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19. 신라규중궁궐의 마지막밤 녀왕은 타들어가는 초를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스라치며 두손으로 가슴을 부여안았다. 초가 타들어가는것은 생명이 사그라지는것이요, 생명이 사그라지는것은 다름아닌 녀왕이였다. 녀왕은 가물거리는 초불에서 죽음에 이른, 아니 벌써 생명이 없는 자기의 몸뚱이를 보았다. 사지는 이미
썩어문드러지고 몸통마저도 벌레들이 득시글거렸다. 죽음보다 더 무서운것은 시체를 보는것이였다. 《아-악!》 녀왕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싫다, 싫어! 죽지 않을테다, 죽지 않겠어.》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죽음은 눈에 뜨이게 다가들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어제오늘 처음이 아니지만 이밤따라 더욱 무서웠다. 더욱 커지고 더욱 무서워났다.
막판인가? 왕위에 오른지 어언 십년! 그만하면 단명하는 신라임금치고 꽤 오래 왕위를 누린셈이다. 바로 그것이다. 고통스럽다 하면 죽음도 별치않으련만
너무 편안했으니 죽기가 무서운것이다. 녀왕 만, 신라 51대 녀왕. 돌이켜보면 십년 왕노릇이 그리 힘든것은 아니였다. 만은 왕으로서의 권세와 위업을 그리고 업적을 누리고 쌓지 못했지만 한 녀자로서의 쾌락과 영화를 미련없이 맛보았다. 특히 실컷 색욕을 누렸다. 눈물은 내리고 밥숟가락은 오른다. 나라의 왕으로서의 한 일은 쥐뿔만큼도 없었지만 생명으로서의 쾌감은 실컷… 《그만했으면…》 하고 위안을 가져볼만 하겠지만 거룩한 녀왕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타는듯 한 욕망, 무엇인가 더 가지고싶은, 더
누리고싶은 욕망은 갈수록 솟구쳐올랐다. 불쌍한 녀자였다. 《선위(禪位)하심이 어떠하신지요?》 시중 준흥이 조심스럽게 아뢴 말이였다. 《어, 그리하지 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시중 준흥이 하는 말이면 다 그리하라 윤허해주는데 버릇된 녀왕은 사람좋은 할망구처럼 말했다. 오히려 놀란것은 준흥이였다. 그만이 아니였다. 측근들이 다 그랬다. 신하들은 어리벙벙해서 서로 마주보았다. 갑자기 잔치로 떠들썩하던 궁궐안이 조용해졌다. 그제야 녀왕은 뭔가 심상치 않은걸 느꼈다. 《뭐? 선위?》 그럼 왕자리를 물려주라는것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신하로서 임금에게 과연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시중, 이자 뭐라 했지요?》 녀왕이 얼떠름해서 물었다. 《저…》 시중 준흥으로서는 하고싶지 않은 말이였다. 그리하라 먼저 말한것도 아니고 신하가 선위하라 함은 곧 반역이였다. 그렇지만 준흥이라고 해서 하고싶어 한 말은 아니였다. 어쩔수 없어 한 말이다. 삼년전, 그러니까 갑인년 2월에 최치원이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로서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시국의견을 담은 10여조목)라는것을 올렸다. 물론 그것은 녀왕에게 직접 올라간것이 아니라 우아래를 온통 주무르는 시중 준흥에게 올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준흥은 최치원의 글을 한갖 명성을 뽐내보이려는 선비의 글재간으로 알았다. 거꾸로 그 글에서 나라를 비난하는 역적의 냄새가 난다고 괘씸하게 생각했다. 조목조목이 다 그러했다. 《최치원이 그 무슨 의견서라는걸 올렸사온데 참 문장이 좋소이다.》 하고 시중은 녀왕에게 아뢰기는 했다. 글내용은 둘째치고 문장이 어떻소 하고 칭찬 발라준것만으로도 최치원에게는 참으로 황송한 일이라고 시중은 생각했다. 사람이 일단 벼슬에 올라 영화를 누리기 시작하면 악착스러워진다. 스님이 고기맛을 보면 빈대껍데기까지 먹는다던지… 신하란 예로부터 임금의 노예여야 한다. 종이 종으로서 고역스럽지 아니하면 그건 곧 은혜를 저버리는것이요, 신하가 임금의 노예구실을 하지 아니함은
역적으로 가는 길이다. 벼슬의 본 의미는 임금을 대신해서 일하는것이지 놀고먹거나 제 족속들의 살길을 열어주는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신라 말기에 이르러 조정의 벼슬아치들이라는건 나라일은 침바른
입술에나 올리고 몸으로는 임금을 릉가하는 호의호식에만 밝히고있었다. 이런 나라가 어찌되느냐 하는건 불보듯 뻔한노릇이다. 최치원이 올린 글이 아니라도 신라의 조정이 벌써 구린내를 풍기고있음을 누구나 다 알았다. 《선위하시죠.》 하고 말할 때쯤 해서는 제아무리 시중 준흥이라 해도 막바지에 이른 나라일을 두고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었다. 서남쪽의 견훤이 이제는 커질대로 커진 호랑이가 되여 서울까지 넘겨다보며 점점 날뛰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도깨비불처럼 일어난 반역의 무리가
이제는 나라의 북부지방 거의다 말아먹고 궁예라는 역적이 신라 9주의 세개 주 즉 하슬라주, 삭주, 한주까지 차지하고있었다. 그것은 그저 쉬이 꺼질 불이 아니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의 궁궐문이 하루아침에 박살날수 있다. 그것도 그것이지만 조정대신들이 더 야단이다. 찍소리 못하게 억눌러놓은줄 알았는데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에 초불신세가 되자 대신이라는것들은 이때라고 그 모든 책임을 시중 준흥에게 은근히 몰아붙이려는 심산이다. 벌써 그런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준흥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준흥에게는 견훤이요, 궁예요 하는것보다 당장 턱밑에 있는 대신들이
더 문제였다. 마련을 봐야 한다. 계책을 짜내야 한다. 계책이라는게 딴게 없다. 소잔등에 붙어 피를 빨던 소파리가 살아나자면 제때에 다른 소잔등으로
날아가버리는것이다. 죽은 소잔등에 계속 붙어있을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저… 선위를…》 하는것이였다. 다른 왕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것도 주동적으로 해야 준흥이 살아날수 있다. 《그러니 나를 보고 왕위에서 물러나라 그거요?》 녀왕은 아직도 사태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었다. 그럴수 있는가? 시중 준흥이 어떤 사람인가. 그만큼 녀왕을 위한 사람이 있는가, 원 롱담도… 신하가 롱담하러 들면 못써, 못쓰지. 왕이 롱담을 해도 안되는데 이건… 시중 준흥은 더 말하지 않았다. 여느때처럼 밖에서야 눈보라가 일든 비바람이 치든 개의치 않고 얼씨구 좋다 하던 잔치가 별안간 시무룩해졌다. 녀왕은 아무 말도 안하고 자리를 물렸다. 다음날 녀왕은 시중을 불렀다. 《어제 그게 무슨 말이오?》 하고 왕이 물었다. 시중은 어물어물 비로소 처음으로 나라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녀왕으로서는 뜻밖이였다. 《그러니 이때껏 나를 속였다는거요?》 《황공무지로소이다. … 다만 신하가 알아서 잘하자던노릇이 그만… 워낙 일이 불가항력이라…》 호사다마 즉 좋은 일에 마귀가 많다던지… 허나 사람은 좋은 일만 누리기 좋아한다. 나쁜 일을 경계하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끝에
가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 《임금께서 십년을 왕위에 계신것만 해도 대단하오이다.》 그게 다 준흥을 비롯한 신하들의 덕이라는 소리다. 《그건 그렇고, 정말 나라일이 그렇게도 위태롭게 되였소?》 녀왕이 불쌍하게 물었다. 이게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인가? 시중 준흥은 그저 허리를 굽히고있다. 그때부터다. 녀왕은 십년만에 처음으로 뭔가 심중한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다. 한번쯤
까짓거 죽지 않으면 살겠지 하고 호통이라도 쳐보겠건만 그는 녀자였다. 십여년 움츠러들던 몸뚱이에 그런 용기는 벌써 사라져버렸다. 자연히 한숨소리만 높아갔다. 왕이란 사람몸에 비유해 말하면 머리와 같은것이다. 머리에는 눈이 있고 귀가 있고 입이 있어 제 몸을 보고 바깥소리를 들으며 먹을걸 먹고
좋다나쁘다 소리를 질러야 정상이다. 그런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먹지 못하고 말을 못하면 그 몸은 벌써
죽은것이다. 머리가 제구실할 생각이 없을 때 제일먼저 찾아드는것이 파리, 개미떼다. 이를테면 간신들이다.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제상에만 눈이 어두운
이런 간신들은 너무 많아 야단이다. 우주만물에 빈 공간이란 없다. 임금이 뜻이 없으면 임금이 아니요, 용기와 담력이 없으면 임금이 아니다. 그건 다만 간신들의 먹이감이요,
놀이감에 불과하다. 그런 임금, 그런 머리가 천이면 뭘 하고 만이면 뭘 하랴. 또 저 잘났다고 헛소리 아무리 줴친들 뭘 하랴. 다만 겨레를 위해서는 제때에 죽어버리는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할것이다. 정사(897년)년 6월. 녀왕 만은 태자로 정하였던 헌강왕의 서자인 조카 요에게 선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불쌍한 녀왕은 후사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태자 요, 오라비의 아들 요가 바로 신라 52대왕 효공왕(孝恭王)이다. 그로부터 반년 지나 12월에 녀왕이였던 만은 후궁에서 죽었다. 가야산 해인사어귀 홍류동. 비의(緋衣-붉은 비단옷)공복을 입은 사람이 물가에 서있었다. 그는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이윽토록 내려다보고있었다. 당대 신라는 물론 저 바다건너 당나라에도 천하의 문사로 이름을 날린 최치원이다. 자(字)는 고운(孤雲), 지금 그의 자(字)가 꼭 자기의
삶과 같음을 허거프게 생각하고있다. 갓마흔의 한평생. 12살에 당나라에 류학가 17살에 공부를 성취하고 선주 표수현위를 거쳐 승무랑 시어사 내공봉이 되여 자금 어대까지 당나라 황제에게서 받았다. 그후 황소의 란을 평정하기 위한 관군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유명한 《토황소격문》을 지었다. … 다만 천하의 사람이 다 죽이기를 생각할뿐더러 또한 땅속의 귀신들도 이미 죽이기를 의논했도다. … 고운은 헌강왕 11년인 885년 3월에 신라로 돌아왔다. 16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셈이다. 말기에 이른 당나라의 형편도 마음에 없는데다가 고국에 대한 뜨거운 정으로 귀국하는 치원의 마음은 한없이 설레이고 포부 또한 컸다. 중원에서 익힌 보현(普賢)의 도(道)를 고국에서 펼치리라! 허나 그것은 헛된 꿈이였다. 나서자란 고국은 최치원을 시기와 질투로 받아들였다. 견디다 못해 자원하여 대산, 부성태수로 력임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나라 돼가는 꼴을 보다못해 시국을 론하는 의견서도 올려보았다. 그러나 골병이 들대로 든 나라는 어느 한 구석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기껏 얻은것이 6두품의 웃머리벼슬인 아찬이다. 그나마 시중 준흥이
선심쓰듯 왕에게 주문하여 내려진것이다. 최치원은 물가에 허리를 굽혀 한웅큼 물을 떠올렸다. 물은 손가락짬으로 빠져버렸다. 그는 모두숨을 괴롭게 내쉬며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나운 물살 바위돌에 부딪쳐 골안이 온통 울부짖는 물소리 사람이 지척에서 떠든다 해도 그 소리 조금도 들리지 않네 하찮은 세상 속된 말다툼이 귀전에 울리는건 진정 싫어서 급한 물소리 온 산에 가득찬 이곳으로 짐짓 달려왔어라 … 가야산으로 들어올 때 조정에서 보낸 사람이 치원을 만나러 왔다. 《아찬! 다시 마음을 돌리시오이다. 시중 준흥께서는 아찬께서 그냥 조정에 남아 국사를 돌보았으면 하오이다.》 진성녀왕이 선위한 후 조카 요가 왕이 되였다. 이는 시중 준흥이 천거하여 그렇게 되였다고 수군거렸다. 그자체가 치원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조정의 꼴도 그렇거니와 끝끝내 사리사욕을 벗어나지 못하는 시중을 비롯한 간신들의 태도도 역겨웠다. 하늘이 무너지는데 연약한 사람의 두손을 가지고 어찌 막으랴. 불이 나무에서 났으나 불이 맹렬하면 나무가 타고 물이 배를 띄우지만 물이 사나우면 배가 뒤집혀진다. 지금 큰 흉년이 들어 좀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 드디여 소진(燒塵)이 국내에 자욱하고 풍우가 농사를 잡치게 하며 뭇도적이 더욱 치성하니 농사를 지을수 없다. 군, 현이 모두 도적의 소굴이 되여 산천이 모두 전장이니 어찌 하늘의 재앙이 우리 동해에만 흘러드는것인가. 최치원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시중의 뜻은 고마우나 저는 이미 마음을 다졌소이다.》 《끝내 산에 드시겠다는것이오이까?》 《그렇소이다.》 《아찬! 시중어른께서는 아찬을 어여쁘게 보시오이다. 은혜를 베푸는데 어찌 마다하시오이까?》 최치원은 희미하게 웃었다. 《도파 도파 지리다도파.》 하고 치원은 입속으로 되뇌였다. 그게 나라가 망하니 리치를 아는자 떠나간다는 소리를 말한건지는 모른다. 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 당나라가 멀지 않아 망할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때껏 배운 뜻을 살려 고국 신라를 일떠세우리라 결심하고 귀국하였는데 정작 와보니 당나라보다 더하면 했지 못하지 않다. 이 무슨 필연인가? 하늘의 뜻인가? 충(忠)을 배우고 천하의 한다하는
학문을 익혔지만 그것으로 나라를 구원할수는 없었다. 문(文)은 란세에 너무나 허황했다. 최치원은 천천히 빨간 공복을 벗었다. 신라가 준 벼슬의 옷. 최치원은 그것을 물우에 띄웠다. 그리고는 일어났다. 나라는 망해도 산천은 예대로다. 그는 가야산으로 들어갔다. 후날 치원은 이런 글을 남겼다. 계림은 누런 잎이요 곡령은 푸른 솔이라… 무슨 뜻인가? 최치원은 신라가 망하고 송악의 왕건이 일어서리라는걸 예견하였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