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 회)
제 1 장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5
밖에서는 하얀 눈송이들이 춤추듯 내리고 드넓은 방안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들썩했다. 온 공장이 다 여기로 모여온듯 했다. 물엿직장은 물론 가공직장과 열관리직장, 원료직장과 당과류직장, 공무직장과 옥당직장의 직장장들, 공업시험소의 시험기사들까지 와있었다. 그들모두가 생일 85돐을 맞는 송수만아바이를 축하해주러 왔던것이다.
방안은 훈훈했다. 증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축하의 인사말들도 후더웠다. 두서없이 떠들어대는 헌헌한 목소리들가운데 음식그릇을 나르던 녀인이 뒤늦게 들어서는 림성하를 띄여보고 반갑게 소리쳤다.
《박사아바이, 왔어요! 우리 공업시험소장이…》
마치 옛말그림책에 나오는 눈할아버지처럼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꼿꼿한데다가 아직 눈정기도 맑은 로인, 오늘의 주인공 송수만로인이 자리에 앉은채로 문쪽을 건너다보았다.
《누구라구?》
방 한가운데로 들어선 림성하가 털모자를 벗어쥐였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사실 오늘 중요한 일이 제기돼서 그만…》
《음.》
별안간 로인이 고개를 돌리며 그를 외면했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도 조용해졌다.
《저, 사실 전…》
그는 털모자를 만지작거리며 거북하게 서있었다. 이 자리에 그냥 있어야 할지 나가야 할지 알수 없었다.
음식을 나르던 녀인이 그를 잡아끌었다.
《어서 앉으라요. 우리 공업시험소장은 언제 보나 남들보다 한발 늦어지는게 탈이라니까요.》
물엿직장장 리안휘가 웃으며 말했다.
《하긴 임자가 늦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지. 무엇에 열중하면 모든것을 다 잊군 하니까.》
《옳습니다.》
이렇게 말한것은 이전에 과자직장 부직장장이였던 유명한 익살군 지운섭이였다. 몇달전부터 어느 중앙기관에 간다면서 공장을 뜨겠다고 뛰여다니던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는지 모를 일이였다. 지운섭이 여전히 청을 높여 떠들어대였다.
《림성하소장이야 회의에 늦어지는데선 유명하지요. 오죽했으면 우리 곡산공장 10대유모아의 한 주인공으로 됐겠습니까.》
이번엔 더 큰 웃음소리가 장내를 휩쓸었다. 언젠가 자기비판을 하기로 되여있는 중요회의에 늦어져서 소문을 낸 림성하였던것이다.
그날 림성하는 생산문제때문에 련대적책임을 지고 비판무대에 올라서게 되여있었다. 몇사람의 토론이 끝난 다음 지배인이 림성하를 불렀다.
《다음은 공업시험소장동무, 나와 토론하시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림성하가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얼굴이 새까매진 공업시험소 세포비서가 자기옆에 앉아있는 녀성시험기사에게 어성을 높이며 물었다.
《소장동문 어디 갔소?》
당황한 녀성시험기사는 자기에게 쏠리는 숱한 눈길에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전, 모릅니다. 아까 실험실에서 저보다 먼저 회의시간이 됐다면서 일어서는걸 봤는데…》
회의를 지도하던 시당의 책임일군이 실장을 향해 엄한 눈길을 던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예?!…》
조용히 회의장을 나온 실장과 녀성시험기사가 숨을 헐떡이며 실험실로 달려갔다. 그런데 실험실문을 막 열고 들어서던 그들은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얼굴에 온통 만족한 미소를 담은 림성하가 마주나오며 소리질렀던것이다.
《아, 이것 보오. 효소활성이 500이요. 500!… 최대활성을 얻게 됐단 말이요!》
실장은 억이 막혀 부르짖었다.
《아참! 소장동무, 내 이럴것 같아서 회의시간을 벌써 몇번이나 알려줬습니까, 예?!…》
《회의?!》 퀭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림성하가 녀성시험기사에게 다가섰다.
《헌데 동문 왜 안 참가했소?》
녀성시험기사가 어이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이참! 지금 누가 할 소릴?…》
그제서야 림성하는 손바닥으로 자기 앞이마를 철썩 때리며 소리쳤다.
《아차! 회의가 있다구 했지!》
《어디 그뿐이요?》
《아, 그래그래!… 오늘 회의에서 내가 경험토론두 하게 되여있구!…》
녀성시험기사가 깔끔하게 말했다.
《경험토론이 아니라 자기비판이예요!》
《옳소, 자기비판이지!…》
인제는 온 공장이 다 아는 일화이다. 유명한 익살군 지운섭이 바로 그 일을 두고 《림성하와 효소활성 500》이라는 제목으로 평양곡산공장 10대유모아에 올렸던것이다.
그 일을 상기하며 모두가 웃음을 짓고있는데 지운섭이 한숨을 내불며 말했다.
《10대 유모아에 올린 그 일때문에 괜히 나만 손해봤지. 이 지운섭을 밉게 보던 저 얌전데기 소장이 글쎄 우에다 슬쩍 신소할줄이야.…》
림성하는 얼떨떨해졌다.
《내가 신소를?》
《지배인에게 이 지운섭이 공장의 기능공녀자들을 다 시장에 빼돌린다고 슬쩍 귀띔한게 누군가. 자네가 아니란 말인가?》
《아, 그거야…》
《이보게, 부직장장.》
물엿직장장 리안휘가 지운섭을 돌아보며 나무랐다.
《임자가 기능공녀자들을 내보낸거야 사실이 아닌가. 임자도 이제 공장에서 나간다면서?》
그런 말에 주눅이 들 지운섭이 아니였다. 그가 배심좋게 대답했다.
《옳습니다, 여기서야 내가 할일이 없지요. 발효전문가라는게 깨잎이나 고사리를 만지고있으니…》
《그래서 나간다는건가?》
《그럼요. 자기 생활은 자신이 설계해야 합니다. 크고 목적지향성있게, 다시말해서 시내물이 더 큰 바다로 흘러가듯이 말입니다. 이 지운섭이도 그렇게 흐르자는겁니다.》
지금껏 말없이 앉아있던 송수만로인이 손을 획 내저었다.
《됐네, 그런 이야긴 그만두고 어서 시작하세나.》
《예, 알았습니다. 인젠 올 사람은 다 왔는데…》
그때 등뒤에서 처녀의 여무진 목소리가 쟁쟁 울렸다.
《난 왜 빼놓는가요?》
돌아보니 송해연이였다. 땀을 흘리며 서있는데 아직도 두눈에서는 얼음같이 찬 랭기가 흐르고있었다.
송수만로인이 두팔을 벌리며 손녀를 소리쳐불렀다.
《어이구, 우리 해연이구나. 난 네가 출장을 갔다구 하기에 오지 못하나부다 했더니만…》
《날아서 왔지요 뭐.》
《그래그래! 우리 해연인 언제나 날아다니는 바다새지. 어쨌든 제때에 왔다.》
사람들이 해연이를 탁가운데로 이끌었다. 림성하는 어느새 조금 옆으로 밀려났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자리잡고 앉았다.
《자, 그럼 여러분, 친근한 동지들.》
유명한 익살군 지운섭이 또 나섰다. 그는 한손을 입에 대고 마이크를 쥔 방송원의 역을 시작했다. 우정 목을 눌러 말하는것이 신통히도 중앙텔레비죤방송의 현지실황중계사회자 비슷했다.
《에- 우리의 자랑이며 평양곡산공장의 력사와 더불어 〈황금태박사〉로 불리우는 송수만아바이!… 저, 어떻습니까? 오늘 생일상을 받고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으리라고 보는데요. 이 기회에 곡산공장의 조상벌이 아니, 증조할아버지벌 되시는분으로서 어제도 그러했지만 오늘따라 하실 말씀이 더더욱 많을것입니다. 그럼 하고싶은 말씀 맘 놓고 다 쏟아놓으십시오, 예.》
모두가 박수를 치며 떠들어대였다. 주름진 로인의 작은 두눈도 흐뭇한 미소로 가늘어졌다.
《헛참, 녀석들두.》
로인은 좌중에서 제일 나이많은 물엿직장장 리안휘를 돌아보며 눈을 꿈쩍했다.
《이 늙은것의 잔소리가 꽤나 싫었던 모양일세, 응?…》
《원 아바이두, 무슨 말씀을…》
리안휘가 진심으로 말하였다.
《온 공장이 송박사아바이를 존경하고 자랑한다는걸 잘 아시면서두.》
사실이 그랬다. 공장의 연혁사와도 같은 로인, 원한서린 해방전 소년로동자로부터 공장의 주인이 된 오늘까지 강냉이물엿인 황금태를 만들며 한생 곡산공장과 운명을 함께 해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송박사》,《황금태박사》라고 진심으로 존경하여 부르군 했던것이다.
약동하는 새 민주건설시기에는 자기의 귀중한 땀으로, 준엄한 전쟁시기에는 총을 메고 피로써, 사회주의건설시기에는 새 기술연구로 공장을 지키고 조국을 받들어온 로인, 그는 여든다섯살에 이른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기술문제는 물론 공장의 크고작은 모든 일에 관여하면서 오늘까지 그 누구도 감히 허물수 없는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있었다.
《자, 어서 좋은 말씀 한마디 하십시오.》
《하십시오, 아바이!》
《자, 어서요!》
《좋은 말이라…》
로인은 두눈을 슴벅이였다. 웬일인지 눈굽이 젖어들었다.
뗑! 뗑! 뗑!… 아득한 과거를 깨치며 들려오는 종소리, 그것은 흘러간 먼 세월의 한끝에서 울려오는 례배당의 종소리였다. 12살 어린 소년로동자였던 송수만이 토목수건을 꽁무니에 찬 아버지의 뒤를 따라 공장으로 갈 때마다 들려오던 그 종소리였다.
…
역한 아류산가스와 땀냄새가 밴 허줄한 로동복들이 흘러갔다. 시뻘건 발이 드러난 꿰진 지하족들과 가랭이를 걷어올린 베잠뱅이들이 곡산공장 가까이에 있는 례배당으로 묵묵히 움직여가고있었다.
《아! …》
갑자기 어린 송수만이 비명을 질렀다. 정신없이 어른들을 따라가다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것이다. 소년은 동정을 구하듯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투덕, 투덕, 투덕… 먼지를 일쿠며 무정하게 지나가는 커다란 발들… 소년은 피가 내배이는 맨발을 내려다보며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수염이 시꺼먼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홱 돌렸다. 거친 목소리가 돌덩이처럼 날아왔다.
《망할놈의 자식! 일어서지 못할가!》
깜짝 놀란 소년은 가까스로 일어나 또 걷기 시작했다. 아픔은 가뭇없이 사라졌지만 소년의 터진 맨발에서는 그냥 피가 흐르고있었다.
어느덧 소년의 머리우에서 선교사 호리스의 위엄스러운 목소리가 울리고있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여! 당신의 이름이 고귀하시고 당신의 은총이 거룩하시기를,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우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우리를 악으로부터 구원하옵소서, 아멘!-》
소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터진 발이 아프고 쓰려났으나 텁석부리아버지가 무서워 소리를 낼수 없었다. 아버지 혼자서는 아홉식구를 먹여살릴수 없어 어린 수만이까지 공장에 끌어낸 아버지였었다.
그날 첫 공장길에 나서는 수만이에게 어머니는 눈굽을 훔치며 말했다.
《내가 천벌을 받겠구나, 어린 너까지 내보내니…》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가는 어린 수만이는 즐겁기만 했다.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하면 꿀처럼 단 물엿 실컷 먹을수 있지?》
대답이 없었다. 수염이 시꺼먼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험상궂게 앞만 노려볼뿐이였다.
소년은 노래하듯 또 물었다.
《아버지, 농마가루에 염산을 넣구 졸이면 물엿이 되나?… 나 이제부터 맛있는 포도당이랑 물엿이랑 엄마한테 많이 갖다줄래, 동생들한테두…》
아버지가 꽥 소리쳤다.
《미친소리말아!》
소년은 목을 움츠렸다. 언제나 수염이 시꺼먼 무서운 아버지, 한번도 자식들의 머리를 쓸어주는 일이 없는 아버지… 소년은 입을 다물고 공손히 아버지를 따라왔었다.
《얘야,》
부드러운 목소리에 소년은 머리를 들었다. 호리스신부가 소년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너 울고있구나.》
《동정》과 《자애》에 넘치는 신부의 눈빛… 소년은 아직도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아버지를 곁눈질해보았다. 시꺼먼 수염으로 하여 얼굴이 컴컴해보이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못 보는듯 무뚝뚝한 눈길을 허공에 견주고있을뿐이였다.
호리스신부가 자그마한 성경책을 펴들고 속삭였다.
《…정신적으로 가련한 인간들에게 복을 주노라. 기아에 허덕이는 그대들에게 복을 주노라…》
미국 뉴욕에 있는 콤프리덕트주식회사 (미국곡물가공주식회사) 리사인 호리스는 선교사로 조선에 파견되여온 미국인으로서 1931년 대동강과 무진천의 합류목에 이 공장을 세웠다. 여기서 그는 강냉이를 가공하여나온 질좋은 농마와 물엿, 부산물들인 사료와 단백 그리고 기름 등을 모두 대동강을 통해 본국으로 실어가군 했었다.
그가 이곳에 공장을 건설하게 된것은 미국에서 생산되는 마치종강냉이의 농마보다 조선에서 나오는 강냉이농마가 방직공업에 쓸 호부제로서 점착성이 몇배나 좋았고 값싼 로동력과 배수송에 유리한 대동강을 끼고있는것으로 하여 최대한의 리윤을 얻을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호리스는 공장의 총무부장, 재무부장, 배관관리책임자, 현장감독 등을 모두 미국인들로 꾸리고 수백명의 공장종업원들중 일본인은 한명도 받지 않고 모두 조선사람들만 받아서 일을 시키고있었다. 그러나 류다른것은 그 누구도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고서는 입직할수 없게 만든것이였다. 하여 호리스는 모든 로동자들이 무조건 그리스도교를 믿도록 강요하였고 매일 례배당에 들려 기도를 한 다음에야 그들에게 일을 시키군 하였다.
신부의 설교는 계속되고있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어려운 일을 하는자는 위안을 받을것이고 현세에 교리에 맞게 살고 선을 행하면 죽은 다음 천당에 가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될지어다.…》
꿈속에서처럼 호리스의 설교를 듣고있던 소년은 언제 례배가 끝난지 알지 못했다. 성미가 거치른 아버지를 따라 어떻게 례배당에서 나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교대작업에 나가는 사람들은 또다시 침울해진 얼굴로 묵묵히 곡산공장을 향해 꾸역꾸역 밀려가기 시작했다.
우!- 우!- 곡산공장을 둘러싸고있는 깊고 울창한 소나무숲속에서 차거운 마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살을 에이는듯 한 찬바람은 이 헐벗은 무리들을 채찍처럼 휩쓸고나서 다시 숲속으로 사라져 로송들의 가지들을 비틀어대며 괴이한 휘파람소리를 내군 하였다.
그날부터 어린 소년은 고통을 참으면 래세에 행복이 온다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매일같이 들으며 아버지와 함께 침지공정에서 진땀을 뽑군 하였다. 3층꼭대기에까지 솟아있는 거대한 침지탕크우에서 널판자를 딛고 뛰여다니며 거대한 매 탕크의 온도와 아류산수의 농도를 가늠해보군 했다. 그때마다 자극적이고 역한 아류산가스냄새에 눈도 바로 뜨지 못하고 헐떡이군 했다. 창문도 없는 컴컴한 작업장, 아류산수가 들어있는 엄청나게 큰 여러개의 탕크들과 그안에서 불구어지고있는 수십톤의 강냉이들… 숨이 꺽꺽 막히고 연방 재채기를 하군 하지만 문은 열어놓을수가 없었다. 문을 열면 실내온도가 변하여 제품의 실수률이 떨어지기때문이였다.
소년이 탕크의 온도와 아류산수농도를 살펴보고 다른 탕크로 뛰여가려던 때였다. 갑자기 벼락치는듯 한 고함소리가 그를 못박아세웠다.
《이놈! 정신차려!…》
아버지였다. 눈도 뜨지 못하고 비칠거리던 소년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당장 삼켜버릴듯 한 시꺼먼 구멍이 발밑에서 입을 쩍 벌리고있었다. 아류산수에 물러진 판자를 제때에 교체하지 않아 생긴 탕크의 이빠진 자리였다. 언제인가가 한 로동자가 몇십길이나 되는 아류산수가 채워진 이 탕크에 빠져 생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소년도 아버지가 아니였다면 이 죽음의 탕크에 빠져들번 했던것이다.
《수만아, 일없니?》
소년에게로 달려온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집에 자주 오군 하던 석회령이라는 젊은이였다.
《아저씨…》
석회령은 땀으로 미끈거리는 소년의 벗은 몸뚱이를 안아일으켜 구석으로 데리고갔다.
《배고프지?》 그는 신문지에 싸들고온 작은 양철고뿌를 소년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봐. 물엿이야.》
소년의 두눈이 빛났다. 그렇게도 먹고싶던 물엿!… 공장에 들어오면 실컷 먹을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달디단 물엿… 그러나 하루 14시간이상의 노예로동을 강요당해야 하는 소년로동자에게 있어 그것은 꿈으로 변하고말았었다.
석회령이 한쪽눈을 끔쩍했다.
《어서 마셔봐. 이건 진짜 황금태야.》
정말 고뿌의 물엿은 언젠가 아버지가 가져왔던 찌끼가 섞인 물엿과는 달랐다. 깨끗하고 맑고 투명했다. 당시 사람들은 공업적방법으로 생산한 이 걸죽한 강냉이물엿을 황금당이라고 불렀다. 황금처럼 노르무레한 당이라는 뜻도 있지만 공장주들은 강냉이 한알에서 금처럼 많은 리윤을 뽑는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것이 또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황금당을 황금탕으로 또 얼마후엔 《탕》이라는 음이 《태》로 변하면서 마침내는 황금태로 굳어지고말았었다. 소년은 물엿고뿌를 감싸쥐고 속삭였다.
《고마와요, 아저씨!…》
수염투성이의 시꺼먼 아버지가 석회령을 흘겨보았다.
《주인이 알면 어쩌겠나?》
《걱정말아요, 형님. 빈 초롱밑창들을 기울여서 찌워온건데 무슨 일이 나겠어요.》
그러나 일은 나고야말았다. 공장을 돌아보던 공장주 호리스의 눈에 소년이 들고있는 물엿고뿌가 띄웠던것이다.
《도적놈!》
석회령이 검은 옷을 길게 늘어뜨린 호리스에게 설명했다.
《신부님, 이건 도적질한게 아니라 빈 초롱에서 주어모은겁니다. 우린 도적이 아닙니다!》
호리스는 석회령의 말을 부정하듯 머리를 저으며 정중하게 속삭였다.
《하느님은 〈인생의 8복〉과 교률에서 마음에 부정함을 품지 말며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이 결백한 사람은 그 복으로 땅을 가지게 되고 마음이 깨끗한자는 신을 보게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주여! 바라나이다. 부정한 악으로부터 이들을 구원해주옵소서, 아멘!…》
허우대가 크고 수염이 시커먼 아버지가 호리스에게 허리를 굽혔다.
《신부님, 한번만 용서해주십시오. 어린 자식이 철이 없어 그만…》
《미스터 송! 하느님은 용서하지 않을것입니다. 당신은 현세에서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악을 범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걸 모릅니까?》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의 침울한 눈길은 허공을 찌르고있었고 석회령은 몸을 떨고있는 어린 송수만을 감싸고있었다.
돌연 아버지가 물엿고뿌를 품고있는 아들에게 소리쳤다.
《당장 버려!》
소년은 고뿌를 움켜쥐였다. 공장에 들어오면 마음껏 먹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물엿… 불쌍한 동생들에게 그토록 가져다주고싶었던 달디단 물엿…
아들의 손에서 물엿고뿌를 와락 빼앗아낸 아버지는 그것을 바닥에 힘껏 던져버렸다. 고뿌가 나딩굴며 맑고 끈적끈적한 물엿이 바닥에 흘렀다.
호리스는 거룩한 눈길로 그들을 살펴보더니 성경책을 높이 펴들었다. 그 성경책에서 하느님의 벌이 소낙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어느새 달려온 현장감독 죤슨이 가죽채찍을 후려치기 시작한것이였다.
《자, 받아라. 하느님의 벌이다!》
아츠러운 채찍소리와 뼈를 저미는 비명소리… 바닥에 딩구는 벗은 맨몸뚱이들에서 피가 튀여나고 살이 묻어나왔다. 소년은 휘파람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채찍에 허덕이며 성경책을 읽고있는 호리스에게 애절한 목소리로 빌었다.
《신부님, 살려주세요! 다시는, 다시는 물엿을 먹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신부님!…》
채찍에 쓰러진 아버지가 피범벅이 된 얼굴을 땅에 떨구었다.
《어-허! 이 애비가 망녕이 들었지. 이런 범의 굴에 자식을 끌어오다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은 머리우에 떨어지던 무서운 채찍이 언제 거두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성경책을 읽던 호리스신부가 소리없이 사라진것도 알지 못했다.
시꺼멓던 아버지의 얼굴이 금시 창백해지며 피가래가 섞인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아버지!》
《아바이!…》
피를 토하던 아버지가 가까스로 눈길을 들었다.
《애야, 용서해라… 자식에게 물엿 한고뿌… 제대로 먹이지 못한 이 아버지를…》
그날 저녁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두고말았다. 황금태 한고뿌에 비낀 민족의 수난… 그후 미국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후 황금태생산은 일본독점재벌에게 넘어가 또다시 지울수 없는 피눈물의 력사를 새기게 되였다.
…
이윽고 로인은 갈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때 어린 마음에 그렇게 단 물엿이 얼마나 먹고싶던지… 하지만 그 천진한 꿈이 또다시 무서운 채찍에 짓밟히고 잊을수 없는 원한으로 새겨지리라고는 미처 몰랐지.…》
모두가 묵묵히 입을 다물고있었다. 자기들이 일하고있는 곡산공장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보는듯 했다.
《할아버지!…》 송해연이 험한 상처자리가 난 로인의 왼쪽손을 쓰다듬으며 속삭이였다. 《온 공장이 다 알고있는 이야기를 또 하시면서…》
《그래그래 그만하자꾸나, 이 좋은 날에 하필이면…》
로인이 젖어든 눈귀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옛사람들은 인간칠십고희라고 사람이 70살을 사는것도 드물다고 했었지. 헌데 나라에 별로 보탬하는것도 없이 여든이 넘도록 살아오는 이 고목을, 짐이나 되는 이 늙은이를 잊지 않고 이렇게 모두가 나서서 생일상을 차려주었으니… 무어라고 이 마음속 고마움을 말해야 할지… 내 그래서 이 상을 받구 임자네들한테 한마디 하고싶네. 우리 다같이 공장의 현대화를 하루빨리 완성해서 위대한 장군님을 공장에 꼭 모시자구.》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사람들이 거의나 일시에 입을 모아 떠들었다.
《정말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바이!》
《자, 그럼 공장의 현대화를 위하여!》
《장군님께 기쁨드릴 그날을 위하여!》
청높은 그 목소리에 이어 유리잔들이 연방 쟁그랑거렸다. 유정하고도 감미로운 소리, 사람들의 마음을 후덥게 하고 마냥 흥취를 돋구는 주연의 귀맛좋은 리듬과 장단이라 할가…
림성하도 잔을 들고 마셨다. 술이란 입에 대지도 않던 그였지만 이런 때에조차 한모금 마시지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뚜-해서 입을 다물고있던 지운섭은 어느덧 녀인과 같이 음식을 차리기에 바빴다.
《자, 우리 황금태박사아바이의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살찐 통닭이요! 이건 아바이가 앉을 이 자리에 놓고… 가만, 〈새각시〉 공업시험소장은 왜 거기 앉아있는거요?》
잔을 들고있던 림성하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뭐라구?》
《챠, 이것 좀 보라구요. 〈새각시〉가 그렇게 박사아바이 상을 가리우고있으니 이 통닭이 주인을 찾지 못해 어리둥절해있지 않나.》
누군가 웃음섞인 어조로 말했다.
《가만 앉아있으라구, 조금 비껴앉으면 지배인이나 기사장자리가 될텐데 이럴 땐 모른척 그냥 앉아버티는것도 괜찮당이.》
림성하가 황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 이거, 제가 그만…》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그 웃음을 창끝처럼 뾰족한 목소리가 칼질하듯 잘라버렸다.
《소장동지, 왜 날 피하세요?》
뒤에 있던 송해연이였다. 따벌같은 처녀, 그가 언제 자기옆에 와있었는지…
《피하긴? 자리를 내는거지. 헌데 왜 트집을 잡지 못해 그러는거요?》
《소장동지와 한번 내기해보자는거예요.》
《내기?…》
《그래요, 한잔 가득 붓구 단숨에 마시는 내기!… 어때요, 자신있어요?》
림성하는 기가 찬듯 혀아래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왜 그런 내길 해야 하오?》
그도 송해연의 앞에 놓여있는 잔에는 술이 아니라 과일단물이 부어져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송해연이 그에게 눈을 치떴다.
《아까 나보구 리기주의자구 도망병이라 했지요?》
《그래서?》
《그런 소릴 듣구두 참을것 같애요? 내 당장 공업시험소에 다시 돌아오겠어요. 그래 어때요? 내기에서 지면 나를 그냥 받아줘야 해요.》
림성하는 골살을 찌프렸다.
《왜 이제야 돌아올 생각을 했소?》
《왜냐구요? 나도 공장을 현대화하는 일에 한몫 하자는거지요.》
《그래서 돌아온다?》
《그래 내길 하겠어요, 안하겠어요?》
《그럼 우리 공업시험소에 해연이를 받은걸로 하자구. 아무래도 술에선 내가 질게 뻔하니까.》
《좋아요!》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찬성이요.》
《나두 찬성이요!》
술이 들어가면 사람들은 달라진다. 속을 달구어주니 그 뜨거운 열만큼 가슴도 더 넓어지는듯… 별치않은 말에도 웃음이 일고 박수가 터지군 했다.
그때였다. 별안간 그들의 등뒤에서 정주선당비서의 쉰듯 한 목소리가 울리였다.
《이것 보시오, 지배인동무! 이 사람들이 우리 둘만 쏙 빼놓구 저들끼리 판을 벌리고있구만요.》
둥그스름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지배인 한경수가 큰소리로 떠들었다.
《질서가 없단 말이요. 이 지배인의 승인도 받지 않구 먼저 시작하다니.》
《아, 어서 오십시오.》 물엿직장장이 나섰다. 《지배인동지나 당비서동지 몫은 따로 내놨습니다.》
《걷어치우오. 우리가 뭐 상이나 허물지 못해 그러는줄 아오? 그래 이 좋은 날 이 한경수지배인의 명창도 없이 생일축하연이 제대로 되겠소?》
사람들이 와- 환성을 지르며 지배인을 상 한가운데로 이끌어갔다. 지배인이 기분만 뜨면 민요 《뽕따러 가세》를 건드러지게 불러댄다는것을 잘 알기때문이였다. 사람들이 자리를 내며 떠들어대는데 당과류직장장이 소리쳤다.
《가만, 지운섭 이 사람이 왜 보이지 않아? 지배인동지의 출연을 사회해야 할게 아닌가.》
《금방 여기 있었는데…》
지운섭은 원료직장장과 등을 맞대고 돌아앉아있었다. 그가 왜 갑자기 목을 움츠리는지 림성하는 알고있다. 당비서가 무서워 숨어드는것이다. 그가 공장을 뜨려 한다는것을 알게 된 정주선당비서가 무섭게 성을 냈기때문이다.
원료직장장이 그한테 소곤거렸다.
《왜 갑자기 자라목이 돼서 그러오?》
《쉬!-》 지운섭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대며 속삭였다. 《제발 좀 건드리지 마오.》
정주선당비서는 이미 그가 숨어있는 모양을 좋지 않게 흘겨보고있었다. 그러나 한마디 말도 없이 송수만로인에게로 다가가 그의 두손을 꼭 잡았다.
《아바이, 생일을 축하합니다.》
로인이 정주선의 손등을 두드렸다.
《고맙수다, 당비서동무. 이 늙은게 뭐라구 이렇게 큰 생일상까지…》
《아바이, 이건 우리 공장 전체 로동계급의 성의입니다. 황금태아바이가 오래오래 앉아서 더 많은 일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구 할가…》
《정말 고맙습니다.》
지배인도 제때에 한마디 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그리구 이 못난 지배인에게 욕도 더 많이 해주십시오.》
지운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로소 자기 모습을 드러낼 때라고 본것이다. 그가 비위살 좋게 당비서와 지배인에게 한잔씩 부어주었다.
《황금태박사아바이를 대신해서 이 못난 지운섭이 부어드립니다. 어서 쭉 내십시오.》
지배인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 또 누굴 얼려넘겨보려구? 그래 동무가 무슨 자격이 있어 아바일 대신해서 붓는다는거요?》
《예, 박사아바이한테서 제가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지배인동지.》
지운섭은 지배인이 또 입을 열기 전에 재빨리 정주선당비서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사람들모두가 듣게 우정 큰소리로 말했다.
《자, 당비서동지두 어서 쭉 내십시오. 아, 오늘같은 날에야 뭐…》
그는 정주선당비서가 눈꼬리를 치뜨자 재빨리 말을 돌렸다. 《헌데 당비서동지, 함께 온다던 새 기사장은 왜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까?》
정주선당비서가 나직이 으름장을 놓았다.
《동무가 그걸 알아선 뭘해?》
그러나 곁에 있던 지배인 한경수는 지운섭의 장단에 벌써 넘어가고있었다.
《새 기사장? 그가 아직 안 나타났소? 우리보다 한발 먼저 왔겠는데?…》
지배인은 목을 빼들고 방안의 사람들을 차례로 훑어보기까지 했다.
《아, 저기 있지 않소!》
그의 눈길을 쫓던 사람들이 모두 굳어졌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쪽구석에 틀어박혀있는 젊은 사람, 얌전데기 새각시… 얼굴이 빨갛게 되여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는 고수머리 림성하였다.
지배인 한경수가 그에게 소리쳤다.
《이보, 기사장! 거기서 뭘하오?》
한순간 모든 사람들이 입을 벌린채 굳어졌다. 림성하본인도 몸둘바를 몰라했다.
지운섭이 입을 쩍 벌렸다.
《맙소사! 우리 새각시가 기사장이라구요? 원, 저런!…》
모두가 서로 마주보기만 했다. 저 얌전데기가, 엄중한 사고때문에 당장 미분탄공으로 떨어진다던 사람이 우리 공장의 기사장이라니?… 믿기가 어려웠다. 평양곡산공장이야 전국적으로도 력사가 제일 오래고 또 백두산3대장군의 사적이 제일 많기로 유명한 공장이 아닌가. 온 나라가 다 아는 이 유명한 공장의 생산기술업무를 저 새각시같은 얌전데기의 작은 어깨에 떠맡긴단 말인가?…
정주선당비서가 수더분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 림성하공업시험소장이 우리 공장 기사장으로 임명되였습니다. 소장동무에 대해선 모두가 다 잘 알고있으니 새삼스럽게 소개하지 않아도 될거구… 그러니 우리모두 서로 도우며 일을 잘해봅시다.》
음식을 나르던 녀인이 제일먼저 환성을 올렸다.
《소장동무, 축하합니다!》
어리둥절해있던 지운섭이 그에게 눈을 빨며 을러메였다.
《말조심하오. 그래 아직두 소장이요? 기사장이지.》
《어이구?! 정말… 축하합니다, 기사장동지!》
물엿직장장 리안휘가 흥그럽게 좌중을 둘러보며 한마디 했다.
《이제부턴 곡산공장의 물엿질이 쑥 올라가겠네. 저 사람만큼 물엿을 아는 사람이야 없지.》
《아, 물엿뿐이요?》 얼굴이 철색인 가공직장장도 짝질세라 팔을 내저으며 끼여들었다. 《밤낮 우리 가공직장에 와서 기술혁신을 한다고 붙어있던 사람이 아니요? 가공공정에서도 귀신 한가지지요.》
《자, 그런 의미에서 또 한잔!…》
《그러니 이번엔 기사장을 위해서인가?!…》
《송박사와 기사장 아니, 공장의 현대화를 위해서.》
《좋수다!》
하지만 송수만로인은 여전히 굳어진 표정이였다. 쪼프린 자그마한 눈으로 말없이 술잔만 내려다보고있었다. 그 엄한 표정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끓어오르던 분위기도 자연 가라앉기 시작했다. 송박사의 기술혁신안을 반대한 사람, 나중엔 사고까지 친 사람이 기사장으로 되였으니 지금 황금태아바이는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겠는가?…
지배인 한경수가 팔을 뻗쳐 잔을 높이 들었다.
《아바이, 뭘합니까? 자, 듭시다!》
로인은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천천히 잔을 기울이였다. 놀랍게도 로인은 말끔하게 비운 잔을 탁에 내려놓았다.
와!- 환성이 터져올랐다.
《괜찮은데요, 아바이!》
《놀랍습니다! 그 년세에…》
《우리 젊은 사람들은 못 견디겠어!》
술을 좋아하지 않는 로인이 이렇게 단숨에 잔을 내는것을 모두가 처음보았던것이다. 하지만 정주선당비서만은 조용한 눈길로 묵묵히 그를 지켜보고있었다.
지운섭이 또다시 좌중의 청을 돋구기 시작했다.
《자, 어서 듭시다. 날이 갈수록 젊어지는 송박사아바이를 축하하여.》
림성하는 추운듯 몸을 옹송그렸다. 아까부터 미쳐오고있는 싸늘한 랭기를 느꼈던것이다. 송해연의 눈초리였다. 처녀는 연방 술잔을 기울이는 할아버지와 기사장이 된 림성하를 말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 로케트 날 겨누고 쐈지?》
야무지게 소리치던 어린시절의 그 소녀, 그때의 불만과 의혹, 믿음과 불신이 지금도 한자리에 앉아있다. 놀라움과 반발이 그를 지켜보고있는것이다.
그러나 한쪽에선 벌써 손풍금이 바람주머니를 펴며 노래를 불러대고있었다.
푸른 꿈 키워준 그 손길 없다면
내 마음 날개 없는 새와 같으리
장군님 안겨준 따사론 사랑이
나의 희망 꽃피웠네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송수만로인도 두눈에 눈물을 머금은채 석쉼한 저음으로 노래를 따라부르고있었다. 울고 웃는 그 얼굴에 전등빛이 어룽거렸다. 이렇듯 감격에 목메일 때엔 눈물도 빛을 뿜는것인가?…
아 축복받은 나의 삶이여
나의 삶이여
노래가 고조되는 속에 정주선당비서가 림성하에게 연신 눈짓을 했다. 밖으로 나가자는것이였다. 림성하는 그 의미를 알수 없어 머뭇거렸다. 정주선이 다가오더니 그의 손목을 잡고 슬그머니 밖으로 끌어내였다.
《이보, 기사장동무.》 정주선이 은근히 말했다. 《석우진국장에게 소식을 알려줬소?》
한순간 림성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휴계실에서 내비치던 불빛이 흐려지는듯…
《저, 아직은…》
《전화를 걸어서라도 알려주오.》
《하지만 저…》
《뭘 그러오? 석국장은 동무가 생각하고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요.》
정말 그럴가?… 물론 그도 석우진을 잘 알고있다. 흔히 대틀이라고 하는 사람, 하지만 그날엔 숱진 눈섭을 푸들거리며 노려보지 않았던가?…
유심히 지켜보고있는 정주선당비서의 눈길을 느낀 그는 손에 구겨쥐고있던 털모자를 눈두덩우에까지 푹 눌러썼다.
《비서동지, 제 이제 곧 국장동지에게 전활하겠습니다.》
정주선이 한손으로 그의 어깨우의 눈을 쓸며 웅근소리로 말하였다.
《그래주오. 그는 지금 남포에 나가있소. 우리 공장에 들여올 대상설비때문에 벌써 사흘째나…》
《그렇습니까?》
《참, 그의 손전화번호를 알지? 지금 어데서 무얼 하는지 알아보고 인사를 하오. 아마 무척 반가와할거요.》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속이 편치 않았다. 술잔을 말끔히 비우던 송수만로인, 의혹과 반발이 뒤섞인 싸늘한 눈빛을 던지던 송해연, 그럼 석우진국장은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언제부터였는지 바람이 세지고있었다. 눈송이들도 싸락눈으로 변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알같은 싸락눈이 두사람의 얼굴을 후려갈기군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