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제 4 회)
주 몽
제 1 부
탈 출
연나라오랑캐들이 쥬신국을 침략하였다. 그러니 부여가 원군을 보내달라? 원군을 보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열에 아홉은 임금의 장자인 내가, 이 대소가 그 원군을 거느리고 가게 될것이다. 부왕마마는 늘쌍 가르치지 않았던가. 태자가 되려면 사나이답게, 싸움을 치르어봐야 한다고.
그렇다, 쥬신국에 원군을 파견하면 내가 가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분명히 오추마를 타고 장검을 비껴들고 기치장검을 번뜩이며 나가게 될것이다. 얼마나 멋진 광경일가? 하지만 멋은 있으나 그 뒤맛은? 대소, 너는 경솔할수 있느냐? 서뿌른 감정에 혹해서 대업을 망칠수 있느냐? 임금의 왕통을 이을 대업을… 다시한번 숙고하자. 전쟁에 나가는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나는 기꺼이 나가고싶다. 나가서 대소의 위업을 천하에 떨치고싶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놀음이 아니다. 지면 다시한번 해서 이길수 있는 놀음이 아니다. 전쟁은 무자비하다. 이긴자도 진자도 피를 흘리지 않을수 없다. 그렇게 되면 생사를 기약할수 없다. 생사를 기약할수 없다면 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나 하나 죽고 사는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거룩한 임금의 왕위를 어찌할것인가. 아, 거룩한 왕위를 잇는 하늘의 뜻, 나만이 이을수 있는 왕위를 놓고 어찌 흥정이 있을수 있으랴. 나, 대소왕자가 전쟁에 나가게 되는것은 결단코 용허할수 없다. 그런 일에는 대이왕자를 보내는것이 좋을것이다. 대이왕자라면 적격일게다. 그는 역시 나와 같이 싸움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성격이니까.
그를 보낼가?
그러자!
그런데 부왕마마는 물론 제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가? 혹시 이 대소를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가?
거룩한 왕위를 잇는 하늘의 뜻은 도무지 생각도 못하는 어리석은 무리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느냐?
대이를 전쟁에 보낸다? 그가 나가서 만일 전승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모두가 대이를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면 나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오히려 내가 용감하게 전쟁판에 뛰여들리만 못하다. 그래 전쟁에 나가자, 나가서 대소의…
가만가만.
내가 원군을 이끌고 갔다가 패전하게 되면 나의 체면이 어떻게 될가? 과연 나에게 횡포한 연나라군사들을 무찌를수 있는 용맹과 담력이 있는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내가 전쟁에 나가고 없으면 승패는 차치하고라도 우선 이 궁성안이 문제다. 음흉한 후궁마마인 우씨는 틀림없이 자기의 아들인 대이를 태자로 봉하려고 간계를 꾸밀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즈음 들어 우씨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던데… 정실 왕후마마인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저 후궁 우씨의 행실이 얼마나 고약해지는지 내가 모른단 말인가? 아, 이것이야말로 범의 꼬리를 쥐고 놓지도 쥐지도 못하는 판이로구나.
대소왕자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매듭을 지을수 없었다. 머리속이 휘휘 어지러워졌다. 어느것이 옳고 어느것이 그른지 도무지 판단이 가지 않았다.
대소왕자는 자기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쥬신국 손님과 헤여졌는지 몰랐다.
방은 고요하였다. 무덤속처럼 고요하였다. 대소는 이마에 진땀이 배는것을 느꼈다.
검지로 이마를 훑어내니 진득한 물기가 배여났다.
《왕자마마.》
은근히 부르는 소리가 났다.
《왕자마마.》
대소는 머리를 들었다.
소소리대사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자기를 보고있었다.
《갑자기 편치 않소이까? 침전에 드셔야 하지 않소이까? 이럴줄 알았으면 애당초 왕자마마께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시게 하심이 좋았을것이오이다.》
《아니 대사, 나는 괜치 않아.》
《그럴수 없소이다. 소신의 눈은 못 속이오이다. 아마도 왕자마마께서 어릴 때부터 앓으시는 가슴앓이가 도진것이 아니오이까?》
《아니, 괜치 않다는데… 쥬신국 손님의 말을 들으니 하도 속이 좋지 않아서…》
《너무 상심하시지 마시오이다. 왕자마마께서는 남달리 섬세한 감정을 가지고계시는것이 아니할 흠이로소이다!》
《대사, 내가 아마 왕자의 체면을 잃었겠지? 그 사람을 상견하면서 말이요…》
소소리는 가늘게 한숨을 쉬였다.
《너무 심려마시오이다. 우주만물이 어찌 한본새일수 있겠소이까? 다 나름대로 차차 커지는것이오이다. 그건 그렇고, 왕자마마께서는 그 사람을 보시면서 무얼 느낀게 없으시오이까?》
대소는 고개를 흔들었다.
소소리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참, 이상하지. 어쩌면 그렇게 신통히 닮았을가?》 하고 중얼거린다.
《무얼말이요? 대사.》
《아, 그것은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이오이다.》
《그러지 말고 시원히 터놓소.》
《왕자마마, 그 사람이 저 례나루와 어딘가 비슷하지 않소이까?》
《례나루?》
대소는 눈시울을 쪼프리며 되뇌였다.
무언가 이때껏 간질거리면서 풀리지 않던것이 비로소 풀리는듯 했다.
서쪽 쥬신국, 연나라오랑캐, 단군선인의 후손들, 전쟁…
이런 말들을 어디서 들었던가?
례나루, 례나루에게서 듣지 않았던가?
대소는 가슴이 불안스럽게 뛰는것을 가까스레 눅잦힌다.
례나루, 례나루!
례나루는 한때 대소왕자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친적이 있는 사람이다. 깊은 산중에 파묻혀 세상과는 담을 쌓고있던 그가 어떻게 되여 금와왕의 눈에 들어 다름아닌 대소왕자의 학문과 무예를 가르치게 되였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처음 대하였을 때 대소는 례나루를 탐탁치 않게 보았다. 기름한 얼굴에 번뜩이는 눈매만이 아니라면 궁벽한 산속의 초부로 보일 사람이였다.
례나루를 비웃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왕자뿐이 아니였다. 대소왕자에게 각별한 소소리대사도 례나루를 은근히 경원시했다. 대소왕자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치는것은 이때껏 소소리대사가 하는것으로 되여왔었다.
그런데 금와왕이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 아니면 이미 례나루와 안면이 있었는지 그를 대소왕자의 스승으로 초빙해오자 소소리대사의 심중은 편안치 않았던것이다. 궁중에서는 그래도 무예나 지략이 뛰여난 사람으로 알려져 궁중 보수세력의 우두머리로 통해있는 소소리대사이다.
게다가 왕자와 친분이 두터운 소소리였다. 그런 소소리대사가 밀려나고 대신 초부와 같은 례나루가 들어앉게 되다니…
하지만 어명은 이미 내려졌다. 소소리대사는 먼발치에서 엿보는수밖에 없었다.
대소왕자는 례나루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였다. 나날이 대소왕자의 검법은 늘어갔다. 그것은 대소왕자에게 힘겨운 일이였으나 어쨌든 경멸하던 감정이 사그라져가기도 하였다. 례나루스승의 무예는 참으로 신묘할 지경이였다. 이때껏 검법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있던 대소왕자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