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3 회)
제 4 장
아침노을
2
석우진국장은 회관정문앞에서 장령, 군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석우진이 림성하를 보고 소리쳤다.
《기사장동무, 여기로 오시오!》
림성하가 달려가자 석우진은 그를 여러 군관, 장령들에게 소개했다.
한 장령이 그를 향해 성큼성큼 마주 왔다.
《기사장입니까? 아, 젊은 동무로구만.》
《예?!》
《좋습니다. 젊었다는거야 좋은거지요.》
장령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 가느스름한 눈에 좀 엄해보이는 사람이였다.
《장령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인민군대가 이렇게 공장을 지원해주니 정말…》
《그건 응당한 일이지요. 우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발자욱이 찍힌 곳을 다 최전연의 고지와 같이 보고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1일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여기 평양곡산공장을 현지지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평양곡산공장은 우리의 중요고지란 말입니다.》 그는 뒤에 서있는 군관들을 돌아보았다.
《그렇지 않소?》
여러 군관들이 일시에 힘차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보시오.》 장령이 흡족해서 말했다.《그러니 로동계급을 돕는 일에서도 군대가 앞장서야지. 그것은 장군님의 뜻이요.》
눈이 보이지 않도록 웃고있는 장령에게 공장방송원처녀가 달려왔다.
《장령동지! 부탁합니다. 우리 공장로동자들에게 좋은 말씀을 좀 해주십시오.》
장령이 놀라서 방송원처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예, 저길 보십시오. 모두가 기다리고있지 않습니까.》
방송원처녀는 지원물자가 가득 실린 여러대의 화물차가 서있는 회관앞을 가리켰다. 거기서는 벌써 로력혁신자들을 축하하는 군인예술선전대의 노래가 펼쳐지고있었고 공장종업원들과 공장현대화에 동원된 각 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이 입김을 날리며 앞마당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누구나 축하의 인사를 하며 즐겁게 보낼 설날이였지만 모두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듯 달려나왔다. 누가 부른것도 아니고 누가 조직한것도 아니였다. 스스로가 새해 첫전투를 벌리자고 앞을 다투어 공장으로 달려나왔다. 로동이 기쁨으로 되고 바치는것이 행복으로 되는 오늘의 시대인것이다!…
장령이 림성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럼 우리도 함께 가서 끼우기요.》
군중은 독창과 중창, 웃음넘치는 화술소품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며 연방 재청을 요구했다.
소개자가 이번에는 곡산공장의 현대화를 위하여 로력적위훈을 세우고있는 공장의 전체 로동계급과 각 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을 축하하여 장령동지가 이야기하겠다고 소개했다.
장령이 엄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홱 저었다.
《아니야, 이런덴 공장기사장이 먼저 나서야 해!》
장령은 자기옆에 서있는 림성하를 잡아끌었다.
《자 기사장동무, 어서!…》
림성하는 당황하여 주춤거렸다.
《아니? 제가 무슨 할말이 있다구…》
여러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나서십시오!》
《좋은 말 한마디 하라구!》
림성하는 구원을 청하듯 당비서를 눈으로 찾았다. 하지만 정주선당비서는 어데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떠밀리워 마이크앞에 나선 림성하는 자신없이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즉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을 떼였다.
《동지들, 저는 먼저 새해의 첫날 제일선참으로 우리를 찾아와 커다란 고무격려를 주고있는 조선인민군 군인동지들에게 전체 평양곡산공장 로동계급의 이름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두손을 높이 쳐들고 열렬하게 박수를 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들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정과 고마움이 넘치고있었다.
림성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쩐지 목소리가 떨렸다.
《사실 저희들은… 군인동지들의 이 고마운 마음을 그대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린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림성하는 눈길을 떨구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길에 고개를 들수 없었다. 가슴을 에이는 자책감… 공장의 생산기술을 책임진 기사장으로서 끝까지 자기를 주장하지 못했던 그, 제딴엔 남보다 큰 꿈을 지녔다고 자부했지만 장군님의 리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던 그였다.
잠시후 그가 다시 눈길을 들었다.
《크나큰 기대를 안고 우리 공장에 오셨다가 실망을 안고 가신 장군님을 생각하면… 우린 정말 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장군님의 높은 리상을 따르지 못한탓으로 우리 장군님께 괴로움만 준 저희들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군관, 장령동지들이 이 설날 저희들을 찾아와 장군님의 뜻을 잘 받들자고 고무해주니… 여러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리 기어이 장군님의 뜻대로 공장을 현대화하여 사탕, 과자가 폭포처럼 쏟아지게 하겠습니다.》
또다시 박수가 터졌다. 목이 메였다. 뜨거운것이 가슴으로 솟구치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모두가 마음을 합쳐 위대한 장군님께서 공장에 주신 현지말씀을 철저히 관철하자고 호소하고싶은데 그만 목이 잠겨 말할수가 없었다.
그를 대신하여 장령이 마이크앞에 나섰다.
《평양곡산공장의 전체 종업원동지들! 수도시민들에게 사탕, 과자를 풍족하게 안겨주시려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이고 우리 인민군군인들이 바라는것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조국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을 때 사탕알은 없어도 총알은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사탕알도 있어야 한다고 저희들에게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러니 동지들,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우리들에게 서슴없이 부탁하십시오. 우리 인민군대가 동무들을 힘껏 도와주겠습니다. 우리 서로 힘을 합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평양곡산공장에 주신 말씀을 결사관철합시다!》
박수가 터졌다. 뜨거운 결의와 굳은 각오로 충만된 로동계급의 말없는 대답이였다. 누군가 흥분된 목소리로 웨쳤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에서 주신 말씀을 철저히 관철하자!-》
격동된 군중들이 일제히 주먹을 내흔들며 따라웨쳤다.
《관철하자!》
《관철하자!》
《관철하자!》
어느새 앞에 나와 선 군인예술선전대원들이 힘차게 노래부르기 시작했다.
《자, 기사장동무.》
장령이 림성하의 팔을 끼며 군인예술선전대원들속에 끼여들었다. 그러자 무대를 지켜보고있던 공장로력혁신자들까지 일시에 달려나와 군인예술선전대원들과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고산다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
기어이 장군님따라 승리떨치리
…
그때였다. 흥분된 사람들을 둘러보던 림성하의 두눈이 그만 굳어졌다. 솜옷앞단추를 헤쳐놓은 석우진이 원료직장의 사입장쪽으로 바삐 뛰여가고있었던것이다. 웬일인지 마음이 섬찍해났다. 심장수술후 최대로 안정이 필요한 석우진국장, 헌데 무슨 일로 저렇게?…
노래가 끝나자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히 군중속에서 빠져나온 림성하는 석우진이 사라진쪽으로 정신없이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바빠도 뛰는 일이 없는 석우진이 바삐 달려가는것을 보면 무슨 일이 난게 분명했다.
별안간 마주 달려오던 웬 녀인이 흠칫 멎어섰다. 《소문이》라는 별명이 붙은 오복금이였다.
그가 헐떡이며 떠듬거렸다.
《기사장이여, 글쎄, 이걸… 이걸 어쩌면 좋아요? 저기… 저기서 당비서동지하고 지배인동지가 대판 싸우고있어요!》
《뭐?》 그의 말을 듣고 기사장이 소리쳤다. 《누가 뭣때문에 싸운다구?》
림성하는 오복금이 가리킨 강냉이사입장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질책했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아주머닌 언제 봐야 허튼소리만 내돌린다니까!》
오복금이 발끈해서 대들었다.
《허튼소리라구요? 아참, 그럼 내가 없는 소릴 할가?… 그래 기사장동진 석국장동지가 방금 저리로 급히 뛰여가는걸 보지 못했어요?》
《석국장동지가?》
《그래요. 기사장두 빨리 가보라요. 무슨 큰일이 난게 분명하다니까.》
림성하는 오복금의 얄팍한 입술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래서 나도 달려오지 않았는가, 그러니 사실이란 말인가?! 당비서와 지배인이 맞붙다니?… 한순간 두다리가 매시시해졌다. 살을 에이는 맵짠 날씨여서 볼이 얼어들었다. 입김을 날리는 찬 공기, 가지마다 소복이 쌓여 설풍경을 돋구던 하얀 눈도 파르스름해지는듯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