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 회)
제 2 장
마중가는 사람
3
송해연은 두툼한 기술서적을 안고 물엿직장으로 향했다. 무엇때문인지 밤새도록 잠 못이룬 할아버지가 늘 가지고다니던 이 책을 잊어버리고 이른새벽에 공장으로 나갔던것이다. 어쩐지 할아버지가 걱정되였다. 혹시 새로 내놓은 기술혁신안에 무슨 문제가 생긴건 아닌지? … 그럴수는 없다. 이미 물엿직장에서는 할아버지의 기술혁신안대로 설비를 개조할 준비를 하고있다고 한다. 송해연이 보건대도 그것은 가장 좋은 물엿을 만들어내려는 할아버지의 꿈을 실현할수 있는, 한생의 경험과 기술이 그대로 집약된 기술혁신안이였다. 그러므로 해연은 림성하기사장을 비롯한 몇사람이 반대하고있고 그 리유도 옳지만 할아버지의 기술혁신안이 물엿직장에 도입되는것을 누구보다 기뻐하고있는것이였다.
돌연 열관리직장으로 돌아서는 모퉁이에서 녀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댓명의 녀인들이 새로 보수한 건물지붕에 씌우고 남은 풀색의 경질철판을 밀차에 싣고 이쪽으로 마주오고있었다. 가만 보니 당과류직장 녀인들 같다. 몸이 좀 실하고 얼굴이 훤한 녀인은 조성희반장이고 단발머리에 나이가 어려보이는 처녀는 언젠가 기능공학교에서 본적이 있는 정춘심이였다. 그중 키가 자그마하고 오동통한 녀인은 《소문이》라고 불리우는 오복금이다. 당의기에 알사탕을 넣고 빙글빙글 돌리는 당의공으로서 눈도 귀도 입도 당의기처럼 사방 어찌나 잘 돌아가는지 공장에 돌아가는 소문이라면 모르는게 없고 또 자신이 소문을 자자하게 퍼뜨리군 해서 입덕을 단단히 보는 녀인이였다.
그들이 반가와했다.
《어이구, 해연기사로구만!》
《정말?… 그래 공장에 돌아왔다는게 사실인가?》
해연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예, 전주부터 공업시험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소문이인 오복금이 밀차를 놓고 손을 털었다.
《글쎄, 아무러면 황금태박사아바이의 손녀가 다른데서 둥지를 틀가? 괜히 뒤에서 헛소리들만 하면서…》
녀인들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러게 말이예요.》
《헌데 나같으면 말이야…》 오복금이가 철판우에 걸터앉으며 잰 말씨로 시작하였다. 《일단 나갔으면 아예 멀찌기 가버리구말겠어. 지운섭부직장장처럼 말이야. 그 사람두 우리 공장보다 더 좋은데 간다질 않아? 그때 지운섭부직장장이 우리 녀자들을 가고싶은데루 다 보내줄 때 나도 나가지 못한게 후회되거던.》
단발머리처녀 정춘심이 그에게 눈을 흘겼다.
《아이참, 인젠 우리 공장도 현대화를 하는데…》
《하긴 나두 그래서 남았지. 세대주가 직장을 그만두라구 얼마나 달궜다구.》
사실 그의 남편을 탓할수만 없는 일이였다. 대부분이 녀성로동자들인 곡산공장은 생산만이 아니라 사회로동도 거의 녀성들이 도맡아하군 했다. 건물을 까내고 새로 쌓고 칠하는 방대한 공사도 이 녀인들이 다 해제끼였다. 그러니 가정부인들인 이들이 언제한번 살림살이를 제대로 해봤겠는가. 송해연은 자기가 가장 힘들 때 몸을 사린 도피분자처럼 생각되여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나이가 어린 정춘심이 해연이쪽을 향해 웃음을 날렸다.
《참, 기사동진 그동안 더 예뻐졌어요. 그전보다 더 세련되여보이구…》
아까부터 해연의 화장이며 멋들어진 머리단장을 가만히 눈여겨보던 그였었다. 그러자 소문이 오복금이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새삼스레 살펴보았다.
《정말?!… 혹시 애인이 생긴게 아니야?》
해연은 시들하게 웃었다. 남달리 깨끗한것을 좋아하고 세련미를 중시하는 그였지만 자기가 결코 미인이라고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많은 남자들이 류달리 눈에 뜨이는 그에게 접근해왔지만 곧 물러가군 했다. 그것도 혀를 차며 《오목눈하군 상대두 말라는게 무슨 소린가 했더니, 원참!》 하면서 달아나는것이였다. 그래서인지 서른이 가까와오는 지금까지 해연에게는 애인이라고 할만 한 사람이 없다.
고개를 기웃거리던 오복금이 눈웃음을 쳤다.
《혹시… 그 애인이 우리 공장에 있는지도 몰라. 이전에도 해연기사한테 꼼짝 못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아, 응? 우리 기사장두 아니, 이전에 공업시험소장을 하던 그 사람도 그래 또 기술과에서 일하는…》
조성희반장이 그에게 눈총을 놓았다.
《오복금이, 무슨 허튼소리야?》
《내가 뭐 없는 소릴 했나? 이전부터 오빠, 동생하면서 기사장동지가 해연기사만 내세우는건 사실이 아닌가? 그렇게 곰살궂은 사람이 자기 색시한텐 왜 큰소리를 치는지, 원… 글쎄, 아까 공장에서 기사장동지를 만난 안해가 울면서 돌아가더구만. 꼭 중병을 앓는것 같더라니깐. 한손으로 허리를 잡고 겨우 걷는게…》
해연은 흠칫했다. 자기가 잘못 듣지 않았나싶어 그를 멀거니 마주보았다. 한순간 고속도로건설장에서 처음 보았던 기사장의 안해 최은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달덩이처럼 훤한 얼굴에 크고 시원해보이는 두눈, 함마질에 단련된 두팔과 단단한 어깨, 척 보아도 담차고 걸싼 돌격대녀성중대장의 기품이 엿보이는 처녀… 송해연은 단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강하고 억센 그 성격이 림성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그 돌격대중대장처녀가 위험에 처한 림성하의 생명을 구원했으니!… 하여 송해연은 그 누구보다 그들의 결혼을 지지하고 찬성했었다.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해주었었다. 그런데 그가 울면서 돌아갔다구? 무슨 중병을 앓는것 같더라구?…
그러니 그 일이 이 해연이때문이란 말인가. 그 어떤 껄끄름한것이 목구멍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무어라고 말할 힘도 없다. 찌르는듯 한 눈길로 그 녀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제멋대로 떠들던 오복금이 해연이를 보자 말을 떠듬거렸다.
《아니, 왜 그래? 나야… 본대로 말했는데.》
해연은 다시금 추운듯 몸을 옹송그렸다. 그 녀자의 말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던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에게서 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줄곧 들으며 자라온 송해연은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을 졸업하자 곡산공장 공업시험소로 달려왔었다. 처녀는 하늘의 별을 따오려는 엄청난 꿈을 안고 먼저 림성하소장이 연구하는 효소배양연구에 뛰여들었다. 하여 그들은 함께 이마를 맞대고 효소를 배양하였고 함께 실험했으며 함께 밤을 새우기도 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해연은 실망을 금할수 없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꼭같은 방법으로 진행하는 기술공정, 오래된 낡은 설비들과 밖에 가마를 걸고 불을 때여 농축하는 공업시험소의 락후한 실험설비들… 공장은 할아버지가 정을 품고 자랑하던 그런 훌륭한 곳이 아니였다. 너무도 늙고 낡아빠진 공장이였다. 이런 곳에서는 연구를 더 심화시킬수 없었다. 적어도 현대적인 실험설비들과 측정기구들이 갖추어진 실험실에서 마음껏 연구하고싶었다.
생각끝에 해연은 힘들게 할아버지를 설득시키고 공장을 떠나 식료연구소로 자리를 옮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면서 할아버지의 얼굴에 흙칠했다고 수군거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격분했지만 송해연은 식료연구소에 올라가 효소물엿을 위한 효소연구를 다그쳤고 여러가지 경험과 교훈을 쌓았었다. 비록 공장을 떠났지만 앞으로 공장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야 한다는 생각을 언제한번 버린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공업시험소로 돌아온 그였다. 하지만 곡산공장에서의 효소물엿은 아직 꿈에 불과했었다. 하는수없이 그는 할아버지의 산분해법혁신안을 지지하면서도 기사장이 된 림성하와 효소배양연구를 계속하고있다. 과거와의 절충, 새것을 지향하나 낡은것과도 아직 헤여지지 못하고있는 모순된 심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장 림성하는 효소연구에 경험이 있는 이 송해연이 돌아온것을 진심으로 기뻐했었다.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고있었다. 허나 그것이 이런 말밥에 오를줄은…
단발머리처녀 정춘심이 앞쪽을 눈짓했다.
《저것봐요! 직장장이예요.》
당과류직장장이 무엇때문인지 잔뜩 골살을 찌프리며 걸어오고있었다.
누군가 투덜거렸다.
《또 욕이 터지겠네.》
아닐세라 직장장은 처음부터 왜가리청이다.
《뭣들 하고있어? 여기서 해구멍 틀어막을 작정이요?》
오복금이 그의 턱밑에 바싹 다가섰다.
《에그, 이마살은 좀 펴시라구요! 제 둥지를 찾아온 바다새가 놀라 달아나겠수다.》
《바다새라니?》
다음순간 직장장은 머리를 홱 돌렸다. 낡고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녀인들과는 달리 산뜻한 옷차림에 얼굴이 해말간 송해연을 곱지 않게 흘겨보면서 그가 말했다.
《여기가 무슨 바다라구?…》그는 흥흥 코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목청을 돋구었다. 《바다새는 이런데 오지 않아. 바다에서만 쌍쌍이 춤추지.》
《그래두 바다새야 고운 새지요. 오죽하면 〈갈매기야 갈매기야〉하는 노래까지 있겠어요.》
《잘은 안다, 갈매기와 해연이가 서로 같은줄 알아? 그건 그렇구… 옛날부터 부뚜막 귀떨어진거 흙땜하긴 쉬워두 사람마음 귀떨어진거 땜질하긴 힘들다구 했어!… 자, 어서 가자구!》
직장장은 밀차를 들어올리며 끙! 하고 힘을 주었다. 송해연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언제는 공장이 싫다고 나가더니 이제 와선 직장녀인들을 든장질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였다.
녀인들이 밀차를 밀고 그의 옆을 지나갔다.
《그럼, 잘있어.》
《다시 만나요!》
《…》
해연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멀어져가는 그들이 주고받는 소리에 귀를 강구었다.
《어쨌든 황금태아바이가 기뻐하시겠어요.》
《할아버지뿐인가, 기사장두 그렇지.》
《아니, 또 기사장소리야?》
불시에 목구멍이 타들었다. 눈물까지 찔끔 솟았다. 누군가 손가락질하며 자기의 허물을 뒤집고 비웃어대는것 같았다.
기사장 림성하, 남달리 탐구정신이 강한 그가 세계적인 효소배양연구에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애쓸 때 이 송해연이 적으나마 도와나선것이 과연 잘못이란 말인가?…
열이 오른 해연은 자기가 어떻게 물엿직장에까지 갔는지 알지 못했다. 중화탕크에서 나오는 뜨거운 김이 얼굴을 후끈 달구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발이 닿는대로 육중한 탕크들과 관들이 늘여진 좁은 철계단을 올라가던 해연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의 불같은 목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던것이다.
《…우린 박사아바이를 존경합니다. 한생 곡산공장을 위해 사셨고 또 로동계급출신의 기술자로서 박사로 불리우며 누구보다 강냉이가공기술과 물엿에서도 권위자이고… 하지만 이번에 내놓은 아바이의 안에는 의견이 있습니다.》
깜짝 놀란 해연은 급히 철계단을 마저 올라갔다. 뜬김이 서린 중화탕크앞에서 솜옷을 입은 한 청년이 할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있었다.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중화탕크의 감시창을 돌아보고나서 청년에게 물었다.
《동문 누구요?》
《물엿직장에 새로 온 공정기사 주광혁입니다. 아바이처럼 황금태박사가 될 꿈을 안고 물엿직장에 왔습니다.》
해연은 웬일인지 가슴이 떨렸다. 키가 훤칠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제대군관, 언젠가 다리를 지나는 송해연에게 말을 걸었던 그 젊은이들속에 끼워있던 공정기사… 해연은 할아버지에게 달려가고싶었지만 녹아붙은 엿판대기를 밟고있는듯 걸음을 뗄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온도계에 눈길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일이지!… 꿈을 잃지 말라구. 그게 중요해. 그래 나한테서 무엇을 바라나?》
주광혁이 잠시 망설이는듯싶었다. 다음순간 자기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는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전 박사선생님에게 묻고싶었습니다. 박사선생님은 지금 자신이 내놓은 기술혁신안으로 가장 훌륭한 물엿을 만들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오래전부터 해오던 낡은 산분해법으로 말입니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앞에 놓여있는 긴 나무의자에 다가가 앉았다. 육중한 중화탕크가 눈앞을 꽉 채운듯 작고 축축한 눈을 가느스름하게 쪼프리였다.
《내 그래서 온줄 알았네. 그 눈빛이 다 말해주고있어. 계속하라구. 그래서?…》
주광혁이 불같은 눈빛으로 할아버지가 서있던 온도계앞으로 다가가며 계속했다.
《인젠 우리 곡산공장도 세계적추세인 효소물엿을 생산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이지.》
《그런데도 우린 아직 낡은 산분해법에서 깨여나지 못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래 박사아바인 자신의 기술혁신안이 낡은 기술을 고집하는것으로 된다는걸 모르신단 말입니까?》
잠시 아무말없이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고마우이, 깨우쳐줘서.》
《박사아바이, 절 그렇게 비웃지 마십시오.》
할아버지가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난 진심을 말하고있네, 진심을!… 하지만 생각해보게, 효소물엿을 만들자면 효소를 배양해야 하네. 그 배양기술도 어렵지만 효소원균을 찾는건 더 힘들지. 그래서 활성이 높은 효소원균 하나를 찾는데 한생이 바쳐지기도 하는걸세.》
해연은 속이 후련해지는것을 느꼈다. 할아버지가 단 몇마디 말로 그를 길들였다고 보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광혁은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렵다고 물러설수야 없지 않습니까. 물론 아바이가 낡은 산분해법을 얼마간 또 혁신했다는걸 우린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드는 숱한 자금과 노력을 효소배양연구와 옥당직장의 균배양기현대화에 돌리면 그만큼 효소물엿연구와 생산이 당겨지겠는데 우린 여전히 낡은 산분해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으니… 전 이것이 가슴아픕니다. 그러고도 우리 장군님을 공장에 떳떳이 모실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쏴!- 뽀얀 안개가 주위를 흐려놓았다. 중화탕크의 배출구에서 뿜어나오는 더운 김이였다.
해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참을수 없었다. 엊그제 들어온 햇내기가 무엄하게도 할아버지를 가르치려드는것이다. 감히 황금태박사를?!… 아까부터 언짢던, 거의 분노에 가까운 그 무엇이 드디여 배출구를 찾은듯 가슴속에서 내뿜기 시작했다. 한걸음 또 한걸음 철계단을 올라간
해연은 자기가 어떻게 주광혁의 앞에 나섰는지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의 코앞에까지 육박해갔는지 알지 못했다.
《동무가 뉘길래 함부로…》 해연이 낮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들이대였다.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우리 할아버질… 모욕하는거예요?》
주광혁이 깜짝 놀라 처녀를 바라보았다. 서슬푸른 그 눈빛에 온몸이 얼어붙은것 같았다.
《아니? 동문…》
《그래요, 난 바다새예요! 파도우에서 춤추는 새가 공장에 날아왔어요. 그래 그게 당치않다는거예요?》
분노한 처녀는 지금 자기가 입심사나운 종합직장의 녀인들에게 하고싶었던 말을 그대로 외우고있다는것을, 그때부터 속에서 끓고있던 분노를 이 애꿎은 공정기사에게 터뜨리고있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바다새라니?…》 어리둥절해진 주광혁이 눈을 흡뜨며 혀아래소리를 했다. 《난데없이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린가구요? 그래 동무가 방금 누굴 모욕했는지 알기나 하세요?》
그때 할아버지가 그를 막아나섰다.
《해연아, 그만둬라! 그 사람의 말이 옳다.》
《예?!》
놀란것은 송해연이 아니라 말뚝처럼 자리에 박혀있던 주광혁이였다. 송수만로인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기며 괴롭게 눈을 쪼프렸다.
《늙은게 왜 제때에 그것을 막지 못했는지 난 지금도 자신에게 묻고있네. 그래, 산분해법으로야 제일 좋은 물엿을 만들수 없지, 없어!… 그래 더 물을 말이 있나?》
주광혁은 대답을 못하고 도사처럼 근엄한 송수만로인을 존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해연이도 할아버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로인은 서로 마주서있는 그들의 앞을 지나 천천히 좁은 철계단을 내려갔다. 걸음걸음 힘들게 옮기며 당화탕크쪽으로 멀어져가고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 송박사가 생의 마무리를 두고 얼마나 괴로와하고있는지, 얼마나 큰 고민에 휩싸여있는지 알지 못했다.
해연이만이 그 마음을 알고있다. 해연이만이 할아버지의 그 마음속 꿈과 희망을 속속들이 꿰들고있는것이다.
해연은 혀를 깨물며 눈물을 머금었다. 질좋은 물엿을 생산하여 이제 공장에 찾아오실 아버지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리라고 믿었던 할아버지, 그것으로 할아버지의 한생을 자랑스럽게 총화짓고 말년을 빛나게 장식하리라고 믿어의심치 않던 해연이다. 그런데 한 청년이, 길가에서 처녀들에게 희떠운 소리나 줴치던 그가 바로 온 공장이 존경하고 자랑하는 할아버지에게 아픈 못을 박은것이다.
두툼한 기술서적을 품에 꼭 그러안고있던 해연은 눈물을 머금으며 할아버지가 내려간 좁은 철계단으로 달려갔다.
순간 등뒤에서 울려오는 거센 목소리…
《동무, 거기 좀 서시오!》
주광혁이였다. 해연은 그 자리에 멎어섰다. 뚜벅뚜벅… 힘찬 걸음소리가 그의 등뒤에 와서 멎었다. 귀전에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주광혁은 잠시 자기의 격한 심정을 억누르려고 애쓰고있는듯 했다.
그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난… 동무 할아버지를 대단히 존경하는 사람이요. 하지만 오늘 내가 말하자고 한건…》
처녀가 홱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꼿꼿해진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존경심은 말로 표현하는게 아니예요.》
《해연동무, 우선 내 말부터 듣고 좀…》
《됐어요! 더 듣고싶지 않아요.》 해연은 그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아까 할아버지가 자기의 이름을 불렀다는것도 잊고 내쏘았다. 《동무가 내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다신 동무와 만나지 않길 바래요!》
몸을 돌린 해연은 철계단으로 향했다. 못이라도 박을듯 한 구두발소리가 좁은 철계단을 울렸다. 주광혁의 존재를 무시하고 경멸해버리듯 줄곧 앞쪽만 바라보며 꼿꼿하게 내렸다.
하지만 그때 처녀는 제대군관 주광혁의 감때사나운 눈빛이 오래도록 자기의 등뒤에 머물러있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