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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편소설
석윤기 (제1회) 제 1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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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먼지도 훅훅 열기를 풍기였다. 희뜩희뜩 날리는 싸락눈은 미처 땅우에 내려앉기도전에 무섭게 타래쳐오르는 그 황토먼지에 휘말리여 하늘로 되올라가다가 제풀에 녹아버린다. 흥안령을 넘어온 눈바람조차 간도땅에 이르러서는 폭동의 불길에 그슬려 열풍으로 변해버리는듯하다. 폭동군중의 함성은 9.18사변이래 공포에 얼고 총소리에 짓눌렸던 대지가 한꺼번에 항거의 불덩어리를 토해놓는것 같이 위혁적으로 울리였다. 눈발날리는 음산한 하늘도 곡식대가 엉성하게 설렁거리는 수수밭과 강낭밭도 길가에 간간이 눌어붙은 쭈그렁박같은 오막살이도 파먹다 내던진 금전판도 모두 황토먼지로 매닥질을 해버렸다. 오직 폭동대렬속에 총대처럼 솟아오른 프랑카드며 삽날, 곡괭이, 도끼같은 농쟁기들만이 둔한 빛을 뿌리며 짓조길 대상을 찾고있는것 같다. 추수투쟁대렬의 선두가 성시를 10여리 앞둔 벌판에서 부랴부랴 달려온 기마경찰대와 마주섰을 때 폭동군중의 함성은 실로 천둥같은 메아리를 일으켰다. 모자의 턱걸이를 내리우고 총을 뽑아든 경찰은 투쟁대렬의 선두와 부딪치자 마구 공포를 쏘아대며 당장 해산하라고 악을 썼다. 공청원과 소년선봉대원들로 이루어진 규찰대가 겹겹이 진을 치고 앞에 나섰다. 대렬의 좌우에도 규찰대가 군중을 막아섰다. 경찰과 규찰대가 서로 엇갈리였다. 총소리가 연방 울렸으나 군중의 함성이 그것을 삼켜버렸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반동경찰은 물러가라!》 한동안 밀치고닥치며 란투가 벌어졌으나 대세는 이미 결정되나 다름없었다. 기마경찰대는 마치 송충이가 불개미떼속에 기여든듯 갈팡질팡하며 공포를 쏘아대다가 뒤걸음질쳤다. 이때 그놈들의 말 한필이 무슨 변이 났는지 별안간 코를 무섭게 내불며 길길이 뛰여오르더니 정신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이기나 한듯 다른놈들도 일제히 말고삐를 잡아채며 성시쪽으로 꽁무니를 빼고말았다. 폭동대렬은 기세도 드높이 그놈들을 추격이나 하듯 시내로 덮쳐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선참 뛰기 시작한 말이 발광을 하다 못해 어느새 길을 버리고 번번한 초원을 꿰질러 마침내는 이삭만 잘라낸 수수밭을 짓뭉개며 달아나는것이였다. 수수밭을 꿰고 나왔을 때 말잔등에는 이미 경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엇때문엔가 미쳐버린 말이 수수밭속에 주인을 뿌려던진것이 분명하였으나 폭동군중속에는 그런것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적의 아성이 눈앞에 있고 제일 큰 지주의 집도 바로 그속에 있다. 규찰대는 고동구호를 높이 부르며 대오를 신칙하였다. 《소작료를 2.8제 혹은 3.7∼4.6제로 하라!》 《반동지주를 타도하자!》 천둥같은 함성을 지르며 짓쳐나가는 대렬속에서 규찰대원 한사람이 빠져나와 바로 미친 말이 달려간 수수밭고랑을 헤치고 갔다. 잠시후 또 한사람이 대렬이 피워올리는 황토먼지속에서 빠져나왔다. 이윽고 먼지는 서서히 가라앉고 함성도 멀어져갔다. 무수한 짚신과 고무신, 로동화가 짓이겨놓은 황토길에는 마치 채로 쳐놓은듯한 먼지가 소복이 가라앉았다. 그 먼지를 다시 푹푹 밟아헤치며 10여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야 참, 벌써 떠나신단말입니까. 며칠만 더 계시면 좋겠는데.…》 투쟁위원회책임자인 김용덕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눈바람에 춘추외투의 자락을 날리시며 활달하게 걸어가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좋지.》 그이께서 서글서글하게 수긍하시자 김용덕은 뜻밖인듯 그이의 옆모습을 돌아보다가 한걸음 앞서 걸어나와 흥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면 이번 투쟁의 결과도 다 보실수 있고 다음단계 투쟁을 어떻게 벌려나갈것인가 하는것도 직접 말씀해주실수 있고…》 《투쟁의 결과는 이미 명백한거요. 이겼소, 이겨도 크게 이겼소.》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아직도 걸음을 멈추고 마주보는 김용덕의 쇠몽치같은 어깨를 툭 치시고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앞으로 투쟁방향이라는것도 명백하고… 그것보다 내 구미에 더 당기는것은 여기 광산의 로동자들과 더 깊이 사귀고싶은거요. 화약내 풍기는 굴속에 들어앉아 듬직한 로동계급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으면 신심이 생기거던. 그런데 정세가 내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구만. 우리는 이 투쟁기세를 광범히 조직화해야겠으니 이 골안에만 앉아있을수 없지 않소. 내 이제 명월구에 나가 회의준비가 성숙되면 동무들을 부르겠으니 그때 다시 만납시다.》 《회의준비야 차광수동무랑 다 있지 않습니까?》 옆에서 따라가던 허재률이가 바람에 날려가려는 밀짚모자의 구겨진 전을 붙잡고 훈수를 들었다. 《허허허, 허재률동무도 연길패라고 역성을 드는구만. 그러지 않아도 허재률동무는 연길에 떨어져서 로두구, 의란구, 룡정 일대를 한바퀴 돌고 왕청으로 넘어가서 거기 사람들을 불러와야겠소. 이번 추수투쟁을 해보니 시기는 성숙했소. 인민들은 투쟁구호만 기다리고있소. 빨리 회의를 해야겠단말이요.》 김일성동지의 묵중한 말씀에 일동의 얼굴에는 긴장이 어리였다. 찬바람속에 훅훅 단 볼을 식히며 저마다 주먹을 지그시 틀어쥐였다. 이때 괴괴하던 길우에 사람그림자가 나타났다. 누렇게 황이 든 수수대가 와실렁거리는 밭머리에 두사람이 무엇인가 시꺼먼 막대기같은것을 맞잡고 옥신각신하고있는것이였다. 《저게 뭐요?》 허재률이가 긴장해서 옆구리의 권총을 더듬어보며 한걸음 앞서 달려갔다. 나머지 일행은 김일성동지를 좌우로 옹위하고 걸음발을 늦추었다. 무의식중에 길가의 수수밭기슭을 의지삼아 긴장해서 달려가던 허재률은 옥신각신하는 두사람사이에 흔들흔들하는것이 총이라는것을 알아보고 더욱 긴장되였다. 그러나 그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모습까지 가려보게 되자 《넨장》 하고 맥이 빠져 중얼거렸다. 《아버지, 이거 꽝하면 어쩌자고 그래요? 어서 놓아요.》 《꽝하긴, 내가 이래뵈두 봉오골싸움때 철알을 한삼태기는 쏘아봤다. 어서 네가 놓아라. 내가 직접 투쟁위원회 간부들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벌이 크게… 이게 부지깽인줄 아느냐, 총이야 총!》 토목수건으로 머리를 질끈 동인 장년이 더부룩한 구레나룻에 침방울을 튕기며 아들의 쨍쨍한 목소리를 덮쳐누르듯 흥분해서 소리쳤다. 조양하기슭에서 농막살이를 하는 김상갑이네 부자간인데 아들 광남이는 금광에 일공일을 하러 다닌다. 나이는 어리지만 눈썰미가 있어서 굴일도 빨리 배웠고 소년선봉대생활에서는 언제나 어렵고 힘든 모퉁이를 막았다. 그래서 이번 추수투쟁에서도 규찰대에 뽑혀 련락이요 적정감시요 하고 바람개비처럼 뱅글뱅글 돌아간다. 오늘아침 광산골안에 폭동군중이 모여들었을 때도 그의 손에는 여느 소년선봉대원들이 들고다니는것과 같은 곤봉이 쥐여져있었는데 총이 어디서 나서 저렇게 승강이질을 하는지 짐작이 안갔다. 어쨌거나 시절도 시절이요 분위기도 분위기인것만큼 허재률이도 총을 보고 심상히 생각할수 없었다. 《아바이, 이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허재률이가 두사람사이를 가르고 들어가 총대를 움켜쥐자 《마침 잘 왔구만, 임자가 바로 명월구에서 왔다는 공작원이겠다?》하고 김상갑이가 먼저 손을 털고 물러나더니 이마에 질끈 동인 수건을 풀어헤쳐 바지가랭이의 먼지를 탁탁 털며 송사질을 할 잡도리를 하였다. 아들 광남이는 그래도 자기가 조직의 간부들과는 한걸음 사이가 밭다고 해선지 바싹 허재률의 소매를 잡으며 다가들었다. 《공작원동지, 아까 기마경찰대놈들이 접어들었을 때 우리가 와-하고 내미니까 그중에 미친 말 한놈이 너무 급해맞아서 저 수수밭속으로 마구 뛰여들어서 주인을 팽개쳐버리지 않았겠나요. 그놈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길래 총이 아까와서 벗겨온건데 아버지는 괜히 말썽이 난다고 부들부들 떨면서 저러지 않나요.》 《뭐 내가 부들부들 떨어? 이놈, 딴사람앞에서 저 애비를 깎아내려? 괘씸한놈! 공작원동무, 이녀석 말을 믿지 마시오. 내 그러지 않아 투쟁위원회 간부들한테 의견이 좀 있수다. 저런 애숭이가 뭘 안다고 규찰대를 시키다니… 내 오늘도 녀석이 집을 나설 때 김장고추가루를 한주머니씩이나 넣고 나서길래 아무래도 미타해서 뒤를 밟아다니며 지켜보지 않았겠소. 그랬더니 저녀석이 글쎄 란장판이 터지자 그놈의 미친 말 코구멍과 눈에 고추가루를 뿌렸수다. 그래놓고는 경찰이 밭고랑에 쓰러져있는걸 쫓아가서 총을 억지로 벗겨내지를 않겠소. 그 경찰이라는것도 한심하지. 사람들이 휩쓸어가니까 혼자 남아서 짓밟혀죽을가봐 겁이 났던지 총을 벗기우고도 손만 허우적거리며 달아나버렸소. 세상은 무법천지가 다 됐지요. 헌데 내가 농민협회에서 듣기로는 우리가 이번 투쟁을 합법적으로 한다는데 이렇게 철없는것들이 날뛰면서 공연히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뽑아놓듯하면 그 후환이 어떻겠소?》 김상갑이의 말도 과장이 심한듯 잘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경위를 거쳤든간에 총은 현실적으로 눈앞에 있지 않는가. 그런데 김상갑이의 걱정은 단순한 아버지로서의 로파심만도 아니였다. 지금 동만 각지에 일제히 불이 달린 추수투쟁이 3.7제를 승인한 국민당 성지부의 포고를 내대고 합법적으로 시작되였으나 반동지주들과 연변진수사 희흡은 무장경찰을 내몰아 야수적인 탄압을 들이댔다. 이런것을 예견한 투쟁위원회들은 김일성동지의 통일적인 지도밑에 일제히 소작료를 낮추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부당하게 바친 소작료를 되뺏어내기 위한 투쟁에로 넘어갔으며 점차 경제투쟁으로부터 정치투쟁으로 투쟁형태를 승화시켜나갔다. 그러는 과정에 폭동군중들의 투쟁기세는 더 높아지고 조직성은 더 째여들어갔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현소재지는 문제가 다르다. 바로 진수사 희흡이가 도사리고있고 왜놈의 령사관이 있으며 왜놈군대도 득실거린다. 거기서 달려온 경찰의 총을 순순히든 강제든 어쨌든 군중의 힘을 믿고 빼앗아냈으니 그놈들이 지금은 도망쳤지만 장차 폭동대렬이 시내에 들어설 때쯤해서는 왜놈군대까지 끌고 복수하러 나서지 않겠는가. 허재률이도 순간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질정하기 어려웠다. 그건 어쨌든 총이 탐이 났다. 총신이 짤막한 38식기병총인데 언제 한번 써본것 같지 않은 새 총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일행과 함께 다가오시자 허재률은 총을 그이께 내드리며 사연을 말씀드렸다. 《고추가루를 말코에 쓸어넣었단말이지. 그놈이 얼마나 급했으면 제 주인까지 메쳤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너무나 우스워 허리를 잡고 한참 웃으시였다. 김광남이는 긴장해서 서있다가 시무룩이 웃으며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의 표정은 무뚝뚝하였다. 《그래 아바이 생각에는 이 총을 그놈들에게 돌려주었으면 좋겠다는것입니까? 이렇게 좋은 총을…》 김일성동지께서는 여전히 웃음을 띠시고 해빛에 번쩍거리는 총을 이리저리 제껴보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이와 면식이 없는 김상갑은 떨떨해서 김용덕을 돌아보았다. 《이건 매우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우리 이 아바이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한 옳은 대답을 찾아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총을 다시한번 아래우로 살펴보신 다음 그것을 김용덕이와 다른 투쟁위원들에게 보라고 넘겨주시였다. 그리고는 누구에게라없이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우리가 왜 추수투쟁을 시작했는가? 선전문이나 격문같은데도 수많이 썼고 정치공작원들이 연설에서도 거듭 강조했지만 일제는 비렬한 방법으로 9.18사변을 조작하고 오래동안 준비해오던 만주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심양, 장춘을 비롯한 만주의 큰 도시들이 거의 다 점령당했고 왜놈의 군대는 전만주를 강점하기 위해 계속 들이밀리고있습니다. 그런데 수십만 동북군은 총한방 쏘아보지 못하고 붕괴되였고 통치기구도 물먹은 담장처럼 허물어지고말았습니다. 여기에 조직적으로 대항해나선것이 간도농민들의 추수투쟁입니다. 그럼 이 투쟁이 일제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줄수 있는가? 아바이,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항의시위를 하고 몇몇 반동지주들의 쌀창고나 친다고 해서 왜놈들이 물러가겠는가, 왜놈들이 물러가지 않는 조건에서 조선농민들의 생활문제가 완전한 해결을 볼수 있겠는가? 어떻습니까? 아바이 생각에는…》 《그야 글쎄 왜놈들이 우리가 소작료나 안문다고 해서 물러가지야 않겠지요. 그리고 우리도 한해 소작료나 덜 물었다고 해서 살길이 열릴것도 없고…》 김상갑은 어쩐지 문제가 자기같은 농민이 대답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하게 느껴졌지만 질문자체가 벌써 대답을 암시하고있는데다 김일성동지께서 서글서글 웃으시며 너무 실감있게 말씀하시는바람에 저도 모르게 끌려들어 선뜻 대답을 올렸다. 《글쎄 그렇단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대답이 너무나 반갑다는듯이 한손으로 무릎을 철썩 치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왜놈들에게 나가달라고 청원을 해봐야 나가주지 않을것은 뻔한 일이고 장개석이처럼 국제련맹에다 송사질을 해봐야 그것들이 바른말 한마디 안해줄것이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김일성동지께서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시며 둘러선 사람들을 돌아보시자 광남이가 제꺽 앞으로 나섰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것처럼 무장투쟁을 해서 왜놈들을 쳐야 합니다.》 《무장투쟁을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광남의 대답을 묵중하게 받아외우시더니 김상갑이를 돌아보시였다. 《아바이, 그래 아들의 대답이 어떻습니까?》 《그야 저녀석 대답이 아닙지요. 김일성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데 김일성동지야 우리 조선민족의 령도자가 아니신가요? 그이의 말씀이야 여부가 있겠소?》 《허허허, 김일성이 그렇게 말했다 해도 아바이 배짱에 맞지 않으면 그만이지요.》 김일성동지께서 웃음을 섞어 말씀하시자 김상갑의 질그릇같이 탄 얼굴에는 피빛이 벌겋게 번졌다. 《그 보아하니 상부에서 내려온 공작원동지같은데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야 안되지요. 어떻게 그분의 말씀이 우리 배짱과 맞지 않겠소. 듣자니 그분도 우리같은 농사군네 자손이랍디다. 이번 추수투쟁도 그분께서 지시하셨다니 나도 이렇게 발벗고나섰지 저 용덕이따위들이 아무리 소리쳐봐야 저렇게 수많은 농민이 목숨을 내대고 일어날것 같소?》 옆에서 허재률은 빙글빙글 웃고 용덕이를 비롯한 투쟁위원회성원들은 김상갑이 망발을 한다고 난처한 표정으로 서있다. 김용덕이가 참다못해 귀띔을 하려 하였으나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를 가볍게 제지하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야 김일성이 농민의 자식이니까 추수투쟁을 하자고 하는건 사실인데… 그런데말입니다. 우리가 추수투쟁을 하다가 무장한 적들과 마주쳐서 그놈들의 총을 빼앗아냈는데 이게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아바이는 그 총을 저놈들에게 돌려주면 좋겠다는건데 그렇게 되면 저놈들이 우리 요구를 잘 들어주고 궁극에 왜놈들이 물러나겠는가?》 《허, 그거 이상하게 말씀하시오.》 김상갑은 어처구니없다는듯이 사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무슨 결단이라도 내리듯이 그이를 마주 향해섰다. 《그 뉘신지 모르지만 내가 뭐 빼앗은 총을 돌려주자고 우기는건 아니우다. 내가 말하는건 총을 가진다 해도 이런 철없는것들이 총을 들고 다니게 해서는 안되겠다는것이고… 또 말하자면 고추가루같은것을 써서 총을 이렇게 마구 빼앗아도 일없겠는지, 그런걸 저 김일성동지께 문의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지요.》 《아바이, 그렇다면 됐습니다.》 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상갑의 투박한 손을 더듬어잡아 굳게 틀어쥐시였다. 《내 듣자니 김일성이 지난 10월에 송강에서 회의를 열고 말했는데 왜놈들을 물리치자면 무장투쟁을 해야 한다. 그럼 무장을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무장은 돈이 있으면 살수도 있고 만들수도 있겠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적의 무기를 빼앗는것이라고 말했답니다. 무장투쟁에 참가할 사람들이 각자 자기가 멜 무기를 자기가 해결하는데 지혜를 짜내고 장소를 골라 용기를 내서 적을 치면 능히 무기를 해결할수 있다는것이지요. 우리에게는 벌써 그렇게 해서 무기를 해결한 실례가 많습니다. 그렇게 놓고볼 때 저 광남동무는 무기해결에서 선진분자라고 볼수 있지요. 아바이, 그런데 추수투쟁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우리가 뭉쳐서 한덩어리가 되면 적과 싸워 이길것 같습니까?》 《그야 여부가 있나요. 방금도 잔뜩 총을 메고 말을 타고 달려온 경찰놈들을 쫓아보내지 않았나요. 게다가 저녀석은 총까지 빼앗아내고… 김일성동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야 틀림이 없겠지요. 우리가 맨손으로도 이만치 힘을 쓰는데 총만 둘러멘다면야 무엇이 무섭겠소.》 《옳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으기 흥분되시여 투쟁위원회 성원들을 돌아보시였다. 《우리가 이번 추수투쟁을 통하여 해결하자는것이 결국 그것입니다. 투쟁을 통해서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대중을 조직화하며 그속에서 무장투쟁의 지향을 키워내는것, 보시오. 여기 김광남동무와 같이 나어린 규찰대원들속에 벌써 무장투쟁의 지향이 뚜렷이 나타나있습니다. 추수투쟁은 농민들의 당면한 사활적인 경제적요구를 충족시켜줄뿐아니라 이처럼 무장성원과 무기를 우리에게 주고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손으로 수집은 얼굴로 서있는 김광남의 어깨를 짚고 다른 손으로 총을 높이 쳐드시였다. 엷은 초겨울해빛을 받아 총신은 검푸른 빛을 반사하였다. 그것은 뭔가 묵중한것, 쉽게 엉켜지지도 않고 여물지도 않는 대신 한번 굳어지기만 하면 다시는 허물어뜨릴수 없는 인간의 강렬한 지향을 암시하는듯했다. 일행은 웅성거리며 다시 길을 떠났다. 얼마 가지 않아서 조양하를 넘어 로두구철길방향으로 길이 갈라져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재률이와 함께 일행과 헤여져서 살얼음이 잡힌 조양하의 징검다리를 건너가시였다. 그이의 모습이 저만치 수수밭사이를 꿰고나간 길에서 사라지자 김상갑이 용덕의 팔소매를 툭툭 쳤다. 《명월구에서 내려왔나?》 《야, 참 아바이도 답답하오. 독립군에 그만큼 따라다녔다는 령감이 그렇게 눈치가 없단말이요?》 《아니 그건 무슨 소린가?》 《바로 저분이 김일성동지 그분이란말이요.》 《뭐, 뭐가 어째?》 김상갑은 펄쩍 뛰였다. 《그럼 왜 진작 인사를 시키지 못하나. 내가 사람값에 안가는것 같아서 그래?》 김상갑은 고동색얼굴에 다시 피빛을 피워올리며 당장 일을 낼것처럼 접어들었다. 《말도 마시오. 언제 말할 사이나 있소. 세상일은 혼자 다 아는것처럼 횡설수설하니…》 김용덕은 입맛이 쓰겁다는듯이 움켜잡힌 팔소매를 뿌리쳤다. 《아이쿠, 이런 랑패가 어디 있나, 내가 김일성동지를 몰라보다니… 그래 임자네들, 내가 무슨 큰 실수를 한건 없나? 대체 내가 무슨 소리를 했어?》 김상갑이 이번에는 불쌍한 소리를 내며 애원하듯 용덕의 소매를 다시 움켜잡는바람에 그도 어쩌는수없이 속을 눙치였다. 《뭐 아바이 말은 잘했수다. 김일성동지도 아주 만족해하셨소. 그러나 령도자도 몰라보고 횡설수설한 죄야 어디 가겠소. 그러니 아바이도 이 광남이 모범을 따라서 신식총을 한자루 빼앗아내우다. 그럼 내 제꺽 보고를 해서 아바이가 사과하는 뜻을 김일성동지께 알리지 않으리요.》 용덕이도 만만찮은 위인이라 어느새 상갑이의 마음을 격동시켜 놓는다. 《그러지, 암 그래야지. 나는 저 철없는것이 상부에서 큰 간부가 내려왔다고 하길래 그런줄로만 알았지. 역시 철부지는 철부지야. 아무렴 내가 마음먹고 총을 빼앗으면 저따위 막대기같은것이나 빼앗겠나, 대완구는 몰라도 속새포는 외수 없지. 넨장 두고 보게나.》 상갑이는 토목수건을 질끈 동이더니 아들의 손목을 움켜잡고 황토길을 내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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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두구에서부터 차조구까지 마을과 마을, 투쟁위원회와 투쟁위원회를 거치는사이 내내 추수투쟁의 거창한 멀기가 휩쓰는것을 커다란 흥분속에 돌아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제는 한시바삐 그 강한 인상을 종합하고 일반화해서 폭약처럼 다져진 인민들의 항거기세에 신관과 같은 혁명적구호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차조구에서 비로소 기차를 타고 명월구까지 한정거장사이를 오시면서 줄곧 생각하시였으나 어마어마하게 접어든 기마경찰의 총을 빼앗아든 나어린 규찰대원 김광남의 얼굴이 커다랗게 확대되여 떠오를뿐 당장 회의에서 내놓아야 할 보고의 줄거리는 덜컹거리는 차바퀴소리때문에 자꾸만 헛갈려들었다. 차안의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돈화쪽으로 증원돼가는듯한 왜놈군대들이 차판을 절반이상이나 징발해버린데다 려객들이 콩나물시루같이 빼곡이 들어찬 일반차칸에도 특무나 부랑배따위들이 태반이였다. 풍설이 사나울 때 먼길을 떠나지 말라는것은 조상전래의 당부이니 이런 소연한 시절에 없는 차비를 장만해가지고 무법천지에 나설 사람이 많지도 못할것이다. 그럭저럭 다리 한번 못펴보시고 명월구역에서 내리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정거장 바로 맞은편에 있는 도장방에 잠간 들리시였다. 간도지구의 초입을 지켜선 련락소였다. 다리를 저는 도장쟁이가 우산대로 만든 도장칼로 새끼손가락만한 고양목의 둘레를 따라 홈을 파내면서 고개도 들지 않고 중얼거렸다. 《저 우체통옆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다부산자가 룡정에서 온 외무성 형사올시다. 이쪽 짜장면집앞에 앉아있는 인력거군도 특무고… 지금 명월구에 특무가 어찌 쓸어드는지… 저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은것 같아요.》 《알겠소. 딴소식은 없소?》 김일성동지께서는 도장이나 맡기러 오신것처럼 칼자리가 어수선한 책상우에서 크고작은 도장재료가 수북이 담긴 한귀가 찌그러진 과자통을 집어드시며 흥분에 가볍게 떠는 도장쟁이의 팔목을 슬쩍 쓰다듬어주시였다. 도장쟁이는 기뻐서 한순간에 그렁한 눈길을 들었으나 인차 고양이처럼 등을 까부린 도장쟁이 특유의 자세로 돌아가 혼자말처럼 중얼중얼 속삭였다. 《차광수동지가 아침에도 다녀갔습니다. 오실 때가 됐다고 며칠째 다니는데… 혹시 자기 없을 때 오시면 마동무네 집에서 기다리시게 하라고 지시하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도장쟁이는 갑자기 퉁명스런 어조로 왕청같은 말을 하였다. 《땅을 사겠소? 인감도장을 찾게… 전자로 석자를 새기려면 각도장을 써야 하우다.》 퇴색한 중절모에 사각마스크를 입에 건 양복쟁이가 도장방에 들어섰다. 훌쭉하게 꺼져들어간 볼편이며 실밥이 나들나들한 허름한 양복주제로 봐서 어쩐지 안주머니에 리력서를 여러장 써가지고 다니는 실업인테리같았으나 김일성동지께서도 경각성높은 도장방주인의 말에 짝을 맞추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이런걸로 하나 새기자면 값이 꽤 비싸겠지요?》 김일성동지께서 수정각도장 한개와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진 벌써 모가 닳아진 골동품같은 뿔도장 한개를 골라내시자 도장쟁이는 가당치도 않다는듯이 그 도장들을 한꺼번에 가로채여 과자통속에 집어던지고 통을 자기곁으로 드르르 잡아당기며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그 도장을 새기겠으면 빨리 이름 석자 대고 저쪽으로 좀 물러서주시오. 그렇게 해빛을 가리우고 섰으면 손이 시려서 칼을 놀려내겠소? 손님은 어떻게 오셨소?》 새로 들어선 양복쟁이는 도장방주인의 푸접없는 태도에 기가 질렸는지 제풀에 쿨룩쿨룩 기침을 깇기 시작하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그럼 물러설것 없이 아예 가버리지요. 대서방에 가보고 꼭 인감이 있어야 한다면 다시 오구요.》 김일성동지께서는 날파람있게 도장방을 나서시여 기운차게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어쩐지 몸이 지긋지긋한 느낌이 드셨는데 건전하게 살아숨쉬는 조직을 느끼시니 새힘이 약동하는듯하시였다. 그리고 차광수가 벌써 돈화에서 와서 기다린다는것이 무엇보다도 기쁘시였다. 그이께서는 대서방옆집인 마동무의 집은 들리실 생각도 안하시고 곧 옹석라자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으시였다. 옹석라자는 철길을 따라 돈화방향으로 두어시간 착실히 걸어야 한다. 적들이 벌써부터 무슨 냄새를 맡고 명월구일대에 특무들을 집중하고있는 조건에서 가뜩이나 조심성많은 차광수가 마동무네 집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가자고 했다는것은 알만한 일이지만 김일성동지께서는 차라리 호젓한 산골길을 홀로 걸으시며 여태 종횡무진으로 내달리던 사색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고싶으시였다. (맑스는 대영도서관의 걸상자리가 움푹 패이도록 책을 붙잡고 연구에 몰두했다지. 그런 시간이 나한테도 차례질 때가 올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시여 빙그레 웃음지으시였다. 어디다 책을 펴놓고 들여다볼 장소도 없고 그럴 경황도 없다. 끝없이 뒤설레이는 파도와 같이 생활은 한시도 쉬지 않고 그이를 생활속으로, 투쟁의 실천속으로 불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지난봄 오가자에서 나오시는길로 한자리에 붙박여계실사이없이 돈화로, 명월구로, 안도로, 국내로 인민을 찾아 끝없이 걸어야 하셨고 가시는곳마다에서 조직을 뭇고 사람들을 깨우쳐야 하셨다. 9.18사변이라는 일제의 강도적음모는 세상식자들의 그 무수하던 시비와 론쟁을 하루아침에 얼어붙이고 동양3국을 전쟁상태에 휘몰아넣었다. 혁명은 이 사태를 직시하고 무시로 변하는 준엄한 정세속에서 정확한 진로를 밝힐것을 요구하고있다. 9.18사변이 전대미문의 추악한 력사의 기록인것은 사실이지만 일찌기 그 조작자들의 본성을 꿰뚫어보고 오늘의 이 현실을 예언한 공산주의자들의 과학적예견성과 그 주장의 정당성은 실증되였다. 지금 태반의 인민들은 불의에 거대한 력사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려들어 향방을 잃고 허우적이며 오직 공산주의자들만 쳐다보고있다. 천하의 리치를 자기만이 아노라고 자처하던 수많은 현자들도 모두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일제의 간교성과 포악성, 강도적론리에 아연해서 떨고있을뿐 말 한마디 못하는 형편이니 세상민심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쏠릴수밖에 없는것이다. 하기는 놀랄만도 하다. 제놈들이 로일전쟁때 강도적으로 빼앗아서 제것이라고 뽐내는 남만철도의 한귀퉁이를 제놈들의 군대를 시켜 폭파해놓고 그것을 중국군대가 한것이라고 생억지를 쓰면서 동북군의 본거지 북대영에 대포알을 퍼붓기 시작한것이다. 전쟁을 해도 천하 더럽게 해먹는 족속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제에게 상습화된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벌써 이태전에 오늘을 예견하고 무장투쟁을 준비해왔다. 핵심을 키웠고 대중적지반을 꾸렸으며 그럭저럭 무기도 적잖게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포악해질대로 포악해진 일제와 정면으로 맞서싸우자면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장차는 싸움속에서 대오가 장성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상비무력은 있어야 한다. 무력을 어떻게 꾸릴것인가, 사람… 무기… 산속으로 난 외통길을 걸으시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는 그이의 눈앞에는 또다시 추수투쟁의 거창한 물결이 휩쓸어간 간도땅의 화폭들이 떠올랐다. 폭동의 물결, 무장한 적들을 덮쳐누르던 함성, 적들의 번쩍거리는 총칼, 앙칼진 말울음소리, 그속에서 대오를 짜고 완강하게 싸움에로 부르던 참모부-투쟁위원회와 규찰대… 사람은 거기에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속에 총도 있지 않았던가. 문득 시꺼먼것이 절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주춤하고 걸음을 멈추시니 잎을 다 떨어버린 황철나무의 터슬터슬한 밑둥이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 사위를 둘러보시였다. 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고 락엽이 휘날리는 숲한가운데 홀로 서계시는것이였다. 《허허, 길을 잃었군. 이게 어디쯤인가?》 몇걸음 동서로 오르내리며 향방을 가늠해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도 모르는사이 혼자 뇌이시였다. 도대체 명월구에서 옹석라자로 가는 길목에 이런 숲이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거니와 자신께서도 여러번 다녀보셨지만 한번도 이런 숲을 보신적이 없었다. 그런즉 길을 헛들어도 이만저만 헛든것이 아니다. 향방을 찾기 위하여 동서로 오르내렸다지만 대체 동쪽이 어딘지 서쪽이 어딘지도 분간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지금 붕괴되여 사분오렬이 된 많은 동북군병사들이 이런 숲속에 들어 갈길을 못찾고있는격인데… 그렇지, 어느새 해마저 구름속에 숨어버려서 그야말로 동서남북을 가리지 못할 형편이겠다… 하기는 나무가지가 자란쪽을 잘 살펴보면 남북을 가려낼수 있겠지만 태반이 현대적교육을 받지 못한 동북군병사들이 그렇게 해서 바른길에 들어서기는 힘들것이고…) 김일성동지께서는 길을 찾으시다가 어느 바위턱에 한발을 올려놓으시고 또 딴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니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구동북군병사들 특히 민족의식이 강한 반일부대병사들과의 사업을 잘해야 한다는 또하나의 중대한 과업이 제기되는것이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우리 공산주의자들을 계속 적대시하는데는 문제가 아닌가. 가만 있자, 우선 내가 나갈 길부터 찾아야지.) 그러나 그이자신께서 나가실 길은 광범한 반일부대병사들이 나가야 할 길보다도 찾으시기가 더 조련치 않았다. 길을 더듬어나가시다가는 어느새 반일부대병사들 생각이 떠오르군하셨기때문이였다. 간신히 나무가지의 뻗침새며 바위밑에 시들어진 풀을 보고 가야할 북서방향이라고 짐작되는 방향을 한참 걸어가시다가 점점 숲이 우거지고 게다가 날까지 어슬어슬 저물어오자 그이께서는 비로소 랑패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가만있자, 팔도구와 로두구의 추수투쟁대렬이 경찰과 부딪치던 생각을 할 때 분명 산탁에서 인가를 보았는데 카륜회의 생각을 할 때는 내 손에 나무가지가 붙잡혔지… 그러니까 길을 헛들기 시작한것은 2시간나마 되는모양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이거 옹석라자쪽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도목구로 해서 안도쪽으로 방향을 잡은것 같구만. 김혁동무가 이 일을 알았으면 《볼쉐비크》에 내자고 할지도 몰라. 아니, 이거 차광수동무를 만나기전에 빨리 길을 찾아야지. 이러다가 소문놓겠는걸.) 그러나 정세의 요구는 참으로 집요한것이였다. 저물어가는 밀림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시는 그이의 옷자락을 잡고 그냥 무기는 어떻게 해결할것인가, 정작 무장투쟁을 한다면 거점은 어디다 정하며 형식은 어떻게 할것인가, 일정한 규모의 무장대오를 조직했다 하더라도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의 대부대와 처음부터 정면대결을 할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따위 복잡하고 절박한 문제들을 끝없이 제기하고 당장 대답을 내라고 검질기게 졸라대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마치 떼쓰는 아이의 어리광에 몸을 맡기시듯 흔연히 그 물음에 대답하고 대답을 찾기 위하여 사색에 골몰하시였다. 하늘이 내던진 거대한 그물코처럼 촘촘히 뒤얽히여 발목을 휘감고드는 성가신 밀림조차도 그이에게는 다른 사색을 불러일으켰다. (참, 대륙의 밀림이란… 10리만 들어가면 이런 밀림이 도처에 펼쳐져있으니… 우리는 이런 밀림을 의지해야 한다. 안도나 왕청오지의 험준한 지형을 리용해서 유격전을 전개한다면 제놈들의 대포나 기관총이 무슨 맥을 출것인가, 이런데로는 기마경찰도 못들어올것이고… 그런데 인민들은 아무데나 있다. 인민들이 없는데는 없다. 무인지경에는 우리가 들어가 살면 될것이고…) 마침내 숲속은 어둠에 묻혀버렸다. 생각하면 아무리 겨울해가 짧다 해도 벌써 이렇게 어두워질것 같지는 않은데 아마 날이 흐린데다 숲속이 되여 턱없이 일찍 저무는듯하였다. 그러나 그이의 사색은 역시 정확하였다. 인민들은 도처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바로 그때 저만치 앞쪽에서 빤한 불빛이 비쳐왔다. 그 불빛을 따라 한참 걸어가시니 두세두세하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심조심 다가가시였다. 포수막같은것이 불빛에 얼른거리는데 그앞에서 석자루나 되는 홰불이 타오르고 몇사람이 웅성거리고있었다. (여기서는 또 무슨 일이 났는가. 혹시 밤사냥이라도 떠나는 모양인가.) 김일성동지께서 이런 생각을 하시며 살펴보시는데 웬 늙은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치막골사람이 보았다면 혹시 옹석라자쪽으로 간게 아닐가요. 거기서 이쪽으로 갈라지는 길은 없는데요.》 《그러게 우리가 옹석라자쪽에서 온다지 않습니까. 그 치막골사람이 지나치면서 인사를 해도 안받더라는걸 봐서는 딴데 정신이 팔린게 분명한데… 혹 이쪽으로 해서 도목구로 나가는 길은 없습니까?》 목소리가 어딘가 귀에 익은것 같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허리를 일으키시고 빙그레 웃음지으시였다. 그이께서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시는데 바로 차광수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바로 이 너머가 도목구란말이요. 별수 없소. 정삼동무는 이길로 곧장 황구령을 넘어가서 대황구동무들에게 알리시오. 어차피 언젠가는 길우에 나서겠으니 누구 눈엔가 띄우겠지. 나는 리상진동무와 함께 이 괴물같은 숲을 더 좀 뒤져보고 옹석라자쪽으로 다시 나가봐야겠소.》 《숲을 더 뒤질게 없소. 숲속은 내가 다 뒤져봤는데 먹을만한것은 아무것도 없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춘추외투자락에 잔뜩 달라붙은 가막사리며 풀잎들을 툭툭 털며 홰불앞에 성큼 나서시였다. 차광수네 일행은 너무 어이가 없어 한동안 입을 쩍 벌리고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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