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제 3 회)
주 몽
제 1 부
탈 출
대소왕자는 말없이 자기의 아우 대이를 쏘아보다가 얼굴에 비웃음을 한껏 담고 씹어뱉듯이 물었다.
《솔밭에 떨어진 바늘도 아닐텐데 어디가 숨었다는거냐?》
《글쎄, 형님이 직접 나선다면 어떨지…》
대이도 퉁투무레한 얼굴에 빈정대는 웃음을 담았다.
이때 반백의 소소리대사가 잔기침을 톺으며 두 왕자사이에 끼여들었다.
《대이왕자. 좀 차근차근 말씀해보시오이다. 범인이 어디쯤 해서 없어졌다는것이오이까?》
《군사들이 가섭벌너머까지 따라가보았지만 결국은 빈 말뿐이였다는거요. 》
《그렇다면 도중에서 떨어졌다는건대, 가섭벌을 샅샅이 뒤지면 되지 않겠소이까?》
《어두울 때까지 찾아봤지만 헛탕이였소. 》
세사람은 잠시 입을 다물고있었다.
《어쨌든 잡아야 한다. 그놈은 나라의 무서운 원쑤다.》 하고 대소왕자가 이마살을 찡그리며 말했다. 소소리대사는 약간 고개를 끄덕이였다.
대이는 입술을 반쯤 내밀며 무엇인가 생각해보더니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다면 형님이 직접 시위군사들을 독촉해보구려. 나를 믿지 못하겠다는것 같은데…》
《뭐?》
대소가 눈길을 쳐들었다.
《아니, 대소왕자님, 노여움을 잦히시오이다. 대이왕자도 안타까와서 하시는 말씀 아니시오이까?
그렇지 않소이까? 대이왕자!》
《나도 애썼단 말이요. 소소리대사, 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아니오? 도대체 하늘로 올랐는지 땅으로 잦았는지?》
대소는 아우가 하는 말을 귀등으로 들으며 코웃음만 쳤다.
대이도 입을 다물고 자기의 형을 곱지 않은 눈길로 쏘아보았다.
《하여튼 맏형님을 봐서 내가 다시 나가보겠소만…》
대이는 두툼한 자기의 코를 한번 쥐였다놓고 휙 돌아서 나갔다.
《못된 녀석.》
대소는 아우가 나간쪽을 보며 눈을 흘긴다.
일도 참 공교롭게 되였다. 서뿔리 자는 범의 코등을 다쳐놓았는가? 대소왕자는 발치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사건은 3일전에 일어났다. 부왕마마가 동쪽 읍루쪽으로 순행나가신 기회에 궁녀 소미와 실컷 즐거운 나날을 보냈으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였다.
따분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던차에 대소는 쥬신국(조선)에서 부왕마마를 뵙겠다고 손님이 왔다는 전갈에 귀가 번쩍 틔였다.
부왕마마가 없을 때 제가 나서서 외국손님을 만나고픈 유혹을 어쩔수 없었다. 대소가 흔쾌히 손님을 안내하라고 하니 궁신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대답을 못한다.
분부를 기다리던 소소리가 나섰다.
《왕자마마, 부왕마마께옵서 순행중이신데 손님이 왔으니 한번 만나는것도 좋겠소이다. 이런 때 왕자마마께서 직접 외국손님을 만나시여 부왕마마의 존엄을 떨치시면 부왕마마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소이까?》
역시 소소리는 충신이다. 소소리는 신병으로 부왕마마의 순행에도 못 따라갈 정도였으나 왕자곁을 떠나지 않고 비위를 잘 맞추고있다.
대소는 소소리대사의 그 마음을 잘 안다.
부왕을 잘 받든 로신하로서 맏왕자인 자기에게 눈물겨우리만치 극진한 사람이다. 제 아들 해리를 대소 자기의 측근에 세워주고 대소 자기를 태자처럼 받들어모시도록 각근히 살펴주는 소소리인것이다. 비록 그것이 너무도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낯간지러운 처세라 하여도 대소로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소소리대사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키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한 사람이였다.
이때껏 비단옷을 차려입거나 값진 가죽옷을 걸친 사람들을 나라의 사신으로 대해온 대소왕자는 그의 차림새에 저으기 당황하였다. 그 사람은 비단옷도 가죽옷도 입지 않고 또 멋진 귀걸이도 없이 그저 수수한 베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있었다. 그나마 포(긴 겉옷)는 덞어졌고 바지에는 흙탕물자욱도 남아있다.
대소왕자는 애써 지었던 틀을 풀었다. 위엄도 대상에 따라 돋구는것이다. 보매 이 사람은 별치 않은 사람 같았다.
대소왕자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부왕마마를 만나시려고 하신다던데 지금 부왕마마께서는 동쪽으로 순행중이요.》
《일이 참 공교롭게 되였소이다.》
《하지만 어버이가 밖에 계신다고 하여 어찌 집이 비였다고 볼수 있겠소?》
《지당한 말씀이시오이다. 참으로 왕자께서는 국사와 례절에 밝으시오이다.》
《과찬의 말씀.》
대소는 흥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소소리의 얼굴을 곁눈질해보았다.
늙은 대신의 얼굴에도 기쁜 빛이 감돌았다.
대소왕자는 활기에 넘쳤다.
《쥬신(조선)국의 형편은 어떠하시오?》
관례상 물어본 말이였지만 대소는 속으로 아차 하는것을 느낀다.
상대방의 부리부리한 눈이 불현듯 어두워졌기때문이였다. 본능적으로 화제가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킬것 같은 위구감이 들었다. 외국손님과 유쾌한 담화와 이색적인 정취를 맛보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접견이 자기로서 감당할수 없는 결과를 빚어내지 않을가 하는 예감이 갈마들었다.
쥬신국의 손님은 침울해졌다.
잠시후에 그는 숙연히 고개를 들었다.
《왕자마마, 실은 부여의 국왕이신 금와임금께 아뢰자고 하던 말씀이오나 왕자마마께 감히 아뢰겠나이다.》
지금 서쪽 수천리 저쪽에서는 연나라오랑캐들이 단군선인의 옛성지인 쥬신국을 베먹고있다.
연나라는 소왕(B. C. 311-B. C. 279년)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B. C. 284년에 남쪽의 제나라를 쳐서 많은 지역을 차지하였다. 바로 이즈음에 연나라는 장수 진개를 보내여 방대한 무력으로 동쪽의 쥬신국을 침공하였다. 이 전쟁의 결과로 쥬신은 서쪽 2, 000여리의 땅을 잃었다.
이것은 단군선인의 겨레에게는 누구에게나 치욕이다.
나는 바로 거기에서, 다시말해서 연나라와 쥬신국과의 전쟁에 참가하였다가 여기로 온 사람이다.
그러니 오랑캐들에게 맞서 용감히 싸우던 겨레들, 중과부적으로 2, 000리 땅을 빼앗기고 불귀의 몸이 된 수많은 겨레의 죽음앞에, 더우기는 단군선인의 옛성지를 빼앗긴 그 치욕으로 하여 눈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흘렀다.
하지만 치욕은 눈물이나 통탄만으로 지울수 없다. 어째서 단군선인의 옛성지의 나라, 우리 한겨레들이 쥬신국의 치욕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부여국의 금와임금께서 겨레의 통일과 화목에 관심이 있는 현명한 대왕임을 알기에 여기로 온것이다. 나라간의 외교관례보다 한겨레라는 피의 감정을 더 믿기에, 그리고 금와임금의 도량을 믿기에 쥬신국에 원군을 파견하여줄것을 간청하기 위해 여기로 왔다.
어버이의 치욕은 그 자식들에게도 치욕이다.
단군선인의 후손들인 쥬신이나 부여의 백성이라면 결국 외면할수 없을것이다. 나는 명성이 높은 부여의 금와왕은 물론 장자인 대소왕자도 나와 꼭같은 의분을 참을길 없을줄 안다. 민심이 천심인고로.
시각을 다투어 우리 한겨레가 하나로 뭉쳐 다시는 그런 치욕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의 눈은 충혈되여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렁그렁 고인 눈물도 피눈물같았다.
대소왕자는 잠자코 있었다. 허나 속에서는 때아닌 찬바람이 일어났다.
이 사람은 무서운 세객이로구나. 나라들을 가림없이 돌며 제딴의 웅변으로 민심을 혹하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국정까지 좌우지하는 그런 무서운 세객!
쥬신국과 연나라사이의 무서운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 사람의 호소에는 함부로 밀어치울수 없는 무엇이 있지 않는가.
만일 부왕마마가 이 사람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쩔번 하였는가, 부왕마마는 틀림없이 선뜻 원군을 파견하려고 했을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쪽변방에서 일어나는 전란에 대해 근심하고있지 않았던가, 아직 쥬신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에게도 의분의 감정이 일어나거늘 부왕마마로서야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이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불안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 사람의 말에 나는 겁을 먹고있는가?
전쟁이라는 말에 겁을 먹는다고? 아니다. 그런것은 아니다. 나도 당장 이 허리에 찬 검을 빼들고 오랑캐들을 치자고 호령하고싶다.
그런데 어째서?
가만 이 사람의 말에는 어딘가 맺히는데가 있다. 그게 무엇일가. 서쪽 쥬신국, 연나라오랑캐의 침략, 전쟁… 누군가가 이런 말을 이미 하지 않았던가? 누가 했던가? 누가?
대소왕자는 머리를 쥐여짜보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누가 그런 말을 했던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것은 언제인가 그런 말을 들었던적이 있다는것이다.
대소왕자는 풀리지 않는 실머리를 맥없이 놓아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