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3 장

뜨거운 겨울

 

3

 

그 시각 기사장 림성하는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뜨거운 보이라앞에 앉아있었다. 이글이글 타래치는 불길을 쏘아보는 두눈은 열에 떠있었다.

목이 말랐다. 가슴이 타들었다. 저도 모르게 목단추를 힘껏 헤쳐놓았다. 가슴에 미쳐오는 뜨거운 기운… 보이라불길처럼 이글거리는 가슴은 얼음덩이를 삼켜도 식을것 같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의 묵직한 손이 림성하의 어깨에 와닿았다. 당비서 정주선이였다.

《비서동지…》

정주선은 일어서려는 림성하를 눌러앉히며 자기도 그옆에 자리잡고앉았다. 오래도록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사람은 그저 어두운 얼굴로 묵묵히 타래치는 보이라의 불길만 바라볼뿐이였다. 쓰려나는 가슴, 침통하게 떨리는 눈시울…

림성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당비서동지, 이제 우리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다니겠습니까? 공장에 오신 장군님께 그만…》

쏴!- 보이라송풍기가 돌았다. 무섭게 타번지는 세찬 화염, 말없이 이글거리는 불길을 바라보는 두사람은 누군가 큰소리로 찾는것도 알지 못했다.

《아니, 이 기쁜 날에 다들 귀가 먹었수? 그만큼 소리치는데 듣지두 못하구… 아, 소금먹은 소 물바가지만 들여다본다더니 왜서들 그러구있수?…》

천불이라고 불리우는 열관리공 천대삼이였다. 늘 탄가루가 묻은 작업복을 입던 그가 오늘은 새신랑처럼 신수가 멀끔해서 웃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공장에 모신 감격과 기쁨으로 하여 온 공장종업원들이 명절처럼 흥성거리는것이다. 천대삼은 여전히 싱글거리며 문쪽에 대고 소리쳤다.

《교수선생님, 어서 이리 오시우! 당비서동지와 기사장도 여기 있수다.》

키가 크고 이마가 넓은 50대 초엽의 점잖은 손님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비서동지.》

정주선이 그를 돌아보더니 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아니? 김책공업종합대학… 과학부총장선생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과학부총장 리형준이 반갑게 정주선의 손을 잡았다.

《축하합니다! 당비서동지. 경애하는 장군님을 공장에 모셨다지요?》

《예…》

열관리공 천대삼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럼 얘기들 하시우. 난 가보겠수다!》

그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한 리형준은 활기있게 걸어가는 열관리공만 묵묵히 바라보고있는 정주선에게 돌아섰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곡산공장을 현지지도하시였다는 소식을 기차칸에서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차에서 내리는 길로 달려왔습니다.》

《예…》

정주선은 웬일인지 덤덤한 표정이였다. 기사장 림성하도 눈길을 떨구고 발밑만 내려다보고있었다. 리형준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온 공장이 환희와 기쁨으로 뒤설레고있는 이때 누구보다 더 기뻐해야 할 공장일군들의 얼굴에 그늘이 져있으니…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별안간 등뒤에서 갈린 목소리가 울렸다.

《다들… 여기 있었구만.》

한경수지배인이였다. 어깨가 축 처진 지배인이 침울해진 얼굴로 다가왔다.

《비서동무, 날 욕해주오. 지배인이란게… 공장을 이꼴루 만들어놓아 위대한 장군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정주선이 머리를 돌렸다. 할말이 없었다. 공장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시종 웃으시며 현대화를 시작한 공장로동자들의 수고를 치하하셨지만 떠나가실 때엔 안색이 몹시 흐려있었다. 우리 인민들에게 사탕과자를 마음껏 먹이게 되였다고 그토록 기뻐하시며 오셨다가 허전한 마음을 안고가신 장군님이시였다. 이것을 어찌 지배인 한사람의 책임이라고만 하랴!… 공장의 당사업을 맡고있는 이 정주선에게도 책임이 있는것이다. 당비서도 지배인이나 기사장과 같이 자기 공장의 생산정상화는 물론 전반적인 과학기술문제와 발전전망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는것이다.

정주선은 자책감에 가슴이 에이는듯 했다.

《지배인동무, 책임은 저에게 더 있습니다.》

한경수가 맥빠진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 지금껏 비서동무에게 사정했지요? 제발 당일군이 기술문제에 끼여들지 말아달라구요. 과학기술문제같은건 우리한테 다 맡기라구 말입니다.… 그때 내가 비서동무의 옳은 충고를 들었더라면 공장을 이꼴로 만들지 않았을거구 장군님께 이런 걱정을 끼쳐드리는 일도 없었을게 아닙니까!…》

등뒤에서 무거운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돌아보니 리형준과학부총장이였다.

《우린 그런줄도 모르구… 축하하러 달려왔구만요. 우리가 아니, 제가 곡산공장을 잘 돕지 못했습니다. 비서동지가 찾아왔을 때 벌써 해당한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건데…》

정주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픔에 젖어든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우리 공장일군들이 장군님의 의도를 잘 몰랐습니다. 시야가 좁고 안목이 넓지 못했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으신 뜻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는것을 이제 와서야 절감했습니다.》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묵묵히 고개를 떨구고 타래쳐오르는 보이라의 불길만 바라볼뿐이였다.

먼저 림성하가 떨리는 눈길을 들었다.

《비서동지! 우린… 너무도 작았습니다. 겨우 효소균이나 만들어내고 만세를 불렀으니…》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당비서를 쳐다보았다. 공장당비서로서 그 누구보다 더 괴로움에 모대기는 정주선, 마음속 죄스러움이 흐느낌소리로 새여나오는듯…

그랬다. 정주선은 종합직장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머금고있었다. 바로 저기였다, 저기!…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평양곡산공장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계단을 달려내려오다가 우뚝 멎어서던 그곳…

그때 그는 불시에 심장이 멎는듯 했었다. 두눈이 번쩍 뜨이고 흉곽이 아프게 조여들었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전에까지 메아리쳐왔다. 《바로 그분이시다!》 하고 깨우쳐주는 환희의 웨침… 온넋으로 깨닫게 되는 그이의 모습이였다. 우리 인민들속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는 존경하는 그이, 그이를 이렇듯 뜻밖에 만나뵙게 될줄이야!…

심장이 다시금 소리쳤다.

《우리의 김정은동지이시다!…》

다음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안녕하십니까? 제 평양곡산공장 당비서 정주선입니다.》

그이께서 급히 마주오시였다.

《아, 그렇습니까. 반갑습니다.》

그이께서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정주선은 끓어오르는 격정에 목메여 부르짖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너무도 낯익은 모습,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인자하신 그 모습 그대로인 해빛같은 미소… 그는 얼마전 태양절기념 축포야회에 장군님을 더 잘 모시기 위하여 행사를 직접 조직지휘하시던 그이의 모습을 뵈오며 눈물에 젖던 감격이 되살아났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지금 우리 공장은…》

죄다 말씀드리고싶었다. 공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하여 세세히 보고드리고싶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였다.

《비서동무, 다 알만 합니다. 지금 장군님께서 여기로 오시는데… 어서 장군님을 잘 모셔주십시오.》

그이께서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정주선의 등을 다정히 떠미시였다.

《어서 가서 장군님께 꼭 기쁨을 드려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그는 너무도 크나큰 행복에 목이 콱 메는것을 느꼈다. 언제 어느때나 우리 일군들을 어버이장군님앞에 내세워주시려 마음쓰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

가슴은 벅차게 울렁이였다. 이윽고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현장에 들어오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다시 뵈올 때에도 그이께서는 지배인의 조금 뒤전에서 따라서는 정주선의 등을 앞으로 떠밀어주시였다.

《자, 장군님 가까이에서 말씀을 받으십시오.》

그토록 어버이장군님께 기쁨만 드리기를 바라시던 그이!…

정주선은 그후 자기가 영광스러운 당대표자회에 참가하여 전체 대표자들과 함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위대한 계승자로 높이 모시게 되리라는것을 그때 다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허나 지금 그는 숨이 막힌듯 몸부림치고있다. 커다란 자책에 허덕이고있다. 과연 우리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린…》 그의 입에서 허연 입김이 연기처럼 흩날렸다. 마음속 괴로움이 그렇게 쏟아져나오는듯 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당부하신대로 어버이장군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했소. 기쁨은커녕 걱정만을 더해드렸으니…》

쏴!- 여느때없이 세차게 돌아가는 송풍기… 한순간 보이라의 불아궁이에서 시뻘건 불길이 쏟아져나와 조각상처럼 굳어져있는 그들을 확 비치더니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어 어디선가 쓸어드는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이 출입문을 활 열어제꼈다. 어두운 밖에서는 겨울의 맵짠 칼바람이 공장구내에 얼어붙은 눈가루를 휩쓸며 무섭게 몸부림치고있었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