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 회)
제 3 장
뜨거운 겨울
1
급행렬차는 어느 한 역에 한동안 멎어있다가 다시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출발하였다. 겨울의 짧은 해가 떠오른지도 퍼그나 되였지만 차창마다에는 아직 하얀 성에가 두텁게 불려있었다.
갑자기 렬차안이 활기를 띠였다. 금방 역에서 오른 젊은이들이 떠들썩하게 기타를 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던것이다. 어느 발전소건설장에 지원나갔다가 돌아오는 기동예술선동대 청년들이라고 한다. 노래와 함께 사는 그들이여서 손님들이 한곡 들려달라고 청하자 인츰 판을 벌려놓았다.
우등불 타오르네 불타오르네
노래속에 웃음속에 불타오르네
…
라라라라 우리는 청춘
라라라라 우린 건설자
…
그들과 한자리에 같이 가던 애어린 단발머리처녀도 외국문기술도서에 눈길을 박고있던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리형준과학부총장도 고개를 들고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디 가든 랑만을 잃지 않는 청년들이다. 리형준이 원서를 다시 들여다보는데 누군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거 어디 잠이나 자겠소? 좀 조용하라구요!》
아까부터 떠들건말건 구석에 구겨박혀 졸고있던 사람이였다. 어찌된 일인지 그가 입고있는 솜옷은 온통 나무송진과 눈에 어지러워져 깨끗치 못했고 거칠어진 두볼은 며칠동안 면도칼도 대보지 못한것 같았다.
기타를 타던 청년이 핀잔조로 그에게 말했다.
《여 친구, 인젠 일어나라구. 해가 중천에 떴는데…》
대답이 없었다. 눈도 뜨지 않은 그 사람은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여전히 렬차가 가는대로 머리를 흔들거리며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청년들이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하, 저 친구 희천발전소에 보내야겠구만. 심장이 불타게 말이요!》
《옳소, 마음도 더 넓어지게!…》
이때 커다란 보짐을 안은 할머니가 그들을 밀고 들어왔다.
《임자네들, 이걸 좀 받아달라구.》
보짐은 좀 부피가 있었지만 무거운것은 아니였다.
《어이구, 할머니! 짐이 꽤 크군요.》
기타를 타던 청년이 얼른 할머니의 짐을 받아 당반우에 올려놓았다. 할머니가 바람새는 소리로 말했다.
《잘 다루게, 귀한거야.》
《귀한거? 이게 뭔데요?》
《뭐긴 뭐겠나, 마른 산나물이지.》
할머니에게 자리를 내주던 청년들이 어이없어했다.
《참, 할머니두… 년세도 꽤나 많으신것 같은데 이런것때문에 먼길을 다닙니까. 집에서 쉬기나 하시지…》
할머니가 또 바람새는 소리를 했다.
《내 나이 아흔셋이래두 아직 나다니는덴 아무 탈없어.》
깜짝 놀란 청년들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할머니가 93살이라구요? 어!-》
할머니는 청년들이 부축하려는것도 만류했다.
《그만두게. 난 혼자서두 일없어.》
《야, 할머닌 장수자이구만요. 거의 한세기나 사셨으니…》
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허리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 덕분에 이렇게 남의 나이까지 살고있지… 내 그래서 그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자구 저런걸 들고다니는거야.》
《아니, 저거야 마른 산나물이 아닌가요?》
할머니가 두볼을 호물거리며 웃었다.
《아들한테 가져가는거야. 그 사람네 공장에서 무슨 삼일포특산물이라는걸 한다지 않나. 나물가지수가 많아야 한대! 그래서 이전에 살던 곳에 와서 귀한 나물을 얻어가는게야.》
청년들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그것때문에 먼 곳에 다녀온다는것이 그들을 감동시켰던것이다.
《헌데 아들이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평양곡산공장 당비서일세!》
별안간 구석에서 코를 골던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뭐라구요? 평양곡산공장 당비서라구요?》
지금껏 흔들어도 깨나지 않던 사람이 평양곡산공장이라는 말에 당장 일어나앉는것이였다. 그가 할머니에게 다가앉았다.
《아 어머니, 제 허창길입니다. 바로 그 평양곡산공장 자재인수원…》
할머니의 주름진 두눈이 쪼프러졌다. 그의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주름진 입도 기이하게 쪼그라들었다.
《어이구, 옳구만! 떠날 때 우리 집에서 도중식사를 해가지구 갔지?》
《예, 어머니가 손수 꾸려주었지요.》
《응, 그랬어! 헌데, 장군님을 모셔야 할 공장에 쓸 나무가 모자라서 떠났다더니?》
《예, 침지탕크를 덮는데 쓸 목재지요. 몇십길이나 되는 알짜 통나무… 아니, 그런건 다 어떻게 아십니까? 난 어머니한테 그런 말 한적이 없는데?…》
《왜 몰라? 이봅세. 우리 아들은 큰 공장 당비서이구 나야 그 당비서의 에미구 로당원이 아닌가!》
핫하!… 귀를 강구고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참 재미나는 할머니였다. 기력도 정정하거니와 사고도 젊은이들 못지 않다는것이 알렸다.
기술서적에서 눈을 뗀 리형준도 소리내여 웃었다. 뜻밖에 할머니의 아들이 평양곡산공장 당비서라고 했을 때 은근히 놀란 그였다. 얼마전 공장의 기술문제때문에 자기를 찾아왔던 진중한 그가 다시 상기되였던것이다. 마음이 무거웠다. 빨리 평양곡산공장에 전문연구사들을 내보내야겠는데…
할머니가 허창길이에게 물었다.
《그래 갔던 일이 어떻게 됐다구?》
《예, 어제 밤 화물렬차에 다 싣고 가는 길입니다. 그걸 싣기까지 사흘밤이나 역에서 새웠습니다.》
《에구, 고생이 많았겠구만. 한지에서 밥술이나 제대로 떴겠나?》 할머니가 솜옷안에서 삶은 고구마를 꺼내놓았다. 《어서 들게. 보매 조반도 못했을것 같구만.》
《아직 따끈하군요.》 덥석 고구마를 받아든 그는 체면도 잊고 급히 그것을 통채로 입에 쓸어넣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단발머리처녀가 방긋 웃으며 그에게 샘물통을 꺼내주었다.
《고맙소.》
공장의 일을 위해 한지에서 끼니를 번지며 며칠밤을 새운 사람, 누가 알아주건말건 수걱수걱 자기 맡은 일을 하는 량심적인 사람… 핀잔을 주던 청년들이 량해를 구했다.
《동무, 미안하오. 우린 그런줄도 모르고…》
《뭐 괜찮소.》
허창길이 허물없이 웃었다. 유난히 눈길을 끄는 하얀 이… 갑자기 그가 얼굴을 찡기였다. 급히 넘기던 고구마에 목이 메였던것이다. 할머니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에그, 천천히 들게나. 덤비지 말구.》
《일… 일없어요, 어머니.》
샘물통을 꺼내준 처녀가 또 방긋 웃었다.
《어마나? 할머니보고 또 어머니래…》
물통을 기울여 소리내여 마신 허창길이 처녀를 향해 입을 비쭉 내밀었다.
《그럼 뭐라 부르겠소? 40대 중엽인 우리 당비서동지두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할머니가 호물거리던 입을 벌리며 활짝 웃었다.
《그 앤 쉰동이야! 그래두 아직 끔찍이 고와.》
와- 웃음이 터졌다. 아흔이 넘은 할머니가 어른을 두고 아직도 곱다고 하는것이 웃음을 자아냈던것이다. 그것도 큰 공장의 당비서를 두고…
입이 째지게 웃고있던 한 청년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니까 할머닌 퍼그나 나이가 들어 결혼한 모양이군요. 늦게 아들을 보았다구 하니…》
《웬걸, 난 열두살에 시집을 갔다네!》
이번엔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며 굳어졌다.
《열두살?!》
《아니, 그게 정말이나요, 할머니?》 단발머리처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새되게 부르짖었다. 《어마나?! 열두살이문 아직 쪼고만 아이인데?!…》
할머니의 눈가에 주름살이 깊어졌다.
《옛날엔 그랬다네. 떠살이하던 서른한살난 더벅머리총각이 지주집종살이를 하던 열두살짜리 나한테 장가를 들었지. 아버지벌이 되는 그 사람이 어린 색시를 업어키웠다네. 지금두 남편의 등에 업혀 지주집을 뛰쳐나와 살길을 찾아 떠돌아다니던 그때 일들이 잊혀지지 않아…》
모두가 입을 딱 벌린채로였다. 볼이 미여지게 고구마를 입에 쓸어넣던 자재인수원도, 머리를 기웃거리던 청년들도, 소근거리던 처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책에서나 배운 《지주》와 《종살이》라는 말을 저저마끔 되새겨보며 그 모든것을 직접 겪어온 93살 고령의 할머니를 마치 전설속에서 나온 인물처럼 신비스럽게 바라보고있었다.
할머니가 다시 입을 호물거렸다.
《헌데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줄이야… 〈광명성〉비행기가 하늘나라로 날아오르구 또 오막살이밖엔 모르던 이 늙은게 세칸이나 되는 큰 집에서 떵떵거리며 살구, 인젠 오랜 공장들까지 몽땅 뜯어맞추는… 아 이 사람, 그런걸 뭐라구 하드라?》 할머니가 자재인수원 허창길에게 눈짓했다. 《자네 공장을 번쩍번쩍하게 만든다는 그 일 말이네.》
《현대화라구 해요, 어머니.》
《옳거니, 현대화! 그걸 해서 사람들이 노랠 부르며 일하게 되였으니 참 좋은 세상이야… 이게 다 수령님과 장군님 덕분이지. 암, 그렇구말구!》
아까부터 맞은켠에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리형준이 고구마를 깨끗이 먹어치운 자재인수원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동무, 얼굴을 씻소.》
《예, 이거… 고맙습니다.》
《평양곡산공장에서》 리형준이 그에게 물었다. 《현대화를 한다는데 국가과학원에서 나온 연구사들은 없소?》
《글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야 자재나 구해들이는 사람이니…헌데 손님두 과학원에 계신가요?》
리형준이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난 김책공업종합대학에 있소.》
허창길이 어지럽힌 손수건을 슬그머니 감추었다.
《아, 이거… 난 그런것두 모르구…》
《괜찮소.》
수첩을 펼친 리형준은《평양곡산공장 현대화료해.》라고 쓰고 밑줄을 그어놓았다. 렬차칸에서 공장을 돕자고 고령의 나이에 힘든 걸음을 하고있는 당비서의 어머니를 보니 지금껏 국가적인 현대화과제를 많이 해온 김책공업종합대학이 평양곡산공장의 현대화를 자기 일처럼 도와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형준은 진하게 밑줄을 그어놓은 글을 다시한번 들여다보고 수첩을 접었다.
그때였다. 기동예술선동대복장을 한 젊은이가 할머니를 둘러싸고있는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웨쳤다.
《동무들, 조용하시오! 지금 렬차방송으로 장군님의 현지지도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있소!》
《뭐 장군님현지지도?…》
《정말?!…》
별안간 방송원의 격동된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신 우리 당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평양곡산공장에 도착하시자 전체 공장로동계급들의 가슴은 해솟는 바다처럼 설레였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현지에서 평양시당위원회 책임비서와 공장의 책임일군들이 맞이하였습니다.》
단발머리처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할머니, 평양곡산공장이래요. 들으셨지요. 예?!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곡산공장을 찾아주셨대요!》
《그래, 그래. 나도 듣구있네. 글쎄 우리 장군님께서?!…》
방송원의 격동된 목소리는 계속되였다.
《…평양곡산공장의 생산공정들을 돌아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공급할 사탕, 과자가 폭포처럼 쏟아지게 하자면 생산공정을 새로운 기술로 완전히 일신시키고 모든 생산공정들을 자동화함으로써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습니다.》
허창길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 내가 한발만 빨랐어도 장군님을 만나뵙는건데…》
모여섰던 사람들이 그와 할머니를 얼싸안았다.
《할머니, 축하합니다!》
《정말 영광입니다!》
할머니가 믿어지지 않는듯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 우리 그 애두 장군님을 몸가까이 뵈웠단 말이지?》
《그럼요, 곡산공장 책임일군들이 장군님을 맞이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래!… 하두 오래 사니 이 늙은게 장군님앞에 아들을 세운 에미가 됐소그려.》
할머니의 주름진 두눈이 젖어들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는 할머니는 오직 이날을 위하여 기나긴 한생을 살아온듯 했다.
청년들이 다시 떠들어댔다. 기타를 타던 청년이 할머니를 얼싸안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할머니, 렬차가 평양에 도착하면 우리 먼저 평양곡산공장에 들립시다. 저희들이 할머니를 모셔갈게요!》
《아니요.》 곡산공장 자재인수원이 손을 내저었다. 《어머니는 내가 업고 가야 하오!》
《나도 함께 가겠어요!》
《동무두?》
청년이 단발머리처녀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전 중학교를 졸업하고 배치를 기다리고있는데 앞으로 곡산공장에 보내달라고 하겠어요!》
《좋소!》 청년들이 떠들어댔다. 《우리 다 함께 가기요!》
그러나 과학부총장 리형준만은 종시 아무 말도 없었다. 대학을 찾아왔던 정주선당비서의 인상적인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던것이다.
그때 정주선은 그에게 말했었다.
《보다싶이 열쇠를 부탁하러 오지 않았습니까. 우리 공장이 어떤 공장인지야 과학부총장선생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린 한시바삐 공장을 살리고 현대화해야 합니다.》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으니 우리 장군님께서 멎어있는 그 식료기계들을 보셨을게 아닌가!… 그것을 보실 때 장군님께선 무엇을 생각하시였을가?… 리형준은 마음 한구석이 아픔에 저려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흥이 더 고조되였다. 기타를 타던 청년이 흥분하여 두팔을 우로 번쩍 쳐들고 마치 시처럼, 노래처럼 렬차여 달려라, 우리 수도 평양으로! 하고 웨치고있었다.
축복의 꽃보라인듯 차창을 스치는 눈송이들… 언제부터인가 하늘을 덮으며 내리기 시작한 눈송이들은 차창으로 지나는 산과 들을 하얗게 단장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