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 회)
제 2 장
마중가는 사람
2
대형보이라에 불을 지피자 온 공장이 큰숨을 내쉬게 되였다. 드디여 숨죽었던 공장이 다시 살아난것이다. 불을 떠나서는 단 한시도 숨쉴수 없는 공장… 불은 곧 열이고 힘이다. 그 뜨거운 열과 힘이 피줄처럼 크고작은 배관들을 따라 모든 직장들과 작업반들의 기대마다에 쏴-쏴!- 증기발을 뿜어주면 그 힘찬 흐름에 따라 모든 공정들에서 생산물이 쏟아져나오는것이다.
림성하는 지방의 특산물로 여러가지 식료품생산을 시작한 당과류직장으로 향했다. 원래 공장 앞정문과 마주하고있는 3층짜리 당과류직장건물은 웃층에 회관이 있고 아래층에서는 사탕을 만들던 직장이였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당과류생산을 못하게 되자 이번에 공장에서는 직장의 낡은 설비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삼일포특산물공장과 같은 생산공정을 꾸려놓았던것이다.
작업장에 들어서던 림성하는 돌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칠거렸다. 절임탕크에서 넘어난 소금물이 바닥에 질펀해서 그만 미끄러졌던것이다.
복도에서 은행씨를 까고있던 당과류직장 녀인들이 웃으며 주의를 주었다.
《주의하십시오! 기사장동지.》
림성하가 어줍어하며 중얼거렸다.
《정말 여기선 조심해야겠군.》
녀인들이 웃으며 뭐라고 소곤거렸다.
림성하는 그들의 귀속말을 못 들은듯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원래 곡산공장은 녀성들이 많은 공장이다. 열관리직장이나 가공직장, 공무직장에는 남자들이 대다수이지만 나머지 직장들에는 녀성들이 태반이였다. 그리고 자기 직종에서 오래 일해오는 과정에 그들의 성격도 직종에 따라가군 했다. 주로 과자직장은 평평한 과자처럼 녀인들이 편안한 축이고 속사탕직장은 드세차고 걸걸한 성격들이며 당과류직장은 알알이 영근 사탕알처럼 야무지고 맺힌데가 있었다. 하지만 공정들이 큼직큼직한 강냉이가공직장의 사람들은 강직하면서도 마음이 후하고 무던했으며 물엿직장의 사람들은 늘어지긴 했지만 시원시원하고 궁냥도 넓은것이 특징이였다. 그런데 지금 기사장을 두고 호함지게 웃고있는 녀인들은 당과류직장의 야무진 녀인들이였다. 그들은 림성하가 공업시험소장을 할 때부터 그를 잘 알고있었고 또 좋아했다. 만날 때마다 롱질도 많던 녀인들이였다.
갑자기 복도에서 마주오던 2작업반장 조성희아주머니가 림성하를 잡아끌었다.
《기사장동지! 하나 제기할게 있습니다.》
《예, 무슨 일인지?…》
조성희가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기 분쇄기 말이예요. 자리가 좁아서 들여놓을데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림성하는 찜가마에서 오르는 증기로 하여 뽀얗게 서린 작업장을 둘러보았다. 그 한가운데 복도를 내고 량옆에 칸칸이 막은 비좁은 작업장… 첫번째 칸에서는 장화를 신은 녀인들이 오이, 도마도, 고추, 홍당무, 무우잎을 절임하고있었고 다음칸에서는 말린호박과 고구마줄거리, 말린가지와 고사리를 선별하고있었다. 창문옆에 놓인 수산물가공공정에서는 고무장갑을 낀 녀인들이 물낙지를 가공하고 그옆에서는 다시마를 세척하여 절단한 다음 건조로에서 말리고있었다. 또 그뒤에 설치한 국수기계와 술가공기계들…
녀인들이 수군거렸다.
《정말 숨막혀죽겠어. 한곳에다 몽땅 쓸어모아놓으니…》
《나같이 몸좋은 기대공은 움직이기도 힘들다니까.》
《그런데다가 처음 해보는 산나물가공이여서 손에는 얼마나 설다구. 아, 글쎄 사탕, 과자를 만드는 기능공들이 뚱딴지같이 산나물이 다 뭐야, 잉?!…》
조성희반장이 수다스러운 녀인들에게 눈총을 놓았다.
《아유! 무슨 말들이 그리 많을가. 이렇든저렇든 생산품이 나와야 공장을 살렸다고 할게 아니겠나요.》
그의 말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림성하도 할말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다녀야만 하는 넓은 부지에 여러개의 덩지 큰 건물들이 자리잡고있는 곡산공장, 이 엄청나게 큰 공장에 차려놓은 자그마한 삼일포특산물식생산공정…
하지만 한쪽에 새로 들여온 드롭프스공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은근히 빛났다. 최근 당과류설비중에서는 가장 현대적이라고 할수있는 자동화된 설비… 그것은 이번에 삼일포특산물식공정을 꾸리면서 아오먼의 기업가 쑤치오에게서 납입해들인 설비였다. 일반적으로 세계적인 설비현대화의 방향은 설비의 정밀화와 고속도화, 경량화이다. 하지만 발전된 나라들의 기업가들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의 정보화를 실현하기 위한 목표에로 치닫고있다.
림성하는 가볍게 한숨을 내그었다. 우리 곡산공장에도 정보화시대에 맞는 현대적인 설비를 갖추어놓고 질좋은 효소물엿을 생산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허나 지금 그것은 한갖 꿈에 불과한것이다. 여기 종합직장에 자동화요소를 갖춘 새 식료기계설비들을 놓은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성희반장이 그를 건드리며 물었다.
《기사장동지, 그래 어떻게 하잡니까?》
림성하는 그에게로 몸을 돌렸다.
《뭘 말이요?》
《아, 분쇄기설치 말입니다.》
그제야 림성하는 아까부터 조성희반장이 그에 대하여 묻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반장동무, 그 문젠 설비담당부원과 토론해서 자리를 선정한 다음 알려주겠습니다.》
《예, 그럼 래일까진 꼭 대책을 세워주십시오.》
《래일까지?…》
《왜, 힘든가요?》
그는 소리없이 웃었다. 흔히 로동자들은 자기들을 지도하는 일군이 뜨뜨미지근하거나 옴니암니하면서 일을 축내지 못하는것을 제일 싫어한다. 상대하기도 싫은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귀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오늘밤중으로 해치웁시다. 그럼 되겠지요?》
그가 헌헌하게 말하자 녀인들이 입을 딱 벌렸다.
《에구마, 우리 기사장동지 정말 멋있다야!》
다음순간 터져나온 박수, 모두 약속이나 한듯 일시에 짝짜그르 박수를 치고있다.
《아, 이러지들 마시오.》
그는 얼굴을 붉히며 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흥그러워졌다. 그들의 박수야말로 그에 대한 기대였고 지지와도 같은것이였다. 드살 센 공장의 녀인들이 진심으로 기사장의 앞날을 축복해주는것이였다.
문득 석우진국장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 녀인들이 보내는 박수를 어떻게 리해할가?…
병원으로 달려온 그를 외면하며 수술장으로 들어가던 석우진이였다.
《아니요, 내가 기다린건 저 사람이 아니요.》
물론 림성하는 그가 하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유리간막이너머 저쪽에서 그를 언짢게 바라보던 석우진의 눈빛과 입놀림으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하여 그는 수술이 끝날 때까지 대기실 유리간막이앞에 그린듯 서있었다. 오랜 시간을 그렇게 서있었다. 어쩌면 다시 못볼수도 있는 석우진, 친형보다 더 가깝고 투박하면서도 진실한 석국장에게 자기가 아픈 못을 박은것이 속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것이 석우진에게 한 마지막말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은 마냥 미여지는듯 했었다.…
밖에서는 맵짠 칼바람이 불어치고있었다.
×
림성하는 솜옷의 목깃을 잔뜩 올리고 공업시험소로 가고있었다. 지금 공업시험소에서는 두번째 효소배양실험을 준비하고있었다. 공장에서는 황금태박사아바이의 기술혁신안대로 산분해법에 의한 물엿공정을 내밀고있지만 시험소에서는 비록 소규모이긴 해도 효소배양을 다시 시작하려는것이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불렀던것이다.
《여보!》
안해였다. 반갑게 웃는 시원한 두눈이 마주오고있다.
《당신이 어떻게?》
《아이참, 매일같이 오군 하는데 뭐 새삼스럽게.》 안해는 등에 지고있던 배낭가방을 벗어서 길섶의 아름드리철관우에 내려놓았다.
《아직 식살 못했지요?》
다음순간, 허리를 굽히던 안해가 혀를 깨물며 나직이 신음소리를 내였다. 허리에 손을 얹고 그대로 굳어지는데 안해의 벌려진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날리고있었다.
《왜 그러오?》
그가 묻자 안해는 힘들게 눈길을 들었다. 애써 웃어보이려 했으나… 웬일인지 고통스럽게 이지러진 입가의 잔주름만 꿈틀거릴뿐이였다.
《당신 혹시…》
그가 또 입을 열자 안해는 머리를 저었다. 더 묻지 말라는 의미같았다.
《빨리 식사하세요. 좀 늦었어요. 인민반원들 로력지원을 조직하다보니…》
그제서야 림성하는 안해가 낡은 솜옷을 껴입고 목도리까지 둘둘 감은 작업복차림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시당에서 곡산공장의 현대화를 돕자고 호소하자 많은 기관, 기업소들은 물론 가까운 동, 인민반들에서도 떨쳐나섰던것이다.
《헌데 그건 리발가위가 아니요? 참, 그런건 왜 또 가지구 나오면서 그러오?》
가방을 뒤지던 안해의 손이 무춤 멎었다.
《당신 머리칼이 지금 얼마나 길었는지 아세요?》
이전에 돌격대중대장을 하던 그 시절에 리발솜씨를 익힌 안해여서 남편의 머리도 매번 그가 깎아주군 했었다.
《됐소, 지금은 바쁘오.》
《아무리 바쁘면 한 15분쯤 낼 시간도 없단 말이예요?》
《그럴새 없다니까!》 그는 증을 내였다. 《요즘 눈코뜰새가 없이 바쁘다는걸 당신 모르오?》
《…》
안해는 잠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손에서 빈 가위소리가 잘칵거렸다.
《여보.》 드디여 안해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도 당신이 몹시 바쁘다는걸 잘 알아요. 기사장일이 힘들다는것도… 하지만 그럴수록 공장사람들을 따뜻이 대해주세요.》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해연기사 할아버지 말예요, 당신이 로인을 노엽혔다던데…》
《그건 누구한테서 들었소?》
《그게 중요한건 아니예요. 아무튼 황금태로인이야 당신의 스승인데…》
《됐소. 그건 순수 기술공학상의 문제이니 당신이 상관할바가 아니요.》
다음순간 좁혀지던 그의 미간이 대번에 펴졌다. 눈빛도 달라졌다. 열어놓은 안해의 가방안 작은 꾸레미에서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던것이다.
《가만, 이거 남새빵 아니요?》
《예.》
《아직 따끈따끈하구만.》
그가 제일 좋아하는것이 남새빵이다. 주로 아이들과 녀자들이 남새빵을 좋아한다지만 음식들중에서 특별히 그것을 좋아하는 림성하였다.
그는 빵 한개를 움켜쥐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래 우리 정국이도 실컷 먹었겠지?》
목이 멜 지경으로 빵을 쓸어넣으며 그가 물었다. 묻지 않을수 없는 그였다. 아버지를 닮아 어린 아들 정국이도 남새빵이라면 자다가도 뛰쳐일어나는것이다.
《…》
그런데 웬일인가?… 안해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수그리는것이였다. 기미가 이상했다. 그는 입안에 쓸어넣은 빵을 정신없이 씹다말고 숨찬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오?》
안해가 또 신음하는듯 했다. 여전히 머리를 들지 못하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제가 오늘… 잘못했어요.》
《그건 무슨 소리요?》
《제가 좀 먼데 나가면서 정국이를 옆집 동철이네 집에 맡기구 갔댔는데…》
《그런데?》
《글쎄 정국이가 그 집 고양이를 안구 놀다가…》
《고양이를? 그래서?》
《고양이한테 할퀴면서 피가…》
《뭐?!》
가슴이 섬찍했다. 갑자기 숨길이 꺽 막히는것을 느꼈다. 하여 그는 손에 쥐고있던것을 부스러뜨리며 신음소리처럼 부르짖었다.
《정신있소? 애를 두고 혼자 나다니다니, 집에 있으면서 애 하나 똑바로 건사 못하구… 엉?!》
혀가 잘 돌지 않았다. 아들 정국이가 고양이한테 물리웠다니… 그는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또 다우쳐물었다.
《그래 지금 어데 있소? 그 애가 지금 어떻게 됐나 말이요?》
《앤… 일없어요. 주사랑 맞구 지금은…》
안해는 해쓱해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눈빛조차 얼어붙는듯 했다. 여느때없이 할끔해지고 바싹 여윈 모습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런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애가 그렇게 됐는데두 혼자 놔두구 오다니?》
어느새 그의 눈빛은 차거워졌다. 목소리도 떨렸다.
《이제 정국이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오?… 어떻게 하나 말이요?》
그 누구보다 아들애를 사랑하는 아버지, 이 세상 수많은 어머니들보다 더 끔찍이, 거의나 맹목적으로, 병적으로까지 자식을 사랑하는것으로 유명한 그였다. 남자들도 모성애에 못지 않은 부성애를 가지고있다는것을 증명하는 아버지의 한 대표자라고 할가…
그러한 림성하였으므로 안해가 할일 많은 인민반장이며 더없이 바쁜 녀자라는것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안해가 뭣때문에 좀 먼곳에 갔다왔는가 하는것도 묻지 않았다. 아들애에게 류달리 정을 쏟고있는 그에게는 정국이와 직접 관련되지 않는 한 별로 상관할바가 아니였다.
그는 몸을 홱 돌렸다. 당장 아들애에게 가보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하여 그는 무작정 정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의나 뛰다싶이했다. 그러나 얼마만엔 다시금 걸음을 멈추었다. 숨이 차서 헐떡이였다. 그래 림성하, 지금 어데로 가고있는가? 자기가 기사장이라는것을 잊었는가?…
그때 누군가 그를 부르며 달려왔다.
《기사장동지!-》
공업시험소 시험기사였다. 요즈음 시험소에 새로 온 송해연이랑 같이 벌써 여러날째 효소배양실험준비로 밤을 새우는 사람이였다.
림성하는 가까이 다가온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닙니다. 기사장동지, 효소배양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렇소?》
그는 마음을 놓았다. 다음순간 그는 생각난듯 또 물었다.
《참, 아침식사는 했소?》
강영길기사가 눈길을 떨구었다.
《밥이 다 뭡니까? 실험준비에서 빈틈이 없는가 살피느라 정신이 다 나갈 지경인데…》
《그렇다구 사람까지 끼니를 번지겠소?》
비로소 그는 생각나는것이 있어 피끗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안해는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여보, 그걸 이리 가져오우. 빵 말이요.》
안해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
림성하는 안해가 들고온 빵꾸레미를 집어들자 시험기사에게 덥석 안겨주다싶이 했다.
《자, 받소. 집에서 내온건데 가서 맛보오.》
얼떠름해진 시험기사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기사장동진?…》
《괜찮소. 난 실컷 먹었소.》
시험기사가 최은경에게 굽석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그러나 최은경은 인사를 받을새도 없었다. 림성하가 어느새 시험기사의 잔등을 떠밀었던것이다.
《자, 빨리 가기요. 지금 해연동무랑 얼마나 배고프겠소.》
《아, 그 동문 일없습니다.》시험기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해연동문 효소배양만 시작하면 자긴 한주일이상 굶어두 기쁘겠다구 했습니다.》
《이 사람 무슨 소릴 해? 그래 해연일 제쳐놓구 혼자서 다 하겠다는거요?》
《아, 기사장동지, 그런게 아니구…》
《자, 빨리 가기나 하자구.》
림성하는 시험기사를 떠밀다싶이 하며 가고있었다. 뒤쪽에서 안해가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있는것도 알지 못하였다. 말 못할 아쉬움과 허전함 그리고 서운함이 안해의 두눈에 눈물로 서서히 고여오르는것도 알지 못하였다.
마침내 최은경은 두손으로 허리를 부여안으며 천천히 땅바닥에 쭈그리고앉았다. 금시 뼈를 비트는듯 엄습해오는 모진 아픔… 녀인은 맵짠 추위에 퍼렇게 얼어든 입술을 떨며 멀어져가는 남편의 뒤모습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