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주 몽
례나루선생은 백발수염을 손바닥으로 내리쓸었다.…
빨래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며 류화는 생각하였다. 례나루선생의 말씀이 아니라도 주몽이 이제는 집이라는 보금자리를 털고 하늘을 날 때가 되였다. 궁성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대소, 대이왕자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대신들, 제가들 속에서 주몽이 무사할리 없는것이다. 큰 나무일수록 바람을 더 많이 맞는 법이다. 주몽이 장차 어찌되겠는지, 마음을 놓을수 없다. 무슨 마련이 있어야 한다.
류화가 집에 돌아오니 그사이 주몽은 밥상을 물리고 방에 누워있었다. 천정을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주몽은 류화가 들어와도 모를 지경이였다.
류화는 한동안 아들을 바라보았다.
례나루로인이 하던 말이 다시금 쟁쟁히 들려왔다.
《주몽은 보통인간이 아니오이다!》
류화는 생각에 잠긴 아들에게 물었다.
《주몽, 뭘 그렇게 생각하느냐?》
류화의 물음에 주몽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몽은 이때껏 자기가 구원해준 사람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었다. 같이 말을 방목하는 서불아저씨에게 그 사람을 부탁하고 돌아온 주몽이였다. 서불아저씨는 주몽이 어릴 때부터 말타기를 배워준 사람이다. 나이가 진득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주몽을 몹시 아껴주고 주몽 또한 그를 믿었다. 목동들 중에서 좌수격인 서불은 주몽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가 맡아 돌보아주겠노라고 하면서 주몽의 등을 밀었다. 어머니가 걱정하기 전에 들어가보라고 하여 돌아오긴 하였지만 그 낯선 사람에 대한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그는 누구이며 어찌하여 처참하게 달근질 당했을가, 누구에게서? 어떻게? 궁중에서?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주몽은 잠자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주몽, 그래 네가 하는 일은 잘되느냐?…》
《잘되오이다. 서불아저씨랑 도와주어서 힘든줄 모르오이다.》
주몽은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류화는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주몽아, 부여라는 이 나라가 말이 유명하건만 이 에미는 여느 집 부모들처럼 성장한 너에게 말을 사줄만 한 잡은것이 없구나.》
자기 생각에 잠겨 혼자말처럼 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주몽은 당황했다.
《아, 어머님. 그런 말씀 마시오이다. 저야 목동이 아니오이까? 저에게도 피접한것이나마 제것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들 때도 있지만 결코 어머님을…》
류화는 물기맺힌 눈으로 아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아니다. 이왕 말을 낸김에 이 길로 가자!》
《어디로 말이오이까?》
《마구간으로 가자. 혹시 알겠느냐? 잘되면 화가 복으로 될수 있을거다. 내가 왕년에 들은 말이 있어 준마를 고를줄 아니 한번 시험해보련다.》
주몽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뜻을 모르겠는지라 그저 말없이 어머니의 뒤를 따랐다. 류화는 주몽이 먹이는 말들의 마사에 갔다.
뜻밖에 나타난 류화와 주몽을 보고 말들은 달빛에 눈을 번뜩이며 불안해하였다.
《채찍을 가져오너라.》하고 류화는 살이 쪄서 번들거리는 말들의 잔등을 바라보며 주몽에게 말했다.
《어머니, 조심하시오이다. 말들이 갈갤수 있소이다.》 채찍을 넘겨주며 주몽은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수 없어 어머니곁에 붙어섰다.
여직껏 자라오면서 어질고 순박하기만 하던 어머니를 보아온 주몽이다. 그런데 오늘밤만은 웬일인가?
주몽은 아래입술을 깨물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류화는 채찍을 거머쥐고 말무리속으로 들어갔다.
류화는 채찍으로 말잔등을 후려치기 시작하였다. 놀란 말들이 채찍을 피해 이리저리 돌아쳤다.
주몽은 손에 땀을 쥐고 어머니가 하는 일을 바라보았다.
《조심하시오이다.》
주몽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류화는 더욱 세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조용하던 말무리속에서 채찍소리가 아츠럽게 울리고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어머니, 어째서 그러시오이까? 말씀해주시오이다. 혹시 저한테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시오이까?》
그러거나말거나 류화는 말무리우에 채찍을 연거퍼 안겼다.
모진 채찍아래 우우- 몰켜다니던 말무리 속에서 한마리의 말이 두길넘게 건너놓은 장대를 넘어 껑충 울타리를 뛰여넘어 달아났다.
그제서야 류화는 채찍을 내리웠다.
《방금 울타리를 뛰여넘은 그 말을 끌어오너라,》 류화가 울타리밖으로 나오면서 주몽에게 일렀다.
주몽은 울타리문을 닫아매고나서 어둠속으로 사라진 말을 쫓아갔다. 말은 얼마 가지 않고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주몽이 말을 달래여 끌어오자 류화는 한참이나 신고하며 달빛에 말주둥이를 벌리고 그 이발을 살펴보았다.
《이 말이 참 좋구나!》하고 류화는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 주몽은 아직도 벙벙했다.
그가 물끄러미 어머니를 바라보는데 류화는 자기 옷섶에서 바늘 한개를 꺼내 주몽에게 주었다.
《옛다, 이걸 이 말의 혀바닥에 꽂아넣어라!》
《?》
《어서.》
《어머니, 아무리 미물이라도 말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소이까?》
《너는 아직도 내 뜻을 모르겠느냐? 해마다 왕의 궁중마구간 순행이 있지 않느냐. 그때 좋은 말들이 선발되겠지. 나머지 말들중에서 가장 피페한것이 아마 너에게 돌아갈수도 있다.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제야 주몽은 어머니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주몽은 그 말을 끌어 마구간에 매놓은 다음 요동치는 말의 혀바닥에 바늘을 꽂아놓았다.
주몽은 자기를 말끄러미 쳐다보며 맑은 눈물을 쭈르르 흘리는 말을 바라보며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류화는 이마에 흥건히 내밴 땀을 훔치며 아들의 모양을 세세히 주시했다.
류화의 마음도 말 못하는 짐승을 너무나 혹독하게 하는것이 가슴아팠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어쩔수 없었다.
세상의 일이 순수 자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것을 류화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자비로 되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류화자신이 선인이 되고도 남았어야 했다.
어린 주몽을 나무에 꽁꽁 얽어매놓고 희희락락하며 달아난 왕자들의 행실이나 지아비없는 자기들 모자를 이다지도 모질게 박대하는 세상에 대해서 결코 자비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이미 그는 느꼈었다. 그래도 류화는 항변 한번 못했다. 그럴수도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된다고 류화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세상살이가 류화 자기에게만 닥친것이라면 그는 아마 앞으로도 조용히 그렇게 살아갔을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일을 생각하면 그럴수 없었다.
류화에게는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아들의 일이 잘 된다면 아무 원이 없을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어머니, 웬일이오이까?》
류화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쳐댔다.
《주몽아, 나도 말이 불쌍하다. 죄를 받아야 한다면 내가 다 받겠다. 그러나 너는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는 장차 큰뜻을 품고 나서야 한다. 큰일을 하려고 맘먹은 사람은 사소한것에 맘을 써서는 안된다. 사사일에 취해서 큰일을 그릇되게 한다면 그것은 사내가 아니다. 알겠느냐?》
주몽은 아무 말없이 어머니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아직도 자기의 심중에 서서히 자라는것이 무엇인지 주몽 그자신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살며 그것을 위해 죽으리라는 그의 결심은 굳어지고있었다.
어머니도 그러하고 례선생도 그랬다.
주몽은 이밤에 언제인가는 세상에 터쳐놓을 자기의 맹세를 마음속으로 다지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