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재소설
(제 1 회)
주 몽
남다른 인품에 힘과 뛰여난 재주를 지녔건만 부여궁성의 말먹이군이 되지 않으면 안되였던 주몽!
시기와 질투, 모해와 박해는 숙명이런가!
어머니앞에 단도를 끊어 맹세를 올리고 벗들과 더불어 먼길떠나는 주몽의 앞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있을것인가.
불함산(백두산) 우러러 조상들의 큰 얼과 겨레의 소원을 헤아리며 기구한 운명을 지닌 세사람을 만나 주몽이 마침내 닿은 곳은 구려의 계루부. 안팎으로 어지러운 음모와 반란, 폭동이 기다리는 구려에서 주몽은 산성을 쌓아 위기를 막고 마침내 새 나라 고구려를 세웠다.
《백두-한나》잡지편집부는 이번 호부터 조선력사소설 《주몽》을 련재한다.
나오는 사람들
주몽: 부여궁성의 말먹이군. 후에 고구려를 세운 사람
오이: 주몽의 친구이며 부하
마리: 주몽의 친구이며 부하
협부: 주몽의 친구이며 부하
례나루: 주몽의 스승
류 화: 주몽의 어머니
례을나: 례나루의 손녀, 주몽의 안해
대소: 부여 금와왕의 맏아들
해리: 대소의 심복
재사: 구려 계루부의 대가, 연타발의 《아들》
묵거: 재사의 친구
무골: 재사의 친구
연타발: 계루부의 대가
소서노: 연타발의 딸
언청이: 《검은 칼잡이》부대 두령, 연타발의 친아들
구도: 구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종족의 두령
제 1 부
탈 출
해가 난다. 아직은 컴컴한 구름에 가리워 자태를 볼수 없을 망정 그 눈부시고 황홀한 빛만으로도 반가웁다. 해빛은 갈가리 찢어지는 구름장들의 변두리를 피처럼 빨갛게 물들이며 엇비스듬히 대지에 쏟아져내린다. 칙칙한 우울이 배여있던 대지가 뛰노는 생기로 넘친다. 해빛은 어느덧 가섭벌에 이르렀다. 무딘 톱날같은 산발들이 호박빛노을을 머리에 얹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남쪽하늘을 배경으로 부여궁성이 보인다. 둥그런 성곽이며 대궐들, 궁전 그리고 늙은 가지에 솔방울 열리듯 다닥다닥 들어앉은 집집들이 연한 재빛에 휩싸여 어렴풋이 보인다.
《예성》이라고 불리우던 이곳에 부여의 왕성이 자리잡은것은 해부루선왕때였다. 원래 북쪽에 있었는데 어느날 대신 아란불이 해부루왕에게 《천제가 이르기를 동쪽 가섭벌에 도읍을 정하라 하였소이다.》 하여 여기로 옮겨왔다고 한다. 가섭벌로 온 후 해부루선왕은 백리지경을 가진 올망졸망한 나라들을 정복하여 사방 2천리되는 큰 나라를 일떠세웠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지금은 금와왕의 재위시기이다.
마침내 해빛은 그 밝은 자락을 끄을며 둥글한 부여궁성을 지나 가섭벌의 밋밋한 언덕들을 훑기 시작하였다. 거북의 잔등같은 언덕아래서 호함진 말떼들이 풀을 뜯고있었다. 말떼가 풀을 뜯고있는 언저리의 등성이우에 한사람이 말을 타고 우뚝 서있었다. 미끄러지듯 달려온 해빛이 그를 비치기 시작하였다. 오추마를 탄 총각이였다. 코밑이 아직 끄슬리지는 않았어도 눈에서 번개불이 번쩍이고 어깨가 쩍 버그러졌다. 그는 이 고장 목동들이 흔히 그러하듯 검은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깃이 둥근 흰 옷을 입고 허리에는 띠를 매였다. 말총으로 꼰 채찍을 감아쥔 오른손은 질항아리만 한데 안장도 없이 앉은 허벅다리에 붙어있었다. 그의 번쩍이는 눈이 부여궁성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총각의 맑은 눈동자에는 흰나비가 비치였다. 그 흰나비는 언덕들사이로 팔랑거리고있었다. 이상한 나비였다. 분명 궁성에서 빠져나왔는데 가섭벌을 꿰질러 나오고있었다. 웬 나비일가? 잘못 보는거나 아닐가?
총각의 눈시울이 조금 쪼프라졌다. 문득 오추마가 귀바퀴를 쫑긋거렸다. 그러더니 코를 벌름거리며 앞발을 두어번 굴렀다. 총각은 채찍을 쥔 손으로 말갈기를 가볍게 툭- 툭 쳐주면서 지꿎게 그 미지의 나비를 눈여겨보았다. 마침내 그 나비의 실체가 안겨왔다. 오, 이제는 알겠다. 저건 부루말이다. 털색이 흰 부루말, 그래… 헌데 어째서 궁성쪽에서 오는 저 부루말이 이쪽으로 오는걸가? 그것도 설듯말듯 하면서… 날씨탓일가, 아니면… 아, 말탄 사람이 보인다. 가만 저 사람이 졸고있는게 아니야? 아니면 술에 취했나? 머리는 말갈기에 파묻고 팔은 축- 늘어뜨린것이 마치 술부대를 실은것 같군. 거참, 이상하군. 죽은 사람이 아닐가?
목동은 서성거리는 말의 갈기를 쓸어주며 줄곧 이상한 부루말에게 눈길을 떼지 않았다.
분명 말을 탄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부루말이 하필 이쪽으로 올리 없다. 주인잃은 말이 흔히 말떼를 찾아오는 법이다. 그렇다면 저 부루말을 탄 사람은? 어느덧 부루말은 징겅징겅 속보로 뛰여온다. 머밋머밋 하면서도 이쪽으로 다가왔다. 마침내 목동의 오추마가까이로 다가와 거품을 내불며 푸르륵- 몸을 떨었다. 그러자 말탔던 사람이 미끄러지듯 떨어졌다. 그 사람은 땅에 떨어져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목동이 탄 오추마가 놀라 고삐를 채며 소리를 질렀다. 목동은 오추마의 정수리를 가볍게 두드리고나서 뛰여내렸다. 그리고는 간간이 신음소리를 내는 낯선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다.
《여보시오.》 하고 목동이 불렀다. 꽤나 굵고 큰 목소리였다. 땅우의 풀을 뜯으려던 부루말이 흠칫 놀란다.
하지만 쓰러진 사람은 정신을 못 차렸다. 어디서 어떻게 달근질을 당했는지 형색이 말이 아니다. 온통 벌건 피가 묻은 옷은 성한데 없이 찢어지고 군데군데 드러난 살갗은 검푸른 멍이 들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가?
어떻게 되여 여기에 나타났을가? 분명 궁성쪽에서 왔는데…
목동은 땅에 엎어진 사람의 어깨를 붙들어 돌려눕혔다. 점점이 피가 말라붙고 푸른 뱀자리가 난 얼굴이다. 얼굴은 길쑴한데 감겨진 눈섭에 뿌연 먼지가 앉고 입술은 나무껍질처럼 말라터졌다. 끔찍스러운 얼굴을 들여다보던 목동은 미간을 약간 찌프렸다. 전혀 모를 사람이다. 목동은 손바닥으로 정신잃은 사람의 뺨을 가볍게 툭- 툭- 쳤다.
낯선 사람은 희미하게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목동을 보더니 놀란듯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당신은 누구시오?》 하고 목동이 물었다.
대답이 없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쓸뿐이였다. 마침내 그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목동은 잠시 그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허리춤에 매달았던 가죽주머니를 끌러 낯선 사람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 사람은 목동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더니 지친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터갈라진 입술사이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쪽은… 누구요?》
《난 목동이오이다.》
《목동?》
《그렇소이다.》
《여긴?》
《가섭벌 한끝이오이다.》
낯선 사람은 그 말을 들었는지 다시금 신음소리를 냈다.
《여보시오.》
목동이 흔들었다.
《례… 나루… 례나루… 그분은…》
낯선 사람은 뭐라고 계속하였으나 뒤말을 전혀 알아들을수 없었다. 그는 다시금 기절하였다.
고개를 떨어뜨린 사람의 모습을 이윽히 내려다보던 목동이 《례나루? 례나루…》 하고 되뇌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을 가느다랗게 쪼프렸다.
갑자기 말울음소리가 울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목동은 벌떡 일어났다. 가섭벌 저 멀리 궁성쪽에서 자욱히 일어나는 먼지타래가 보이고 땅이 알릴듯말듯 진동한다. 목동은 이마에 손바닥채양을 얹고 그쪽을 살폈다. 들깨알같이 작은 점들이 까뭇까뭇 뛰는게 보였다.
가만, 저게 혹시 이 낯선 사람을 붙잡으려고 나선 군사들이 아닐가? 이 낯선 사람이 궁성쪽에서 왔고 또 그쪽에서 소동이 일어난걸 보면…
만일 이 사람이 군사들에게 잡히는 날에는 어떻게 될가?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것이다.
목동은 그쪽을 일별하고 낯선 사람쪽으로 다가가 다시 그를 흔들었다.
《여보시오, 정신차리시오. 》
여전히 대답이 없다.
형체를 알아볼수 있게 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