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제 4 장
아침노을
4
석우진은 함마를 들고 벽체를 까고있었다. 자기의 낡고 뒤떨어진 사고와 관점 아니, 지지리도 못난 석우진 자기자신을 까부시고있었다. 쾅!- 쾅! 가슴을 치는 함마소리… 손이 부르트고 피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손바닥보다 가슴이 더 쓰려나는 그였다. 석우진이 그토록 주장하고 내밀었던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생산공정이였다. 지금 그것을 통채로 까내여 들어내고있는 이 시각 그의 가슴은 아프도록 저리고 괴롭기만 했다.
《아니 국장동지, 왜 이러십니까?》
누군가 다급히 그의 손에서 함마를 빼앗았다. 석우진의 수하에서 일하는 식료일용공업성의 처장 강수일이였다.
그가 석우진을 붙잡고 진심으로 안타까와했다.
《국장동지, 몸을 돌보지 않고 이러다가 어떻게 하려구 그럽니까. 예?…》
석우진은 지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체격이 늘씬한 젊은이였는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 추위에 얼어든 얼굴, 조갈이 들고 터갈라진 입술, 피곤이 실린 충혈된 두눈… 이제 보니 30대인 그의 훤한 이마에 늙은이들처럼 벌써 주름이 생기는것 같다.
식료일용공업성의 처장 강수일은 석우진이 입원했을 때 그를 대신하여 공장으로 내려온 사람이다. 남자답고 이목구비가 번듯한 그는 남다른 정열과 함께 모든 일을 직접 맡아안는것으로 하여 웃사람들의 남다른 호감을 사고있다. 그는 곡산공장에 내려온 그때부터 혼자서 오만가지 일감을 다 떠맡아안고 뛰여다녔으며 집에 들어갈새도 없이 밤을 패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있었다.
강수일이 그를 문쪽으로 이끌었다.
《자, 저리 갑시다, 국장동지.》
《고맙소.》그에게 몸을 실으며 석우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정말 가슴이 아프오, 내 잘못으로 오늘같은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강수일이 그를 부축하며 열을 내였다.
《국장동지, 제발 그런 말씀은 마십시오. 그땐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다 장군님의 뜻을 받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 그게 어떻게 국장동지 한사람의 책임이겠습니까?》
석우진이 놀란듯 그를 넘보며 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책임을 넘겨씌울내기를 해선 안돼. 그래선 안돼!…》
불현듯 꺽꺽 목이 메여 부르짖던 한경수지배인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귀전을 울렸다. 자기가 이 큰 공장을 뭘로 만들었는가고, 과연 우리 장군님께서 중시하시는 평양곡산공장 지배인재목이 되는가고 몸부림치던 한경수…
우에서는 한경수가 모든 책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사표까지 냈지만 그의 당적량심과 오랜 사업경험, 관리능력을 고려하여 인민경제대학에 보내기로 하였다. 좋은 일이다. 좋은 사람은 아껴주기마련이다. 그리고 그렇듯 량심적인 사람이라면 믿음에 보답하고저 남보다 더 아낌없이 자기를 바치게 되는것이다. 벌써 인민경제대학에 간 한경수가 밤을 패며 피타게 배우고있다는 소리가 석우진의 귀에도 들려오고있었다.
주춤거리던 강수일이 급히 그를 따라왔다.
《국장동지, 그 일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국장동지를 힘껏 돕겠습니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앞으로 걸으면서 깨여진 벽돌장들을 피해갔다. 석우진은 그가 진심으로 자기를 도와나서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영민하고도 무서운 정열가인 강수일, 석우진자신이 누구보다 제일 믿는 처장… 이런 사람은 석우진이 한때 그러했던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에 어깨를 들이밀지 않고서는, 제일 무거운것을 자기가 떠메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갑자기 우에서 벼락치는듯 한 소리가 들렸다.
《거 밑에서 어물거리구있는게 누구요, 에?!… 밥숟갈 놓구싶어서 그래?》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도람통우에 올라서서 벽체를 까던 젊은이가 그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아, 열관리직장 조룡학동무구만!》강수일이 반갑게 마주 소리쳤다. 《참, 오래간만이요.》
청년도 그를 알아본듯 했다.
《아, 이거 정말 안됐습니다. 처장동지인줄은 모르구 제가 그만…》
옆에서 같이 일하던 젊은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아니 룡학이, 감히 누구한테 호령질을 했나?》
《뭐, 밥숟갈 놓는다구?》
《감히 그러다 자기 밥통떨어질라구 그래?》
《안되겠어. 조룡학 이 사람, 자네한테 오늘 한증을 진하게 시켜야겠구만!》
그들의 웃음소리를 등뒤에 들으며 복도에 나선 석우진이 강수일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많은 사람들과 친숙해졌구만.》
《예, 헌데 이자 나한테 호통을 치던 그 친구 말입니다.》 강수일이 웃으며 말했다. 《내 여기 처음 왔을 때 그한테서 졸경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졸경을?…》
《예, 그래서 이자 저 사람들이 한증을 진하게 시킨다는 소리를 한겁니다.》
강수일은 버룩이 웃으며 《한증을 진하게》 하던 일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날 성에서 내려온 강수일은 하루종일 공장을 돌아보고 맨나중에야 열관리직장에 들렸었다.
《동무, 여기 목욕탕이 어디 있소?》
그가 소리쳐물었다. 땀과 먼지로 하여 견딜수 없었다.
젊은 열관리공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누구길래 여기 와서 목욕탕을 찾는가 하는 눈빛이였다.
《아, 난 말이요.》 강수일이 턱을 약간 쳐들고 큰소리로 말하였다. 《성에서 내려온 사람이요. 온종일 현장을 좀 돌아보다나니 온통 탄먼지로 어지러워져서 그러오.》
젊은 열관리공이 뒤쪽의 늙수그레한 사람에게 소근거렸다.
《천아바이, 성에서 내려왔대요.》
마라초를 입에 문 늙수그레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수일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어디서 왔다구요?》
《식료일용공업성의 처장이요. 동문 열관리공이요?》
그 어떤 위압감이 섞인듯 한 강수일의 말에 그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예, 전 여기 열관리직장에서 〈천불〉이라구 부르는 사람이지요.》 그는 턱을 쳐들고 보이라뒤쪽에 나있는 어느 한 철문을 가리켰다.
《목욕탕은 저기웨다.》
목욕탕문을 열어본 강수일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목욕탕의 물탕크에는 물이 바닥이나 적실 정도였던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으니 물탕크를 청소하느라고 다 뽑았다고 한다. 이제 뽐프장에서 물을 보내주면 된다는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강수일이 젊은 열관리공에게 소리쳤다.
《동무이름이 뭐요?》
《조룡학입니다.》
《오, 조룡학!》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듯 그의 이름을 되받아부르며 강수일은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조룡학동무, 그럼 당장 뽐프장에 가서 물을 좀 쏴달라구 하오.》
일은 이렇게 되여 벌어졌다. 5분, 10분… 시간이 흘렀지만 뽐프장에서는 물을 쏴주지 않았다. 한증탕에 들어앉은 강수일은 큰소리를 치지 않을수 없었다.
《룡학동무, 어떻게 된거요. 물이 왜 안 나와?》
천불이라 불리운다던 늙수그레한 사람이 조룡학에게 좀 도와주라고 하는것 같았다. 두덜거리는 소리가 한증탕안에 앉아있는 강수일에게도 들렸다.
《내버려두라요! 아바이, 저런 〈작은관료주의자〉는 우리 보이라가 얼마나 뜨거운지 맛을 봐야 해요.》
천불이 중얼거렸다.
《허, 저 량반 오늘 된서방을 만났군!…》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무리 소리치고 호령해도 누구 하나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숨막히도록 뜨거운 한증탕안을 들락날락하며 땀을 뽑고있던 강수일이 그만 기진맥진하여 사정했다.
《동무, 조룡학동무!… 좀 도와주오. 제발 물 한바께쯔만 길어다주오!…》
문밖에 앉아 두툼한 마라초를 피우던 천불이 조룡학을 떠밀며 소리쳤다.
《냉큼 뽐프장으로 달려가게. 잘못했다구 하지 않나.》
이날 되게 혼난 강수일은 그 일로 하여 늘 아래사람들에게 호령하고 지시하던 그 작은관료주의버릇이 아예 뚝 떨어졌다고 한다.
석우진이 소리내여 웃었다.
《허… 그런 일이 있었소?》
《예, 통밥먹기가 그렇게 힘들줄은 몰랐습니다.》
열관리공들은 사람들을 대하는데서 가식을 모른다. 종일 석탄먼지를 들쓰고있는 그들이여서 자기들을 조금이라도 깔보는 기색이 보이면 대방이 누구이든, 비록 성에 있는 높은 간부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외면해버리군 한다. 그들은 그 누구에게 아첨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비굴하게 굽신거리는것을 제일 경멸하는 사람들이다. 진정 불처럼 뜨겁고 진실한 그들이여서 대방이 마음에 들면 즉시 한집안식구처럼 따뜻이 대해주며 자기들의 지성이 무드기 담긴 통밥도 아낌없이 내놓군 한다. 그 통밥이야말로 열관리공들만이 가지고있는 가장 뜨거운 감사의 인사라 할가…
석우진이 또 물었다.
《그래 동무도 통밥을 먹어봤소?》
《저 아직은…》
그가 눈길을 들며 조심히 물었다.
《저… 국장동진 그걸 잡숴봤습니까?》
《나 말이요?》 석우진은 허거프게 웃었다. 《성에 올라온 다음엔 나두 아직… 그러니 난 큰관료주의자인가?…》
《아니 국장동지, 무슨 그런 말씀을…》
그는 머리를 저었다. 무엇인가 생각되는것이 있었다. 《작은관료주의자》와 《큰관료주의자》!… 그렇다, 그들 로동자들에게는 그들대로의 엄정한 자대와 눈금이 있다. 일군들을 재여보는 자대, 일군들의 인격과 실력을 재여보는 가장 정확한 정신도덕적, 기술실무적눈금이!…
석우진은 강수일을 스쳐보았다. 목욕탕사건이 우연치 않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혈기방자한 사람을 어떻게 보고있는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자기를 솔직히 다 드러내고 진땀을 바치는 사람이라고 보았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믿음이 간다고 말하군 했었다. 그런데 여기 공장의 로동자들, 열관리공들은 아직 그에게 통밥을 권하지 않았다. 역시 이 공장을 담당하고있는 국장인 나에게도…
그때였다. 복도 맞은편에 있는 드롭프스작업장에서 번개불이 번쩍했다. 동시에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뽐프전동기가 탄다!-》
사람들이 달려갔다. 저마끔 달려가면서 스위치를 끄라고 소리쳤다. 케블선이 타는 매캐한 냄새… 어느새 강수일이 분전함쪽으로 뛰여가며 소리쳤다.
《무슨 일이요?》
그런데 그보다 앞서달려간 젊은이가 있었다. 스위치를 끄고 돌아보는 험상궂은 눈빛… 석우진이 허둥거리며 다가가는데 그 젊은 청년이 자기옆에 서있는 처녀에게 몸을 돌리며 거칠게 부르짖는것이였다.
《이건 뭐요?》
해쓱하게 질린 처녀는 황금태로인의 손녀인 송해연이다. 처녀는 주먹을 입에 대고 깨물고있었다.
찌를듯 한 젊은이의 눈길이 다시 처녀에게 던져졌다.
《동문 점성이 높은 물엿을 주형기에 주입하는게 무리라는걸 모르오?》
석우진은 젊은이를 눈여겨보았다. 주광혁이라고 했던가?… 물엿직장의 공정기사, 언젠가 협의회때 본 생각이 난다.
그옆에서 기능공들이 저마끔 수군거리고있었다.
《글쎄, 우리 공장에서 생산한 물엿을 넣었대요.》
《그렇게 질이 낮은 물엿을 넣었으니까 주형이 제대로 될게 뭐예요.》
《좋은 물엿이 없으니 안타까와 그랬겠지요.》
뾰족한 목소리가 빈정거렸다.
《흥, 기사장을 등대구 그랬지 뭐야. 해연기사야 늘…》
누군가 그 말에 면박을 주었다.
《소문이, 그건 무슨 말이야? 알지두 못하면서!》
그때 황금태로인과 기사장이 달려왔다. 누군가 그들에게 큰일이 났다고 대준것 같다. 먼저 기사장 림성하가 사람들사이를 비집고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요?》
해연이 눈길을 들었다. 그러나 그를 쳐다보지 않고 앞에 놓여있는 커다란 물엿통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주입원료는 물엿과 전화당을 섞은 혼합원료였어요. 전화당이 결정방지제역할을 할수 있다고 보았기에… 드롭프스기술과제서를 확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속에 끼운 석우진은 물엿통을 들여다보았다. 진한 간장처럼 거무스름하고 연하게 풍겨오는 시약냄새… 공장에서 만든 물엿이였다. 좋은 물엿이 없어 그것으로 시험했던것 같다.
주광혁이 거칠게 숨을 내뿜었다.
《그런 얼치기기술지도서가 무엇때문에 필요하오? 이런거야 공업시험소에서 먼저 확인했어야지. 그래 동문 시험기사가 아니요?》
처녀가 랭랭한 눈길로 그를 치떠보았다.
《동문 물엿공정기사가 아니예요? 여기에 동무책임은 없는가요? 효소물엿을 요구하는 드롭프스에 이런 물엿을 넣게 하니 말입니다, 물엿공정기사동지!…》
보다못해 강수일이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됐소, 숱한 사람들이 보는데서 기사들이란게…》
그는 송해연에게 몸을 돌리며 나직이 물었다.
《그래 원인이 뭐라구?》
모두가 처녀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리고있었다. 처녀는 사람들을 휙 둘러보고나서 마지못해 설명했다.
《드롭프스의 기술적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해 그렇게 되였습니다. 물엿의 점성이 높아 뽐프전동기가 부하를 받았기때문입니다. 효소물엿이면 이런 일이 없었겠는데…》
처녀의 마지막말에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그 목소리는, 그 흐느낌소리는 말없이 서있는 석우진의 가슴을 아프게 허비며 파고들었다.
뒤에서 말없이 서있던 황금태로인이 조용히 나섰다.
《그만들 해라. 잘못은 너희들에게 있는게 아니다.》
한동안 앞에 놓인 물엿통을 바라보던 로인이 침통한 눈길을 들었다. 기사장에게 던져지는 서늘한 눈빛… 모두가 숨을 죽이고 로인을 지켜보았다. 석우진 역시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림성하를 노려보던 로인이 입을 열었다.
《물론 이 늙은것의 잘못이 크지. 좋은 물엿을 만들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더 큰 죄는 기사장 자네한테 있어!》
림성하는 놀란듯 뒤로 한발 물러섰다.
《예? 그건?…》
사람들모두가 얼어붙은듯 몸을 옹송그리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있었다.
로인이 낮게 소리쳤다.
《자넨 왜 낡은 산분해법을, 낡은 보따리를 끝까지 반대하지 못했나, 응?… 왜 우리 눈치를 보면서 자기 주장을 끝까지 내밀지 못했는가 말일세.》
《아니, 아바이…》
《난 그래두 자네를 기대했었네. 자네가 연구하는 효소법이 우리가 해오던 산분해법을 영영 뒤엎기를 바랐단 말일세!… 헌데 그렇게 도중에 주저앉고말다니… 아닐세, 우린 그걸 바라지 않았어. 끝까지 효소물엿을 주장하기를 바랐단 말일세.》
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숙이였다. 묵묵히 눈길을 떨구었다. 진정한 로인의 울분이 그들모두를 감동시켰던것이다.
하지만 석우진에게는 로인의 그 목소리가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효소물엿, 그때 기사장의 주장대로 효소배양연구를 더 내밀었더라면!… 그러면 지금은 시험생산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도 없었을것이고… 좁은 안목의 결과는 지금 뽐프전동기만이 아니라 석우진의 가슴까지 태우고있는것이다. 그는 머리를 숙인채 돌아섰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참을수 없는 괴로움에, 모진 아픔에 비틀거리며 그냥 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