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3회)

제 1 편

 

5

 

감옥의 면회가 중단된 직후 동자경이 동아선박수리공장의 조직원을 통하여 경찰서에서 지명수배를 하였으니 곧 피하라는 통보를 보내여왔다. 선아는 그러지 않아도 무엇인가 느껴지는게 있었기때문에 미리 동아선박수리공장에 꾸린 독서조성원들을 피신시킨 다음 그길로 밤차를 타고 금주까지 갔다. 금주직물에 가보니 한영희 역시 같은 통보를 받고 선아를 찾아나오는길이였다. 구체적인것을 알아보려고 동자경을 만나려 하였으나 그는 이미 동만으로 조동되여 떠나고 없었다. 직접 조직적으로 련결되지는 않았으나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준 동자경이 없어지고 그사이 꾸려놓은 독서조성원들과도 마음놓고 접촉할수 없게 되고보니 그들은 마치 외로운 무인도에 버림받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사람이 한꺼번에 새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아선박수리공장의 독서조책임자인 권상균이 며칠 뛰여다니더니 학대에 있는 일화양행이라는 무역상사 지사의 청소부자리를 우선 선아에게 얻어주었다. 만주콩을 일본에 실어내는것을 기본업무로 하는 이 무역회사는 할빈에 있는 중국매판의 이름을 벌리고있었으나 사실은 만주를 발판으로 일어선 일본 관서 신흥재벌의 하나인 해왕운수회사의 직계회사였다. 여기에 군부나 경찰, 관동청의 우두머리들이 드나드는것은 밀수품들을 나르는 배편을 알선해주기도 하고 회사자체가 큼직하게 밀무역을 하기도 하기때문이였다. 지사장이라는 중년의 번대머리는 자기가 로일전쟁참가자라는것을 뽐내면서 시내복판에 있는 백옥산에 가면 자기와 함께 싸우던 전우들의 《영령》이 잠들어있다고 지껄이기를 좋아했다. 그의 녀편네는 새암바리추물인데 사무실로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남편의 품행을 감독하였다. 주택과 사무실과의 사이에 꽤 잘 꾸려진 정원이 있을뿐이라 자연 사무원과 그 집의 드난군의 차이가 희미하였다. 선아도 사실은 그가 아직 나이 젊어서 일손이 잴뿐아니라 중요하게는 일본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는것이 비밀거래가 많은 이 무역상에 쓸모가 많으리라는데로부터 사무실의 청소부로 채용된것인데 정작 그를 부려먹는것은 지사장의 녀편네였다. 그는 사무실에 나오기만 하면 선아에게 엄청난 일거리를 맡겨서 자기 집으로 내쫓았다. 남편이 사무실에서 시킬 일이 있다고 하면 점점 악이 나서 남편에게 퍼붓기 어려운 욕설과 매질을 선아에게 안기였다. 살진 암퇘지의 몸뚱이에 삵의 대가리를 접해붙인듯한 이 못난 추물이 그처럼 전횡을 일삼는 까닭을 처음 얼마동안은 전혀 리해하지 못한채 선아는 그년의 앙칼진 욕설과 매질을 묵묵히 견디고 참았다. 후에 알고보니 그 계집의 애비가 해왕운수회사의 중역의 한사람이요 려순지사와 지사장의 명줄이 그의 손아귀에 쥐여져있었다.

지사장이라는 번대머리는 그 못생긴 녀편네의 구박을 다같이 받는 처지라는데로부터인지 선아에게 그리 사납게 굴지 않았다. 그것이 선아에게는 오히려 불리하였다.

순수한 밥벌이나 피신장소를 위해서 이런 치사스러운것들의 구박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떠올랐다.

《권동무는 여기에 왜놈의 우두머리들이 많이 나든다고 하지만 제 녀편네한테도 골을 못쳐드는 지사장같은것이 무슨 맥을 출가…》

선아는 사무실안팎의 허드레일을 하면서 눈을 밝혔으나 맹랑한 생각만 들었다.

그런 어느날 키가 훨씬 큰 버쩍 마른 사나이가 손잡이 없는 벗나무지팽이를 짚고 다리를 살룩살룩 절며 나타났다.

그는 난로가까이에 있는 나무책상에 지팽이를 집어던지듯이 기대여놓더니 두손을 맞비비며 벌겋게 언 귀를 매만졌다. 외투는 검은 락타지로 괜찮게 해입었는데 이 혹한속에 맨머리바람으로 돌아다니는것을 보면 꽤 독한놈이라는 짐작이 갔다. 때마침 선아는 난로의 재를 들통에 퍼내여들고 나가다가 그자의 눈에 띄였다. 송곳끝같은 눈길을 등뒤로 느낀 선아는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다. 가면같이 피기 한점 없는 창백한 얼굴을 마주 대했을때 선아는 오싹한것을 느꼈다. 꼭 풀숲에서 불의에 뱀을 만나것같은 느낌이였다. 선아는 어디선가 그런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으나 창졸간에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성에가 두툼하게 내불려서 장님유리가 돼버린 넉장의 유리가 붙은 출입문에는 찬바람을 막기 위하여 강한 용수철을 해달았다.

선아는 문밖에 나서면서 탄재 하나를 문턱에 슬그머니 굴렸다. 탄재에 걸려 빠끔히 틈이 난 문짬으로 그자의 목소리가 울리여나왔다.

《누구요?

《새로 채용한 청소부지요. 일을 잘합니다.

지사장이 처음부터 변명조로 말한다.

《일을 잘해? 동북녀잔가?

《그렇다는가보오. 일본말은 전혀 모르오.

《떨떨하군. 아무튼 방안에는 절대 들여놓지 말고 심부름은 당신자신이 해야겠소. 오늘 사령부에서 토론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이다가끼총무과장, 이시하라작전과장이 다 여기로 나오시오. 8려단장도 온다오.

《아니 8려단장은 금주로 나갔다더니…》

《그게 말썽이 돼서 료하를 건너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오. 지금 우리가 관내로 들어간다고 국제여론이 하도 들끓어서 군부중앙에서 무슨 조치가 내려진것 같소. 때문에 사령관도 참모장도 벌벌 떠니까 부득불 여기서 토론해보자는거요.

선아는 가슴이 섬찍한것을 느꼈다. 귀결에 얻어들은 이름들이 보통이름이 아니였다.

이다가끼, 이시하라 하면 한창 만주전역으로 불길이 번져가는 9.18사변의 직접적하수인들이였다.

지금 관동군을 쥐락펴락하는것은 늙은 사령관 혼죠나 참모장 마야께가 아니라 바로 총무과장 이다가끼대좌이며 그에게 행동대본을 안겨주는것은 작전과장 이시하라중좌라는것은 관동군의 내부사정을 다소라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상식처럼 알려져있었다. 게다가 8려단장이라면 이번 만주사변을 뒤받침하기 위하여 부랴부랴 일본본토에서 정예무력을 끌어온자이니 알만한자이다. 결국 일화양행이 관동군실권자들의 별실이나 다름없다는것을 느낀 선아는 긴장에 살이 떨리였다.

이날 선아는 눈치있게 행동하여 그자들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뻬치까의 손질을 하면서 놈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런데 마감무렵에 후꾸다까지 나타나자 선아는 자기가 칼날우에 올라앉았다는것을 느끼였다.

후꾸다는 감옥출입을 할 때 선아가 얼굴을 익힌것만큼 상대 역시 그처럼 이름난 특무두목이니 자기를 못알아볼리 없다. 그는 후꾸다와 맞다들리면 그자리에서 정체가 폭로된다는것을 알았지만 이 핑게 저 핑게를 대고 사무실언저리를 서성거리였다. 밖으로 난 중국식아궁의 바로 우에 두툼하게 카텐을 친 창이 있는데 선아는 입직한 며칠후에 그 창문에 틈사리가 나도록 어긋맞게 닫아놓고 방풍장치를 했었다. 그러나 토의의 내용은 너무나 중대한 비밀이고 또 토막토막 끊어져나오는 말마디들이라 잘 가려들을수가 없었다. 총체적으로 금주를 공격하기 위해 천진에서 어떤 사건을 조작해서 거기 있는 일본군을 원조하러 간다는 구실을 만들어야 한다는데로 귀착되고 그런 다음에도 사령부나 군부중앙에 있는 《령감》들이 또 말썽을 일으키면 아예 그들자체를 들어내야 한다고 떠들었다. 비밀모의지만 참가자들이 모두 파쑈광신자들이라 당장 칼부림이라도 할듯이 열을 올리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간도에서의 추수투쟁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우리 앞길에 유일하게 덫을 놓고 발목을 감아채는것은 간도농민들의 폭동이요. 후꾸다상, 대체 적수공권의 농민들이 그처럼 기세를 올리도록 가만히 버려두는것은 무슨 까닭이요?

저마다 열이 올라 떠드는가운데 오직 한사람,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마치 념불이라도 외우듯 조용히 말하는 진짜 중같이 생긴 참모중좌가 바로 이시하라작전과장이였다.

후꾸다의 대답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도 특무두목이라 조심할대로 조심한다는것이 알렸다. 그러나 그가운데 김일성동지의 이름이 몇번이나 울려나오더니 마침내 조선주둔군에서 왔다는자에게 최효열을 벌써 처형한데 대해 돼지같이 미련한짓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어조로 보아 놈들도 10여만 간도농민들의 추수투쟁이 직접 김일성동지의 지도하에 벌어진 투쟁이고 그것이 장차 저희들의 침략에 얼마나 큰 저항력으로 자라리라는것을 예감하는듯하였다.

이날밤 선아는 한영희에게 사실을 낱낱이 이야기해서 곧 돈화로 띄웠다. 그리고 자신은 더 깊이 정체를 감추고 일화양행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살폈다.

이것이 어찌다 쓰이는 비밀모의터가 아니라 바로 후꾸다의 련락장소라는것은 명백한듯하였다. 그럴수록 선아는 여기 지사장을 비롯한 사무원들의 눈에 나지 않기 위하여 어수룩한체하면서도 눈썰미있게 비위도 맞춰주고 일도 부지런히 하였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한영희를 돈화로 떠나보낼 때 로호미반도의 등대밑에서 련락원을 기다리기로 약속한 날이였다. 1시부터 2시사이면 점심시간이기때문에 여느때 같으면 아무런 장애도 없을것이였다. 그런데 아침에 사무실의 난로청소를 다 끝내고 중국식 구들이 놓인 방들에 불을 때여 뜨끈뜨끈하게 덥혀놓자 지사장의 녀편네가 나와서 목욕탕을 부셔내고 물을 끓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끝나자 이번에는 엄청난 빨래감을 떠맡겼다.

선아는 이를 악물고 빨래를 시작하였다. 왜놈들의 빨래는 방치질도 못하게 하기때문에 비누를 잔뜩 칠해서 목욕탕바닥에 한무지 무져놓고 진흙을 개듯 질근질근 밟았다. 그다음 한가지한가지 골라내여 비벼나가는데 비누거품이 얼굴에까지 튀여올랐다. 숨쉴 사이도 없이 밟고 비비고 헹구고 마치 격전을 벌리듯 돌아가느라니 팔다리가 뻣뻣해져서 마음대로 구부러지지를 않았다. 숨이 차올랐다. 방에서 벽시계가 12시를 쳤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선아는 물을 먹어서 엄청나게 크고 무거워진 이불잇을 이를 앙다물고 짓조겼다.

1시반이 되였다. 이제 죽을 기를 쓰고 달려가면 2시까지 그 등대밑에 가댈지 말지 하다. 거기서 련락원을 만난다는것은 외로운 고도에 떨어져있는것 같은 자기가 어머니대지인 조직과 김일성동지의 품을 느낄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기회였다. 지난날은 점점 수척해지고 병세가 악화되여가는 김혁을 그나마 한주일에 한번씩 만나보는것이 고달픈 생을 뻗치고있는 마음의 기둥이였다면 지금은 그것마저 바랄수 없는 일로 돼버렸다. 밤이면 얼어드는 랭돌에 엎어져서 포대기같은 얇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흐느껴울었다. 김혁은 계속 김일성동지에게로 돌아가라고 애원하다싶이 요구하였다. 그때마다 선아는 자기를 떠나보내시면서 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상기하였다. 산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면 단념하기가 이렇게 어렵지 않을는지도 모른다. 전에 처녀아이들이 까지르는 말들을 들어보면 사랑때문에 울고 지어 목을 매자고 하는 녀자들도 있다고 한다. 선아는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리해할수 없었다. 다만 김혁의 죽음이 더욱더 확실해지고 그나마 이제는 볼수조차 없게 된 오늘에 와서 보면 그와 함께 밤을 밝히며 등사를 하던 고유수나 왕청문의 나날이 그리고 비상계엄상태에 있던 할빈 도리의 번화가를 함께 걸어가던 그 시절이 얼마나 행복했던가 하는 생각이 청강수처럼 가슴을 허비고 지졌다. 그 모든 행복이 김일성동지의 배려속에서 이루어졌고 오늘 항일무장투쟁의 거창한 물결이 지하깊이에서 뒤설레이고있는 이때 저만이 죽어가는 김혁의 신변을 지켜보는것 역시 그이께서 마련해주신 슬픈 행복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것이 김일성동지의 김혁에 대한 뜨거운 우정과 혁명적의리를 받드는 길이라는것을 생각할 때 그밖에 다른 어떤 감정도 고통도 이를 악물고 극복해 나갈 결심이 드팀없이 들어앉아있었다. 그러나 김일성동지와 련계를 짓고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조직에 하소연할수 있는 이 기회만은 그 어떤 장애가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놓칠수 없었다.  벽시계가 한시를 치는 소리를 들은지도 한참이나 지나서 선아는 비누물에 어지러워진 머리를 대충 매만지고 마당에 나섰다.

그제야 실컷 낮잠을 자고난 주인녀편네가 부석부석한 눈을 비비며 2층에서 내려오다가 머리수건을 쓰고나가는 선아를 보고 기겁한듯 빽 소리를 쳤다.

《이년아, 빨래는 안하고 어딜 가!

선아는 주춤해서 멎어섰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다 빨아서 널었어요.

《뭐 다 빨아?

지사장녀편네는 엎어지듯이 층층계를 콩콩 구르며 달려내려왔다. 문밖에 나서니 호떡처럼 불어난 볼을 찬바람이 쳐갈기는데 뒤마당에는 꾸등꾸등 언 빨래가 하나가득 널려 푸득푸득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죽일년, 이제 돌아왔단 봐라!

뒤문을 빠져나가는 선아를 보고 지사장녀편네는 기가 차서 내뱉었다.

반도로 뻗은 모래불에는 먼지와 눈이 함께 내불려서 눈을 뜰수 없었다. 선아는 얇게 입은 옷으로 사정없이 찌르고드는 추위를 느끼며 이 추위에 감옥에 옹송그리고 앉아있을 김혁을 생각하였다. 추위에 떨고있을 그 정상을 그려보니 자기가 추위를 느낀다는것이 죄스럽게 생각되였다. 지난가을에 김일성동지께서 보내주신 김형직선생님의 바지저고리 한벌이 그를 이 모진 추위로부터 막아줄 유일한 방패라는것을 생각하니 절로 눈굽이 젖어올랐다. 선박수리소 도장공의 임금을 가지고는 자기 혼자 입에 풀칠하기도 힘에 겨웠다. 그러나 이제 차입도 면회도 못하게 되고보니 본격적인 추위가 닥쳐오기전에 뜨뜻한 속옷이라도 마련해 들여보내지 못한것이 뉘우쳐져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앉게 되고 어떤 때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같이 바람이 심한 날이면 그 소리가 더 가슴을 허벼주었다.

사람래왕이 드문 바다기슭으로 나오자 선아는 반달음을 놓다싶이하였다. 후미진 모래불로 달리면서 선아는 장소를 잘못정했다는 생각이 비로소 떠올랐다. 한영희와 같이 자주 다닌곳이고 누구나 쉽게 찾을수 있는곳이기때문에 창졸간에 그렇게 말해버린것이였으나 이제 영희가 다시 나타날 까닭은 없는것이고 처음 오는 사람이면 생소한고장에서 이런 후미진곳을 오락가락하는것이 수상하게 보일것이다. 그럴수록 빨리 만나서 제꺽 련계를 짓고 헤여져야겠는데 자기가 그 지사장녀편네로 해서 지체되는바람에 더구나 복잡하게 만들어준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앞섰다. 하기는 오늘이 약속한 첫 수요일이다. 벌써 사람이 왔겠는지 어떤지는 전혀 알길이 없었다.

바다가에는 파도소리만 높았다. 얼핏 둘러봐야 인적은 없었다.

선아는 산란한 마음을 달래며 지난가을 영희와 함께 김혁의 일기책과 권총을 묻은 그 외딴 바위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바위를 지나고보면 어디에도 사람이 형체를 감출만한곳은 없었다.

선아는 땀발이 솟는 얼굴을 바다바람에 식히며 바위에 등을 기대고앉았다. 그만 해도 바람막이가 돼서 잠풍하였다. 여태 안온것인가? 물론 충분히 그럴수 있다. 영희자체가 아직 김일성동지를 못만났을수도 있다.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있는 지금 얼마나 거창한 일이 많이 벌어지며 또 김일성동지의 활동범위가 얼마나 넓을것인가. 그러고볼 때 영희가 떠난지 며칠 되지도 않는 지금부터 련락원을 기다린다는것이 좀 미안쩍게도 생각되였다.

시간을 짐작해보니 이제는 2시가 거의 지났을것 같았다. 혹시 이미 와보고 사람이 없으니 가버린것이나 아닐가 하는 걱정도 떠올랐으나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험지로 찾아온 동지가 그렇게 훌쩍 떠났을수는 없다고 생각한 선아는 결단성있게 일어났다.

이 길로 일화양행에 돌아가야 한다. 하루 세끼씩 먹을 마련이 없어서 점심을 건느기 시작한지는 벌써 오래다. 여름에는 선박수리소의 일이 고되기도 하고 낮이 길어서 힘들었지만 어언 겨울이 되여 해가 짧아지고보니 한결 견디기 수월하였다.

《벌써 올수야 없지뭐. 영희가 김일성동지와 련계를 짓기도 빳빳하겠다. 사흘밤만 자고나면 일요일인데 아무래도 일요일에 오게 될거야. 수요일이란건 사실 아무 의의도 없는 맹랑한 날이라니까…》

선아는 까닭없이 쓸쓸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달래며 얼어붙은 모래불을 타박타박 걸었다.

《사흘밤만 기다리면…》

선아에게는 명절날을 손꼽아기다리던 철부지적부터 낯익은 이러한 말이 이제는 몹시 서먹서먹하게 느껴졌다. 과연 사흘밤만 자고나면 련락원이 올것인가. 오지 못할 까닭은 너무나 많다. 만일 오지 못하게 되면 김혁이는 어떻게 되는가. 련락원이 왔다고 그가 살아날 길도 없을것이지만 이제 자기는 접근할수도 없는 감옥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최후를 마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였다. 김일성동지의 뜻을 받들고 자기가 끝까지 여기를 떠나지 않고있다는것만이라도 어떻게 하나 그가 알고 최후의 길을 걸어가게 하고싶었다. 자기가 완전히 자유를 잃어버린 조건에서 동아선박수리공장과 한영희가 조직한 금주직물의 독서조성원들을 장차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것인가 하는것도 큰 문제였다. 계속 소책자를 돌려가며 읽고 토론이나 하는것으로 이 급변하는 정세를 그들에게 납득시키기는 어려웠다. 그들은 실천을 요구하며 투쟁을 갈망한다. 사실 그 모든것이 일제가 만주를 침공한 오늘과 같은 상황하에서 과감한 투쟁을 벌리기 위한 준비가 아니였던가. 그러나 조직과 련계를 맺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그들의 지향을 실천적인 힘으로 묶어세울수가 없는것이다.

선아는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갈수록 번거로운 생각만 연줄연줄 떠올라 눈앞이 캄캄해지고 걸음조차 바로 걸리지 않았다. 때마침 맞받아 불어오는 바람을 피하기 위하여 고개를 돌리는데 《선아, 어디로 가니?》 하는 목소리가 울려왔다.

주춤 멎어서며 바라보니 새까만 털슈바를 입고 새하얀 털목도리를 두른 귀부인차림의 녀자가 해변의 뻬취앞에 서있다. 그앞은 해안통 큰길이였다.

《영희!

선아는 한달음에 달려가 영희의 손을 움켜잡았다.

《수선을 떨지 말고 여기 좀 앉자. 난 정거장에서 달려오느라고 숨이 가빠죽겠다.

영희는 헤여질 때나 같이 실무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하며 걸상의 눈가루며 먼지를 향수내 풍기는 손수건으로 탁탁 털고 제먼저 앉았다.

선아는 그옆에 비스듬히 따라앉으며 영희의 표정을 세세히 살폈다. 어쩌면 이렇게 태연할수가 있을가. 자기는 그렇게 가슴을 조이며 기다렸는데 그는 한주일에 한번씩 김혁의 면회날마다 금주에서 만나러 오던 그때보다 더 태연하다. 워낙 그가 여기에 다시 나타났다는것부터가 예상치 않았던 일이였다. 영희로 말하면 당초에 려순에서 그처럼 오래 머물러있을 필요도 없고 그럴 까닭도 없는 사람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혁명전사를 아끼시는 마음이 너무 극진하시여 김혁이와 자기때문에 이례적인 조치를 취해주셨으니 그렇지 실은 자기마저 려순에 붙박혀있을 체면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봐도 한영희는 자기대로의 생활이 있고 희망도 있으며 또 집사정도 있다. 가족이 교하폭동때 피난을 갔다가 다시 돌아는 왔다지만 어머니는 그때 얻은 병이 지금도 말썽을 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저러나 자기처럼 모든 심혼을 기울인 사랑이 있는것도 아닌 그가 동무 한사람 없는 이고장으로 다시 돌아왔다는것은 너무나 뜻밖이였다. 그러나 영희의 표정에는 아무런 특별한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튼 넌 맹꽁이야.

하고 영희는 숨을 톺더니 고역에 트고 부어오른 선아의 손을 더듬어잡고 한쪽 손가락으로 이마를 가볍게 눌러주며 말했다.

《이따위 휑한데서 만나잘게 뭐야. 그리고 시간은 하필 1시에서 2시까지… 낮차가 1시반에 도착한다는것도 몰라? 이 꼴을 하고 뜀박질을 할수도 없고… 너무 화가 나서 려관에 가 푹 쉬다가 일요일날에나 만나줄가 하는 생각도 했다. 한 사나흘 기다리며 속을 썩이고 울고 하는 사이면 애가 좀 똑똑해질지 알겠니.

《저도 찬성하구선…》

선아는 아무 시름없이 희망에만 넘쳐있던 길림공청시절처럼 동무의 따뜻한 우정에 어리광을 부리듯 이렇게 말하며 영희의 정말 귀부인같이 화려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또 왔어? 난 지시나 전해줄 련락원을 기다리는데… 난 네가 다시 올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 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였구나? 넌 워낙 랭정한 아이니까… 저 혼자 생각만 하지. 난 그래도 널 여기다 혼자 남겨두고 가버릴 생각은 못했구나.

《영희, 성내지 말어. 너무 고마와서 그래.

선아는 눈을 슴뻑거리며 가까스로 입귀에 웃음을 지었다.

《흥, 고마와? 넌 고마운게 뭔지 알기나 하니?

하고 영희는 선아의 추워보이는 몸을 끌어당겨 자기의 털슈바자락으로 감싸안으며 좀 딱딱해진 어조로 말했다.

《조직의 지시다. 네가 알아낸 정보는 대단히 높이 평가되였다. 사실 그건 좋은 소식은 못되기때문에 많은 동무들에게 슬픈 충격을 주었지만 원쑤들이 우리에게 장차 어떤 태도를 취하리라는 예견을 줄수 있고 또 우리가 무장투쟁준비를 한시바삐 다그쳐야 한다는 절박성을 깨우치는 의미에서도 매우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넌 여기서 더는 할일이 없으니 당장 돌아오라는 지시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냐? 더는 할일이 없다니?

선아는 영희의 어깨에 기대였던 머리를 번쩍 쳐들었다. 그건 전혀 예견 못한 말은 아니였지만 정작 현실적으로 듣고보니 어쩐지 발밑의 땅이 허물어지는듯 온몸이 비틀거려졌다. 실상 선아는 바로 이 땅에 배겨있기 위하여 온 심혼을 기울여왔던것이다.

《너는 지나치게 로출됐다는거지. 필요하면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당장 려순을 떠나라는거다.

《그래 넌 그걸 접수하고 왔니? 대체 누가 그런 지시를 주더냐?

한영희는 선아를 설복하기가 조련치 않으리라는것을 통감하는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차광수동무지 누구야. 지금 한별동지는 간도땅을 샅샅이 밟고 다니신단다. 추수투쟁을 직접 지도하시면서 그속에서 무장대오를 조직할 준비를 다그쳐가신다더라. 그런데 너한테 또 무슨 일이 벌어지면 한별동지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하겠느냐고 말하더라. 차광수동무도 입에 이렇게 누런 물퉁게가 지고…》

한영희는 암만 찡그려도 미워지지 않는 입술을 잔뜩 어긋맞게 찡그리고 거기에 손가락 한마디를 척 붙여보이며 안타까운 어조로 말했다.

《얼마나 분주히 돌아가는지 몰라. 진한정동무도 계영춘동무도 만나봤는데 모두 그렇게 밤잠 한잠 못자고 돌아가더구나. 그러면서 우리도 어서 와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눈치더라.

선아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있었다. 부옇게 흐린 하늘과 검게 설레이는 바다가 바투 다가붙어서 공간이 어방없이 좁게 느껴졌고 그 좁은 공간이 차츰 더 옥죄여드는듯 가슴이 답답하였다.

《선아.

영희는 다시 동무의 어깨를 다정하게 그러안으며 말했다.

《내가 왜 네 심정을 모르겠니? 그러나 우리가 꼭 여기 있어야만 김혁동무의 소식을 알수 있는것도 아니지 않니. 그러니 동무들이 너무 걱정하지 않게 돌아가자. 그걸 김혁동무도 얼마나 바랐니?

《알겠다. 네 마음도 그리고 조직의 의사도 다 알겠어.》 하고 선아는 뜻밖에도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기에 난 처음부터 널 다시는 오지 말라구 하지 않았니. 난 사실 네가 다시 오기를 바라지 않았다. 얼핏 다녀갈 련락원이나 보내주었으면 되는건데… 그러니 넌 곧 돌아가거라.

《그럼 넌?

영희는 긴장해서 다그쳐물었다. 선아는 잠시 검게 일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난 갈수가 없구나. 내가 이 땅을 선뜻 떠나지 못하는것은 물론 김혁동무가 저 감옥안에 있기때문이기도 할거야. 그러나 지금 당장 못떠나는것은 내가 바로 원쑤들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기때문이야. 그 소굴에 내가 아니고 누가 또 접근할수 있단말이냐? 그리고 그놈들이 무시로 거기서 우리 한별동지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침략모의를 하고있는데 내가 위험하다는 한가지 리유때문에 여기를 떠난단말이냐? 그럼 한별동지는 위험하지 않는데만 다니느냐? 차광수동무는? 또 너는? 난 누구나 우리 혁명에 필요한곳이면 위험하든 말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한별동지한테로 돌아가고 나는 여기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영희는 선아의 파르스름하게 질린 옆얼굴을 지켜보며 한숨을 쉬였다. 석고로 빚어놓은듯 피기 한점 느껴지지 않는 그 얼굴모습은 더할나위없이 아름답게 다듬어져서 그 어떤 변화도 융통도 허용할것 같지 않았다.

영희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가 결단성있게 돌아앉았다.

《하는수 없구나. 네가 그러리라고 짐작 못한것도 아니다. 그러니 다음 일요일날까지 더 좀 깊이 생각해보자. 난 그사이 대련에 나가 그 시노사끼외과에 들려보겠다.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있을지 알겠니. 그다음 일요일에 만나 결정을 짓자.

이번에는 선아가 놀란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시노사끼외과에 들릴 필요는 없어. 그건 그야말로 서울에 감투부탁이지 뭐니?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건 내가 하면 될게 아니냐. 넌 어서 돌아가야 해. 그래야 조직에서 마음을 놓을게 아니냐.

《생각은 너한테만 있는게 아니야. 그러니 그 소리는 그만하고 제발 몸조심해라. 그리고 다음 만날 때까지 잘 생각해봐.

그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선아는 덩달아 일어나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생각하마. 그런데 시노사끼외과에는 가지 말어. 암만해도 께림직하구나.

《흥, 께림직한것은 네가 그 소굴에 그냥 배겨있는거야.

한영희는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으로 선아의 이마를 찔렀다.

《어쩌면 요렇게 생각이 막혔을가?

선아는 그래도 고개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시노사끼외과란 동자경이가 대련을 떠나기전에 련계를 지어준 진보적기분을 가진 일본개업의였다. 그의 동창생 한사람이 려순감옥의 감옥의로 있기때문에 잘하면 김혁의 소식을 알아낼 방도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한영희는 이미 시노사끼를 만났고 그로부터 힘껏 노력해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으며 차후 련락방법까지 정하고 돌아왔다.

그러니 한영희가 다시 그를 만나러 갔다고 해서 당장 무엇이 잘못될 구석은 있어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선아는 어쩐지 이 모든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기가 쓸데없는 옹고집을 부려 새로운 말썽을 빚어내는것도 같아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그래서 영희더러 제발 돈화로 돌아가달라고 부탁했지만 그의 말은 영희의 말에 비해 론리가 서지 않았고 설득력이 너무나 부족하였다. 하기는 그의 말이 아무리 리치에 맞는다 해도 동무를 위험속에 혼자 버려두고 홀로 떠나갈 영희가 아니였다.

그들은 두사람 다 아니아니한 불안을 가슴에 품은채 다음 만날 시간을 약속한후 반도의 도래굽이를 팔을 끼고 한참 말없이 걷다가 헤여졌다.

 

 

6

 

 

대도시 봉천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거리가 신역사로부터 심양구역사까지 통하는 55m짜리 나니와대통로인데 여기서도 눈에 두드러지는것이 야마도호텔, 공회당, 의대병원, 정금은행 같은 대삘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중앙광장부근이다.

그러나 지금 중앙광장일대는 중무장한 관동군들이 거리의 요소요소에 모래가마니를 쌓아올려놓고 철야경계를 하고있고 특히 중앙광장의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 동양척식회사의 주변은 살벌하였다. 정문현관에는 총구멍이 숭숭하게 뚫린 바리케트를 만들어놓았고 대통로와의 사이사이에는 철조망을 얼기설기 휘감은 차단물들이 널려있었다. 보초들은 철갑모를 쓰고 날창을 꽂은 총을 비껴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적의에 가득차서 노려보고있었다.

바로 여기에 얼마전 려순에서 올라온 관동군사령부가 들어앉아 있는것이다.

광장주변은 마치 닭장속에 족제비가 기여든듯 공포분위기에 짓눌려버려서 군대외의 행인은 극히 드물었고 어찌다 지나는 사람들도 덜미나 잡힐가봐 겁이 나는듯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반달음을 놓군하였다.

마치 흑사병이 휩쓸고간것처럼 죽음의 공포가 떠도는 휑뎅그렁한 나니와대통로로 수수한 재빛외투에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중년사나이가 세상일에 다 초탈해버린듯 고개를 약간 숙이고 꼿꼿이 걸어가고있었다.

수상한 행인들을 경계하느라고 서있는 요소요소의 보초들도 대상이 너무 기이하니까 오히려 단속할 생각을 잊고 그의 거동만 멍하니 지켜보게 되였다.

중절모의 사나이는 무시무시하게 늘여놓은 철조망차단물도 기관총을 뻗쳐놓은 바리케트도 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듯 여전한 자세로 현관의 돌층계를 하나하나 짚고올라 출입문앞에 이르더니 기계적인 자세로 안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여 보초에게 가볍게 쳐들어보이였다.

광장주변을 서성거리는 수많은 다른 경계근무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호기심과 함께 한걸음한걸음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이 사나이에 대해 은근한 적의를 품고 때를 기다리고있던 보초는 상대가 말없이 내미는 그 신분증에서 얼핏 헌병대좌라는 직함을 읽게 되였다. 삽시에 보초는 철심을 해박은듯 꼿꼿해져서 총대를 높이 쳐들어 받들어총을 하였다. 헌병오장이라도 모르겠는데 헌병대좌를, 그것도 신문에 난 사진이 아니라 직접 살아있는 헌병대좌를 지척에 대했으니 보초의 낯색이 변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중절모의 사나이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듯 여전한 걸음걸이로 계단쪽으로 걸어갔다.

사실 조선총독부 파견원이라는 명색을 가지고 늘 사복을 입고 뒤골목으로만 돌아가던 후꾸다는 온 세상이 주목하는 이런곳에 자기 신분을 드러내놓고 나타나는것이 저으기 불쾌하였다. 그러나 혼죠사령관이 직접 만나기를 청했고 또 실제상 관동군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이다가끼대좌가 그처럼 간청을 하니 더는 거절할 구실이 없어서 이렇게 나타나면서도 려순에 있던 사령부를 이리로 옮기지 못해 몸살이라도 날듯이 안달아 돌아가는가 하면 봉천에서도 가장 번화한곳에 사령부를 차려놓고 가슴에 누런 수실을 번쩍거리며 돌아가기를 좋아하는 그네들의 허영심에 쓰거운 랭소를 금할수가 없었다.

후꾸다는 2층에 올라가서 이끝에서 저끝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여전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봉천에 와 살다싶이하였고 특히 관동군요직의 인물들과는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었지만 아직 한번도 이 집에 들어와본적이 없었으며 따라서 누가 어느 방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복도에서 만난 수많은 장교들에게 방을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하고 복도를 돌아치느라면 어떤녀석이든 나타나겠지 하는 배짱이였다.

아니나다를가 3층에 올라가서 한절반 복도를 걸어가는데 한꺼번에 두방의 문이 열리였다. 앞쪽에서 조용히 문을 열고 잰걸음으로 다가오는것은 작전과장 이시하라 간지중좌요 뒤에서 《후꾸다상, 여기요 여기!》 하고 들썩하게 소리치며 반달음으로 달려오는것은 바로 이다가끼 세이시로대좌였다.

이시하라는 유난히 모가 삐여진 큼직한 중대가리에 살이 쏙 빠진 볼이며 우묵하게 꺼져들어간 눈이 어딘가 수도승 비슷한데가 있었다. 하기는 그도 일련종의 열렬한 신자로서 만주사변을 그러한 형태로 구상해낸것도 어느 정도 그의 종교적신념의 영향이 많다는 말도 돌아가고있다. 이시하라의 어딘가 사색적이고 사물을 응시하는것 같은 몸가짐과는 반대로 이다가끼는 개방적이고 의욕에 넘친 야심가형이였다. 둥글둥글하게 막깎은 중대가리는 충실하게 잘 익은 떡호박을 련상시키는가 하면 코밑에 쫑긋하게 기른 빳빳한 코밑수염은 사나운 설치류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였다.

이시하라는 륙군대학 교원으로 있던 몇해전부터 오늘의 만주사변을 그런 형태로 구상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여러 줄을 놓아서 관동군으로 옮아앉는데 성공했다.

이다가끼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왕성한 정력과 손탁이 센 실천력을 발동하여 이시하라의 구상을 무수정으로 실현하는 길에 들어섰다. 그들은 음모를 비밀에 붙였지만 그것이 새여나가는데 대해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꾜의 참모본부나 륙군성에서도 그들의 지지자가 적지 않았고 관동군에서는 그들의 견해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만 가지는 날에는 하루도 살아서 배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일단 거사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들에게 가장 큰 문제로 나섰던것은 새로 부임한 사령관 혼죠의 우유부단한 태도나 거사직전에 사태를 수습한다는 명목을 띠고 비행기로 날아든 참모본부 제1부장 다데가와소장의 압력이 아니였다. 혼죠도 다데가와도 만주사변에 대한 이시하라의 구상에 압도되여 대번에 길이 들어버렸던것이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미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채 억지로 일을 내민것은 병력문제였다. 어쨌든 동북군만 해도 20만이상을 헤아리는 군대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이 동원할수 있는 병력은 2사단과 철도연선에 널린 몇개의 독립수비대, 합하여 만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으로써 일을 시작하여 단숨에 끝장을 보지 못하고 장기전에 말려들기만 하면 가뜩이나 부들부들 떠는 유약한 정객들과 군부의 늙다리령감들이 당장 총을 놓고 돌아서서 화의를 하자고 떠들어댈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사건의 당사자들이 목을 잘리울것은 말할것도 없고 당분간은 만주땅을 먹어볼 생각을 단념할수밖에 없을것이였다.

물론 이다가끼나 이시하라는 나라를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것을 무사도의 본분으로 영예로 생각하는 그런 사나이들이였다. 그러나 몇대에 걸쳐 선배들의 꿈과 피가 스민 대륙을 그렇게 쉽사리 단념할수는 없었다.

마침 이러한 때 그들 두사람을 비밀료정 《기꾸후미》에 불러내여 병력은 내가 담당하겠다고 장담해나선것이 후꾸다였다. 그들 두사람도 명색은 총독부 파견원이랍시고 령사관언저리나 돌아가지만 실상 후꾸다가 조선문제 전문가들중에서도 가장 권위가 있을뿐아니라 중요하게는 총독 우가끼나 군사령관 하야시가 모두 그의 손탁에서 놀아난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후꾸다의 신념은 만주를 먹어치워야 조선을 완전히 삭여낼수 있다는것이였고 따라서 그 목적실현을 위해서라면 어떤 무모한 책동이라도 정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 모든것을 바칠 용의가 되여있었던것이다.

세사람은 앉은자리에서 배짱이 딱 들어맞았다. 그리하여 이다가끼는 봉천에서, 이시하라는 려순에서 9.18사변을 준비하였고 사건전날 후꾸다는 니시자와를 이다가끼에게 붙여놓고 자신은 조선으로 날아갔다. 파쑈광신자인 총독 우가끼를 설복하는것은 품이 들것이 없었다. 그달음으로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야시대장을 찾아간 그는 관동군이 장학량군대의 공격을 받아 당장 괴멸될것처럼 떠들어서 제20사단의 출동명령을 앉은자리에서 받아냈던것이다.

늙은 우가끼나 하야시는 만주에서 전쟁이 터졌다고 후꾸다가 다그쳐대니 당연한 일로서 산하군대를 압록강너머로 출동시켰을뿐 그것이 천황페하의 어명이 있어야만 야전군을 이동시키게끔 되여있는 통수권을 직접 침범하는 일로 된다는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사건이 터지자 정계와 군부의 론의는 만주사변자체보다도 하야시대장이 독단으로 조선주둔군을 국경밖으로 출동시켰다는 통수권침범에 관한 문제에 집중되였다.

이렇게 되기를 예견한것이 바로 후꾸다의 구상이였고 바로 그점때문에 이다가끼나 이시하라는 후꾸다의 깊은 통찰력과 실력을 값높이 샀던것이다. 그들의 타산대로 정부와 군부에서 왕청같은 헌법상 문제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관동군과 강을 건너온 조선주둔군의 부대들은 철도연선의 태반의 도시들을 점령해버렸고 어느덧 본국의 여론은 만주사변을 기정사실화하는데로 기울어졌다. 그러자 정객들과 군부 로장들의 눈은 관동군이 하루아침에 광활한 만주대륙을 삼켜버린 놀라운 공적앞에 새삼스럽게 휘딱 뒤짚혀졌다. 관동군을 누르려던 유약파의 목소리가 차츰 잦아들더니 지난 10월에는 그런 늙다리시라소니들을 몽땅 내쫓아야 한다는 쿠테타음모가 발생하였다. 이 음모는 사전에 발각이 되였지만 그네들을 처벌할 대신 오히려 그 뜻이 갸륵하다고 평가되여 그들이 목적하던 그러한 내각을 세워주기 위하여 지금 눈치빠른 정객들과 군부의 로장들이 분주히 돌아가고있다.

이런 연고로 하여 표면에 나서서 세상의 박수갈채를 받고있는 자기들과는 달리 언제나 사복을 입고 묵묵히 나라를 위하여 스산하고 궂은 일거리를 맡아안고돌아가는 후꾸다를 경의를 가지고 대하는 이다가끼와 이시하라였다.

《대체 무슨 일이요?

후꾸다는 중절모를 슬쩍 들어올리는 시늉을 해보이며 피곤이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우선 내방으로 좀 갑시다. 지금 2사단장이 우리 령감을 못살게 몰아대고있소.

이다가끼는 후꾸다의 어깨우에 한손을 올려놓고 친절하게 자기방으로 끌었다.

《다몬중장이? 그가 군사작전은 버려두고 왜 여기 와서 떠든단말이요?

후꾸다는 이다가끼에게 떠밀려가면서도 이상하다는듯이 이시하라쪽을 돌아보았다. 이시하라는 쓰거운 미소를 입가에 지을뿐 대답은 이다가끼에게 양보하고 묵묵히 두사람을 따라들어왔다.

《후꾸다상, 참 전쟁이 사람을 얼마나 총명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소. 다몬지로중장이 9.18사변이래 군대를 몇달간 끌고다니더니 대단한 정객이 돼버렸단말이요.

이다가끼는 자기 책상우에서 담배갑을 들고 접객탁자앞으로 나앉으며 개탄조로 말했으나 그의 얼굴에는 돼가는 일이 대단히 재미가 있다는듯한 야유적인 웃음이 비껴있었다.

《그건 무슨 말이요?

후꾸다는 천천히 외투를 벗으며 심드렁한 어조로 말했다. 이시하라가 그의 옷과 모자를 받아서 출입문가의 옷걸개에 걸면서 조용한 어조로 대답했다.

2사단장각하는 자기 점령지에서 후꾸다상의 요구를 실행하는것을 정면으로 거부했습니다.

《조선인정치범을 석방하지 못하겠단말이지? 리유는?

《리유는 단순한것이지요, 액면 그대로 조선인정치범인데 잡아들이지 못할망정 놓아준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것이지요. 군인으로서는 있을수 있는 주장이라고 보아집니다.

이시하라는 침착하고 아량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이 몇달동안 저항없는 적들을 물리치고 만주땅을 점령해나가면서 총명해졌다는게 고작 그게 다요?

후꾸다는 이다가끼가 내놓은 담배의 은지를 짜증스럽게 잡아헤치고 권연 한대를 붙여물면서 쓰겁게 입귀를 이즈러뜨렸다.

《뭐 그대로 말은 괜찮게 하오. 이제 가서 들어보시오. 참 치치하르에서 쫓겨간 마점산이 해륜일대에서 저항을 시도하고있다는 소식은 들었소?

《들었소. 다몬지로중장이 어째 마점산이는 요정내지 못한다오?

《치치하르에서 한바탕 붙어보니 이 혹한에 밀림속에서 군사작전을 벌린다는데 간단치 않다는것을 깨달은것 같소.

이다가끼는 저도 담배 한대를 뽑아서 접객탁자우에 천천히 그루를 박으며 담배갑을 이시하라에게 내밀었다.

이시하라는 상냥하게 담배갑을 받아서 제자리에 놓고 저쪽 창가에 가서 두팔을 깍지끼고 기대여섰다. 비록 만주사변과 같은 거대한 사변을 직접 구상하고 실천에 옮긴 귀재라고 할만한 인물이지만 명목상의 상관인 두사람앞에 경의를 표한다는 태도는 버리지 않았다. 그런 외적유연성과 그속에서 타번지는 정복욕, 세상을 뒤집어엎겠다는 야심이 하나의 인격이 되여 겉으로 겸손한척하면 할수록 압력이 더해지는지도 몰랐다. 지금 후꾸다를 상대로 하여 이야기를 하고있는 이다가끼도 말은 후꾸다에게 하고있지만 구절마다 이시하라의 눈치를 살피는것을 잊지 않았다.

《흥, 하기는 마점산이 <흑룡강성 림시주석 겸 변방군 부사령>이라는 기발을 들고 눈강철교를 폭파했다 어쨌다 할 때는 기세가 무섭더니 이제는 다몬지로중장의 된맛을 보고 기가 좀 꺾인 모양인가?

후꾸다는 담배연기를 피하는척하면서 이다가끼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슬쩍 곁눈질해보았다.

사실 후꾸다로서도 치치하르에서 2사단이 공격을 받아 해륜쪽으로 도망쳤다는 마점산의 일이 궁금하였다. 대체 그가 북만의 밀림을 의지하여 유격전에라도 넘어간다면 다몬지로의 저돌적인 용맹을 가지고 그것을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그래서 관동군에서 그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은근히 주목해오는 후꾸다였다.

어제 그의 끄나불이 보고한데 의하면 이다가끼가 주구단체인 흑룡강성치안유지회의 초대장을 가지고 장작림의 결의형제이며 마점산의 형벌인 장경혜를 다시 찾아갔다고 한다. 이다가끼는 벌써 그런 걸음을 몇차례 하였지만 장경혜도 일세에 이름을 날린 군벌두목이라 심양통천가의 자기 집에 들어박혀 바깥출입하기를 거절하고있었다. 그런데 이다가끼의 표정이 저처럼 자신만만할진대 어제밤의 교섭에서 성과가 있었던 모양같다.

《그래 장경혜의 태도는 어떻소?

이다가끼가 시물시물 웃자 후꾸다는 별로 비싸게 구는것이 같지 않게 생각되여 한마디 쿡 찔렀다.

그러자 이다가끼는 눈이 둥그래지고 이시하라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후꾸다상 모르게는 바늘 한개도 움직일수가 없군. 내 손 들었소.

하고 이다가끼는 나란히 앉은 후꾸다의 무릎을 치며 통쾌하게 웃었다. 이것이 이다가끼의 자기 힘에 대한 자신만만한 자각에서 온다는것을 후꾸다는 모르지 않았다. 당장 사람을 잡아먹을 음모를 꾸미다가도 일단 사실이 드러나면 한바탕 웃음으로 얼버무려 넘기는 무관다운 단순성과 솔직성 그리고 그 개방적인 성격은 다 그가 자기 손아귀에 든든히 틀어쥔 관동군자체의 위력이 뒤받침해주고있는것이였다.

《장경혜가 나하고 같이 할빈으로 가기로 했소. 어떻거나 마점산을 불러내여 설복하는데 동의했단말이요.

이다가끼는 웃음을 그치더니 후꾸다의 귀전에 대고 수군수군 속삭였다.

《당신이 마점산문제를 해결하는데 장경혜를 주목한것은 역시 이만저만한 착안이 아니요. 나도 그점에 있어서는 이다가끼상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소.

후꾸다는 여기서 가볍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그것은 후꾸다의 진심이기도 하였다.

《허, 이러지 마오. 지략의 대본산은 역시 저 사람이요.

이다가끼는 한팔을 쳐들어 당치 않다는듯 흔들어보이며 이시하라를 손짓하였다.

《온 그게 무슨 지혜라 할만한것이 됩니까? 마점산이 흑룡강의 주석으로 자처하면서도 변방군의 부사령이라고 한것은 장경혜를 사령으로 추대한다는 의향을 표시한것인데 마점산이 일부러 광고를 내건것을 못본다면 그게 무슨 눈이겠습니까. 단지 그점을 리용하여 장경혜를 마점산 회유의 도구로 리용하자는 결심을 하고 그것을 실행할만한 힘과 담력을 누가 가졌는가 하는것이지요. 우선 장경혜를 움직인다는것이 쉽지 않고 그를 통해 마점산을 반역의 길로 끌어낸다는것은 더구나 보통일이 아니지요. 이다가끼상은 래일 장경혜를 데리고 할빈으로 가서 마점산을 직접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후꾸다는 조용히 자기 공적을 감추고 상관을 극구 찬양하는 이시하라의 진지한 얼굴을 지켜보았다. 참으로 대륙을 타고앉기까지 아직 다난한 곡절이 기다리는 제국에 희한한 인물이 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꾸다는 이런 자기 속심을 감추고 아직 절반도 타나마나한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말했다.

《이제는 당신들의 속심을 알만하오. 사령관이 어떻소, 다몬중장이 조선인정치범을 석방하라는 내 청을 거부했소. 하지만 그것은 당신들이 나를 불러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것 같구만. , 그럴만도 하지. 이제 북만에서 2사단의 진격앞에 약간의 장애나마 조성했던 마점산의 문제도 해결될 전망이 확고하니 나더러 물정 소연한 동만문제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 담보를 받아내자는것이지? 그러나 여보시오. 김일성은 그 누구의 회유에 넘어갈 위인은 아니요. 실속없는 기발을 들고 건멋이나 부릴 그런 풍운아류의 인물이 아니란말이요.

후꾸다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치며 일어나자 이시하라가 창턱에 기댔던 몸을 황황히 일으키며 다가왔다.

《그러기에 우리가 후꾸다상의 의견을 한번 듣는것도 이처럼 삼가는게 아니요? 그러나 최근 우리에게 약간의 정보가 들어온것도 있고 또 사령부내에서 견해의 통일을 기할 필요도 있고 해서…》

《당신네가 안도로 김일성을 찾아가는 조선혁명군의 주요간부를 장춘에서 체포했다는것말이요?

후꾸다는 사령관실로 들어갈 차비로 옷매무시를 바로잡다가 이시하라에게 반문하였다.

《허허허, 과연 후꾸다상앞에는 감출것이 없군. 리경락이를 체포한걸 어떻게 벌써 알았소?

이다가끼도 따라일어서며 되물었다.

《나로서는 리경락이네 일행을 체포하여 당신네에게 넘겨준것이 누구겠는가, 과연 오늘 김일성의 직접적인 영향하에 있는 조직이나 인물들이 아무런 준비없는 손에 붙잡히는따위 우연이 있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해보라고 권고할밖에 없군.

《과연 뜻이 깊은 말씀입니다.

하고 이시하라는 중대가리를 깊숙이 조아려보이고 이다가끼에게 넌지시 귀띔하였다.

《이처럼 후꾸다상께서 모든 사실을 다 알고계시는이상 여기서 공연한 시간을 끌것 없이 사령관실로 가보는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게, 허 참, 이런 사람을 제편으로 가지고있는것은 다행이지만 혹시 이런 무서운 인간을 적으로 삼았다면 어떻게 될번했나? 참으로 무서운 일이야.

이다가끼가 출입문으로 따라나오며 후꾸다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후꾸다는 그자리에 멈추어섰다.

《여보시오. 이다가끼상, 당신들에게 충심으로 충고하는데 아직 성공에 도취할 때가 아니요. 당신의 말이 한갖 나를 놀리는 말이라면 그만이지만 실지로 나같은 한개 특무장교를 적으로 삼는것이 무섭다면 당신들이 장차 김일성과의 대결을 어떻게 해나가겠소. 과장없이 말해서 그는 보통인물이 아니요.

이다가끼는 잠시 면구해서 서있더니 어색한 웃음을 입가에 짓고 턱을 끄떡거리며 알만하니 어서 걸으라는 손짓을 하였다.

사령관대기실에 들어가니 인형같이 정장을 한 새파란 대위가 부관실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중간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서 2사단장 다몬지로의 쉰 목소리가 무슨 씨비리에서 동기작전에 대한것을 떠들어대고있었다.

아직 해가 남아있었지만 드넓은 사령관실에서는 묵직하게 드리운 2개의 무리등이 화려한 주단과 초록색 라사를 씌운 길다란 회의용 앞상과 흑갈색의 묵중한 걸상, 책상들을 비치고있었다. 사령관 혼죠대장은 차잔을 들고 검은 가죽을 해씌운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있고 참모장 미야께중장은 역시 차잔을 들고 앞상에 앉아 방안을 오락가락하며 만주대륙평정후의 군사작전에 대해 웨쳐대는 2사단장 다몬중장의 격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광막한 씨비리땅을 일장기를 날리며 무른 메주 밟듯 짓쳐나가는 다몬지로의 거창한 구상은 너무나 환상적이여서 성격이 온후한 두 령감은 술에 취한 소년들처럼 얼굴이 발개서 눈귀를 조프리고있었다.

부관의 안내를 받아 세사람이 들어서니 다몬지로는 방금 순진한 령감들을 상대로 웨친 자기의 고담준론이 쑥스러운듯 낯색이 벌개져서 인사를 받았고 혼죠대장은 차잔을 놓고 일어서서 반색을 하며 후꾸다를 자기옆자리에 앉혔다.

《그래 요사이 일이 어떻게 돼가나? 자네 일이야 틀림없겠지만 내가 궁금해서 자네를 불렀네. 량해를 하게.

《제가 진작 찾아뵈웠어야 하는걸 외지에 나가 돌아가다나니 몸을 뺄수가 없었습니다. 제일은 별것이 없고 오늘 듣자니 도꾜에서도 일이 제대로 돼가는듯합니다.

《호, 그 반가운 소식이군. 그래 어떻게 될 모양인가?

혼죠는 궁금증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후꾸다쪽으로 기울였다. 다몬지로도 슬그머니 앞상앞에 놓인 걸상 하나를 잡아당겨 소리없이 앉았다.

이다가끼와 이시하라는 저쪽 창밑에 나란히 놓인 걸상에 가앉고 참모장 미야께는 앉은자리에서 후꾸다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들이 일제히 후꾸다의 말에 주의를 집중한것은 지금 도꾜에서 한창 꿍꿍이가 진행중인 후계내각의 진용, 특히 군직들을 누가 차지하는가 하는것이였다. 군부중앙이나 정계에는 관동군에 대해 무조건 호의적으로 대하는 우익계층도 있지만 반대파도 없지 않은것이다. 그런데 지난 10월 정계쇄신을 목적으로 일어난 우익군사쿠테타가 사전에 발각되고 그 여파로 내각이 뒤집힌 지금 어떤 인물이 군부를 차지하는가 하는것은 곧 제국 일본이 장차 무엇을 지향하여 어디로 나가겠는가 하는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실물광고와 같은것으로 될것이였다.

거기에 관동군의 운명도 크게 달려있는것이다. 혼죠사령관이 후꾸다를 만나자고 한것도 실은 그것을 내탐하자는데 있었다.

후꾸다는 이미 도꾜에 있는 군사과장 나가다 뎃산, 편제과장 도죠 히데끼 등을 통해 조각발표가 23일내에 있을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령감에게 호의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여러 장성들의 눈길이 자기 입에 집중된것을 의식하며 부관이 따라주는 차잔을 천천히 입가에 갖다대고 좌우로 김을 날리였다. 안타깝도록 시간을 끌며 몇모금 입술을 추긴 다음에야 후꾸다는 천천히 말을 떼였다.

《후임 이누가이내각의 륙군상은 아라끼로, 해군상은 오수미로 락착된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확실한 소식인가?

혼죠대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그쳐 물었다.

《허, 아라끼라니… <10월사건>의 주동인물을 처벌할 대신 바로 륙군상자리에 앉혀? 허허허…》

다몬지로중장도 안도의 숨과 함께 은근히 바라기는 하면서도 정계와 군부의 너무나 속들여다뵈는 움직임에 어처구니없다는듯 속궁근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 만주사변의 성과를 한쪼박이라도 나누어먹겠다는 심뽀들이지. 헌데 후꾸다군, 자네들의 소식이야 틀림이 없겠지?

미야께참모장 역시 너무나 좋은 소식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는듯이 사령관의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아마 틀림이 없겠지요. 조각에 직접 참가한 사람들에게서 나온 소식이니까요.

후꾸다가 짤막하게 대답하니 다몬중장이 그를 마주보며 싱글싱글 웃었다.

《내 우리 장교들이 쉬쉬 말을 돌리면서 후꾸다기관, 후꾸다기관 하길래 무슨 소린가 했더니 후꾸다기관이 과연 대단하. 세상에 당신네 모르게 진행되는 일도 있는가?

그것은 다몬지로가 후꾸다에게 보인 호의였다. 그러나 후꾸다는 이자가 여러모로 버릇없이 군다는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잘라서 말했다.

《있지요. 실례로 우리는 제국의 장래를 생각하여 김일성을 제압할 중요한 방책의 하나로서 조선인정치범을 석방할데 대한 요구를 제기했는데 그것을 정면으로 거부한 중장각하의 저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리해할수 없습니다.

《뭐? 허-》

다몬지로는 불의에 정수리를 정면으로 얻어맞고 눈을 끄먹끄먹 하였다. 너무 기가 막혀 바라보니 후꾸다의 송곳같은 눈이 정면으로 쏘아보고있었다. 활기에 넘치던 드넓은 사령관실이 삽시에 랭각되였다. 다몬지로는 평소에 늘 사복을 입고 다니는 후꾸다가 중장인 자기앞에 응당한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는것을 음으로 양으로 느끼고있었기때문에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한번 된욕을 퍼부어주리라고 생각하고 그런 말을 입밖에 내비치기도 했었다. 그런 기회로 말하면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이 순간에 다몬지로는 자기를 쏘아보는 그 눈이 일본전국에 몇명 안되는 헌병대좌의 눈이라는것을 느끼였다. 그리고 그가 일본륙군의 로장 우가끼 가즈시게대장과 벌써부터 륙군대신이 된다, 총리대신이 된다는 소문이 떠도는 하야시 센쥬로대장을 주물러서 하루아침에 천황의 통수권까지도 짓밟고 조선주둔군을 만주에 끌어낸 음모가라는것을 상기하였다.

다몬지로중장은 수치감을 걸죽한 가래와 함께 꿀꺽 삼키며 석쉼한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여보 후꾸다군, 당신하고는 롱담도 못하겠구만. 내가 몇마디 한것은 그 일이 너무나 중대한 문제이기때문에 직접 당신한테서 좀 설명을 들어봐야 하겠다고 한것뿐인데 뭘 그걸 가지고 정색해서 그러는가?

후꾸다는 한참이나 허둥거리는 다몬지로의 눈길을 놓지 않고 맞바로 쏘아보다가 상대가 충분히 길이 들었다는것을 느끼자 별안간 어조를 눙쳤다.

《중장각하, 우리 사업의 내막은 규률상 오직 제국의 리익에 복종할뿐 대신앞에서도 공개하지 못합니다.

《그야 그럴테지, 뭐 내가 그런 내막까지 알자는것은 아니고…》

다몬지로는 후꾸다가 인차 기분을 돌려준것이 여러 사람앞에서 수습하기 어렵게 된 자기 립장을 구원해준것처럼 생각되여 황망히 말했다.

얼어붙었던 방안공기는 풀렸다. 숨을 죽이고있던 사령관과 참모장도 안도의 숨을 내쉬고 별안간 활기를 띠며 부관을 불러 차를 따르게 했다.

후꾸다는 차잔을 매만지며 따뜻한 온기를 즐기듯 눈을 가느스름히 감고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 사령관각하께서도 참모장각하께서도 계시고 또 이다가끼, 이시하라 량군도 한자리에 있으니 내가 굳이 사업상의 규률을 가지고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들 필요도 없겠지요. 또 목하 만주대륙을 칼도마에 올려놓고 본격적인 군사작전을 벌리고있는 오늘에 와서 보면 김일성의 문제는 이미 어떤 특수기관의 사업에 국한시킬수 없게 된것도 사실이지요. 우리가 전대륙에 전선을 펼친 그만큼 그도 우리와 대치해서 크게 전선을 벌리고있으니 이 문제를 보다 광범하게 다루어야 할 때가 되였다고봅니다.

《아니 그건 어떻게 하는 말인가?

혼죠대장이 놀라서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러자 이다가끼도 이시하라도 앞상에 나앉고 다몬지로는 정색해서 후꾸다를 바라보았다.

후꾸다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기 사령관각하께서는 부임한지 얼마 안되니 직접적인 체험은 없겠지만 몇해전인 소화3(1928)에 전만주를 진감시킨 길회선반대투쟁이라는것이 길림을 중심으로 벌어졌댔습니다.

《그야 나도 알지. 그 다나까대장께서 만몽문제해결책의 하나로서 직접 페하께 상주하여 조선과 만주중심을 관통하는 철길을 놓으려다가 랑패를 본 그 사건 아닌가. 내가 그때는 본국에 있었지만 일본정계를 들었다놓은 그 대사건을 모를리 있나.

《그때 김일성이 불과 16세소년으로서 그 사건을 조직하고 지도했습니다.

《흠-》

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이 되여 입을 다물었다.

《오늘 그는 제국의 만주에 대한 정책을 예기하고 벌써 몇해째 광활한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우리와 싸울 준비를 해오다가 지난봄에는 벌써 명월구에서 회의를 열고 9.18과 같은 사건이 박두했다는 확정적인 전제하에서 무장투쟁을 준비해왔습니다.

《그건 어디서 기밀이 새여나갔나?

미야께참모장이 긴장해서 물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계획은 저 이시하라군과 이다가끼군 사이에 연구된 여러가지 안 가운데 하나의 안이였고 그것을 짐작이나 하는것은 나 한사람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우리도 아직 확정하지 못한 그 계획을 그는 벌써 그 독특한 분석력으로써 예견하고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사를 하자마자 그는 대뜸 10만이나 되는 간도농민들을 불러일으켜 추수폭동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직 10만의 군대를 대륙에 들이밀자면 동서남북으로 적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있고 그럴만한 힘도 없습니다. 지금은 이다가끼, 이시하라 량군의 신묘한 지략과 사단장각하의 용맹에 의하여 불과 몇달사이에 대륙의 광범한 땅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김일성이 하루아침에 10여만의 농민들을 동원한 그 조직력으로 그들의 손에다 무기까지 쥐여놓는다면 사태가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 간도는 사실상 명치 42(1909)의 일청협정이래 제국의 조차지나 다름없이 된 땅인데 정작 우리의 군사작전이 시작되자 제일 걷잡기 어려운곳으로 됐다는 점도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실례입니다만 중장각하의 군세를 다 간도땅에 들이밀어도 간도를 평정하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음- 그런즉 이 일을 어떻게 조처하면 좋단말인가?

혼죠대장은 신음소리를 내였다.

다몬지로는 주먹을 부르쥐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그 눈에는 사실상 아무런 사색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무관이 어려운 적수를 대할 때 그러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습관에서 지은 공허한 표정에 지나지 않았다.

후꾸다는 일순 구슬픈 생각이 들어 한숨을 내쉬다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령관각하, 과장없이 지금 이 방에 모인 여러분들의 어깨우에 제국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내가 여태 말한것은 제국의 미래앞에 닥친 난관의 일단을 말했을뿐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느끼고 몇해째 우리의 특무들을 간도 각지와 김일성이 출몰하는 곳곳에 박아넣고 그들이 제일 아파하는 일련의 사건도 만들어보았습니다. 몇달전에 있은 <만보산사건>도 그러한 시도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의 앞에서는 그 모든 시도들이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왜 그런가? 우리는 여느 경우라면 지나칠만큼 면밀히 타산했는데 왜 그처럼 빗나가는가? 그것은 그가 여태 우리가 대상해본 인물, 구체적으로는 공산주의지도자라고 하는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류형의 지도자라는것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그의 특성을 한마디말로 다 규명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당면한 사업과 관련해서 반드시 류의해야 할 점을 지적한다면 그것은 그가 민중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흔히 쓰는 수법을 가지고는 그를 만나볼수조차 없습니다. 그는 아무 농촌에나 있고 아무 거리에나 있습니다. 그곳 일반주민들속에서 그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차림으로 똑같이 생활하고있으며 혼연일체가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민중들은 그의 말 한마디면 맨주먹으로 총부리를 향해서도 진군해옵니다.

방안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후꾸다는 무슨 반응을 기다리지 않는듯 잠시 숨을 톺았다가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것은 가장 범박한 서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이상 조금도 론리를 전개할수 없습니다. 나는 제국의 운명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 암초를 직시하며 요로의 인사들이 깊이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면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있는 자료에 기초해서 하나의 교육계를 써보자는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조선인정치범석방문제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김일성을 직접 추격했고 그와 밀접한 중요인물들 몇사람을 체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한 제국의 운명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로 볼만한 안목이 없는데로부터 내가 그처럼 신중히 다룰것을 요청했으나 결국 두사람이나 아까운 연줄을 죽여버렸습니다. 이제 장춘에서 또 한사람의 연줄을 얻었으니 그것은 다행입니다만 그자에게서도 당장 그 무슨 신통한 수가 나지려니 기대할 필요가 없고 혹 그가 김일성의 행처를 대준다 해도 그것은 이미 행차후의 나발일것입니다. 김일성은 주민이 있는곳 도처에 있습니다. 그런것만큼 장춘에서 체포한 리경락이도 무조건 신중히 다루어 후날에 대비하는 동시에 당면해서는 만주에 있는 조선인정치범을 다 석방해야겠다는것입니다. 김일성이 작년여름 카륜에서 무장투쟁로선을 내놓을 때도 그랬고 금년봄 명월구에서 진행한 회의에서도 그랬지만 그가 중요하게 타산하는것이 중국사람들과의 반일전선형성문제입니다. 우리는 과거 중국군벌정권이 체포했던 조선인정치범을 석방함으로써 일본이 조선인의 보호자이며 조선사람은 중국사람과 친한것이 아니라 일본사람과 친하다는 인상을 조성시켜야 합니다.

《음- 만보산사건과 같은 구상이군.

미야께참모장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러자 혼죠사령관도 덩달아 고개를 끄떡거렸다. 다몬지로는 자기가 후꾸다의 청을 못들어주겠다고 떠들어댄것이 좀 쑥스러웠던지 창가로 외면하였다. 이시하라는 신중히 후꾸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뜻있는 미소를 짓고 이다가끼를 돌아보았다. 이다가끼는 그럴듯하다는듯이 턱을 매만지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타산의 다른 하나는…》

하고 후꾸다는 여전히 조용한 어조로 계속하였다.

《석방된자들중 이미 변절타락한자들은 자연 별문제 없을것이고 그중 아직 제국에 악감을 품고있는자들은 틀림없이 김일성을 찾아가리라는것입니다. 우리는 그런자들을 중국옷을 입은 우리 사람들이 하나하나 따라가서 없애치우면서 결국은 그들의 구심점, 김일성이 있는데까지 따라가자는것입니다. 내 의도가 잘 리해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 비수같이 날카롭게 시작된 후꾸다의 변론은 같은 사람의 말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결말이 부드럽게 끝났다.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그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물론 우리는 이 한가지 방책에 제국의 운명을 걸어놓고 수수방관하고있을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방면에서도 그야말로 백방으로 김일성을 추적할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한것은 2사단장각하를 비롯해서 여기 계시는분들의 협력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입니다.

다몬지로는 거북한듯이 주먹을 입앞에 갖다대고 기침을 깇다가 소매끝에 전에 볼수 없던 실밥같은것이 붙어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열심히 그것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이다가끼가 우선우선하며 후꾸다와 혼죠사령관사이에 나섰다.

《뭐 우리가 협조고 말고 할게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같은 군사가들이야 후꾸다상같은분들의 지남이 없다면 그 어떤 용맹한 군사작전도 소경막대질하는 격이 되고말겠는데요.

이다가끼의 말에 혼죠는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야 더 말할게 있나. 한데 후꾸다군, 이따금 나를 찾아와주게. 자네 말을 듣고보니 페하앞에 다진 내 충성이 빈말같은 생각이 드는군. 김일성이라- 그런즉 그가 지금쯤 20세의 청년이겠다? 무서운 일이군.

혼죠의 개탄소리에 승승장구하는 관동군의 사령부가 졸지에 어두운 함정속에 빠져드는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후꾸다는 일어서서 잠시 서성거리다가 인차 제자리로 돌아와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피차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똑바로 가지는것은 앞으로 제국이 만주대륙에서 세우고저하는 새로운 국가의 륭성번영을 위해서 대단히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그럼 나도 왔던김에 지금 사령부에서 구상하고있는 동북행정위원회구성에 대해 기탄없는 설명을 들었으면 하는데요.

《참, 그게 필요하겠지. 여보게 이다가끼대좌, 자네가 좀 이야기를 하게나.

이다가끼는 늙은 사령관을 제 손바닥우에 올려놓고 제마음대로 주물러대는 후꾸다를 넌지시 건너다보며 중얼거렸다.

《후꾸다군이 꼭 내 설명을 들어야 내막을 알겠습니까만 형식상 필요하다면 이야기해야지요.

이다가끼는 무게있는 어조로 허두를 떼더니 박두한 동북행정위원회를 내올 구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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