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2 장

마중가는 사람

 

9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당시)에 나가있는 대학의 교원, 연구사들을 만나 공장현대화과정을 료해한 김책공업종합대학 과학부총장 리형준은 같은 대학 로보트공학연구소 심성우소장을 따로 불러 이렇게 지시했다.

《선생은 오늘 밤차로 돌아가야겠소.》

《아니, 그럼 여기 일은?…》

《내가 마무리하기로 했으니 여기 일은 걱정마시오.》

《하지만 내가 맡아하던 일을 어떻게 남한테…》

리형준은 공장사람들처럼 기계기름냄새가 몸에 밴 심성우소장을 다시 눈여겨보았다. 서른안팎이지만 오랜 교수들에게서 풍기는 준수한 기품이 느껴지는 젊은 사람으로서 대학의 연구소보다 늘 외지에 나가 살다싶이 하는 그였다. 하기에 대학의 연구집단을 이끌고있는 과학부총장으로서 늘 그한테 미안한감을 가지고있는 리형준이였다.

《성우선생, 이 부총장이 선생을 너무 고생시켰소. 여기 일은 거의 다 끝났으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오.》

심성우소장은 추위에 얼어든 엷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우리한테 걱정거리가 없을 때도 있겠습니까? 보나마나 이제 올라가면 대학에 또 새 과제가 떨어져있을겁니다.》

《음…》

그의 말이 옳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은 나라의 과학인재를 키워내는 교육기관이지만 전반적인 인민경제기술발전에서 큰몫을 맡아안고있었다. 그래서 지금껏 단천제련소와 은률광산, 검덕광산의 자동화를 비롯한 국가적인 현대화과제를 수많이 맡아해낸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는 이번에도 지방의 여러 중요기계공장들의 현대화를 위해 높은 과학리론과 실천이 겸비된 심성우소장을 비롯하여 대학의 여러 교원, 연구사들을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에 내려보냈던것이다. 대학에는 지금도 국가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학기술적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심성우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평양곡산공장의 현대화때문에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서도 부탁이 왔었다는데…》

《그렇소. 그 최… 뭐이라든가 하는 부원동무가 몇번 전화를 걸어왔더구만. 헌데 그건 어데서 들었소?》

《부총장선생이 저한테 전화로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인젠 식료공업에까지 손을 대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참, 그랬었지.》 리형준은 안경을 벗어들고 피곤이 실린 두눈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인젠 우리 손이 안 가는데가 없게 됐소. 그만큼 힘도 더 들구…》

부지중 리형준은 얼마전 대학에 찾아왔던 평양곡산공장 당비서의 말이 생각났다.

《열쇠가 없어 문을 못 열고있습니다. 이럴 때엔 두가지 길밖에 없지요. 열기를 아예 포기해버리든지 아니면 문을 까고 들어가든지…》

수수하면서도 대뜸 인상에 새겨지던 사람… 지금도 그를 만나던 일을 잊을수 없다.

그날 리형준은 몹시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었다. 대학의 과학교육사업과 관련된 협의회를 끝내자바람으로 에짚트대표단과의 과학기술교류문제때문에 대동강외교단회관으로 떠나려던 참이였다. 대학당위원회의 부원이 막상 차에 오르려는 그에게 달려와 평양곡산공장 당비서가 과학부총장선생을 만나려고 한겻동안이나 기다렸다고 말해주었다.

리형준은 부지중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니, 먼저 전화라도 걸고 올것이지… 그래 오늘 꼭 만나야만 한다오?》

《예.》

이렇게 대답한것은 등뒤에 나타난 40대 중엽의 사나이였다. 그가 정중히 인사하며 계속했다.

《바쁘신데 안됐습니다. 제 평양곡산공장 당비서 정주선입니다. 잠간만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리형준은 난감했다. 해질무렵부터 바람이 세차지고있었다. 정문으로 몰아치는 찬바람이 떨어진 나무잎사귀들을 회오리처럼 말아올려 사방으로 휘뿌리고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찬바람부는 밖에서야 어떻게?…》

《아니, 괜찮습니다. 잠간이면 됩니다.》

잠을 못 잔탓인지 두눈이 충혈져있는 사람이였다. 그때 리형준은 그가 피곤에 몰려있으면서도 웃고있는것을 놀랍게 보았다. 그 조용한 미소뒤에 숨겨져있는 로동계급다운 드센 의지와 신중성을 느꼈다고 할가… 어쨌든 그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리라는것이 확연했다.

《몇분이면 되겠습니까?》

《극상해서 3분.》

《그렇게 간단한 문젠가요?》

《아니, 우리로서는 사실 아주 어렵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몹시 바쁘신 과학부총장선생이니만치 단 몇마디로 설명해보겠습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리형준은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며 결단을 내렸다.

《그럼 저와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얘기합시다.》

《좋습니다.》

그날 정주선당비서는 약속대로 3분동안에 낡은 산분해법에 의한 물엿생산공정과 효소물엿공정의 설비들에 대하여 그리고 아오먼의 기업가가 엄청난 값을 부르고있는 조종프로그람에 대하여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당일군인 그가 공장의 생산기술문제에 정통하고있다는것이 알렸다.

《그러니까》 리형준이 말했다. 《우리한테서 바라는것이 그 프로그람의 암호를 풀어달라는 아니, 그걸 풀도록 도와달라는게 아닙니까?…》

《옳습니다. 그런데 우린 지금… 열쇠가 없어 문을 못 열고있습니다.》

《열쇠라… 그래 언제까지 암호를 해득해주면 되겠습니까?》

《가능한것 빠른 시일내에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예, 우리 공장이 식료부문에서 얼마나 중요한 공장인지 그건 과학부총장선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우린 한시바삐 공장을 살리고 현대화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그저 간절히 부탁하는것이 아닌, 마치 당회의결정서라도 읽는듯 한 단호한 어조였다.

리형준은 한동안 말없이 차창밖만 내다보았다. 지금까지 김책공업종합대학이 과학기술적문제들을 맡아해결해온것은 주로 기계공업부문들이였다. 식료공업부문에서까지 대학에 도움을 청한 일은 아직 없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것은 지금 당장 곡산공장에까지 보내줄 전문가가 없는것이였다.

승용차는 벌써 대동교우를 달리고있었다. 운전사가 속도를 늦추었다. 그들의 뒤꽁무니에 바싹 붙어오던 차도 간격을 유지하며 뒤따랐다. 유난히 전조등빛이 밝은 차였다.

리형준이 후사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건 당비서동지차입니까?》

《예, 우리 곡산공장 차입니다.》

《아주 밝군요.》

차의 전조등빛이 밝다는 말이였다. 그런데 공장당비서는 왕청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우리의 눈은 아주 어둡습니다.》

《그건 무슨 의미로 하는 말입니까?》

《과학기술을 보는 우리의 눈이 어둡다 그 말입니다.》

리형준은 그를 돌아보았다.

《공장기술일군들을 두고 하는 말같은데?…》

《아니, 나는 당비서인 나자신을 비웃고있습니다.》

리형준은 웃고말았다.

《아니, 당비서가 공장의 과학기술문제들까지 책임질수야 없지요.》

《아닙니다.》 정주선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같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시대가 그걸 요구합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과학부총장선생을 찾아온게 아닙니까.》

그것으로 그들의 대화는 끊어졌다.

대동강외교단회관은 대동교를 옆에 끼고있는 건물이다. 승용차가 정문으로 들어서자 외등밑에서 대기하고있던 외교단의례일군이 달려오더니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총장선생님.》

《제가 늦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어김없이 제시간에 오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리형준은 안도의 숨을 내그으며 곡산공장 당비서에게로 돌아섰다. 《비서동지, 지금 너무 일거리가 많이 제기되여 그러는데…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공장으로 전문가를 보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주선당비서가 처음으로 밝게 웃으며 말하였다. 《과학부총장선생이 직접 와서 도와주시면 우린 더 반갑겠습니다.》

리형준도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그야말로 례절바르면서도 끈질긴데가 있는 사람, 사람의 속내까지 환히 들여다볼줄 아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약속합니다!》

그날 리형준은 희천공작기계종합공장에 나가있는 로보트공학연구소 심성우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평양곡산공장에도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토론했었다. 헌데 아직까지 연구소에 남아있는 전문가가 없어 곡산공장 당비서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오래동안 고생을 한 심성우소장을 또 보낼수는 없는것이고…

하여 리형준은 자기가 직접 평양곡산공장에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주일후에나 시간을 낼것 같다고 공장기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던것이다. 한주일후에!…

그 한주일이 얼마나 많은 사연을 안고 흘러갈것인지 그때 그가 알았더라면!… 사실 그들은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 공장, 기업소들에서 안타까와하는 과학기술적문제를 무심하게 대할 때, 현장에서 요구하는 과학기술적문제에 즉시 대책을 세우지 않을 때 어떤 후과가 닥쳐오리라는것을 다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 심각하고 엄청난 후과가 미친다는것을 다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리형준은 더이상 그에 대하여 생각지 않았다. 그는 바쁜 사람이였다.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을 시간이 그에게는 없는것이다.

리형준은 심성우소장을 잡아끌며 말했다.

《어쨌든 선생에게 주는 당면과업은…》

《뭡니까?》

《며칠간 푹 쉬는것이요.》

《그럼 곡산공장에서 부탁한건?…》

리형준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소. 거기에 보낼 사람은 따로 있소. 적임자가!…》

《그렇습니까?》

말을 길게 할수 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허연 입김이 펄펄 날렸다. 리형준은 걸어가면서 솜옷의 옷깃을 바싹 우로 끌어당겼다. 북방의 맵짠 추위가 대기를 옥죄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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