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1촌》화서촌 (2)

 

우리는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화서촌에서 하루 숙박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가 접수에서 입주수속을 밟자고 하니 접수에 있는 복무원들이 잠간 기다려달라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것이였다. 잠시후 그 복무원은 우리를 보고 방이 세개면 되는가고 물어보는것이였다. 우리는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 복무원은 호텔총경리가 지배인동지의 친구가 온것을 알고 호텔에서 면비로 하루 숙박하기로 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고 호텔에 들어섰다. 호텔은 새로 장식하여 아주 호화로웠다. 모든 시설들이 일류급으로 장식되였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휴식하고있는데 지배인과 조선봉사원이 방으로 찾아왔다. 지배인은 이 호텔에 참관할 곳이 있으니 함께 가서 구경하자고 하였다. 우리는 지배인과 함께 제일먼저 금실(金屋)로 갔다. 금실은 말그대로 금으로 장식되여있고 금소가 있었다. 말로는 금이 1t 들었다고 한다. 한층 한층 내려가면서 은소, 동소, 철소, 늄소, 등 금, 목, 수, 화, 토 5행순서로 꾸려져있었다.

화서촌을 참관하면서 나는 몇십년전부터 머리속에 부자촌이라고 인상이 깊었던 화서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였다. 1961년도부터 화서촌으로 명명되였는데 그때에는 강남의 한 빈곤한 촌에 불과하였다. 전촌 380호에 인구 1 520명이였고 전촌 부지면적은 0. 96밖에 안되였다. 그리고 경제가 대단히 락후하였다. 그러나 오인보당비서의 비상한 각오와 해박한 경제발전구상에 촌민들은 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그의 호소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 당비서의 령도밑에 40여년간 간고분투의 투쟁정신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시종일관 사상해방, 실사구실, 우선발전, 과학발전관을 틀어쥐고 주변의 16개 촌과의 공동발전망을 형성시켜 강철, 방직, 관광 3대산업을 중점으로 심화발전시켜나감으로써 지금은 8개의 상장회사가 있고 1 000종의 상품을 생산하고있으며 집집마다 3층건물별장과 승용차가 있다. 화서촌의 총부지면적은 원래의 0. 96에서 30로 늘어났고 인구는 3만여명, 고정재산 60여억이나 되는 대화서촌이 일떠서게 되였다. 2004년 통계에 의하면 화서촌의 1인당 년평균수입은 12. 26만원에 달하였다. 같은해 전국농민 1인당 순수입은 2 936원이고 도시사람 1인당 순수입은 9 422원으로 집계되였다. 2010년도에는 화서촌의 순수입이 502억원에 달하였다.

그러면 화서촌의 발전은 누구의 공로인가? 촌민들과의 면담에서 한사람같이 말하는것이 화서촌 당비서 오인보로인이다. 그는 1928년 11월 강소성 강음시 화사진 화서촌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1954년 2월에 강음현 화사호대향인민정부 재량위원으로 사업을 시작하다가 1961년 11월에 강음현 화사공사 화서대대 당비서로, 1974년 2월 강음현당위부비서 겸 화서대대 당비서로, 1975년 4월 강음현위당비서 겸 화서대대 당비서, 1981년 5월 강음시인대부주임 겸 화서대대 당비서, 1987년 4월부터 2003년까지 화서촌 당비서, 화서농공사실업총공사, 강소화서실업총공사 동사장 겸 총경리, 강소화서집단공사 동사장으로 사업하였다.

오인보로인은 중국공산당 당원으로서 고급정공사, 고급경제사, 농민기업가, 농민교육가, 강소성정협상무, 전국초보적부유사회연구회 회장, 중국부빈개발협회 부회장, 전국촌장론단조직위원회 명예주임, 등 수많은 직위를 지니고 35년동안 집체경제를 위주로 하고 옳바른 공동부유발전도로의 길을 선택하여 화서촌으로 하여금 전국에서 제일 부유한 촌으로 세계에 명성을 떨칠수 있도록 건설해놓았다.

그는 2006년 2월 6일 《무석공산당원본보기》칭호를 수여받았고 《제4기 중국발전 100인상》을 수여받은 인물이다.

나는 필을 놓으면서 다같은 중국대지에서 다같은 중국공산당의 옳바른 개혁개방의 정책을 누리면서 부자동네가 생겨났는가 하면 아직도 빈곤층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방도 많다. 이런 현실은 어떻게 분석해야 할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국을 놓고보면 기층당일군들이 중국공산당의 정책에 대해 특히 등소평리론을 심도있게 체득하고 지역적특성에 맞게 경제발전을 대담하게 전개해나가는 곳들은 큰 발전을 가져왔으며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잘살게 된것이고 사상해방을 제대로 못하고 옛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상급의 도움만 바라는 들에서는 아직까지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고 그곳 사람들은 가난할수밖에 없다.

나는 총련합회의 한 일군으로서 전국에 살고있는 재중조선인들을 수많이 상대한다. 그런데 대다수 공민들의 생활형편이 곤난하다. 그리하여 많은 공민들은 중국정부의 도움이나 경제지원을 받고있다. 나는 화서촌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재중조선인들도 화서촌사람들처럼 부유하게 생활했으면 하는 생각이 제일먼저 떠올랐다.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생기는 법은 이 세상에 그 어디에 가서도 찾아볼수 없다. 우리 공민들은 지금부터 시작해서라도 화서촌의 간고분투정신을 본보기로 삼고 우선 나는 안된다는 사상부터 철저히 버리고 경제적시야를 넓혀나가므로써 남들이 할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해보겠다는 사상각오를 가지고 화서촌의 창업정신으로 일해나간다면 돈을 벌수 있지 않을가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재중조선인들이 자기 지역의 우세를 충분히 리용하여 적극 노력한다면 하나하나 배심이 든든한 재력가들로 자라날수 있을것이라고 확신한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부의장 최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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