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3

 

모든것은 효소때문에 벌어진것이였다. 림성하의 한생이 효소와 인연을 맺고 그와 련결되여있다는것은 공장사람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요즈음 문제시되고있는 사고의 원인은 물론이고 스승들과의 인연도 효소로 이어졌었고 사랑과 가정도 효소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정주선당비서와 같이 차를 타고가면서 그는 괴롭게 눈을 꾹 감고있었다.

한순간 두사람의 무섭게 성난 얼굴이 떠오른다. 세대가 다른 두 스승인 백발로인과 석우진국장… 그때 그들은 공업시험소장인 그를 향해 무어라고 소리쳤던가?…

《왜 제멋대로 하는가! 뭐, 인젠 우리같은건 필요없다구? 인젠 우리가 낡은 문서보따리라는건가?》

사실 그들, 송수만로인과 석우진국장은 림성하에게 효소물엿에 대한 꿈을 심어준 잊을수 없는 사람들이다. 송수만로인이 그를 자기의 손녀와 같이 그에게 화학에 특별한 취미를 키워주었다면 석우진은 그에게 직접 효소물엿에로의 지름길을 열어준 사람이다.

그게 언제였던가?… 림성하가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효소공업에 대한 꿈을 안고 학문을 넓혀가던 어느날 그는 인민대학습당에서 효소물엿에 대한 짤막한 연구론문을 보게 되였다. 별안간 북치듯 하는 가슴의 흥분을 진정할 길이 없었다.

물엿!… 흔히 물엿이라면 집에서 할머니들도 쉽게 만드는것으로 생각하기마련이다. 하지만 그것을 과학적으로, 공업적방법으로 대량생산하자면 갖가지 시약에 의한 여러가지 화학반응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산분해법에 의한 물엿생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효소물엿은 화학시약을 쓰지 않고 미생물에서 얻어낸 효소로 농마를 분해하기때문에 인체에 사소한 해도 주지 않으므로 당뇨병환자들은 물론 극심한 운동을 하는 체육선수, 과격한 힘을 내야 하는 로동자들에게 필수적인 보양제, 에네르기원천이다. 하여 효소물엿생산은 지금 세계적인 추세로 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물엿을 만들기 위한 효소배양이 매우 까다롭고 품이 많이 드는 그것이다. 때문에 아직까지 누구도 그것을 성공하지 못하고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벌써 누군가가 효소배양을 위한 미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고 하니…

그는 흥분된 마음을 안고 론문집필자를 찾아갔다. 그 론문집필자가 바로 곡산공장의 물엿직장장이였던 석우진이였다. 림성하는 그에게 인민대학습당에서 본 효소연구에 대한 론문에 대하여, 앞으로 공업적인 효소배양에 대한 자기의 리상을 길게 설명하였다.

《아하, 그러니 〈황금태박사〉로 불리우는 송수만아바이가 꿈을 키워준 사람이란거지, 응?… 좋은 일일세. 나도 그 아바이의 제자이니까.》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그래서 자네가 나랑 단번에 효소를 가지구 통했구만. 응? 좋아, 아주 좋아. 친구!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 곡산공장에 오라구, 우리 함께 효소물엿을 만들어보자구!》

그날 그는 림성하에게 자기가 연구하고있는 효소물엿에 대한 자료까지 통채로 안겨주었다.

《아니, 이런 귀중한 자료를 제가 함부로 어떻게?…》

온통 땀으로 화락 젖은 석우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걸 꿍지구있다가 엿가마에 녹여먹겠나? 어느놈이 훔쳐가든 베껴가든 효소물엿만 나오면 되는거지. 안 그런가? 내가 이걸 안구 씨름질하는건… 아직까지 임자같은 적임자가 없어서 할수없이 해본거야.》

《아니, 무슨 말씀을…》

《그건 사실이네, 내 모상을 좀 보게. 량강도감자바우같이 생긴 나한테 어디 시험기사재목같은데가 하나라도 있는가 말일세. 아니, 난 안돼. 마침 임자가 효소연구를 전문하구있다니 정말이지 하나도 아까울게 없네. 마침일세. 우리 같이 이걸 완성해보자구, 응?!》

흔히 무엇을 발견해낸 사람들은 많은 경우 성과를 발표하면서도 그 핵심내용은 비밀에 붙이고 공개하지 않는다. 오직 자기자신의 점유물로만 만들기 위해 애쓰기마련이다. 그러나 환하게 웃고있는 석우진의 얼굴에는 힘들게 개척해온 효소비밀에 대한 그 어떤 한쪼각의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림성하는 자기 창조물에 대한 로동계급다운 그의 진실하고 호방한 성품에 존경을 금할수 없었다.

그후 림성하는 그의 권고대로 대학을 졸업하고 곡산공장물엿직장에 배치받아 석우진과 함께 효소물엿연구를 더욱 깊이 파고들었고 석우진은 림성하의 뛰여난 두뇌를 아껴 웃단위인 식료일용공업성 관리국장으로 올라가면서 자기가 얼마간 맡아보던 공업시험소장후임으로 그를 추천하였었다.

모든것이 효소와 련결되고 효소로 맺어졌었다. 효소에 대한 인연때문에 림성하를 친동생처럼 여기게 된 석우진은 남보다 더 극성스럽게 처녀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아니, 누가 어떤 처녀를 소개했다구? 뭐, 극장안내원?… 안돼, 그건 안돼!》

《아니, 왜 말입니까?…》

《자네한텐 나비같이 나풀거리며 도뢰를 떠는 체넨 안돼. 얌전만 빼는 새침데기두 필요없어. 그보다 자네한텐 아주 굳세고 믿음직한 녀자라야 마참해.》

석우진은 그의 어깨를 힘껏 눌러주었다.

《걱정말라구, 내 이미 그런 체네를 점찍어놨어.》

다음날 석우진이 한 처녀를 데리고왔다. 그들은 공장후문쪽으로 구내철길이 뻗어간 인입선에서 만났다. 키가 크고 몸도 실한데다가 눈이 억실억실한 처녀가 석우진과 함께 거침없이 활달하게 웃으며 오고있었다. 어느 한 녀성해안포중대에서 사관장으로 복무하다가 제대된 처녀인데 지금 고속도로건설 청년돌격대 중대장이라고 했다.

《자, 약속대루 데리고 왔네.》

석우진이 씩 웃으며 하는 말이였다.

《그럼… 얘길 하라구.》

석우진이 후문으로 들어가자 처녀가 먼저 인사했다.

《김혁청년돌격대 중대장 최은경입니다.》

구령치는듯 한 목소리, 마치 전쟁물영화의 어느 한 전투장면에 나오는 용감한 처녀중대장 같았다. 그때 림성하는 처녀의 얼굴도 면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예, 예… 전 시험기사 아니, 저 곡산공장 공업시험소에서 일하는…》

당황하여 눈건사도 제대로 못했다. 그만 철길침목에 걸챘는지 갑자기 몸이 기우뚱거렸다.

《어!…》

그를 제때에 붙잡아준것은 처녀였다.

《조심하세요.》

훈련과 로동에 단련된 억세고도 든든한 손이 그를 꽉 붙잡고있었다.

림성하는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였다.

《아니, 왜 그럽니까. 어디 아파서 그러세요?》

《아, 아니…》

림성하는 잔뜩 골살을 찡그리였다. 자기의 팔목을 꽉 잡은 처녀의 손에서 빠져나올수 없는것이 불쾌했다. 그는 처음으로 처녀의 웃고있는 얼굴을 면바로 마주보았다. 남달리 얼굴이 환한 처녀였다. 그에 알맞게 모든것이 유감없이 크고 시원시원했다. 그런데…

《동문… 손아귀가 아주 세구만, 쇠집게처럼.》

그가 투덜거리듯 하는 말에 처녀는 크게 소리내여 웃으며 손을 풀었다.

《동문… 너무 가늘군요, 수수대처럼.》

《난 동무가 그렇게 말할줄 알았습니다.》 성하는 약간 어성을 높이며 잰말씨로 계속하였다. 《옳습니다, 보다싶이 난… 약골입니다. 이렇게 변변치 못하다는걸 우리 직장장동지한테서 다 들었겠는데… 이런 나를 왜 만나자고 했습니까?》

처녀는 그가 화를 내는것이 재미나는듯 했다. 스스럼없이 한바탕 소리내여 웃고나서 처녀가 말했다.

《대신 동무한텐 아주 귀중한게 있지요. 자존심이 강하구 또 학구적이고…》

《학구적이라구요?》

《예, 그 눈을 보면 다 알아요. 늘 꿈을 꾸는것 같은 사색깊은 눈…석우진직장장동지도 내게 말해주더군요, 남달리 학문에 대한 탐구심이 강하다구. 난 그 말에 끌려서 왔어요.》

《헛참!》

그는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듣다 처음이로군. 그건 그렇구 솔직히 말해봅시다, 사실 동무가 바라는 남자란 나같은 사람이야 아니지 않습니까. 나야 이렇게 약골에 성미도…》

《그래요.》 최은경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흔히 녀자들은 억센 남자들을 좋아하지요. 한생을 의지할만 한 그런 담차고 목표가 뚜렷한 남자, 성미도 드센 그런 남자를요. 하지만… 이 최은경은 그런걸 바라지 않아요, 그건 나한테도 있으니까요.》

림성하는 머리를 기웃했다.

《그럼 나한테서 바라는건 뭐요?》

《없어요, 하나두!…》

《아니, 내가 어떻게 그 말을 믿을수 있겠소?》

《믿어도 좋구 안 믿어두 좋아요.》

《챠, 이런… 그럼 어째서 날 만나자구 했소?》

처녀는 또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참, 순진하군요, 어린애처럼!…》

《뭐뭐?》

《됐어요.》

처녀는 재빨리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빠르게 말했다.

《난 동무가 그런 사람이라는걸 다 알고 왔어요. 헌데… 이렇게 순진할줄은 정말 몰랐군요.》

《아니…》

그러나 처녀는 그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자 그럼, 난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걱정말아요. 거기서 싫다면… 우릴 만나게 해준 그 석우진직장장동지한테 가서 사실대로 다 말하세요, 일없어요. 대신 이제부턴 누가 뭐라구 해두 오늘처럼 억지로 끌려나오는 일이 없길 바래요. 자, 그럼 안녕히!》

처녀는 웃으며 돌따서갔다.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철길로반옆을 따라 행진하듯 걸어갔다. 처녀에게는 그 상봉이 하나의 재미나는 군대식유희와 같은것이였는지도 모른다. 잠시후 처녀는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나 그는 그 자리에 그냥 굳어져있었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휩쓸고지나간듯 했다. 그것이 그의 후반생을 향하여 마주불어올 사랑과 애무의 돌개바람은 아니였는지?… 아니아니, 그런 돌개바람은 싫다. 사랑의 돌개바람이든 애무의 회오리바람이든 난 그런것을 견디지 못할것이다. 가뜩이나 약한 몸이 검불처럼 날려가버리고말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잠시후 석우진이 뒤쪽에 다가온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석우진은 멀리 가지 않고 후문쪽에 있었던것 같다.

《어떻던가, 아주 활달하지? 아직두 군대성격이야. 자네 맘에 꼭 들거네.》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은근히 묻는 말에 림성하는 대뜸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원, 무슨 처녀가 그런지… 한바탕 휘둘러놓더니 씽 사라져버리구…》

석우진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얼마나 좋아, 응?!》

《아, 난 싫습니다. 그런 녀자하구 살다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겁니다. 밤낮 구령을 치듯 앞으로, 뒤로, 우로, 좌로 하고 팽이처럼 휘둘러놓겠는데…》

《모르는 소리.》

석우진이 웃음을 거두더니 신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임잔 아직 잘 모르는구만, 강한 성격속에 뜨거운것이 숨어있는 법이야. 이제 두고보라니, 서로 정이 통하기 시작하문…》

《아니 직장장동지, 남자의 눈에 녀자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정이 통한다구 그럽니까?》

《뭐뭐, 녀자가 안 보여?…》

석우진은 처녀를 두둔하다못해 성까지 내며 야단쳤지만 그 시절의 림성하에게도 속에 갓난애기주먹만 한 정도의 고집덩어리는 들어있었다. 석우진이 처녀의 강한 마음속에 뜨거운것이 들어있다고 했다면 성하의 여린 마음속에는 더 질긴 소힘줄이 들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석우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사람이 아니였다. 마침내 어떤 기회가 생겨 림성하의 마음이 쇠바줄에 묶이운듯 처녀가 잡아끄는대로 끌려갈 때까지 줄곧 설복하고 타이르고 강요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것이 효소로 시작되고 효소와 련결되여있는 림성하였다. 이제 그가 엄중한 사고의 책임을 지고 법적, 행정적처벌을 받고 굴러떨어진다면 돌격대의 공격정신으로만 성장한 그의 안해 최은경은 뭐라고 할가?…

 

×

 

그날은 참으로 이상한 날이였다. 아주 놀라운 날이였다. 림성하는 오전내껏 시당청사에서 대기하다가 공장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를 만나기로 되여있는 시당의 책임일군이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웠기때문이였다.

오후 5시가 되였을 때 정주선당비서가 또 차를 들이대였다. 시당책임일군들이 이제야 돌아왔다는것이다. 처벌을 받기도 헐치 않다. 무거운 처벌일수록 더 엄숙하게 진행되는것인지도 모른다. 습관되지 않은 넥타이가 자꾸만 그의 목을 조였다. 엄벌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느낌이였을것이라고 그는 괴롭게 숨을 내쉬며 생각하였다.

드디여 그 시각이 왔다. 누군가 그를 불렀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너무도 엄숙한 분위기였다. 마치 구름을 밟고가는듯 그는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며 몇걸음 더 걸어나가다가 멎어섰다.

키가 큰 사람이 앞에 서있었다. 잠시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그는 당중앙위원회의 책임일군이였다. 그가 무슨 서류를 들고 말을 떼였다. 림성하 자기를 눈여겨보며 아주 엄숙한 어조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의하여 오늘부터 림성하동무는 평양곡산공장 기사장으로 사업하게 되였습니다.》

별안간 귀가 먹먹했다. 폭탄이 터진듯 했다. 눈앞에서 무수한 불꽃들이 춤추듯 어룽거리고 가슴은 너무도 벅찬 격정에 숨길이 꽉 막힌듯 뻐근했다. 그다음 또 무슨 말들이 있었던지?… 시당책임일군이 무엇인가 위대한 장군님의 신임과 믿음에 꼭 보답하기 바란다는 고무적인 말을 했고 가까이에 서있던 여러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축하해주었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살같이 흘렀다. 벌어진 일이 꿈이 아닌지 확인하려면 장딴지를 꼬집어봐야 알것만 같았다. 아직도 모든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그는 정주선당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공장으로 돌아가고있다. 이제 공장에선 뭐라고 할가? 모두 깜짝 놀랄것이다. 효소배양이 실패할 때마다 그 누구보다 안타까와하던 지배인은 물론이고 효소배양실험을 할 때마다 본배양설비를 부탁하는 그에게 한숨소리로 대답하던 옥당직장장, 효소배양분석자료를 놓고 눈물이 글썽하여 활성이 300도 못된다고 하던 분석실장 한순정… 아마 그들모두가 자기들이 잘못 듣지 않았나 하여 두번세번 물어볼수도 있다.

옆에 앉은 정주선당비서가 조용히 물었다.

《기사장동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소?》

《예? 저… 사람들이 이제 날 보고 뭐라구 할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구실도 못하는 사람이 오늘 갑자기 큰 공장의 기사장으로 됐으니…》

정주선당비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만 내다보는것이 그의 대답이 귀에 거슬린것 같다.

《비서동지, 전…》

정주선당비서가 그를 피끗 스쳐보았다.

《섭섭하구만.》

《예?…》

《그러니 동문 지금껏 자기 개인에 대해서만 생각하구있다는건데… 어쩌면 그럴수가 있소?》

목을 누른듯 한 거쉰 소리이다. 좀 실망한듯 한, 노여움에 찬듯 한 어조이다.

림성하는 한손으로 솜옷 앞단추를 매만지며 자신없이 중얼거렸다.

《비서동지, 저야 사실… 뭐 해놓은것도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효소배양은 그냥 실패해서 숱한 사람들한테 비난만 받아오구…》

정주선당비서가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무섭소?》

《아니, 저…》

차창으로 눈길을 돌린 정주선당비서가 머리를 저었다.

《실패가 무서운건 아니요. 사실 그 어떤 실패도 그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엔 성공의 답이 숨겨져있는 법이지. 문제는 실패했다구 해서 의지를 잃고 주저앉는게 무서운거요.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단 말이요.》

그는 잠시 가쁜 숨을 내뿜고나서 천천히 계속했다.

《기사장동무, 동문 지금 제일만 수걱수걱 하면 되던 공업시험소 소장이 아니요. 인젠 큰 공장을 책임진 기사장이란 말이요. 당에서 왜 동무에게 이렇듯 큰 책임을 맡겼는지 그 뜻을 잘 알아야 하오, 당의 뜻을 말이요!…》

《그럼 비서동진…》

림성하는 다시금 속삭이듯 했다.

《제가 하는 효소배양을 믿는단 말입니까?》

《제가 하는?》

정주선이 입귀를 찌프리였다.

《제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최첨단기술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래 비서동진… 그게 성공하리라구 정말 믿습니까?》

《믿소.》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헌데… 잘 알아두시오, 내가 아니라 당에서 그걸 믿고있다는걸.》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풀거리며 차창에 휘뿌려지는 하얀 눈송이들…

잠시 말없이 갔다. 교통보안원처녀가 맵시나게 지휘봉을 휘둘러 오른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교차점에 멎었던 차들이 속력을 놓기 시작했다. 인제는 공장이 멀지 않다. 새로 일떠선 통일거리와 이마를 맞대고있는 낡고 허름한 공장건물, 오랜 력사를 가진 사연많은 평양곡산공장… 지금 저 공장에서는 효소물엿이 아니라 산분해법에 의한 물엿이나마 되살리려고 안깐힘을 쓰고있다. 그리고 얼마전부터는 삼일포특산물공장의 본을 따 지방원료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일에 전력을 다하고있다. 얼마전 삼일포특산물공장에서 갖가지 산나물과 바다나물, 약초들로 고급특산물제품들을 만들어 경애하는 장군님께 커다란 기쁨을 드렸기때문이였다.

고난의 행군의 흔적을 털고 다시 일떠서기 위해 모지름쓰는 평양곡산공장, 멀리서도 그 정경을 바라보니 시꺼멓게 웅크린 형체가 아프게 눈길을 잡아끈다.

림성하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그었다.

《참, 가슴아픕니다. 수많은 공장들이 새롭게 개변되였는데 시내에서도 제일 오랜 증조할아버지벌쯤 되는 우리 공장만 아직 한본새루 저렇게 시꺼멓게 틀구앉아있으니…》

한동안 말이 없던 정주선당비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건 기사장동무가 해야 할 일이 아니요? 공장을 살리고 때벗이를 해야 하는 일을!…》

《제가요?》

《그럼, 바로 동무가!… 기사장동무, 인젠 자기가 누구인지 잊지 마시오.》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가슴이 서늘했다. 자기가 공장기사장으로 임명되였다는것을 한순간 또 망각하고있었던것이다.

한동안 입을 꾹 다물고있던 림성하는 무거워지는 마음을 털어버리려는듯 차창으로 눈길을 돌렸다.

차창밖에서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해의 첫눈, 약속의 눈, 희망과 소원의 눈송이들… 마치 하늘도 아름다운 그 희망과 소원을 축복해주는듯 아낌없이 눈송이들을 퍼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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