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4 장

아침노을

 

3

 

림성하가 달려간 곳은 강냉이사입장이였다. 수많은 참새들이 거기에 내려와 모이를 쫏고있었다. 낟알을 다루는 곳이여서 주변의 참새는 다 여기로 모여오는것 같다. 그것들속에서도 유별나게 새까만 참새는 분명 미분탄참새이다. 여기 보이라주변에 거주지를 정하고있는 참새라 해서 원료직장사람들이 그런 별명을 붙여주었다. 미분탄을 들쓰며 살다보니 몸통의 털까지도 새까맣게 되였다.

림성하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빈 기차방통을 세워둔 철길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석우진국장을 발견했던것이다.

《국장동지…》

그를 알아본 석우진이 가볍게 손짓했다.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였다. 가까운 곳에서 격한 말소리들이 들려오고있었다. 성하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몇걸음 내짚었다. 석우진국장이 또 조심하라는 의미로 손짓했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가까이 갔다. 무슨 일인가? 정말 싸움이 벌어졌단 말인가?…

격한 말소리들가운데 먼저 목이 쉰듯 한 정주선당비서의 목소리가 귀전을 울리였다.

《…그래 위대한 장군님께서 더 높은 목표를 정해주시고 온 나라 과학자, 기술자진영까지 보내주신 이때 지배인이 사표를 내다니?!… 말이나 됩니까?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위하여 누구보다 몸을 내대야 할 사람이… 난 정말 그럴줄 몰랐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이렇게 나약한 지배인과 같이 일해왔단 말입니까?》

그러자 굵은 목소리가 무어라고 웅얼거렸다. 분명 한경수지배인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비서동무, 사실 난 이 공장 지배인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지배인동무.》 정주선의 목소리가 더 격해졌다.《어쩌문 그럴수 있습니까, 지배인동무가?… 그래, 저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인민군대가, 총알이 우리 사탕을 도우러 오고있는데 지배인동지가 뒤로 물러난다는걸 그들이 알면… 지금 여기 지휘관이 도피한다는걸 알면 아마 저 군인들은 군사재판에 넘기겠다고 펄펄 뛸겁니다.…》

《그럴수도 있겠지요.》 언제나 기세좋던 한경수지배인은 어느새 풀이 죽어있었다. 《하지만 비서동무도 이 지배인립장에 서보시오. 내가 우기고 내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했었고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니…》

림성하는 숨 막히는듯 한감을 느꼈다. 당비서의 질책은 물론 지배인의 립장도 달리 될수 없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책임일군들이라고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필요할 때엔 모든 책임을 다 걸머지는것이 일군들의 량심이고 본분이고 의무이기도 한것이다.

그는 잠자코 발밑의 철길레루와 그것을 무겁게 짓누르고있는 무쇠바퀴를 바라보고있었다. 지금 저 지배인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그도 이미 자기를 두고 하는 뭇사람들의 뒤소리를 들었을것이다.

그런 뒤소리들이 많았다. 누구나 벌을 받게 되면 뒤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다.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만들어낸다. 저저마끔 열을 내여 그 사람의 죄과에 대하여 떠들기 시작한다. 어떤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린 잘못이나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사소한 결함까지도 들추어내여 공격하거나 지어는 사상적으로 분석하고 정치적인것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하여 한순간 그 과오는 보다 엄중한것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범하여온 고질적인것으로 평가되여 더는 쓰지 못할 사람으로 락인되는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비서는 남들의 뒤소리가 아니라 전혀 다른 의미로 소리치고있다. 한 인간의 운명을 두고, 그를 지켜주고싶어서 소리치는것이 알린다.

잠시 기차방통뒤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서로가 격한 감정을 삭이느라고 숨을 돌리고있는듯 했다. 잠자코 듣고있던 석우진이 참다못해 림성하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사장, 담배 없소?》

말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준 림성하가 아주 낮게 재빨리 속삭이였다.

《피워두 일없겠습니까, 국장동지?…》

의사들이 심장을 수술한 그에게 담배를 끊으라고 권고했다는것을 림성하도 알고있었던것이다.

잠시 손에 든 담배대를 내려다보고있던 석우진이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참, 그렇지!…》

그는 담배대를 바닥에 떨구었다. 다음순간 그것을 구두발로 마구 비벼대였다. 마치 자신의 기호에까지 족쇄를 채운 랭랭한 의사들의 건강진단서를 짓뭉개버리는듯 했다.

그때 어데선가 원료직장장이 불쑥 나타났다. 그가 석우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듯 했다.

《아니, 국장동지가 어떻게 여기에?》

《쉿.》 석우진이 손짓으로 그를 제지시켰다.

원료직장장은 멈칫했다. 이번엔 목소리를 죽이며 물었다.

《국장동지, 어디 편치 않습니까?》

《아니, 아니요.》

석우진은 그를 외면하며 뒤쪽에 높이 솟은 대형저장고들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원료직장장이 그를 따라 저장고들에 눈길을 주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수십개나 되는 거대한 저장고들…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후 그 어려운 시기에 건설하여주신 특대형저장고들, 그리하여 매일같이 기차방통에 실려온 강냉이들이 수십개의 콘베아로 저 웅대한 저장고들에 들어차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 강냉이들을 침지탕크에 가득가득 채워넣고 물엿을 만들던 때가 언제였던가!… 그런데 지금 저 저장고들은 텅텅 비여있다. 거기에 들어차던 강냉이수송대신에 멀고먼 산발을 타면서 고사리와 더덕, 곰취따위를 뜯어 가공하는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생산공정 같은것을 꾸려놓았었다. 고지를 지켜야 할 전사들이 강기슭 둔덕에 진을 친것이나 같았다.

《그러니 이게 죄가 아니란 말이요?》

《그게 왜 지배인 한사람의 죄가 되겠습니까?》

기차방통너머에서 울려오는 격한 웨침소리, 앞의 목소리는 지배인이였고 뒤의 목소리는 당비서였다. 원료직장장이 깜짝 놀라며 다시 석우진과 철길 이쪽에 따로 서있는 림성하를 둘러보더니 그제서야 무슨 낌새를 챘는지 뒤걸음쳐갔다.

《비서동무, 솔직히 말해봅시다.》 지배인의 목소리가 더 거칠어졌다. 《이 한경수야말로 일군의 자격이 없는, 법앞에 나서야 할 죄인이란 말입니다. 글쎄, 이 큰 공장을 뭘로 만들었습니까? 잡다한 농토산물을 끌어들여서 합숙식당처럼 만들어놓았으니… 과연 이런 지배인이, 이 한경수가 죄인이 아니란 말입니까! 그래 이런건 범죄가 아니란 말입니까?》

림성하는 가슴이 조여들었다. 언젠가 정주선당비서가 아오먼의 기업가 쑤치오때문에 내려온 료해성원들에게 했다던 말이 귀전에 쟁쟁했다.

《…어째서 나라에 막대한 손해를 주면서 제볼장만 보고온 사람들은 문제시되지 않습니까. 그래 이런건 범죄가 아니란 말입니까?》

그 말이 상기되자 림성하는 그때 당비서가 하던 말을 오늘 지배인이 그대로 외우고있는것이 놀랍게 생각되였다.

《비서동무.》 지배인이 계속 부르짖고있다. 《그리고도 난 흰소리만 쳤지요? 비서동무가 계속 우려할 때에도 그냥 우기기만 했지요? 전적으로 이 지배인이 책임진다고 말입니다!… 》

쉰듯 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좋습니다. 그럼 이 당비서도 같이 갑시다. 함께 가서 사표를 냅시다! 책임은 이 당비서에게 더 많습니다.》

《제발 그러지 마시오! 비서동무, 당에선 언제나 일군들을 적재적소에 파견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난 그게 늘 듣는 소리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나에겐 전혀 해당되지 않은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에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꼭 말하고싶은건…》

《지배인동무.》

《가만, 내 말을 막지 마시오! 우리 일군들은 자기 키가 어디까지 닿는지 잘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량심적으로 당앞에 말해야 합니다. 비서동무, 솔직히 말해보시오. 그래, 과연 이 한경수가 우리 장군님께서 그토록 중시하시는 이 곡산공장 지배인재목이 됩니까?》

대답이 없다. 잠시 말을 끊었던 지배인이 계속했다.

《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그날부터 오늘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비서동무도 잘 알지요?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한동안 지나 당비서의 쉰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알고있습니다. 지배인동무는 17살부터 오늘까지 공장에서 잔뼈가 굵었지요. 전쟁때는 부모를 잃고 애육원에서 자랐고 후에는 어느 마음씨 고운 녀인이 업어다키웠구… 그런데 이게 뭡니까? 누가 전쟁고아인 지배인동무를 대학에 보내주었습니까? 어느 누가 한경수라는 인간을 지배인으로 내세워주었습니까?… 헌데 누구보다 당의 신임에, 나라의 고마움에 보답해야 할 지배인동무가 뒤전으로 물러나다니…》

림성하는 입안이 마르는것을 느꼈다. 아픔에 젖어있는 당비서의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배인이 목갈린 소리로 속삭이듯 했다.

《…나도 물론 남들처럼 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 죽을지언정 현장에서 한걸음도 떠나지 않겠다고 말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량심은 지금 다르게 말하고있습니다. 어서 자리를 내라고, 보다 더 실력있고 최첨단기술로 준비된 그런 사람이 여기 앉아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저 식료련합부기사장인 김윤걸이와 같은 그런 사람이 말입니다. 괴롭지만 이걸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비서동무, 초소가 중요할수록 더 능력있는 지휘관을 필요로 합니다. 지식경제시대인 오늘엔 실력이 없으면 누구든지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이런게 바로 당에서 바라는 당적량심이 아니겠습니까. 예? 비서동무?!…》

목소리가 꺽꺽 막힌다. 울고있는것이다. 터져나오는 오열을 힘들게 참고있는것이 알린다. 믿을수 없는 일이다. 과연 저 억대우같은 사람이 운다는것을 상상이나 할수 있단 말인가.

림성하는 숨이 차오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도 막 소리치고싶었다. 그것이 왜 지배인동지 한사람의탓입니까?! 하고 막 부르짖고싶었다. 그것은 우리모두의 책임이라고, 안목이 좁고 꿈도 크지 못한 우리모두의 책임이라고 웨치고싶었다.…

《진정하라구, 기사장.》

석우진이 그의 팔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그의 눈가에도 죄책의 물기가 번뜩이였다. 얼마나 진실한 사람들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인가.…

틀어잡았던 림성하의 팔목을 놓아준 석우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 역시 지금껏 저려드는 자책과 고민으로 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 누구보다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생산공정을 지지했고 적극 밀어준 그였다. 누구보다 진정을 기울여 다그쳤던 생산공정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그 어떤 처벌도 달게 받을 각오였었다. 헌데 저 한경수지배인이 지금 그가 생각했던바를 털어놓고있으니…

석우진은 한순간 헉!- 하고 숨을 들이쉬였다. 저도 모르게 한손으로 가슴을 그러쥐였다. 뜨끔거리는 심장의 아픔…

그는 입을 악물었다. 과오를 씻어야 한다! 결사의 각오를 지니고 장군님께서 주신 새 과업을 관철해야 한다!…

그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뒤에서 림성하가 부르는것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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