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마중가는 사람

 

7

 

콤퓨터탁에 엎디여 깜박 잠들었던 림성하는 한밤중에야 깨여났다. 눈을 뜨자 속이 께름해나는것을 느꼈다. 무엇때문일가? 혹시 안해가 남기고 간 편지때문일가?…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 밤 외국인 기업가가 트집을 잡던 일이 떠올랐다. 아오먼의 기업가 쑤치오와의 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당비서방으로 향했다.

정주선당비서는 자기 방에 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이럴 때 당비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틀림없이 열관리직장에, 보이라에 나가있을것이다. 보이라는 공장의 심장과 같다. 심장이 뛰여야 온몸에 피를 나를수 있다. 그래서 지배인이나 당비서는 물론 기사장인 자기도 눈을 뜨기만 하면 먼저 보이라굴뚝부터 살피는것이다.

 …

열관리직장의 사무실복도는 조용했다. 림성하는 엉금엉금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복도 한끝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모든 방들이 비여있었다. 다들 피곤에 몰려 쓰러진것 같다. 복도창문쪽에서 바람소리가 윙윙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쿵!》하는 둔한 소리가 들려왔다.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보니 그 소리는 열관리휴계실에서 난것 같다. 누가 긴의자에서 자다가 떨어진것인지도 모른다. 혹시 정주선당비서는 아닌지?…

사실 당비서는 자리에 눕는 일이 드물지만 일단 눕기만 하면 당장 곯아떨어지는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아무리 곯아떨어졌다고 해도 잠만 들면 세차게 갈개자는것으로 또한 유명한 사람이다. 사무실의 긴 쏘파에 누울 때뿐아니라 집안의 넓은 침대에 누웠어도 아침엔 반드시 바닥에 떨어져있거나 누울 때와는 정 반대쪽으로 머리를 돌리고있는 그를 보는것이 례사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공장사람들이 잘 알고있다. 그래서 90고령이 된 그의 로어머니는 40살이 퍽 지난 자기 아들이 상할가 걱정되여 늘 이부자리를 방바닥에 펴놓군 한다고 했다.

소리를 죽여 열관리휴계실에 다가간 림성하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휴계실에서는 교대한 열관리공들이 아무렇게나 엇가로 누워자고있었다. 예견한바 그대로 긴의자에 누워자다가 바닥에 떨어진 정주선당비서도 그속에 끼여 그냥 코를 골고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책을 들어 보았다. 당비서가 보던 책이다. 보풀이 인 뚜껑에 제목글도 잘 알리지 않는 책, 무슨 영양화학에 대한 책인듯 했다. 당일군이 뭐 이런것까지 봐야만 하는가?… 사실 정주선당비서는 갖가지 기술서적은 물론 정치도서며 새로 나온 소설책들까지 빠짐없이 읽는다고 한다. 당비서가 그 많은 책들을 언제 다 읽는가?…

《무얼 보고있소? 남 다 자는데 몰래 들어와서…》

잠든줄 알았던 정주선당비서가 바닥에 누운채로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아 비서동지, 어디 다치진 않았습니까?》

《다치다니?》

《아, 의자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쉬, 조용조용…》

저저마끔 엇가로 뻗어 곯아떨어져있는 열관리공들을 휘둘러본 정주선이 얼굴을 찡기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정말… 어디 잠을 잘수가 있어야지? 동무같은 방해군들때문에.》

《아니, 제가 깨웠습니까. 저절로 떨어지구선…》

정주선이 이마를 문지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내가 뭐 떨어지구싶어서 떨어졌소? 그건 그렇구 기사장은 왜 또 울상이요? 당장 한소나기 쏟아질것 같구만.》

《저…》

림성하가 망설이는데 당비서가 먼저 말했다.

《료해성원들이 내려왔던것때문에 그러오?》

《아니, 어떻게 그 일을 벌써?…》

《왜 모르겠소, 당비서가.… 그들이 돌아가면서 당위원회에도 들렸댔소.》

림성하가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조용히 끝날수도 있었는데 제가 참지 못하고 그만… 비서동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주선은 아무말없이 그를 지켜보더니 담배를 권했다. 양철통으로 만든 재털이를 당겨오더니 주머니를 열심히 뒤져 라이타를 꺼내여 내밀었다.

《왜 제 잘못이라는거요? 응당 해야 할 말을 했는데.》

림성하는 아무 일도 없는듯 침착하게 담배를 피워무는 그의 안색에서 무엇인가 찾아보려고 했지만 알수가 없었다.

며칠후에 가서야 그는 정주선당비서가 료해성원들과 한 이야기를 듣게 되였었다.

그때 정주선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째서 투자가가 항의서를 냈다고 해서 무조건 기사장의 잘못으로만 취급되여야 합니까. 정당한 요구는 응당한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방이 우릴 숫보며 소송을 제기했다면 우리도 알맞는 반격을 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서동문 그렇게 생각합니까?》

《예, 그리고 또 있습니다.》

《또요?》

《말이 난김에 솔직히 터놓읍시다. 어째서 나라의 기술발전에 막대한 손해를 준 사람들은 문제시되지 않는것입니까. 그런건 범죄가 아니란 말입니까? 기계설비를 마사먹거나 사고로 건물을 불태워 나라에 큰 손해를 준 사람은 범죄자로 재판을 받는데 계약을 잘못하고 뒤떨어진 기계를 사들여오면서 숱한 나라의 자금을 탕진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된셈인지 그대로 묵과해버리군 합니다. 그 리유가 뭡니까? 까놓고말하여 우리 일군들자신이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는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료해성원중의 한사람이 바삐 나섰다.

《아 비서동무, 이거 우리가 제기한 문제와는 좀 비뚤어지는것 같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정주선당비서는 심각한 안색이였다. 《난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들을 밀어제끼고 외국에 나가는 사람이나 그들을 외국에 파견하는 사람들이나 다 같고같습니다. 난 우리 기사장동무가 하고싶었던 말이 이것이라고 보는데…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있는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직방 말해주십시오.》

무슨 답이 있을수 있으랴. 료해성원들은 얼굴이 벌개져서 입만 벙긋거리다가 그냥 물러가고말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주선은 이에 대하여 한마디도 그에게 귀띔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것이다. 당일군은 낯내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젊은 시절부터 당중앙위원회에서 오래 일해온 정주선은 당일군의 인기주의나 평균주의가 혁명과 건설에 얼마나 큰 해독을 주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정주선은 저녁에 면도를 한 푸릿한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림성하를 바라보았다.

《기사장동무, 그러니 그 아오먼의 기업가가 우리의 목줄을 물고늘어지자는게 아니요? 드롭프스에 효소물엿이 쓰인다는것을 알고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럴 땐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

림성하는 잠시 입술을 깨물며 저도 모르게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효소물엿… 우리 곡산공장에서도 효소물엿을 생산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는 이미 활성이 높은 효소를 생산할수 있는 새로운 균을 찾아내였다. 림성하 자기는 거기에 10년동안 품을 들였다. 10년!… 얼마나 오랜 세월인가. 그 피타는 탐구속에 얻어낸 균들은 생명을 가진 미생물이다. 그 균들은 물질대사과정에 효소를 생합성하며 이렇게 생합성된 효소들은 서로가 독특한 반응성기질을 가진 무생명체이다. 효소는 단백질덩어리로서 후대도 없다. 포도당분자들의 중합으로 이루어진 긴 농마사슬을 끊어놓는 효소를 알파아밀라제라고 하고 그것을 다시 하나의 포도당분자로 잘라놓는 효소는 글루코아밀라제라고 한다. 바로 그 효소들을 대량액체배양으로 생산할수 있는 균들을 우리가 얻어내였다.

하기에 물엿직장의 공정기사 주광혁은 효소배양시험을 다시 시작하자고 강하게 제기했었다. 허나 일부 일군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고있다. 귀를 막고있다. 배양이 힘든데다가 설비와 기술때문에 품이 많이 든다는것이 그들이 반대하는 리유이다.

《왜 말이 없소?》 정주선이 피곤이 가득 실린 눈두덩을 다시금 세게 문지르며 말했다. 《난 이렇게 생각하오. 전번협의회에서 론의된대로 우린 어떻게 해서든 효소배양을 성공해야 하오. 기사장동무, 어떻소? 시작이 절반이라고 일단 시작했으니 끝까지 내밀어 완성해야지?…》

《저, 그렇긴 하지만…》

《왜? 자신이 없소?》

림성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내리쓸었다.

《솔직히 말해서… 효소배양의 기술테타는 이미 확정하고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균배양기나 멸균소독장치 같은 첨단설비들과 시약이 없구…》

《그건 늘 듣는 소리이구… 그다음은?》

《그다음은… 저, 제가 감히 송박사아바이의 기술혁신안을 밀어던진다구 생각하니 어쩐지…》

정주선은 말없이 재털이를 끄당겨 타들어가는 담배대를 비벼껐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새 기사장, 젊은 그가 기술진영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는 송수만로인이나 석우진국장을 부정한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울것이다.

《비서동지, 저로서는 정말 어쩔수가… 없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정주선이 그에게 돌아섰다.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당일군이 결심할 일이요? 공장의 생산과 기술발전을 맡은 기사장동무가 결심해야지.》

《…》

정주선은 괴로운듯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기사장동무, 동문 아직도 그걸 모르겠소? 당에서 무엇을 보고 동무를 기사장으로 임명했는지?… 지금은 완력으로 대중을 이끌고나가는 때가 아니요. 우리 일군들모두가 과학과 기술의 앞채를 메고나가야 할 때란 말이요. 그런데두 동문 나더러 어떻게 해야 하는가구?…》

《…》

림성하는 고개를 떨구었다.

정주선이 계속했다.

《기사장동무, 좀 생각을 해보오. 우리 곡산공장이 어떤 공장이요? 해방후 오늘까지 백두산3대장군의 령도업적이 제일 많이 깃들어있는 나라의 맏아들식료공장이 아닌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시여 처음으로 현지지도하신 공장들중의 하나가 아닌가? 그래 아직두 그 의미를 다 모르겠소?!…》

림성하는 속이 뭉클해졌다. 그렇다. 나라의 모체식료공장이다! 얼마나 많은 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 공장인가?… 림성하는 너무도 잘 알고있는 공장의 연혁사를 다시금 속으로 더듬어보았다.

 

×

 

그날은 나라가 해방된지 얼마 안된 1945년 9월 24일이였다. 당시 공장관리를 맡아 보던 로동조합장은 너무도 송구한 마음으로 김일성장군님을 석탄먼지 날리는 공장의 곳곳으로 안내해드렸다고 한다. 그이께서 걸음을 옮기실 때마다 구내에 풍겨오던 역한 냄새…

구레나룻의 로동조합장이 그이께 말씀드렸다.

《강냉이와 농마풀이 썩는 냄새입니다. 공장이 멎어있으니 공정마다에 잠겨있는 강냉이와 농마풀이 변해서 그만…》

수령님께서는 침지공정과 마쇄공정, 물에 풀려있는 농마와 싸늘한 기름정제유공정을 돌아보시면서 그에게 물으시였다.

《조합장동무, 동문 이 공장 실태를 잘 알고있는데 어떻게 하면 공장을 돌릴수 있겠소?》

《저, 우선 왜놈들이 파괴해놓은 대형변압기를 수리해야겠는데 기술자가 없습니다.》

《기술자가 없다?…》

로동조합장은 마디굵은 두손을 아프게 마주비비였다. 강냉이를 가공하여 수백톤의 물엿과 포도당, 기름과 간장 그리고 방직공업에 쓰는 건농마를 생산해오는 평양곡산공장은 당시 동양에서 제일 큰 곡물가공공장이였다.

1927년부터 1931년사이에 미국의 콤프리덕트주식회사(미국곡물가공주식회사)가 당시의 자금 1천만원을 투자하여 강냉이사입장과 침지, 마쇄, 착유, 농마와 물엿, 포도당생산공정까지 꾸려놓은 이 공장은 생산을 시작한지 단 며칠만에 건설투자액 전량을 다 뽑고 막대한 리윤을 내고있었다.

몇년동안 엄청난 리윤을 얻고있던 미국곡물가공주식회사는 여러차례나 되는 로동자들의 파업으로 리윤이 적어지게 되자 사장인 호리스신부를 본국으로 소환하고 당시 조선과 동양의 경제명맥을 좌지우지하고있던 동양척식회사(《동척》)사장 미쯔비시재벌과 합작하는 길로 나갔다.

오래전부터 막대한 리윤을 주는 이 곡산공장을 노리고있던 미쯔비시재벌은 처음엔 미국독점자본가들에게 경영특허권을 부여해주는척 하였지만 점차 상품출고와 원료보장, 땅세를 폭등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의 경제활동을 야금야금 방해했다. 미국독점자본가들은 일본의《동척》규제조치에 못 견디여 일부 조선로동자들과 일본인로동자들을 교체하는 방법을 취하기도 하였지만 끝내 공장을 헐값으로 팔아버리고 본국으로 달아나버리고말았다.

조선총독은 미국인들이 쫓겨간 후 적산의 명목으로 공장을 완전히 자기의 소유로 만들었으며 생산공정을 더 완비하고 확장하여 곡산공장을 태평양전쟁을 위한 하나의 전쟁물자보급기지로, 병참기지로 전변시켰다. 하여 곡산공장에서 나오는 대규모의 농마생산은 초기의 목적과는 달리 군복을 만드는 방직공업과 종이공업에, 수천톤의 물엿은 포신을 만드는 군수공업에, 포도당은 각종 의약품생산에 돌려지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큰 공장, 동양의 이름있는 곡물가공공장을 돌리는 대형변압기도 전국적으로 몇손가락 꼽을 정도의 귀한 설비가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공장에는 그것을 수리할만 한 기술자가 한사람도 없었다. 일본기술자들은 변압기를 수리할 때마다 그우에 풍을 치고 누구도 엿볼수 없게 했던것이다.

수령님께서 이러한 설명을 들으시며 물엿직장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철판을 댄 비좁은 사다리로 오르시려던 그이께서 돌연 걸음을 멈추시였다.

《가만, 누가 있는것 같구만.》

그이의 뒤를 따르던 로동조합장과 다른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나무발판이 놓여있는 당화탕크에서 두사람이 기여나오고있었다.

조합장이 굵고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 누구요?》

그이께서 조합장에게 손짓하시였다.

《가만, 왔던김에 로동자들을 좀 만나보고 갑시다.》

수령님께서는 먼저 당화탕크에 놓여있는 나무발판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삐걱거리는 나무발판은 바닥에 구멍이 숭숭 난데다가 흘린 당화찌꺼기로 하여 끈적끈적했고 오랜 세월 산성이 강한 염산에 삭아서 몹시 낡고 위험했다.

탕크에서 먼저 기여나온 사람은 양철통을 든 멍청해보이는 중늙은이였고 뒤따라 나온 더벅머리는 애젊은 로동자였는데 그의 왼쪽손에는 보기에도 끔직한 상처자리가 나있었다. 더벅머리와 멍청이가 겁이 난듯 몸을 옹그리며 주춤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조합장일행에 놀란듯했다.

구레나룻의 조합장이 더벅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했다, 다 깨끗이 씻어냈니?》

더벅머리는 벙어리처럼 고개만 끄덕이였다. 조합장은 그뒤에 멍청히 서있는 중늙은이를 외면하며 그이께 더벅머리의 등을 떠밀었다.

《당화공인 송수만입니다. 어릴 때부터 이 공장에서 일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몸이 체소한 그에게 물으시였다.

《음― 헌데 그안에 왜 들어갔댔나?》

조합장이 더벅머리를 대신하여 설명했다.

《당화탕크를 씻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여기서도 공장이 멎으니 당화탕크안의 농마풀이 썩어났습니다. 오래 놔두면 설비가 못쓰게 되기때문에 로동자들이 이렇게 자체로 기대를 관리하고있습니다.》

그이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며 송수만을 바라보시였다. 터지고 피가 내배인 맨발, 어깨가 다 드러난 꿰진 작업복…

《신발도 없이 맨발로…》

수령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신듯 그의 드러난 어깨에 손을 얹으시였다.

《인제는 해방이 됐으니 인차 방직공장과 고무공장도 일떠설거요. 그러면 이 동무같은 로동자들의 신발과 옷문제도 다 해결될수 있소. 조합장동무.》

그러나 조합장은 그이께서 부르신것도 알지 못하고 한옆으로 끌어낸 중늙은이에게 낮은 소리로 꾸짖고있었다.

《그만큼 말했는데… 또 와서 어물거려? 어서 돌아가게.》

중늙은이는 귀가 먹은듯 큰소리로 되물었다.

《누구라구요?》

조합장이 끝내 참지 못하고 눈을 부라렸다.

《여기서 그만 사라지게! 어서!…》

멍청한 두눈이 조합장을 쳐다보았다. 정기없는 그 눈에는 자기를 하대하는 그에 대한 고까움이나 원망조차 없었다. 그 어떤 반발심이나 항변도 물론 없었다. 늘 이런 일에 습관되여있는듯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뿐… 드디여 중늙은이가 비실거리며 물러났다. 조합장의 거친 표정에서 무엇인가 느낀듯싶었다.

수령님께서 조합장에게 물으시였다.

《조합장동무, 무슨 일이요?》

《장군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귀머거리 미분탄공인데 이야기할 대상이 못됩니다.》

그이께서는 말없는 눈길로 미분탄공을 찾으시였다. 허나 어느새 사람들속에서 사라진 미분탄공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잘 듣지 못합니까?》

《예, 감독에게 얻어맞아 귀가 먹었는데 정신이 좀 들락날락하는 령감입니다.》

그 순간 더벅머리인 송수만이 입을 열었다.

《아니예요, 석아저씬 령감이 아니예요. 이제야 겨우 서른살인데…  왜놈들이 사냥개를 풀어서 물어뜯게 한담부터 그렇게 됐어요.》

그이께서는 순간 불이 이는 눈빛으로 조합장을 바라보시였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구레나룻의 조합장은 마디진 손바닥을 쓸며 말씀올렸다.

《예, 왜놈감독의 사냥개에 물려 거의 죽을번 한 일이 있은담부터 저렇게 되였습니다. 이 수만이의 왼쪽손도 그 사냥개에게 물려 이렇게 됐구… 그 일이 있은 다음 전체 로조가 들고일어났댔습니다. 그후 수만이는 물엿직장 당화공으로, 저 귀머거리령감은 보이라미분탄공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때부터 송수만은 살을 태우는 염산바께쯔를 들고 맨발바닥으로 뛰여다녀야 했고 석회령은 보이라건물의 지하에 있는 하탄장에서 미분탄공으로 처박히게 되였던것이다.

송수만은 어서 말씀드리라고 눈짓하는 조합장을 쳐다보고나서 떠듬거리며 그때일을 죄다 말씀드렸다.

《석아저씬 왜놈사냥개에게 물린 그때부터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세구 귀도 잘 듣지 못해요. 사람들하구 휩쓸리지도 못하구…》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가슴이 아프신듯 이윽토록 삐걱거리는 발판을 거니시였다. 어둑컴컴한 마쇄장에 울리던 참혹하고 원한에 찬 그 비명소리를 듣고계시는듯…

사실 하루 백톤의 석탄을 먹는 그 보이라는 낡고 오래된것이여서 보통사람들은 제대로 돌리기 힘들어했다. 그 보이라의 력사를 더듬어보면 처음 1910년대초 미국군함에 올려놓았던 때로부터 시작해야 할것이다. 그다음 군함이 낡아 페기되면서 어느 한 주변나라에 팔아먹은것을 미국선교사가 여기 대동강기슭에 곡산공장을 세우면서 10년후 눅은 중고값으로 사들여왔다고 한다. 오랜 력사를 가진 원한서린 보이라, 그 보이라와 함께 페인이 되고있는 미분탄공…

《얼마나 가슴아픈 일입니까.》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오래동안 일제에게 식민지노예로동을 강요당해왔습니다. 제나라를 빼앗긴탓에… 하지만 해방된 오늘은 인민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이 동무와 같이 학대받던 로동자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공장의 주인이 되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남달리 손마디가 굵고 겉늙어보이는 조합장을 바라보시였다. 자책에 잠긴 조합장은 고개를 떨구고있었다.

《조합장동무, 동문 여기 로조책임자로서 왜놈들과도 싸운 사람이고 또 공장로동자들이 자기들을 대표하여 추천한 사람이 아닙니까. 나라가 해방되였는데 조합장이 지난날 공장주처럼 행세해선 안됩니다. 인제는 그 로동자들이 나라의 주인입니다.》

마지막까지 곡산공장을 다 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떠나시면서 앞마당에 모인 로동자들에게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이제는 바로 동무들이 공장의 주인으로 되였다고, 공장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공장과 나라를 위하여 힘껏 일하라고, 기술자들과 로동자들이 합심해서 일제가 마사놓은 공장을 하루빨리 복구하여 돌리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모두가 그이를 우러르며 만세를 불렀다. 발벗은 당화공인 송수만도, 구레나룻의 조합장도 목이 쉬도록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날 해방된 우리 인민의 생활향상을 위하여 얼마나 마음쓰고계시는지, 어찌하여 평양곡산공장을 먼저 찾아주시고 그다음 평천리 병기공장과 강선제강소를 향해 떠나시였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

 

×

 

그들은 열관리직장 휴계실에서 나와 공장구내를 걷고있었다. 희미해진 새벽별들이 그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정주선당비서가 천천히 담배를 갈아대며 입을 열었다.

《기사장동무, 이렇게 사연깊은 공장인데 우리 곡산공장이 새 기술을 받아들이는데서도 그 어느 식료공장보다 앞장서야 할게 아니요. 헌데 기술전반을 책임진 기사장이 남의 얼굴만 쳐다보면 일이 어떻게 되겠소?… 부탁하오, 기사장동무. 날 좀 도와주오! 원칙적으로, 과학기술적으로 이 당비서를 좀 도와달란 말이요.》

림성하가 머리를 저었다.

《제가 무슨 힘으로… 당비서동질 도와준단 말입니까?》

정주선은 작업복소매밑으로 드러난 그의 하얀 팔목을 내려다보았다. 말쑥하고 선이 부드러운 흰 얼굴, 연한 반고수에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사람… 남달리 두뇌가 명석하다는 그 점을 내놓고는 어느 하나 손탁이 세고 목소리도 우렁차던 전 기사장하고 너무도 차이나는 새기사장이였다.

한동안 말없이 걷고있던 정주선이 불쑥 물었다.

《마중물이 뭔지 아오?》

《예?》

정주선은 빙긋이 웃으며 그의 손을 이끌었다.

《90고령인 우리 어머니가 늘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요. 어느해인가 우리 집 뒤마당에 처음 물뽐프를 놓았는데 어머니가 아무리 뽐프질을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더라지 않소. 그때 옆집에서 사는 한 로인이 와서 보더니 거기에 물 한바가지를 들이붓고 다시 뽐프질을 해보라고 하더라지 않소. 그래서 어머니가 그렇게 해보니 방법은 아까와 꼭같은데 이번엔 물이 좔좔 쏟아져나오더라나. 우리 어머닌 그 한바가지 물을 두고 마중물이라고 하더구만.》

《마중물?!…》

《그렇소. 무슨 일이든 제일 어려울 때 마중나가 도와주면 한결 쉬운 법이지.》

림성하의 맑고 하얀 얼굴에 발그레한 생기가 돌았다.

《참 좋은 이야기입니다. 비서동지, 앞으로 꼭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그러니 날 도와줄수 있다는거겠소?》

그때였다. 별안간 앞에서 인기척소리와 함께 허우대가 큰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당비서동무 아닙니까? 아, 마침 기사장동무도 있구만.》

석탄때문에 교외탄광지구에 나갔던 한경수지배인이였다. 정주선당비서가 그에게 급히 다가갔다.

《지배인동무 왔구만요. 정말 수고많았습니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 잘됐습니다. 석탄을 실은 기차방통을 끌어왔습니다. 성과 시당에서도 적극 도와주었구. 오늘 아침중으로 하차조직을 해서 불이 나게 제꺽 부리워야겠습니다. 참 기사장동무, 특산물생산은 시작했겠지?》

《예.》

《그러지 않아도 석국장에게서 나한테 전화가 왔더구만. 황금태박사의 기술혁신안을 빨리 물엿직장에 도입하라고 우에서 재촉한다고 말이요.》

림성하는 추운듯 손등을 마주비비였다. 그러건말건 한경수지배인이 계속했다.

《성에서도 우리를 지지해주었소. 빨리 송박사의 기술혁신안을 도입하여 물엿의 질을 높이기요.》

정주선이 그를 넘보며 물었다.

《지배인동무, 너무 서두르는게 아닙니까. 그 일은 좀더 토론해 본 다음…》

《아, 비서동문 절대 걱정하지 말라고 내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책임은 내가 다 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에서도 다 결론을 주었구…》한경수는 어느새 몸을 돌리고있었다.

《난 그럼 석탄하차때문에 나가봐야겠소.》

정주선과 림성하는 아무말없이 지배인이 멀어져가는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열관리직장에서 비쳐오는 불빛, 쏴!- 안전변이 열린 뜨거운 증기소리… 정주선이 림성하를 쳐다보았다. 기사장동문 무슨 할말이 없는가 하는 의미의 눈길이였다.

속삭이는듯 한 림성하의 목소리…

《비서동지, 어쩐지 일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웃단위가 적극 밀어주는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기사장자리에 앉아보니 아래실정을 잘 모르는 일부 일군들이 왜 그렇게 내려먹이길 좋아하는겁니까. 전화통을 들고 이래라, 저래라!… 그런 일군들이 우리한테 왜 필요한지 난 정말 모르겠습니다.》

정주선이 두눈을 쪼프리였다.

《기사장동무, 우의 일군들도 애써 뛰고있지 않소. 석우진국장처럼…》

《예, 뛰고있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사장동무.》 정주선이 엄하게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다른 사람도 아닌 기사장동무가 그렇게 말하다니. 동문 마치 웃사람들한테만 문제가 있는것처럼 말하는데… 과연 그게 기사장동무가 할 말이요?》

《…》

림성하는 눈길을 떨구고말았다.

침묵… 정주선은 지금 기사장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의 말도 옳다. 물론 석국장처럼 모든 일에서 한몸 내대고 힘껏 애쓰는 일군들은 많다. 그들은 잠을 못 자고 앞장에서 이신작칙으로 대중을 불러일으키고있다. 그런데 그 일군들이 열을 낼수록 아래사람들은 불편을 느끼고있다. 무엇때문인가?…

문제는 주장하고 호소하고 내미는 그 일군들의 낡은 사고방식에 있는것이다. 뒤떨어진, 어제날에 배운 낡은 지식으로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와 새것을, 최첨단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높은 리상을 재면서 제멋대로 깔아뭉개고 무시하며 망탕 내려먹이는 낡은 사고방식… 일부 뒤떨어진 이런 일군의 사고방식과 작풍때문에 시대에 민감한 아래사람들의 높은 목표와 지향이 저애를 받고있는것이 아닌가?…

정주선의 생각이였다. 하지만 림성하는 당비서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알지 못하고 꺼질듯이 한숨만 길게 내긋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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