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회)
제 1 장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8
그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 심장외과병원의 수술장대기실에 누워있었다. 하얀 위생보를 씌운 밀차우에서 반쯤 눈을 감은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모든것이 꿈만 같았다. 그렇듯 건장하고 억센 일군으로 소문났던 50대 중엽의 식료일용공업성 국장인 석우진의 크고 육중한 몸이 이제 곧 수술대우에 오르게 되는것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심장대수술이라니… 어찌 마음이 산란하지 않겠는가. 가장 무서운, 지어 끔찍한 결말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머리맡 장의자에 앉아있는 안해 한순정의 얼굴은 피기 하나없이 창백했다. 장골형인 남편의 절반도 못되는 몸매작은 녀인… 그는 남편의 심장수술이라는데 놀라 정신없이 손수건만 깨물고있다.
석우진은 반쯤 감았던 눈을 뜨며 안해를 바라보았다. 눈물에 젖은 차분한 눈, 여느때는 수집게 보이던 희고 동그스름한 얼굴이 지금은 눈물로 얼룩져있다.
석우진은 달래듯이 안해의 손등을 가볍게 다독이였다.
《울긴! 못난이처럼… 일없다니까!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았소, 심장이란 자동차로 말하면 기관과 같은건데 그것들도 자주 대수리를 해야 하듯 심장도 제때에 수리하면 수명이 훨씬 더 늘어난다는거요.》
《…》
안해는 말없이 머리를 저었다. 괜한 소리였다. 대학을 나오고 지금까지 수많은 화학물질을 분석해온 식료공학기사인 30대 말엽의 이 녀인에게 그런 어벌쩡해 넘기는 비유가 통할리 없는것이다.
그는 입술을 옥물고 가볍게 어깨를 떨고있는 안해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남편과 많은 나이차이를 가진 그의 안해 한순정, 석우진은 곡산공장의 분석실장인 이 조용하고 마음씨 고운 녀인이 어떻게 자기와 같은 사람과 인연을 맺을수 있었는지 지금도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한때 석우진이 상처한지 2년가까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승벽내기로 그에게 인물곱고 마음씨 착한 녀인들을 소개했었다. 그들중 어떤 사람이 혼자 살고있는 한순정을, 석우진도 오래전부터 잘 알고있는 평양곡산공장 분석실장인 이 녀인을 귀띔했을 때 그는 펄쩍 뛰며 소리쳤었다.
《정신있소? 내 나이 지금 몇인데 그런 녀자를?… 지금 나한텐 당장 군대에 나가게 된 아들이 있단 말이요.》
그렇다, 그는 장년에 이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 녀자를 처녀때부터 알고있다. 아련하고 착실하기로 소문났던 한순정…
《안돼! 다신 그런 소릴 마오. 그런 말을 함부로 꺼내는것부터가 그 녀자를 모욕하는거란 말이요!》
무작정 도리머리를 저었다. 당치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가 멀리하면 할수록 녀인의 정은 더 가까이 다가왔었다.
《난 그분을…》 하고 그 녀자는 말하였다고 한다. 《그저 바위같이 굳세고 강직한 사람으로만 알고있었는데 그렇게 속이 깊은분인줄은 몰랐어요. 대범하고 인정도 뜨겁고… 그래서 아마 더 존경이 가는지도 모르지요.》
정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한다. 사랑은 나이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정과 사랑은 무정한 세월도 이기는것 같다. 하기에 지금 석우진은 눈물에 젖어있는 안해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제발 그렇게 못나게 굴지 말라는데…》 하고 그는 손을 내밀어 안해의 볼에 찍힌 눈물자욱을 어루쓸며 말했다. 《난 당신을 외유내강한 녀자라고 알구있었는데 정말 이렇게 속대가 약할줄은…》
《미안해요. 제가 이래선 안된다는걸 잘 알면서두 그만…》
안해가 좁혔던 미간을 펴며 웃으려 했다. 허나 이새로 스며나온것은 바람새는듯 한 신음소리였다. 아직까지 단 한번도 남편 석우진을 두고 당신이라고 불러본적이 없는 안해…
그때 문열리는 소리가 났다. 안해가 피끗 눈길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됐습니다.》
대기실에 들어선것은 풀색수술복차림을 한 담당녀의사였다.
《어떻습니까, 국장동지?》 녀의사가 묻는 말이였다. 그는 여느 환자들과 달리 석우진에게만은 꼭 국장동지라고 부르군 했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근심되는건 없습니까? 마음의 안정이 기본인데…》
《예, 괜찮습니다.》
뒤따라 들어온 간호원이 혈압을 재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녀의사의 긴장한 눈길이 전자혈압계의 액정현시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안해 한순정이까지 목을 길게 빼들고 현시판에 나타나는 수자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마치도 석우진의 마지막여생의 분과 초들을 암시하는듯 한 수자들…
석우진이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이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녀의사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이제 곧 시작합니다.》
《그럼 의사선생.》 석우진이 턱을 쳐들며 말했다. 《한가지 간절한 청을 드려도 될가요?》
《말씀하세요.》
《조금 더 기다리면 안되겠습니까? 이제 한사람이 여기로 올수 있는데… 그 사람을 만나본 다음 수술을 했으면 해서…》
《기다리는 그 사람이 수술립회자는 아니겠지요?》 녀의사는 웃는 눈으로 맞은편에 서있는 석우진의 안해를 바라보았다.
《수술립회자외엔 그 누구도 안됩니다.》
《그렇지만 의사선생, 난…》
녀의사는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어느덧 웃음을 거두고 미간을 찡그리고있었다. 상냥하던 그 목소리도 수술칼처럼 날카롭고 엄해졌다.
《안됩니다, 국장동지. 인젠 그 누구도 만날수 없습니다. 수술전의 엄격한 소독과 멸균… 규정을 잘 아시지요?》
석우진의 낯빛이 순시에 달라졌다. 거의나 굳어진듯 한 표정으로 그는 녀의사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규정이야 물론 지켜야지요. 하지만 의사선생, 때로는 규정보다 더 중요한것두 있답니다.》
녀의사는 목에 걸었던 풀색마스크를 벗어들었다.
《국장동지, 우리 의사들은 그 누구의 시중을 드는게 아니라 환자의 생명을 다루고있습니다.》
석우진이 상반신을 일으켰다.
《알고있습니다, 의사선생! 하지만… 지금 제가 만나려는 사람도 저와 함께 공장의 생사를 론하는…》
《예? 그건 무슨 말씀인지?…》
녀의사가 놀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심각해진 석우진의 표정에 녀의사는 몸을 옹송그리기까지 했다. 그를 바라보며 석우진은 자기의 온몸을 덮고있는 수술방포를 꼭 그러쥐였다.
《그건… 량심과 도덕적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주름깊던 얼굴이 새삼스럽게 눈앞에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장에 기사로 배치된 아들을 붙안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
《꿈만 같구나. 이 아버지의 피눈물이 깃든 공장에 네가 어엿한 기사로 오다니…》
원한서린 아버지의 과거, 이제는 뜬금으로도 외울수 있는 피맺힌 과거이다.
…
미국선교사 호리스에게서 곡산공장을 넘겨받은 일본놈들은 전략물자인 물엿과 농마 그리고 포도당생산을 미친듯이 다그쳤다. 그리하여 조선인로동자들은 또다시 일제의 가혹한 채찍에 허덕이지 않으면 안되였다.
석우진의 아버지 석회령은 소년로동자 송수만과 함께 침지공정에서 쫓겨나 감옥같은 마쇄공정에서 일하고있었다. 아류산수로 불군 강냉이를 돌망으로 갈아 껍질과 강냉이눈을 갈라내고 단백과 농마를 얻어내는 마쇄공정도 침지공정과 마찬가지로 역한 아류산가스냄새에 숨막히는 곳이였다.
그날도 석회령은 쓰려나는 눈을 비비며 돌망이 갈아내는 강냉이의 껍질을 걷어내고있었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했다. 종일 땀에 절고 역한 냄새에 허덕이는 그들이였다. 시원한 밖에 나갔으면… 허나 출입문마다에는 사냥개가 문을 지키고있었다. 왜놈들은 어두운 마쇄작업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이 아류산가스를 피해 밖에 나오는것을 막으려고 이렇게 사냥개들을 매여둔것이였다.
대동강너머 먼곳에서 이따금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때없이 울려왔다. 비구름이 모이고있었다. 헐떡이며 곽삽으로 껍질을 걷어내던 석회령은 별안간 하던 일을 멈추고 눈길을 들었다. 귀를 멜듯 한 돌망소리사이로 간신히 들려오는 신음소리…
《물… 물!…》
토목수건으로 땀을 문대며 어두운 구석을 살피던 그는 손에 든 곽삽을 내던지고 달려갔다. 타개진 강냉이눈을 갈라내던 소년 송수만이 기대앞에 쓰러져있었던것이다.
《수만아, 정신차려라! 응?…》
어린 몸으로 하루 16시간이나 되는 고역을 치르던 그가 끝내 통풍장치도 없는 작업장에서 그만 아류산가스에 질식되였던것이다.
석회령은 급히 물이 든 양철통을 찾았다. 물이 없었다. 종일 땀 흘리는 그들이여서 양철통은 벌써 바닥이 났던것이다.
물, 물!… 소년은 여전히 몸을 뒤척이며 물을 찾았다. 눈도 뜨지 못하고 간신히 숨을 몰아쉬고있었다. 석회령은 그를 찬기운이 있음직한 벽쪽으로 옮겨갔다. 이어 땀에 절은 토목수건을 벗어 힘껏 바람을 부쳐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가스에 질식된 소년을 살려낼수 없었다.
《수만아, 수만아!… 정신차려라! 응?》
안타깝게 그를 흔들던 석회령은 별안간 몸을 떨었다. 창백한 얼굴, 맥없이 벌려지는 입술, 버긋이 굳어진 두눈… 생명이 꺼져가고있었다.
그는 소년을 그러안고 피타게 소리쳤다.
《죽지 말아! 수만아…》
대동강너머에서 우르릉거리던 소리가 가까와왔다. 어느새 비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땅을 짓눌렀다. 살아움직이는 모든것을 숨막히게 짓누르며 머리우에서 우르릉거렸다.
석회령은 고개를 들었다. 희미한 빛이 새여들어오는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신선한 공기가 있는 저 바깥,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저 앞마당… 그는 소년을 업고 일어섰다. 걸음마다 비틀거렸다. 흐르는 땀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어떻게 희미한 빛을 향해 출입문까지 걸었는지 알지 못했다.
《뭐야?!》
서슬푸른 왜놈감독의 고함소리, 늘 팔에 구렝이를 입묵한 근육을 자랑삼아 내놓고 다니는 놈이였다.
석회령이 숨찬 소리로 사정했다.
《이 애가 가스에 질식되였소. 잠간만 밖에 나갔다 오게 해주시오.…》
《안돼!》
《제발 잠간만… 애가 죽어가고있소!》
왜놈감독이 곤봉을 휘둘렀다.
《조센징, 너희들은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 한다!》
그의 잔등에 얼굴을 박고있던 소년이 신음소리를 내였다.
《엄마!…》
왜놈감독이 땀에 번들거리는 석회령의 동가슴을 곤봉끝으로 찌르며 안으로 밀어넣었다.
《들어가! 들어가란 말이다!》
석회령이 고개를 쳐들며 입술을 떨었다.
《여보시오, 당신도… 사람이요?》
《뭣이?!》
그자가 곤봉을 내리웠다. 가늘게 치째진 눈을 좁혀뜨며 석회령을 노려보았다. 험상궂은 얼굴에 스치는 비웃음…
곤봉을 내던진 왜놈감독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래 너희들도 사람이란 말이지?》
그자가 가죽장갑을 당겨끼며 울퉁불퉁한 팔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순간 팔에 입묵한 구렝이가 근육을 따라 꿈틀거리며 살아움직이였다. 석회령은 전률했다. 무서운 재난을 예고하는 싸늘한 살기에 몸서리치며 신음했다.
그자가 씨벌이였다.
《그럼 너희들이 사람이라는걸 알게 해주지!》
석회령에게 달려든 왜놈감독이 그의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어두운 마쇄작업장은 셈을 세는 왜놈감독의 고함소리로 가득찼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칠거리는 석회령의 얼굴은 온통 피범벅으로 되였다. 그의 머리가 이쪽 저쪽으로 젖혀질 때마다 거치른 벽에, 새로 쪼은 돌망에, 강냉이껍질을 담아내는 나무통에 피가 튀였다.
왜놈감독이 쓰러진 석회령의 귀를 밟고 소리쳤다.
《말해봐! 네놈들이 아직도 사람인가?》
구두발에 짓밟힌 귀에서 피가 흘렀다. 그 검붉은 피는 아류산수가 뒤섞인 어지러운 바닥을 물들이였다. 바닥에 나딩군 소년이 혼수상태속에서 허둥거렸다.
《아저씨!… 아저씨!…》
석회령이 간신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듯 차거운 바닥에 그냥 얼굴을 대고있었다. 눈앞에 흐르는 검붉은 피… 돌연 그는 자기 얼굴을 짓누르고있는 구두발밑에서 무섭게 몸을 일으키였다. 이어 혼신의 힘을 모아 입에 물었던 피거품을 왜놈의 얼굴에 내뱉았다.
《이 쪽발이놈아! 그래도 우린 사람이다!…》
꽈르릉!- 하늘을 부시는 천둥소리… 뒤미처 모든것을 짓태울듯 한 번개가 하늘을 찢어발기며 번쩍이였다.
악에 받친 왜놈감독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나쁜 놈! 죽어봐라!》
드디여 몸서리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독을 쓰며 고아대던 왜놈감독이 출입문쪽으로 달려가 사냥개를 풀어 그들에게 내몰았던것이다.
《악!-》
새되고 아츠러운 외마디소리, 무섭게 달려든 사냥개는 날카로운 이발로 그들의 몸뚱이를 사납게 물어메쳤다. 사정없이 살을 파고들며 물어뜯고 찢고 손가락뼈를 깨물어 으깨여버렸다. 처참한 비명소리!…
…
이것은 석우진이 태여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였다. 나라를 빼앗겼던 아버지세대의 잊을수 없는 력사, 황금태의 력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피눈물의 력사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해방후 평양곡산공장에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 그의 아버지를, 탄덩이처럼 시꺼멓던 석회령을 연회상에 불러주시고 손수 하얀 천을 씌운 안락의자에 앉혀주시였던것이다. 그 뜨거운 사랑에 받들려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되였다.
아버지는 부탁했었다.
《난 육신을 아끼지 않았다만… 그것만으론 수령님의 사랑에 다 보답했다고 말할수 없구나. 글쎄 더 많은 물엿을 생산해서 기쁨을 드리구싶었는데 아는것이 없다보니 그냥 꿈으로만 남았어. 그런데 오늘 우리 집안에 황금태를 만드는 큰 기술자가 나왔으니 인젠 내 소원도 다 풀린셈이다. 그러니 우진아, 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더 많은 물엿을 만들어다오. 우리 수령님과 당의 은덕에 꼭 보답해다오.》
아버지는 이렇게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속에서 한생을 마쳤고 석우진 그자신은 여기서 물엿직장장으로, 공업시험소장으로, 식료련합국장으로, 식료일용공업성 관리국장으로 성장하였다.
하기에 석우진은 자기가 맡은 여러 단위들중 제일 크고 력사가 오랜 이 곡산공장부터 먼저 살리고 위대한 장군님을 공장에 모시려는 간절한 꿈을 안고 며칠전엔 남포에까지 나가 부두에서 밤을 새우며 아글타글했던것이다.
《난 각오하고있습니다, 의사선생.》 하고 석우진은 거의 입속말처럼 계속했다. 《수술대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할수도 있다는것을…》
《아니, 무슨 그런 말씀을?…》
《의사선생,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오. 그담 의사선생 맘대로 하시오.》
석우진은 그 어떤 유언이라도 남기는듯 한 표정이였다. 비장하고 엄숙한 음성…
《의사선생, 나는 오늘 이때까지 내가 담당하고있는 곡산공장을 다시 돌려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드리기 위해 있는 힘껏 일해왔습니다. 할수 있는껏… 헌데 수술을 앞두고 갑자기 아직 채 못다한것이 있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걸 말해주지 않고서는 그냥 수술대에 오를수가 없습니다. 꼭 만나야겠습니다, 그 사람을!… 그가 올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안되겠습니까? 그래도 수술전의 소독과 멸균… 그것만이 중요합니까?》
그는 입을 다물었다. 두눈까지 꼭 감았다. 마음속으로는 그가 와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빌었다. 혹시 이것이 마지막이 될수도 있으므로 그에게 꼭 부탁할것이 있었다. 헌데 그가 와줄가?… 물론 그가 꼭 오리라는 담보는 없다. 석우진이 대수술을 앞두고있다는것을 그가 아직 모르고있을수도 있다.
그때였다. 안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부르짖었다.
《왔어요, 우리 삼촌이!》
모두가 안해를 따라 간막이 저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저길 보세요. 성하삼촌 아니, 우리 기사장동지가 말예요!》
간막이유리에 털모자를 쓴 사람이 얼굴을 바싹 대고 들여다보고있었다. 고수머리에 키가 크고 얼굴이 말쑥한 사람, 어줍은 표정으로 입술 한쪽을 지그시 깨물고있는 사람…
별안간 석우진의 눈빛이 굳어졌다.
《성하, 자네가?!…》
어느새 안해가 그쪽으로 달려가고있었다. 남편 석우진이 친동생처럼 대해주는 림성하여서 반갑게 부르짖고있다.
《이제야 오셨군요, 삼촌!》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해하던 녀의사도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쪽을 바라보았다.
《국장동지, 마침입니다. 기다리시던 사람이 왔으니.》
순간 석우진이 줄기침을 터쳤다. 몹시 괴로운듯 몸을 뒤틀기까지 했다. 가슴을 그러쥔 그의 두툼하고 커다란 두손에 시퍼런 피줄들이 두드러졌다.
《아니, 왜 그러십니까?》 녀의사가 급히 그에게 몸을 굽히며 속삭이듯 했다.《어디 편찮습니까?》
간막이 저쪽에서는 여전히 털모자를 쓴 림성하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뭐라고 열심히 손짓했지만 밀페된 수술장대기실이여서 알아들을수 없었다.
드디여 석우진의 줄기침이 멎었다. 그는 한손을 쳐들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을 보내주시오.》
《예?!》
구겨진 수술방포의 주름을 가볍게 누르던 녀의사의 가늘고 흰 손가락이 굳어졌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낀 안해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아니, 왜 그러세요? 그리도 속을 태우며 기다리시더니?…》
석우진은 말없이 허공에 눈길을 견주었다. 또다시 가슴에 미쳐오는 찌르는듯 한 아픔… 그렇다. 친동생처럼 대해주던 림성하였다. 그런데… 한순간 그는 무엇인가 매운 연기처럼 가슴에 그득 차오르는것을 느끼며 통증이 오는 심장을 한손으로 꽉 짓눌렀다. 이어 괴로운 눈길로 녀의사를 찾았다.
《의사선생, 인젠… 수술을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예?!》
녀의사가 영문을 알수 없어 그의 안해를 돌아보았다. 순간 안해 한순정이 머리맡에 다가붙으며 속삭이듯 했다.
《아니, 어쩌문… 그리도 기다리던 사람이 왔는데…》
석우진은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내가 기다린건… 저 사람이 아니요.》
《?…》
한순정과 녀의사는 입을 벌린채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석우진이 녀의사를 불렀다.
《의사선생!》
녀의사가 머리를 끄덕이더니 간호원들에게 눈짓했다.
《수술준비!》
비록 낮은 음성이였지만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귀전에 예리한 금속성처럼 파고들었다. 그 한마디 구령으로 긴장한 수술전투가 시작되는것이다. 병마와의 전투, 삶을 위한 전투, 사랑과 정성과 의지의 전투… 수술장 간호원들이 거의나 기계처럼 정확히 그리고 날래게 움직인다. 환자의 온몸에 씌워지는 풀색의 수술방포, 마취기를 조작하기에 여념이 없는 마취의사…
석우진은 자기옆에 꼭 붙어선 안해의 손을 더듬어 쥐였다.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줄 안해, 새 가정을 이루고 행복을 맛보며 보다 아름다운 래일을 꿈꾸고있는 안해, 이 안해에게 불행이 차례지지 않도록 해야겠는데…
그는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애써 마음속 아픔을 누르며 조용히 말을 떼였다.
《여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구려… 당신이 그를 찾아가 내 부탁을 전해주오. 누가 뭐라든 삼일포특산물식생산공정을 주저하지 말고 내밀라고… 그리고 황금태아바이가 지금껏 해오던 산분해법을 다시 살려 꼭 물엿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이요. 지금껏 공장을 세워둔것도 가슴아픈데 당과류생산도 못하면서 장군님을 모시겠다는건… 말도 되지 않아. 당적량심이 허락치 않는단 말이요.》
남편의 마지막부탁처럼 들리는 그 말에 한순정의 눈언저리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알겠어요.… 헌데 그 얘길 누구한테 말해야 하나요?…》
석우진의 시꺼먼 눈섭이 쭝긋거렸다.
《참, 내 아직 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던가?… 음- 당신은 아직 모르겠지만 내가 제일 믿는 사람은… 우리 식료일용공업성 강수일처장이요. 아직 나이는 젊지만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지. 인젠 전적으로 그한테 기대를 거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구만.》
석우진은 차츰 숨이 막히는것을 느꼈다. 목이 타들다못해 우둘우둘 떨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에 련결한 인공호흡기때문에 한마디 신음소리조차 낼수 없다. 그 마취용호흡기를 통해 깊숙이 페장으로 들어가 안개처럼 퍼져가는 마취약… 눈이 감겨진다. 온몸이 나른해진다. 차츰 떨리던것도 멎고… 마침내 그는 가벼운 깃털마냥 허공으로 날아올라 끝없는 어둠속, 아득한 망각의 세계에로 잠겨들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