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2

 

꿈은 계속된다. 그는 하얀 위생복을 입고 공업시험소의 좁은 복도를 걸어가고있다.

여기는 효소배양실… 온통 흰빛이다. 천정에 매달려있는 형광등도, 벽체의 하얀 타일은 물론 손에 낀 장갑도 희고 정갈하다. 지어 그가 마시는 공기조차 눈처럼 흰것인지 모른다. 공기정화기에서 엄격히 멸균된 공기를 내뿜고있는것이다.

여기서는 무균화가 곧 생명이다. 단 한점의 오염균도 무서운 후과를 초래할수 있기때문이다.

드디여 그는 번쩍거리는 탕크들과 첨단설비들로 들어찬 효소배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뜨거운 백광이 두눈을 때리고 하얀 증기발이 거침없이 숨구멍에 쓸어들었다. 뒤따라 귀전을 후려치는 거쉰 목소리.

《성하가?》

백발이 성성한 로인과 얼굴이 시꺼먼 장년의 사나이가 앞을 막아서서 눈섭을 푸들푸들 떨고있다.

《이게 임자가 주장하던 효소배양이야? 이게 우릴 낡았다구 비웃던 그 첨단기술이라는거야?!》

20여년전 그날 그의 작은 꿈을 소중히 여겨 엄벌처분으로부터 막아준 로인… 비록 그때엔 다 몰랐지만 꿈에는 작고 큰것이 따로 없다. 작은것으로부터 크고 귀한것이 자란다. 바로 그런 믿음으로 오늘까지 화학에로의 길로 그를 손잡아이끌어준 《황금태박사》 송수만아바이…

그 백발로인의 곁에서 지금 숱진 눈섭을 푸들거리고있는 사람은 식료일용공업성의 국장인 석우진이다. 그가 맏형처럼 믿고 따르던 석우진. 림성하는 바로 그들, 《황금태박사》와 석우진국장 두사람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들이 림성하를 효소연구의 길로 떠밀어준것이다.

세대가 다른 두 스승이 공업시험소장인 그를 향해 무섭게 소리치고있다.

《왜 제멋대로 하는가! 뭐, 인젠 우리같은건 필요없다구? 인젠 우리가 낡은 문서보따리라는건가?》

그는 입을 열수 없었다. 눈도 뜰수 없었다. 얼굴을 후려치고 목구멍을 태우는 뜨거운 열기, 그것은 불이였던가? 뜨거운 증기발이였던가?… 솨!- 하는 소리와 함께 압축되였던 공기가 폭풍치듯 했다. 그와 함께 배양탕크에 가득차있던 효소가 날아나고있다. 막대한 자금과 첨단기술로 얻어진 귀중한 효소가 한순간에 증기처럼 날아나고있는것이다.

하늘에 닿은 백발로인의 노성…

《성하, 이제 이 일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응?》

그는 허둥거리며 앞으로 달려간다. 어느새 배양탕크에 머리를 디민다. 그러나 그속엔 아무것도 없다. 순식간에 전멸되여 하늘로 날아난 값비싼 효소!… 그는 절망에 차서 몸을 떨었다. 감시구에 아프도록 손톱이 박히는것도, 이발이 떡떡 맞쪼이는것도 알지 못했다.

방안에 가득찬 증기발이 윙윙 회오리치며 빠질 구멍을 찾고있다. 비상신호등도 앙칼지게 울부짖는다. 찌릉, 찌릉, 찌르릉!… 모든것이 몸부림치며 울부짖고있다.

찌릉, 찌르릉!…

누구인가 그를 잡아흔든다.

《여보, 여보! 전화가 왔어요. 어서 일어나세요.》

안해이다. 림성하는 소스라치며 깨여났다. 으스러지게 악문 이발과 여전히 꽉 틀어쥐고있는 주먹… 그런데 눈앞에는 압축공기가 뿜어나오는 배양탕크가 없다. 전멸된 미생물이나 타래치던 증기발도 없다. 눈섭을 푸들거리던 석우진국장도, 기가 막혀 가슴을 치던 송수만로인도 없다.

꿈이였다, 무섭고도 허망한 꿈!…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끔찍한 꿈이였다. 허나 그것은 그저 우연한 꿈이 아니였다. 사실 얼마전에 실지 그런 일이 벌어졌었다. 마지막효소생산시험에 들어갔던 미생물들, 수백차의 시험을 거쳐 얻어낸 효소생산용미생물들이 몽땅 죽어버렸다. 실패 또 실패!… 그 바람에 실험을 위하여 힘들게 구한 많은 량의 강냉이도 그냥 내버린셈이 되였다.

한경수지배인은 너무 안타까와 가슴을 두드렸다.

《이보 공업시험소장, 이제 그 효소가 강냉이를 얼마나 더 먹겠다오?》

공장전반을 책임진 지배인으로서는 실험용으로 끝없이 허실되는 그 강냉이들이 마치 제 살점이 떨어져나가는것처럼 아프고 괴롭기 그지없을것이다. 어찌 그뿐이랴. 나라에서 준 막대한 자금도 하늘로 날아났었다. 누구의탓인가? 공업시험소장인 림성하의탓이다. 효소배양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오염사고가 일어났었다. 미리 있을수 있는 모든 정황에 대비한 사전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사소한 빈틈도 없어야 했다.

그 일로 하여 공장에서는 공업시험소장인 림성하가 더는 자기 자리에서 일을 못하게 되리라는 말이 돌아갔다. 자력갱생작업반 로동자로 보낸다는 말도 있고 제일 험한 열관리직장 미분탄공으로 내려보낸다는 소리도 있다. 그것이 바로 엊그저께에 있은 일이다.

하지만… 석우진국장과 송수만로인이 분노한것은 그것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림성하가 자기를 키워준 스승들을 무시하고 끝까지 고집하다가 엄중한 후과를 초래했다고 보는것이다. 그래서 분노로 몸을 떠는것이다.

《… 인젠 우리같은건 필요없다구? 인젠 우리가 낡은 문서보따리라는건가?》

누가 그렇게 소리쳤던가? 《황금태박사》 송수만로인이였던가, 아니면 석우진국장이였던가?… 그때 그는 로인의 하얗게 센 눈섭과 석우진의 분노에 떠는 눈길앞에 그만 얼어붙은채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못했었다.

머리맡에서 계속 울부짖는 전화종소리, 그는 손을 내뻗쳐 전화기를 끄당겼다.

《제 공업시험소장…》

《아, 성하동무요?》

정주선당비서의 목소리였다. 그는 대뜸 몸이 가드라드는것을 느꼈다.

《예, 접니다.》

《성하동무, 아직까지 자구있었구만. 잠자리에 그냥 누워있는걸 보니.》

《아니, 제가 누워있는걸… 어떻게 압니까?》

그는 놀라서 수화기를 들여다보기까지 했다.

《왜 모르겠소? 그건 그렇구… 성하동무, 지금 시간이 어떻게 됐는지 알기나 하오?》

그는 재빨리 눈길을 돌려 벽시계를 보았다.

《이크, 벌써 이렇게?…》

《빨리 일어나 차빌 하시오.》

《예, 당장 공장에 나가겠습니다.》

《아니, 동문 나와 같이 갈데가 있소.》

그는 다시금 속이 뜨끔해나는것을 느꼈다. 얼마전에 엄중한 사고를 낸 당사자라는 생각이 다시금 머리를 쳤다.

《함께… 말입니까?》

《그렇소. 내 곧 차를 보내겠소. 그리구 옷차림이랑 잘해야겠소. 면도두 하구 넥타이도 매구.》

《아니, 넥타이까지?…》

그는 더 말끝을 잇지 못했다. 저쪽에선 벌써 전화를 끊었던것이다.

맥없이 송수화기를 떨구고말았다. 끝내 일은 터지고야만것이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견하고 마음의 준비도 미리 갖추고있었건만…

그새 시당에서 내려와 그와 여러차례 만나 담화를 했었다. 사고와 관련된 문제도 포함하여 여러모로 료해확인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두고 처벌받을 때에도 옷차림단장을 꼭 해야 하는지?…

그는 이불을 차던지고 침대에서 내렸다. 서둘러야 했다.

《여보, 내 제낀양복을 좀 가져오.》

《제낀양복을요?》

《빨리!》

급히 세면장으로 들어가 얼굴을 씻고 정주선당비서가 일러준대로 면도까지 말끔히 하고나서 안해를 향해 또 소리쳤다.

《다됐소?》

《예.》 안해가 다림발이 선 제낀양복과 와이샤쯔를 들고 가까이 다가왔다. 《헌데 오늘따라 당신 웬일이세요? 잘 입지 않던 제낀양복을 다 찾구… 무슨 좋은 일이 있는가부지요?》

《쓸데없는 소리!》

안해가 놀라와했다.

《아니, 그렇지 않으문?…》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안해가 내미는 와이샤쯔를 걸치고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 문득 어제 저녁 정주선당비서가 그를 불러 당부하던 말이 귀전에 쟁쟁했다.

《오늘 밤엔 무조건 집에 들어가서 자오. 벌써 며칠째요? 그렇게 잠두 안 자구 자기를 괴롭힌다구 하늘로 날아난 효소들이 살아나겠소?》

《하지만 실패한 원인을 찾아야…》

《실패한 원인이야 동무한테 있지 않소!》

《그건 그렇지만…》

《됐소. 그 얘긴 후에 하기요. 오늘은 더이상 사고에 대해선 신경쓰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자오.》

《아니, 제가 어떻게 편히 잔다구…》

《무슨 군말이 그리 많소?》

정주선당비서가 어성을 높였다. 그는 더 입을 열지 못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비록 그는 속이 께름하긴 했지만 정작 집에 들어오자 그동안 겹쌓인 피로에 숟가락을 입에 문채 그 자리에서 굳잠에 들고말았었다. 안해가 그를 침대에 옮겨눕히기 위해 모진 신고를 했다는것도 알지 못했다.

온밤 정신없이 잤다, 오래간만에 꿈까지 꾸면서… 그런데 그 꿈이 맹랑했다. 별안간 배양탕크에서 솟구쳐오르던 압축공기며 한순간에 하늘로 날아가버리던 값비싼 효소… 참으로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다.

그는 옷을 다 입고 안해를 돌아보았다.

《넥타이는 어데 있소?》

《예, 이제 가져와요.》

옷장으로 간 안해가 넥타이를 고르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아침식사는?…》

《그럴새가 없소.》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약한 신음소리… 무심히 거울에 비친 안해를 바라보았다. 무엇때문인지 입술을 꼭 깨무는 안해, 허리에 올렸던 손을 내리운 안해가 급히 물방울무늬가 찍힌 진하늘색넥타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 손이 떨리고있었다.

그는 안해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오?》

안해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예요, 그저…》

그는 다시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안해가 일없다면 그만이다. 신경쓸것이 없다. 돌격대중대장출신인 그의 안해 최은경은 구멍탄을 찍는것부터 시작하여 벽을 까고 미장을 하거나 톱질을 하고 지붕을 수리하는 일까지 단 한번도 남의 손을 빌린적이 없다. 모든것을 다 자신이 맡아안고 걸싸게 해제끼군 했다.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남들처럼 생활상 애로나 부족한 살림살이때문에 우는소리를 한적도 없다. 그 누구보다 생활력이 강하고 담찬 안해, 동사무소적으로도 제일 책임성이 높기로 소문난 제13인민반장, 그에게는 힘든 일이 없는것 같다.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것도 없다. 돌격대시절에 허리를 좀 상했지만 가두녀맹돌격대 대장을 하고있는 지금도 그것때문에 병원출입을 하거나 약을 사들고 다닌 일조차 없다.

《저, 이보세요.》

안해가 조용히 불렀다.

림성하는 넥타이를 매면서 건성 대답했다.

《왜?》

《오늘 저녁에 두만이가 처녀를 데리고 오겠다는데…》

안해가 말하는 두만이는 대외건설자양성소 기중기차운전사인 림성하의 처남이다. 언제부터 선을 본다더니 이제야 락착을 지은 모양이다.

림성하가 심드렁하여 물었다.

《그래서?》

《한직장에 있는 처녀래요. 당신이 만나보고 좋다면… 아예 오늘 저녁 약혼식까지 하는게 어떻겠는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만나보구 어쩌구 할게 있소? 서로 좋다면 하는거지.》

다음순간 그는 넥타이를 풀어버리며 증을 내였다.

《이거 자꾸만 말시키니까…》

안해가 앞으로 나서더니 풀어헤친 넥타이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다시 매주기 시작했다.

《됐소, 그만두오.》

그는 안해의 손에서 넥타이를 잡아당겨 바지주머니에 쓸어넣었다. 이어 이마에 흘러내린 고수머리를 대충 손으로 쓸어넘긴 그는 면도한 턱을 손바닥으로 문질러본 다음 양복우에 솜옷을 덧입었다.

서둘러 출입문으로 향하며 안해에게 말했다.

《두만이 약혼식은 말이요, 당신 생각대로 하오. 난 아무래도 시간을 낼것 같지 못해. 오늘 저녁에도 효소배양시험때문에 몸을 뺄새가 없소.》

문을 나서던 그는 등뒤에 와닿는 찌르는듯 한 눈길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닐세라… 안해의 굳어진 눈길이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있었다.

《아니, 왜 그러는거요?》

안해가 억실억실한 두눈을 내리깔았다.

《됐어요. 당신이 맡아주길 바란건 아니였어요.…》

림성하는 말코지에 걸린 털모자를 벗어들었다. 남달리 담차고 걸싼 안해, 그 무슨 일이건 남편에게 의탁하지 않고 저 혼자 처리해나가는데 습관되여있는 녀인, 처남의 약혼식만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중대사라도 안해에게는 문제가 없다. 그러니 오늘 저녁 처남의 약혼식도 남편인 그가 별로 마음쓰지 않아도 되는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비서와 함께 가야 하는 그의 심정은 어수선하고 복잡했다. 아마 오늘로 모든것이 끝장나버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긴장하던 공업시험소의 연구사업도, 밤을 패며 지켜보던 공정시험도 그리고 지금껏 꿈을 안고 연구해오던 효소배양도… 그때 밖에서 승용차가 빵-빵!- 하고 경적소리를 울렸다.

그는 급히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정주선당비서의 운전사가 차창너머로 머리를 쑥 내밀고 빨리 나오라고 손짓하는것이 보였다. 그는 손에 든 털모자를 머리에 눌러쓰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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