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7회)

제 1 편

 

11

 

새해 1932년을 며칠 앞두고 날씨는 몹시 차졌다.

경찰에 체포된 동만특위책임자 동자경과 련계를 취하기 위해 룡정에 나온 허재률은 인단장사트렁크를 둘러메고 며칠째 경찰서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아무런 수도 써볼수 없었다. 조직의 힘을 빌어 여기저기 알아보니 적들도 동자경의 신분을 다 알고 체포한것 같지는 않지만 워낙 무법천지로 변해버린 세상이라 언제 나오겠는지 하는것도 막연하였다.

이래저래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있는데 명월구에서 오중화, 오중성이네 형제와 온성의 하연성이 그리고 해란구의 당비서들이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는길에 련락소에 들렸다.

명월구회의가 끝난 소식, 회의가 끝나는 날 모두 김일성동지를 중심으로 어깨를 겯고 《혁명가》와 《인터나쇼날》의 노래를 합창하면서 반일인민유격대를 무어가지고 다시 만나자고 굳게 결의를 다지고 헤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재률은 가슴에서 피가 끓고 살이 뛰였다.

더구나 김일성동지께서 유격대조직의 시범단위로 안도를 정하고 곧 그쪽으로 떠날 차비를 하시면서 동자경의 소식을 기다리고계신다는 말을 들었을 때 허재률은 더는 어물어물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일이 이렇게 된바에는 자기가 경찰서에 들어가서 동자경을 만나볼밖에 없다고 결심하고 인단장사트렁크를 멜빵을 해서 지고 거리에 나섰다.

허재률은 처음에 해란강다리를 건너 일본인거리쪽으로 으슬렁으슬렁 걸어갔다. 덮어높고 인단장사트렁크를 메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 똑똑한 계획은 없었다. 바깥에서 하루쯤 류치장살이를 할만한 《죄》를 짓고 경찰서 감방안에서 또 한 이틀 묵을만 한 《죄》를 지어야겠는데 그 정도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맨처음에 맞다들린것은 어떤 양장을 한 계집을 데린 안경쟁이 왜놈이였다.

《인단 사시오.

하고 허재률은 인단봉지를 젊은 계집의 코앞에 들이댔다.

《어마-》

계집년은 기겁을 해서 한길이나 뛰여올랐다.

《뭐야 이자식!

사나이가 허재률의 팔을 비틀어잡으며 사납게 소리쳤다.

《인단 사라는데 왜 그러시유? 이 팔 좀 놓으시우.

허재률은 이번에는 말을 정중히 하면서 그놈의 팔을 되꺾어 비틀어잡았다. 사나이는 죽지를 들리운 닭새끼처럼 버들쩍거리더니 팔을 놓아주자 어깨를 실룩거리며 아래우를 돌아보았다.

경찰을 찾는것이다. 멀지 않은곳에 왜놈 총령사관이 있고 거기에 령사관경찰이 있다. 여기서 잡히면 필경 령사관 경찰에 끌려갈것이다. 동자경은 룡정경찰서에 있는것이다.

허재률은 아차 실수했구나 하는것을 깨달은 순간 냅다 뛰였다. 사나이가 저놈 잡아라 하고 따라왔다. 잡히더라도 룡정경찰서에 잡혀야 한다고 생각하고 대통로쪽으로 달렸다. 거리엔 수많은 행인이 밀려다녔지만 내뛰는 허재률이와 잡으라고 소리치는 왜놈사내를 멍하니 바라볼뿐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사나이는 어지간히 약질인 모양으로 첫 갈림길어구까지 따라오더니 이어 숨을 헐썩거리며 멎어서고 뒤미처 따라온 계집년이 뭐라고 쑥덕거리자 주먹을 한번 쳐들어보인 다음 돌아서버렸다.

허재률은 트렁크를 추슬러지고 장마당으로 들어섰다. 왜놈들이 만주를 통채로 먹겠다고 군대를 련해련줄 들이밀고 이에 격분한 간도의 수십만 군중이 추수투쟁에 궐기하여 그 함성의 메아리가 아직도 거리와 마을에 배여있는 때라 찬바람이 휩쓸어다니는 장마당에도 전같은 활기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들썽거려도 돈과 낟알에 얽매인 사람들은 역시 장마당에 모여들어 각박한 흥정을 벌릴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팔아야 할 누데기를 휘감은 넝마장사는 발이 시리다고 강둥강둥 뛰고 때국이 흐르는 어깨우에 멜대를 둘러멘 콩물장사는 먼지를 덮씌우는 돌개바람에 휘말리여 비칠거린다. 그래도 제일 경기가 좋은것은 어수선한 찬바람속에 얼마간의 온기라도 풍겨주는상싶은 이 콩물장사며 황아전옆에 쭈그리고 앉은 팥죽장사며 장거리초입에 자리잡고있는 끓인물장사이다. 물건을 사든 팔든 흥정이 벌어지거나 끝나면 의례 김이 피여오르는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허재률은 인단봉지를 흔들며 《배앓이, 멀미, 체기받은데, 두통, 어지럼증, 가슴활랑거리는데 특효가 있는 신생당약방의 인단 사시오.》 하고 김빠진 소리로 한번 외우고는 어디에 가서 《죄》를 지어볼것인가 날카롭게 살피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팥죽장사가까이에 가면 쉽게 기회가 생길것 같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모두매에 들수도 있다. 이건 공작상 필요에 의해서 일부러 미련을 부리는것인데 하필 모두매를 맞을건 없지 않는가. 우시장 있는 끝까지 가봐야 별 신통한 수가 나지지 않았다. 장국밥집이 나졌다.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마침 시장기도 없지 않는데 실컷 청해먹고 내뛰면 주인놈이 잡아서 고발할것이다. 그러나 인단장사밑천을 다 털어내고 따귀를 몇대 갈기고 내보낼수도 있다. 주인놈이 접어들 때 아예 멨다꽂아버리면 류치장살이를 하게 되지 않을가. 하여간 이게 말은 쉽지만 정작 하자고보니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다.

다시 장마당초입으로 나오니 극장앞에 사람들이 와글와글한다. 무슨 신파광고가 나붙어있다.

허재률이 무심히 돌아서자고 하는데 매표구쪽에서 사람이 와- 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해서 살펴보니 싸움이 붙었다. 극장구경을 온 사람들이 신파보다 더 재미있는 진짜구경거리가 나졌다고 그리로 와 몰린다. 허재률은 비실비실 피했다. 자기도 한때 이 거리에서 동흥중학교를 다닌만큼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이는곳에 가면 아는 얼굴과 부딪칠수도 있었기때문이였다. 혹 아는사람을 만났다고 해야 집안이 망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인단장사가 됐다면 그만이겠지만 지금 수행하고있는 공작임무로 보면 썩 잘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려운것이다.

그런데 암만해도 그쪽으로 자꾸 눈길이 쏠린다. 뭔가 심상찮은것이 느껴졌다. 제성미를 잘 아는 허재률은 이렇게 마음이 끌린 다음에는 도저히 단념하지 못하리라는것을 생각하고 아예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 극장에 진을 치고있는 부랑배 한패가 깨끗하게 차려입은 청년을 붙잡아놓고 공처럼 이리 밀치고 저리 굴리고 하면서 가지고 노는판인데 그옆에서 젊은 아낙네와 처녀가 사색이 되여 떨고있었다.

《이자식아, 젊은놈이 벌써 첩질을 한단말이야? 건방진 자식!

상판이 유자같이 생긴자가 단장의 손잡이로 젊은이의 턱을 치받치며 시비를 건다.

《저 애는 내 누이동생이요. 당신들 이거 너무하지 않소.

보매 샌님같이 생긴 청년은 얼굴이 종이장같이 하얗게 질려가지고도 젊은 안해와 누이동생을 폭한들의 모욕으로부터 막아보자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뭐 너무해? 이자식 봐라, 일본이 하루아침에 만주천지를 평정하고 5족협화를 하자고 하는데 그래 네놈 혼자서 계집을 둘씩 차고다녀야 옳단말이냐? 대가리를 떼다가 궁둥이에 붙여놓을가보다. 그냥 그저…》

코가 찌그러진 말상을 한자가 청년의 목을 한손으로 움켜쥐고 비트는 시늉을 하다가 활 밀어내쳤다. 어떻게 됐는지 청년은 비틀거리다가 극장벽에 뒤골을 찧고 부딪쳤다. 외투단추가 떨어져나가면서 깨끗하게 차려입은 양복이 드러났다.

《거 형씨.

잠바를 어깨에 걸치고 팔짱을 끼고 서서 발장단을 치고있던 키꺽다리가 어깨를 씰룩씰룩하며 다가가더니 비뚤서 서서 이기죽거렸다.

《저 아가씨가 형씨의 매씨라면 나하고 처남매부를 삼는것이 어떠한지요? 간도일판에 소문난 미남자인 이 전보대를 매씨께서는 벌써 마음이 있어하는 눈친데요.

《하하하, 형님 생각이 비슷하오. 저리 중매군이 많은 이자리에서 정혼을 하오.

유자상이 처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히히닥거렸다.

《이거 놔요! 더러운것들!

처녀는 후추알같이 야무지게 내쏘며 손을 탁 뿌리쳤다. 조선치마저고리에 흰목도리를 둘렀으나 어딘가 녀학생같은 느낌을 주는 스무살 안팎의 처녀였다.

《히야- 굉장한데… 이거 사람 막 친다-》

유자상이 뼈라도 부러진듯이 한손으로 팔목을 잡고 홰홰 저어보이며 엄살을 떤다.

《임마, 형수님 팔목을 함부로 잡으니 그렇지. 녀자가 그립거든 나같이 이런 헌계집 손목이나 잡으란말이야.

말코에 말상을 한놈이 젊은 아낙네의 손을 비틀어잡자 녀자는 비명을 지르고 청년은 외투를 활 벗어내쳤다.

《어랍쇼. 사지가 성한게 원쑤같은모양이다-》

전보대가 어깨짓으로 잠바를 벗어팽개치니 말코가 그것을 냉큼 받아안으며 《형님, 수고하시겠습니다.》 하고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화닥닥 하고 격투가 붙었다. 그러나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였다. 청년의 얼굴은 전보대의 발길에 걷어채워 삽시간에 피칠갑이 되였다.

그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주저앉더니 더듬더듬 얼어붙은 땅을 더듬어 돌멩이를 찾는다. 그런 눈치를 챈 유자상이 단장을 쳐들었다.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내려오는 그 단장이 딱 하고 허재률의 인단장사트렁크를 후려쳤다.

《여보, 죄없는 인단장사는 왜 치는거요?

허재률은 단장을 나꾸채여 움켜쥐고 소리쳤다.

그때까지도 무슨 구체적인 타산이 있은것은 아니였다. 전날 동흥중학교의 응원단장을 하면서 무슨 경기끝이면 의례 있는 싸움판에 끼여들군하여 이런 왈짜들의 상태를 어지간히 알고있는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회의 어두운 뒤구석을 보고 의분을 느꼈을뿐이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격투가 벌어지고 그자신 몇대 얻어맞고 채인데다 그 누군가가 《경찰이다!》 하고 소리치자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단장을 휘둘러 정면으로 접어드는 전보대를 꺼꾸러뜨리고 뒤에서 덮치는 말코를 엎어메쳤다. 그러자 《뭐야! 비켜, 비켜!》 하는 경관의 호령소리가 울리고 말코가 《뛰여라!》 하고 소리치며 달아났다.

두툼한 털모자를 쓴 경관이 군중을 헤치고 나왔을 때 부랑배들은 이미 꽁무니를 빼고 없었다. 하기는 경관이 그자들을 잡자는 생각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잡을수 있었겠지만 왕거미처럼 극장에 거미줄을 늘이고 밥벌이를 하는데서는 경관이나 부랑배나 동업자 비슷한 처지여서 그렇게 각박하게 굴지 않았다.

그대신 같잖은 정의의 옹호자인 인단장사에게는 어마어마하게 굴었다.

《이자식, 흉기를 휘두르며 사람을 쳐? 죽어보겠니?

경관놈은 다짜고짜 허재률의 따귀를 후려갈기며 소리쳤다.

《여보, 내가 흉기를 휘두른게 뭐요? 이건 그놈들의 단장이요. 그럼 그놈들이 사람을 치는데 가만히 맞고있으란말이요.

허재률은 일부러 경관의 약을 올려주느라고 대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허재률의 보호를 받은셈인 그 청년과 두 녀자가 경관에게 사정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허재률이 바싹 약을 올려주니 경관놈은 사태가 너무나 명백했지만 많은 군중이 모인 앞에서 자기의 절대적인 권력을 시위할 필요성을 느낀듯하였다.

그는 명함을 꺼내놓으며 사정하는 청년을 밀어던지고 인단장사에게는 죄가 없다고 웅성거리는 군중에게 발을 탕 구르며 헤쳐가라고 위협한 다음 허재률을 경찰서로 끌고갔다.

《갑시다. 넨장, 당신네 서장한테 갑시다. 난 당신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다 이야기할테요.

하고 미련한체 마주 소리치면서 속으로는 이 허재률이가 실수하는 법이야 있는가 하고 웃었다.

 

  

12

 

 

허재률이가 동자경이를 만나기 위해 경찰서에 일부러 잡혀들어갔다는 해란구당조직의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길림지구에서 무장대성원으로 받아야 할 동무들의 문제도 보고 적들의 조선인정치범석방음모와 관련한 대책이 어떻게 돼가는지 료해도 할겸 차광수를 길림으로 보내시고, 계영춘이는 돈화에서 기다리는 동무들을 데리고 먼저 안도로 떠나게 하신 다음 자신께서는 룡정으로 나오시였다. 아무리 공작상 필요에 의한것이라고 하지만 허재률이가 경찰서에 들어간것을 앉아서 기다리고만 계실수가 없었다. 그래서 룡정에 나가시는길로 허재률의 공작을 뒤받침해주기 위하여 조직을 발동해서 삐라를 내붙이고 무장탈취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도록 하시였다.

허재률은 사흘만에 눈등이 시퍼렇게 이물려서 돌아왔다. 인단장사트렁크도 마구 짓밝혀서 한쪽구석이 넙적하게 찌그러지고 속은 다 털리였다. 그래도 김일성동지께서 자기때문에 일부러 륭정에까지 나오신것을 알고는 미안해서 몹시 거북해하였다. 그러면서도 기분만은 여전히 좋았다.

《바깥에서 삐라가 나돌고 사방에서 폭동이 일어날것 같다고 그놈들이 어찌나 부들부들 떠는지 하마트면 동자경동무도 만나보지 못하고 쫓겨날번했다니까요. 뭐 나도 정치범이라나요. 이번에 조선사람 정치범은 다 내보낸다고 야단입니다.

허재률은 문밖까지 마중나오신 김일성동지의 손을 잡고 흔들며 신이 나서 말하였다.

《그러니 거기서도 정치범석방놀음을 벌렸소? 그놈들이 석방한다는 정치범이 허동무같은 인단장사라면 별문젠데…》

하고 쓴웃음을 지으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눈등이 퍼렇게 부어올라서 사람모상이 몰라보게 달라진 허재률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시며 근심스럽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눈등은 왜 이 모양이 됐소?

《그 부랑배놈들한테 얻어맞았지요. 애매한 사람이 이렇게 얻어맞았는데도 경찰이란놈은 나를 끌고가서 또 치고박고하지 않겠습니까. 이걸 좀 보시오. 참 세상은 허무해요.

허재률은 장한 구경이나 시키듯이 정갱이를 걷어올렸다. 두텁지도 못한 속옷을 한참 갑자르며 걷어올리니 피멍이 든 상처가 나타났다.

김일성동지께서 가슴이 아프시여 조심조심 상처를 쓸어보시는데 허재률은 신명이 나서 《그것뿐인줄 알아요? 허리에 매맞은 자리도 있소.》 하고 뽐내듯이 말하였다.

《허허허, 대단하오. 대단해!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침내 웃으시였다.

《인단도 다 털렸지, 트렁크까지 다 깨먹었지,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 들어갔는데 그 싱거운 작자가 자꾸 훼방을 논단말입니다.

허재률은 심드렁해서 말했다.

《그건 누구요?

《그 녀편네 데리고 극장구경 갔다가 모두매에 든 친구말이요.

《아, 안영호말이요?

《안영혼지 뭔지, 남의 속은 모르고 자꾸 찾아와서 면회를 청하지, 계장놈에게 술을 사먹이지…》

《허허허, 그게야 너무 고마와서 그러는것 아니요. 그 사람은 동아운송점의 사무원이라는군. 아버지는 부강촌의 안윤재라오. 내가 전에 안윤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썩 시원치 못하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아는가요?

《허허허, 우리도 좀 알아봤지. 그 안영호가 허동무를 구원하자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오? 계장을 찾아갔다는것은 본인이 아니라 약혼녀와 누이동생이요.

《그러니까 아직 결혼은 안한 모양이군요.

《그렇다는것 같소. 그 누이동생이라는 처녀는 영신녀학교 학생이라는데 똑똑합디다.

《흥, 그러니 난 보고할게 별로 없군요. 말짱 다 알고있으니…》

허재률은 그이께서 샅샅이 다 알고계시는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것이 모두 자기에 대한 걱정때문이라는것을 느낄 때 풀이 죽어서 투정 비슷하게 말했다.

《왜 보고할게 없겠소. 그래 동자경동무는 만나봤소?

《그야 만났지요. 한 마흔쯤 나보이는 사람인데 점잖더군요. 경찰에서는 동만특위라는것은 전혀 모르고 그저 공산당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서 그러더군요. 곧 나올것 같아요. 행색도 농민행색이고 말도 그렇게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인테리냄새가 나서 의심을 산것 같더군요.

《그렇다면 다행이요. 그래 뭐라고 합디까?

김일성동지께서는 한결 마음이 놓이시여 여유있게 물으시였다.

《그 사람이 걱정하는것도 역시 그 문제더군요. 말하자면 반일련합전선문제지요. 지금 동만에서 유격투쟁을 하자면 구동북군과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하는데 응당 자기네가 이 문제를 잘 풀어서 김일성동지를 뒤받침해야겠지만 지금 일부 반일의 기치를 들었다는 부대들조차 반공의 립장만은 철저하기때문에 손써볼수가 없다는겁니다. 동만에 있는 부대라는것이 다 왕덕림이네 군단인데 군단장 왕덕림이는 장개석이를 만난다고 관내로 뛰고 사단장 오의성이가 대리를 하고있는데다 워낙 산림대 출신이 많은 부대들이고 보니 지휘체계가 서지 않고 다 제뿔뿔이로 군벌행세를 하고 다니면서 왜놈들과는 해볼 생각을 않고 공산당잡이만 한다는겁니다. 그중에도 안도에 있는 우사령의 부대가 제일 질인 나쁘다는군요. 만일 그들을 적으로 만들게 되면 장차 유격투쟁은 왜놈과 해보기전에 도처에 널린 수만의 반일부대들과 먼저 전투를 해야 할 형편이므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는지 방향을 세우자는것이 기본목적인것 같습니다.

《그래 동자경동무의 의견은 뭡니까?

《뭐 그 사람도 특별한 안은 없고 그저 김일성동지의 활동에 큰 기대를 건다는것이더군요.

《우리는 이중으로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지 않소. 군벌들이 우릴 공산당이라고 치고 또 조선사람이라고 해서 친단말이요.

《그런것도 다 말합디다. 그러면서도 현시기 이 문제를 풀 사람은 김일성동지밖에 없다고… 그래서 그런 기대를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고싶었다고 절절하게 말하더군요.

《사실 심각한 문제요. 광범한 인민들이 반일의 기치를 들고 일어나고 하층병사들이 병변을 일으키자 일부 군벌우두머리들이 반일구국의 기치를 들었으나 그들은 <적극반공, 소극반일>의 립장을 버리지 않고있소. 동만땅에 널린 왕덕림군단의 실례가 전형적이라고 볼수 있소. 어쨌든 이것은 우리 혁명의 앞길에 예상외의 큰 난관이 또 하나 가로놓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지만 우리는 이 고비를 능숙하게 넘어서야 하오. 동자경동무가 그 문제를 풀 기대를 우리에게 건다지만 우리는 다른 의미에서도 이 문제를 풀지 않을수 없소. 이번 명월구회의에서도 강조했지만 우리의 전략은 중국인민과 련합전선을 잘해서 두개의 힘으로 하나의 일제를 치자는것인데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의 힘 하나로 일제와 군벌군대의 두 적을 상대해야 하오. 바로 그래서 일제는 조중인민사이를 분렬시키려고 만보산사건과 같은 비렬한 음모를 꾸며냈고 또 지금도 조선인정치범석방음모와 같은 너절한 음모를 꾸며내고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계속해서 동자경의 건강에 대해 물어보신 다음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말씀하시였다.

《허동무, 동무도 몸이 몹시 상했구만. 아무래도 그런 몸으로 밖에 나다니다간 사람들의 눈에 띄워서 재미가 없을것 같소.

《아니 일없습니다. 인단장사행색이 이렇지 별수 있습니까?

허재률은 당황해서 말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시며 그의 손을 따뜻이 잡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나는 동자경동무가 인차 나오면 토론해서 중국인민들과의 사업을 아예 그 사람에게 떼맡기자고 했는데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그럴수도 없지 않소. 그러니 내가 이길로 돈화에 나가서 진한정동무와 만나서 이 문제를 풀 대책을 세워야겠소. 그러나 진한정동무도 그냥 돈화에 눌러있을 형편이 못되니 허동무가 여기서 이번 회의결정을 지방조직에서 어떻게 집행해나가겠는가 하는것도 도와주면서 동자경동무를 기다리오. 내가 알아본바에도 그리 오래 있을것 같지는 않으니 석방돼나오면 그 사람을 옹석라자로 데려다준다든가 그 사람 요구하는대로 편의를 도모해주오. 생소한곳에 갓 왔으니 아무래도 여기 일에 밝은 허동무가 안내를 잘해주는것이 좋을거요. 나는 일이 바빠서 한걸음 먼저 떠나겠소. 만일 인차 뒤따라오게 되면 돈화로 나오고 시간이 늦어지면 곧장 안도로 나오시오.

허재률은 마음 같아서는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당장 떠나고싶었다. 그러나 그이께서 의논조로 하시는 말씀속에 매우 중대한 과업이 내포되여있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그는 아이들처럼 떼도 쓸수 없어서 그냥 심드렁히 들을만해있었다.

《자, 우리 그렇게 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시계를 꺼내보시더니 결단성있게 일어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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