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2 장

마중가는 사람

 

1

 

정주선은 고무연기가 타래쳐오르는 보이라화실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고무를 태우는 역한 냄새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두툼한 손으로 독한 써레기를 말고있던 나이많은 열관리공 천대삼이 그를 향해 뜨직뜨직 말했다.

《비서동진 그만 들어가시우. 이런 험한 일에까지 손을 대시지 않은들…》

보이라화실안을 들여다보던 정주선은 의아쩍어하는 눈빛을 그에게로 던졌다.

《내가 뭐 이런 일이 처음이라구… 혹시 내가 방해가 돼서 그러는건 아니요?》

《방해까지야 뭐… 오히려 당비서동지가 나와있으면 우리가 하는 일이 제일 중하구나 하는 생각에 성수가 나지요. 하지만… 오늘은 비서동지안색이 영 좋지 않수다.》

《아니, 내 안색이 어떻다는거요? 석탄먼지가 올라 좀 시꺼매졌겠지.》

《아니, 불을 보는 우리 눈이야 못 속이지요.》

《그렇다?!》

정주선은 하는수없이 웃고말았다. 불을 보는 눈이라… 불을 보는데서 제일 유능한 열관리공이다. 그의 이름은 천대삼, 화실안의 불길높이나 색갈만 보고서도 몇도인가를 알아맞힌다. 불을 지펴도 남들이 쓰는 질좋은 탄을 얼마 들이지 않고 쉽게 살리는 묘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천불》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천가 성에 《불》을 붙여놓은것이다.

정주선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내게두 한대 주시우.》

《독하우다. 여느 담배는 슴슴해서 맛이 없지요.》

정주선도 알고있었다. 가치담배보다 늘 독한 잎담배만 구해다 피우는 천대삼이였다. 그가 담배쌈지에 넣어두었던 마라초를 꺼내여 내밀더니 불까지 붙여주었다.

그들은 잠시 아무말없이 독한 마라초만 뻐금뻐금 빨았다. 화실안에서는 시꺼먼 연기가 꿈틀거리고있었다. 그속에서 뻘건 불길이 솟구칠 때마다 구름같이 몽키던 연기타래가 회오리를 일구며 굴뚝으로 세차게 빨려들어가군 했다.

《어떻소, 불이 붙을것 같소?》

《걱정마시우. 이젠 거의 됐수다.》

정주선은 다시금 마라초를 뻑뻑 빨았다. 목이 칼칼했지만 아무 맛도 모르며 줄곧 빨기만 했다. 로동자들과 함께 땀흘리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지군 했었는데 오늘따라 줄곧 마음이 어수선해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석우진국장의 모습이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 그다음 석국장과 의견을 같이하는 지배인과 황금태아바이…

어제 공장에 내려왔던 처장 강수일은 석우진국장이 수술에 앞서 송수만로인의 기술혁신안대로 물엿을 생산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부탁했다고 지배인에게 알려왔다. 그래야 장군님께 기쁨을 드릴수 있다고, 자기가 그 일까지 결속하지 못한채 병원에 온것이 죄스럽기 그지없다고 말했다는것이다.

그것은 황금태박사의 기술혁신안을 밀어달라는 부탁이기도 했다. 림성하의 안대로 하다가는 세월이 없다는것, 공장이 가까운 몇해어간엔 절대 일어서지 못한다는 경고였던것이다. 하지만 석우진국장은 멎어선 물엿공정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위대한 장군님을 공장에 모실수 없다고 주장하고있다. 낡은 산분해법으로라도 물엿을 생산하자고 하고있다. 그럴수밖에 없다. 림성하는 효소법을 주장하고있지만 그의 효소배양이 아직은 실험단계에 머물러있기때문이다.

천대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가 된것 같수다.》 그가 가까이있는 젊은이들에게 소리쳤다. 《이제 단번에 파다이야 세짝만 더 넣으면 돼, 알겠지? 어느때 마중불을 넣어야 하는지 잘 봐두라구.》

젊은 열관리공들중에서도 류달리 나이가 어려보이는 조룡학이 눈을 흡뜨며 부르짖었다.

《아니, 이제야 때가 됐다구요? 아, 저걸 보라요. 불이 사그라지는거.》

그랬다. 화실안의 불담이 꺼매지고 그우에서 싯누런 연기타래가 꿈틀거리고있었다. 당장 불이 꺼져버릴것만 같았다. 천대삼이 입에 물고있던 꽁초를 화실안에 집어던지며 웨쳤다.

《잔말말구 빨리 가져와!》

열관리공들이 구석쪽으로 달려갔다. 정주선도 뒤따라가 그들과 함께 못쓰게 된 파다이야짝들을 굴려왔다.

《넣으라!》

천대삼의 신호에 따라 석탄먼지를 일구며 굴려온 파다이야짝들을 화실에 처넣었다. 또다시 무섭게 휘몰아치는 시커먼 연기, 그우에 떨어지는 미분탄가루… 플라즈마점화로 착화하게 되여있는 보이라이건만 석탄카로리가 낮고 정격전압과 정격주파수가 들어오지 않아 불담이 약해 못쓰게 된 파다이야짝들을 넣어 불을 살리는것이다.

《이런걸 〈마중불〉이라구 하지요.》

천대삼이 검붉은 불길이 꿈틀거리는 화실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하는 말이였다. 정주선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마중불이라… 얼마나 신통한 말인가. 90고령인 그의 어머니도 늘 마중물에 대하여 말하군 하지 않았는가! 원리가 꼭같은 마중불과 마중물…

그의 생각은 여기서 끊어졌다. 천대삼이 그의 귀에 대고 《마중불》에 대하여 또 일일이 설명해주기 시작한것이다.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낡은 보이라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 보이라가 얼마나 많은 시련을 겪어왔던가. 특히 고난의 행군시기 더욱더 낡고 쇠약해진 보이라. 당과류생산을 위해 불을 살릴 때마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멎어서있는 설비들을 지키는것이 더 힘든것이다. 우선 물관들이 얼어터져서 애를 먹군 했다. 강추위에 얼어든 관들중에 동파난 곳을 용접하면 또 다른 곳이 터져나갔고 금방 불을 살렸는데 정전으로 애써 피운 불이 또 죽군 했다. 언젠가는 하루밤새에 무려 여섯번이나 새로 불을 지핀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지배인이나 당비서가 열관리공들과 함께 밤을 새우군 했으므로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시꺼먼 석탄먼지로 매닥질된 사람들속에서 자기네 지배인, 당비서를 알아보지 못했다.

별안간 천대삼이 입을 쩍 벌리며 나어린 열관리공 조룡학에게 소리쳤다.

《거기서 뭘해? 수면계는 살피지 않구?》

연기에 몰려 아래에 내려왔던 조룡학이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보이라드람에 제때에 물을 보장하지 못하면 보이라가 폭파하는것이다. 어느새 그를 밀쳐버린 정주선이 운전발브가 있는 3층으로 뛰여올라갔다. 누군가 그의 뒤를 따랐다. 동시에 두사람이 발브를 잡아 힘껏 돌렸다. 솨!- 보이라드람으로 물이 흘러드는 소리…

《됐소!》 손을 털며 허리를 펴려던 정주선의 눈이 놀란듯 쪼프러졌다. 《아니, 지배인동무가?…》

뒤따라 올라온 사람은 한경수였다. 연기를 휘저으며 그가 말했다. 《내 비서동무가 지금 무엇때문에 왼심을 쓰고있는지 알고있습니다.》

《예?》

《이 나이많은 지배인이 우리 림성하기사장의 효소배양을 지지하는것이 아니라 황금태아바이의 낡은 경험에 매달리니 딱해하고있다는걸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허참!…》

정주선은 웃고말았다. 사실 40대 중엽의 정주선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장의 책임일군들중에서 나이가 제일 아래였었다. 이미 년로보장으로 집에 들어간 전 기사장은 그보다 이십년이나 우였고 한경수지배인은 지금 십여년이나 년장자이다. 하지만 전 기사장과 한경수지배인은 늘 공장의 사소한 일도 당비서와 토론하여 모든걸 처리하군 했으며 정주선도 경험이 많고 손탁이 센 그들을 존경하고 적극 지지해주군 했었다. 그것을 잘 알고있는 한경수지배인이기에 이번일도 당비서가 그전처럼 자기를 밀어주기 바라는것이다.

정주선은 탄가루에 매닥질된 작업장갑을 벗어들며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무, 저도 많은 품을 들여 연구해봤는데 기사장동무의 생각이 옳은것 같습니다. 래일엔 또 까부셔버릴것을 왜 품들여 해놓겠습니까. 자그마한것이라도 새것을 하는게 원칙이 아닐가요?》

《아, 비서동무, 알만 합니다. 무슨 말을 하자는건지…》 한경수지배인이 남보다 배는 커보이는 두툼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물엿생산공정을 하루아침에 뒤엎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건 너무 엄청난 꿈이지요. 그래서 난 낡은 산분해법으로라도 물엿을 생산하는게 급선무라고 봅니다. 그러니 비서동무, 기술문제같은건 우리한테 다 맡기시오. 모든 책임은 이 지배인이 다 질테니까.》

정주선은 연기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수면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속이 좋지 않았다. 당에서는 3위1체를 요구하고있다. 지배인과 당비서, 기사장이 일심동체가 되여 생산을 내밀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러므로 당비서도 지배인이나 기사장과 같이 자기 공장의 생산정상화는 물론 전반적인 과학기술적문제와 발전전망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송풍기소음을 누르며 한경수가 그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비서동무, 걱정하지 마시오. 비서동무자신이 어제 집행위원회때에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서 마음쓰고계시는 우리 장군님을 생각하자고 말이요. 나두 어떻게 하나 우리 공장을 돌려 위대한 장군님께 얹혀진 무거운 짐을 다소나마 덜어드리자는겁니다.》

쏴!- 송풍기가 보이라에 바람을 쏴넣기 시작했다. 귀를 멍멍하게 하는 송풍기소음…

별안간 아래에서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비서동지!-》

천대삼이 입을 벌리며 그를 부르고있었다.

《보시우, 불이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활기를 띠고 그에게 모여들었다.

《역시 천불이 달라!》

《담이 크단 말이야.》

《천불이니까 불을 그렇게 잘 다루는거야!》

이들이 보이라에 불을 지피는 기술은 각이하다. 성격에 따라 졸금졸금 불을 지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술규정을 지켜 표준조작법대로 질좋은 석탄을 때야만 불을 지피는 사람도 있고 천대삼이처럼 자기의 경험과 감각으로만 내미는 사람도 있다.

정주선은 서둘러 한경수지배인과 아래로 내려갔다.

《수고했소, 천동무!》

《뭘요.》

사실 식료공장에서 보이라는 매우 중요하다. 온몸에 피를 뿜어주는 심장과도 같다. 그 심장의 피가 크고작은 수많은 피줄을 따라 흘러가야 곡산공장에서도 농마가 나오고 물엿과 포도당이 나오며 사탕, 과자가 나오는것이다. 그래서 지배인, 기사장은 물론 당비서까지도 늘 보이라에 나와 살고있는것이다.

한경수지배인이 천대삼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수고했네. 역시 우리 천불이 제일이야. 불을 살리는데선 귀신 한가지라니까.》

탄먼지에 얼굴이 새까매진 정주선도 하얀 이를 드러내며 그에게 《평양》담배를 내밀었다.

《자, 한대 피우오.》

《좋은 담배군요.》 흐뭇한 표정으로 담배갑을 넘겨다보던 천대삼이 그것을 통채로 제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내가 건사하는게 좋겠수다.》

정주선이 다른 주머니를 뒤지는데 천대삼이 또 말했다.

《라이탄 안 주시우?》

《원, 비위살두…》 정주선은 바지주머니에서 라이타를 꺼내였다.

《자, 받소. 새거요!》

로동자들과 함께 늘 담배를 피워물군 하는 그는 매번 라이타를 현장에 두고 가군 했다. 이에 습관된 로동자들은 그와 같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의례히 당비서가 라이타를 주겠거니 하고 생각하는것이다.

《비서동지.》

젊고 날파람있는 열관리직장장이 그를 찾더니 은근히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점심식사를 못했지요? 마침 저 사람들이 탄재불에 통밥을 묻어놨는데 지배인동지랑 같이 합시다.》

정주선이 반색했다. 하지만 남들이 들을세라 낮게 속삭이듯 물었다.

《뭐 우리 먹을것까지 있겠소?》

《아, 비서동지야 우리 열관리직장의 식구가 아닙니까. 통밥이라면 절대 양보 안하면서…》

열관리공들속에서 불리우는 《통밥》이란 이글거리는 미분탄건조로의 탄재불을 서너삽 바닥에 퍼놓고 그속에 쌀을 담은 군용밥통이나 남비를 묻어놓아 익힌 밥을 말한다. 불담이 꺼지면서 밥이 되는데 이때 밥통을 두드려보고 그 소리로써 익었는가를 가늠한다. 밥이 익었으면 고추장에 버무려 먹거나 김치를 곁들여서 먹는다. 그 맛이 하도 별미여서 우정 지배인이나 당비서를 청해오기도 한다.

《비서동지.》

열관리직장장이 다시 정주선을 잡아끌었다.

《가만!》

정주선은 지배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지배인동무, 같이 갑시다! 남이 묻어놓은 통밥을 훔쳐먹는게 아주 별맛이 아닙니까.》

그때 천대삼이 두눈을 버룩거리며 소리쳤다.

《아 비서동지, 지배인동지몫까진 없는데요?…》

《뭐, 내 몫은 없다구?》

《미리 신청을 하지 않아 준빌 못했수다.》

《일없소.》 한경수지배인이 헌헌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강제루 뺏아먹으면 되지 뭐, 지배인권한으루! 그러찮소?》

핫핫하! 통쾌한 웃음소리… 보이라를 살린 기분에 모두가 웃고 떠들며 지배인, 당비서의 뒤를 따라 열관리직장휴계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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