산간벽지에 인가도 극히 드물었던 그 시절에는 보행길에 끼니때가 되여도 식당을 찾을수 없었다.

시계같은것은 아예 생각조차도 할수가 없는 때여서 해 기우는것을 보며 걸었고 시간을 조금이라도 당겨보자고 허기진 몸으로 봄석이 강물에 뛰여들었다가 부서지는 얼음장을 간신히 부여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적도 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는 마침내 피타는 60여일간의 노력과 시련끝에 177명의 우리 공민들을 찾아 사업일지에 적어넣을수 있었다.

강물의 모래속에서 금싸래기를 얻듯 일일이 찾아낸 우리 공민들의 이름을 사업수첩에 올릴 때 리보배책임자의 눈가에는 한없는 기쁨의 눈물이 마냥 솟구쳐흘렀다.

조국을 위해 이바지한 기쁨과 보람으로 방울방울 구슬처럼 샘솟던 그 눈물의 크나큰 무게를 어이 다 헤아릴수 있으랴…

바로 그때가 일생의 크나큰 긍지였고 삶의 전부였다고 지금도 그는 자부하고있다.

그에게 있어서 공민들 한명 한명은 모두 조직이라는 귀중한 생명체의 한 부분들이였다.

그후 리보배책임자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의 결성과 함께 어엿한 지부장으로 성장하였다.

지부와 공민들을 위해 모든것을 잊고 뛰여다니다 가끔 집에 들어와보면 말그대로 가정도, 집도 아닌 엉망이였다.

오랜 병마에 시달려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남편이 나어린 자식들을 제대로 건사한다는것은 어불성설이였다. 가정주부로서 집안살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망설임이 그를 뒤로 당길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절대로 주저앉아서는 된다고, 완강하게 오직 앞으로만 나가야 한다고 억세게 고무하는 인민군출신의 남편 전태섭의 타이름이 스승의 채찍처럼 울렸다.

열렬한 조국애로 심장을 불태우는 그들 부부는 사랑하는 딸이 18살 잡히자 조국에 내보내여 강성국가건설에 한몫 이바지하는 훌륭한 사업일군으로 성장하게 하였다.

언제인가 리보배지부장은 딸이 조국에서 이름있는 과자공장을 맡아 경영하면서 보내온 생산물들을 들고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이며 한껏 자랑한적이 있었다.

그때 기쁨에 넘친 그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식을 키운 어머니의 긍지가 과연 어떠한가를 깊이 새겨주고 자신들의 자녀교양과정을 돌이켜보는 좋은 계기로 되였다.

리보배지부장은 조국이 겪은 혹심한 수해때나 《고난의 행군》시기 지부산하 동포들을 애국의 모금사업에로 추동하였으며 자기 스스로 여기에 적극 참가하여 조국의 륭성사업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그는 중국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때에도 동포들과 함께 모금헌납하여 조중친선에 기여하였으며 주재국 해당부문의 응당한 호평을 받았다.

민족이 당한 청천벽력의 대국상소식에 접하였을 때 그는 한없는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꾸어 남편과 함께 수많은 우리 공민들과 교포들이 함께 추모식장을 찾아 조의를 표시하도록 조직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였다.

조국은 장장 수십년세월 오로지 동포조직과 숨결을 함께 하며 성스러운 애국사업에 일심을 바쳐온 리보배지부장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었으며 녕안지부에 2중모범지부의 칭호를 수여하였다.

인생행로는 무정한 세월과 잇닿아 있어 애국정열로 끓어넘치던 그의 머리에도 어느덧 80고령의 흰서리가 내렸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황혼기에도 변함없는 열정과 각오를 안고 지부의 후비양성사업에 힘을 넣어 혁명렬사의 아들인 박상진공민과 정열적인 리창범공민을 훌륭하게 키워냄으로써 조직계승의 튼튼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지금 그는 수십년간 몸담아온 지부장사업을 2년전에 그들에게 인계하고 고문직에서 사업하고있다.

참된 인간은 육체는 로쇠할수 있어도 정신은 로쇠를 모른다.

또 한분의 백두선군령장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신 김일성, 김정일조선의 해외공민된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오늘도 백발을 날리며 성스러운 애국사업에 헌신적기여를 다해나가고있는 리보배고문, 그는 우리 사업의 훌륭한 본보기로, 참된 귀감으로 재중공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여주고있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사무국장 조국

5

은혜로운 조국의 품에 안겨

 

                 치료 받으면서                      

 

나는  병원에 입원하여 리정삼의사선생의 첫 치료를 받게 되였다.

의사선생은 《진단결과를 분석하여 보았습니다. 선생의 혈당은 300㎎/㎗ 으로 뇨독합병증 초기증상이 오고 담결석도 있습니다. 고려침구료법과 약치료를 결합하여 치료하여야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하고 다정히 물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치료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너무도 좋아 얼른 대답했다.

 후에 안일이지만 리정삼선생은 자체로 당뇨병침구료법을 연구전공하여 국가특허권을 받고 림상치료에 도입하여 많은 사람들을 치료한 명망이 높은 의사선생이였다.

그는 다시한번 나의 병세를 전면적으로 깐깐히 검진하면서 언제 당뇨병진단을 받고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가, 몸은 어떻게 불편한가고 물었다.

나는 중국 심양의과대학병원에서 당뇨병진단을 받고 근 20년간 당뇨병에 좋다는 약은 다 찾아 복용하였으며 지금은 주로 중국 안산시 당뇨병병원에서 만든 소갈증약으로 혈당을 공제하고있는데 귀에서 물이 나오고 발이 저리며 목이 뻣뻣하고 왼쪽팔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면서 가끔 종다리에서 경련이 일어난다고 병세에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의사선생은 《알겠습니다》하며 등곬을 짚어가면서 침혈을 찾아 침 한대를 놓는데 옆구리로부터 발끝까지 찡 저리였다. 이어 량팔굽에 침 두대를 놓아주고 혈을 짚어가면서 안마치료를 하고는 반듯이 누워 쉬도록 하였다.

나는 온몸이 너무도 시원하기에 혼건히 잠들었다. 기척소리에 깨고 보니 향미간호원이 이비인후과로 가서 귀치료를 받자고 하였다.

그는 나와 김향옥의 담당간호원이였다.

그가 어찌도 다정다감하고 친절한지 김향옥은 자기 딸과 동갑인 그를 양딸로 삼았다고 하였다.

나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이비인후과에 이르렀다. 치료기구들을 그쯘하게 갖춘 치료실에서는 의사선생과 간호원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의사선생은 나를 치료기구에 앉히고 나의 귀를 깐깐히 검진하고나서 《선생은 귀앓이를 오래하셨군요. 왼쪽귀가 염증으로 막히다싶이 되고 고막에 피고름이 말라붙어 뚫어질번하였습니다. 여러날 치료받아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종처를 깨끗이 소독하고 기계로 피고름찌끼들을 빨아내고 처치하여 주었다.

내가 입원실로 돌아오니 내과주임의사인 한과장은 관절아픔을 제거하는 약과 소염제며 영양제를 점적주사하여주었다. 또한 혈당을 낮추도록 신체단련을 하라고 입원실에 체육기재까지 갖추어주었다.

하루세끼 음식은 병세와 영양에 맞게 차려주었는데 나의 구미와 신통히도 맞았다. 단동시지부 부지부장 김향옥이도 병원의 음식이 입에 맞는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향미간호원은 하루 3번 끼니어간에 약과 물을 받쳐주면서 복용하도록 하고 아침저녁으로 체온이며 혈압을 재고 심장박동도 집맥하였으며 식사후에는 꼭 30분간 신체단련하라고 일깨워주었다.

내과과장은 짬만 있으면 몸이 불편하지 않는가 문안하였으며 원장, 기술부원장선생들도 치료가 맞는가 하면서 자주 나의 치료상태를 알아보았다. 의사들과 간호원들은 우리들이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치료상, 생활상편의를 최대로 보장해주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뜨거운 동지적사랑으로 굳게 단합되여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는 우리 인민들의 삶과 투쟁의 구호에 그대로 구현되고있다. 누구나 혈육의 정으로 서로 따뜻이 대하고 동지들을 위해 피와 살도 서슴없이 바치며 천만군민이 경애하는 원수님의 한식솔로 살아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고유한 생활방식으로 되였다.

우리 인민은 당과 국가의 은정어린 혜택들이 산간벽지, 외진 섬마을 할것없이 골고루 미치는것을 실지 체험을 통하여 절감하면서 주체의 사회주의야말로 절대 버릴수 없는 생명이고 생활이라는것을 철의 진리로 새겨안았다. 사회주의를 버리면 죽음이요 지키면 승리라는것이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조로 되였다.

나는 이렇게 의사선생들의 지성어린 종합적인 치료를 받고나니 혈당이 150㎎/㎗으로 쭉 내려가고 온몸이 아프던 증세와 장딴지에 가끔 일던 경련도 간곳없이 사라졌으며 귀의 염증도 많이 가셔졌다. 나는 평양친선병원 의사선생들의 고명한 진단과 세심하고 책임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또한 인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책임적이고 업무에 정통한 조국보건일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무도 감격하여 목이 메였으며 천만이 대가정이 되여 서로돕고 이끌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는것을 실지체험을 통하여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선전국장  한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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