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7 회)
제 4 장
아침노을
6
부기사장이 림성하를 사방 찾아다녔다. 신의주에 나가있는 지배인 김윤걸이 기사장을 전화로 찾는다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성하는 자기의 머리를 쳤다. 아뿔싸!… 늘 생활에서 덜퉁한 그가 손전화기를 그만 방에 놓고 나왔던것이다.
그는 급히 청사의 2층계단을 뛰여올라갔다. 국경지역에 나가있는 지배인이 전화로 찾을 때엔 무슨 급한 사정이 생긴것이 분명했다.
새로 임명되여온 지배인 김윤걸, 이 공장 출신으로서 식료련합의 부기사장으로 간 사람, 쑤치오의 프로그람암호문제때에도 직접 나서서 도와주던 사람, 그는 뭇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내다운 사람》, 《멋쟁이》일군들중의 한사람이다. 그래서 전 지배인이였던 한경수도 이 곡산공장에는 김윤걸이처럼 최첨단기술을 알고 전개력이 있는 지배인이 와야 한다고 말했던것이다. 마치 그가 파견되여오리라는것을 내다보기라도 한것처럼.
림성하도 자신심에 넘쳐있는 그가 새 지배인으로 온것이 반가왔다. 더구나 새 지배인으로 임명되여온 김윤걸이 그에게 한 첫말도 림성하가 제일 바라던 효소문제였던것이다.
《효소는 우리의 생명이요. 그걸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게 없소.》
그것은 지배인의 부임인사말이자 일종의 도착성명과도 같은것이였다.
그러던 지배인이 찾는다니 좋은 일일가, 나쁜 일일가?… 림성하는 부기사장의 방문앞으로 숨차게 달려갔다.
많은 방들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새 곡산공장을 도우러 달려온 과학자, 기술자들이 2층청사를 통채로 차지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공장의 현대화를 위해 김책공업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들과 공장들에서 나온 과학자, 기술자들이였다. 그들은 벌써 곡산공장의 기술집단과 힘을 합쳐 3만여매나 되는 설계도면과 기술문건을 완성하여 여러 기계공장들에 넘겨주었다. 하여 공장기술력량은 그곳에서 차례로 제작완성하여 보내고있는 설비들을 자체로 조립하기 위한 전투를 시작하고있었다.
부기사장의 방에도 대여섯명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틀고앉아있었다. 무엇인가 열심히 토론하던 그들이 기사장을 띄여보자 저저마끔 그에게 매달렸다.
《아 기사장동무, 마침 잘 왔습니다. 이걸 좀 봐주십시오. 이 백합과자성형기의 구조와 기술적특성이 이게 옳습니까?》
《예, 옳습니다. 반죽물공급부분과 과자판성형부분 그리고 퇴출부분과 랭각기…》
림성하의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다른 연구사가 묻는다.
《용해가마의 증기압은 얼맙니까? 예열은요?》
《6기압입니다. 예열은 140도이고…》
누군가 또 묻는다.
《알사탕성형기의 형타개수와 회전수는요? 그리고 벨트너비와 경사각도는?…》
림성하는 거기에도 수자로 대답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침없이 대답하는 그를 놀란 눈길로 바라보았다.
수자는 곧 생산의 언어이다. 그리고 기사장의 사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자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수자로 통제하고 수자로 총화짓는다. 수자를 떠난 생산지휘란 있을수 없다.
이번에는 부지배인이 그를 찾았다.
《기사장동무, 빨리 전화를…》
림성하는 자기를 막아선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 미안합니다. 그건 우리 4. 15기술혁신돌격대와 마저 토론하십시오, 현장에서. 예, 난 먼저 급한 전화를 받구… 정말 미안합니다.》
림성하는 숨찬 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미안합니다, 지배인동지.》
《기사장동무요? 나 지배인이요. 한가지 기사장동무와 토론할게 있소.》
《무슨 문제인지?…》
《시약이요, 기사장동무가 늘 우는소릴 하던 효소배양에 쓰이는 B시약 말이요!…》
《아, 그렇습니까!》
《이번에도 쑤치오회사와 맞다들었소. 그들이 우리와 계속 계약을 맺자구 하는데…》
《아니, 그럼…》 림성하는 쑤치오라는 말에 먼저 머리에 번쩍이는 생각을 말했다. 《그에게 프로그람암호부터 요구하는게…》
김윤걸지배인은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난 암호소린 아예 꺼내지도 않았소, 그쪽에서도 우리 눈치만 보면서 묻지 않았구.》
《아니, 그럼?-》
《일없소. 기사장동무, 난 믿소. 우리 공장에 온 과학자들이 당장 풀어낼거라고 말이요.》
《예, 그렇긴 하지만…》
《그런데 말이요.》지배인이 말머리를 돌렸다. 《쑤치오회사에선 시약이나 배양기 같은것들을 하나하나 가르지 말구 일식으로 사가라는거요, 일식으로.》
《그러니까…》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자금사정이 극히 어려운 이때 설비일식을 사들인다는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는것이다.
《기사장동무.》김윤걸지배인이 계속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지금까지 해오던 식으로 효소배양을 계속해보기요, 좀 힘들긴 하겠지만…》
《예, 할수 없지요.》
그의 대답이 너무 맥풀린것처럼 들렸는지 지배인이 서둘러 말하였다.
《기사장동무, 나도 힘껏 돕겠으니 효소배양연구를 계속 내미시오, 절대 오물쪼물하지 말구. 그리구 참, 설비조립은 어떻게 되고있소?》
《시작했습니다, 대학선생들도 적극 도와주고있고…》
《그러면 됐소. 중요한건 혼자서 애쓰지 말고 생산지휘용팔다리를 잘 움직이는거요.》
김윤걸지배인이 말하는 생산지휘용팔다리란 기사장아래단위의 부서들을 이르는 말이다. 기술과, 설계실, 생산과와 동력과 등의 아래일군들이 자기 역할을 잘하도록 조직사업을 짜고들라는 소리이다.
벌써 림성하는 그 말을 두번째로 듣고있었다. 처음은 얼마전 당과류직장에서 육중한 드롭프스설비의 주형기사슬을 뽑느라고 림성하가 진땀을 빼고있을 때였다. 그날 수리공에게 나사틀개를 보내라, 도라이바를 달라 하며 안깐힘을 쓰고있는데 누군가 큰소리로 묻는것이였다.
《아니 기사장동무, 여기서 뭘하구있소?》
돌아보니 새로 부임된 김윤걸지배인이였다. 림성하는 급히 손을 털며 주형기사슬밑에서 기여나왔다.
《아 지배인동지, 글쎄 이게 애를 먹여서…》
김윤걸지배인은 헝클어진 주형기사슬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부속품들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한순간 선이 굵직한 그의 얼굴에 그 어떤 불만이 스쳐지나는듯 했다.
김윤걸이 좀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공장에 기대수리공이 부족하오?》
《저, 그런건 아닙니다.》
《그런데 왜 기사장동무가 수리공을 대신하고있소? 기사들이나 수리공을 불러서 지시해도 되겠는데…》
그때 부속품을 한가득 실은 밀차가 그들앞으로 굴러왔다. 림성하는 밀차를 밀고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입안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건… 제 손으로 해봐야 새 설비들을 더 잘 파악할것 같아서…》
멀어져가는 밀차를 바라보던 김윤걸이 한숨을 내쉬였다.
《기사장동무, 내 오자마자 싫은소릴 해서 안됐는데… 할일이 산더미같은 기사장이 여기 와서 나사틀개나 쥐고있다니 말이 되오? 효소때문에 공업시험소에 붙어있다면 모르겠지만.》
《지배인동지.》
《물론 기사장동문 모든 설비들을 다 손금보듯 하자는건데 그거야 좋은 일이지. 하지만… 기사장에겐 자기한테 달려있는 팔다리가 아니라 생산지휘용팔다리를 잘 움직이는게 더 중요한거요.》
《…》
림성하는 입을 꾹 다물고 듣기만 했다. 다 옳은 말이다. 그리고 진정 고마운 말이다. 그런데 이 림성하가 그렇게 돼먹은걸 어떻게 하는가?…
《왜 말이 없소?》
《생각하고있습니다.》
뜯어놓은 드롭프스설비를 둘러보던 김윤걸이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기사장동무, 큰 기업소의 기사장한테 이 지배인이 너무 잔소리하는것 같은데…》
《아 아니, 난 배우고있습니다.》
림성하는 솔직히 말하였다. 하나도 나무랍지 않았다. 다만 자기와 김윤걸지배인하고는 너무도 많은 성격상차이가 있다는것을 생각했을뿐… 그 어떤 문제에서나 배심이 있고 자신만만한 지배인, 이런 사람에게는 그 누구도 시비를 못한다. 상부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도 어쩌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기사장 림성하에게는 꺼리낌없이 요구하고 독촉하고 추궁하군 하는것이다. 끝없이 따지고 책임을 묻군 하는것이다.
지금 지배인의 전화를 받고있는 림성하는 그때 김윤걸에게서 느꼈던 그 드센 성격과 자신심을 다시금 느끼고있었다.
《기사장동무.》 송수화기에서 걸걸한 김윤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나왔다. 《그리구 공장에 내려와있는 강수일처장동무에게도 여기 일을 잘 알려주오. 어떻게 하든 효소시약들을 계약해보겠다구.》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잘있소.》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전화를 놓고 생각했다. 지배인이 강수일처장에게도 잘 알려주라고 한것이 우연치 않다. 식료일용공업성의 처장인 강수일이 실패만 거듭하는 효소배양을 좀 삐뚤서한 눈길로 보고있다는것을 지배인도 잘 알고있는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강수일처장때문에 불쾌감을 금할수 없는 일들이 계속 벌어지게 되리라는것을 그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