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11. 무정세월(2)

 

어슬무렵.

외사정 순기는 영안성 왕륭의 저택에 찾아갔다. 왕륭의 씀씀이 여느 사람과 달라서 한번 청한 사람에 대해서 대접이 아주 후하다는 소문이 짜- 하게 나있어 순기는 저택의 문앞에서부터 벌써 목구멍으로 닭알침을 꿀꺽꿀꺽 소리내며 넘기였다.

하인이 문을 빠끔히 열고 나왔다.

《뉘신지요?》

《외사정이다.》

《외사정? 어느 외사정이요? 송악 외사정은 아닌것 같은데…》

《이놈, 주 외사정이다.》 하고 순기가 손바닥을 머리우에 올리며 으쓱하듯 하는 말에 하인은 이게 웬 비렁뱅이냐 하는 눈길이다.

순기는 올각올각하니 결났다.

《주 외사정이라구요? 어느 주 말이요. 오주요, 염주요?》라고 능먹은 하인이 시침을 빡 따고 어리숙한체 하는데 수작인즉 《오주》 하면 까마귀 내지 더럽다는 소리요, 《염주》 하면 싫다는 소리라는게 그 하인의 뻔뻔스러운 낯짝에 그대로 배여있었다.

순기의 눈시울이 파르르 떨었다.

생각 같아서는 구리로 만든 관인(관청도장)을 꺼내 이 요살스러운 녀석의 이마빡에 딱 소리나게 붙여주고싶었다.

외사정을 괄세한다? 그게 이 신라에 천이냐, 만이냐. 신라 9주에 각각 2명씩, 군에 1명씩 두어 지방관리의 동향, 직권람용, 탐오행위를 감시통제하는 벼슬이다. 주의 도독이나 군의 사찬보다 세도가 있으면 더 있다. 네놈이 개올리는 상전도 다 내 눈아래있다. 놈아! 알기나 하느냐? 한번 되게 부르트게 할가부다.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이 장사치의 앞발아!

거기까지만 생각해도 외사정의 속은 느긋해진다. 그래서 《으흠, 으흠.》 하며 체면을 세운다.

외사정은 낯내기하라는 벼슬이 아니다. 나라일 하라는 벼슬이다. 아는 놈이 참고 큰 놈이 참는다. 장사치의 대궁밥이나 얻어먹고 사는게 세상인가부다 하는 이런 나부랭이들과 찧고 까불고 해야 누워서 침뱉기다.

《이봐, 너의 주인 사찬이 바로 날보고 찾아와 줍쇼 했단 말이야. 알어?》

순기는 훌쭉해진 배에 힘을 주어 말했다. 점잖게.

하인은 그래도 선 살구먹은 상통이다.

《야, 어서 주인을 부르지 못해?》

순기가 소리치자 하인은 눈을 찔 흘겼다.

《소리는 왜 치슈? 주인없소.》

《뭐, 뭐야?》

《주인님이 없다질 않소!》

《너, 이자 뭐라고 아가리 놀렸지?》

《왜 자꾸 이러슈. 외사정이면 외사정이지 우리가 뭐 죄인이요? 남의 집 문앞에 와서 복잡하게스리…》

외사정 순기의 입이 물에서 꺼내놓은 붕어처럼 되였다.

없다? 왕륭이 집에 없어? 그게 무슨 개짖는 소리냐? 아까는 저녁에 집에 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집에 없다?

순기는 치솟는 결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으흠, 네가 잘못 아는 모양이구나. 혹시 사찬이 어디 갔다가 늦게 오시는게 아니냐?》

어쨌든 지금 순기는 손님이다. 그러니 참는수밖에 없는것이다. 배고픈 나그네는 더욱 그런 법이다.

순기가 한풀 꺾으며 행여나 해서 얼리니 하인은 더욱 뿌루퉁해졌다.

《없다질 않소. 주인께서는 뭍에 내리자마자 송악으로 가셨소.》

《송악에? 왜?》

《글쎄, 급한 일이라면서 여기에는 들리지도 않고 가셨으니 알턱없죠.》

하인녀석의 버릇없는 수작에 외사정은 얼떠름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잘못 들은게 아닌가? 송악저택으로 오라는 소리를…

외사정의 이마살이 되게 찌프러졌다.

새파랗게 독이 솟아났다.

송악이든 영안이든 귀찮다. 잘못 알았을수도 있다. 입을 쓰는 놈보다 귀를 쓰는 놈이 더 잘못있다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지금 왕륭이 이 외사정을 놀렸다는것만은 분명했다. 그놈이?

외사정은 하인이 쾅 문을 닫고 들어간 뒤에 입술을 칼날처럼 벼리였다.

아뜩하다. 절벽에 선 심정이다. 꼴보기 싫고 불쌍한게 문전축객이다.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쫓겨나다니… 괘씸한게 도를 넘어 부글부글 속이 게거품을 내뿜었다.

이걸 참아? 그저…

하지만 문전돌입할수도 없다.

외사정은 돌아섰다. 제 입술을 말린 황구신씹듯 깨물며 걸음을 옮겼다.

《두고보자! 네가 어디… 구린내를 들춰내고야말테다.》

그길로 외사정은 한주 도독을 찾아갔다. 도독은 관사보는 때도 아닌데 찾아온 외사정의 청에 낯부터 찡그렸다.

하지만 어쨌든 들라했다. 외사정이라는게 내 몸에 차고있는 칼이라도 내 칼이 아니요, 나라님이 때에 따라 그걸로 도독의 몸뚱이를 깎아내릴수도 있는 벼슬이기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밤중에?》

《안됐소이다, 도독어른.》

《예서 더 안되겠나. 어서 무슨 말인지 하게.》

《다름아니라 송악 사찬때문에 왔소이다.》

《그 사람 왜?》

《두루 눈에 띄우는게 있어서…》

《뭔데?》

《도독께서는 송악 사찬이 나라의 역적이라는걸 아시오이까?》

《여, 역적!》

한주 도독의 잠기 매달렸던 눈이 하품하는 입처럼 때꾼해졌다.

《이 사람, 지금 잠꼬대하나?》

《틀림없소이다.》

외사정 순기가 벼룩씹은 낯으로 우겨대자 도독도 긴장해졌다.

《음, 이건 심중한 문제일세. 도대체 증거가 있나?》

《이 외사정이 증거없이 말하리까?》

《그 참, 아닌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그래 증거가 뭔가?》

도독의 물음에 외사정은 입이 막혔다.

그는 개구리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요거다 하고 내놓을 증거가 있을리 없다. 그저 결김에 잡았다 한 일이니…

도독은 한참 외사정을 지켜보다가 자리를 고쳐앉았다.

《임자 보아하니 송악 사찬에게 이를 가네구려?》

《옳게 보셨소이다.》

《모를 일인데…》 하며 도독은 입을 쩝쩝 다시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인이 왕륭을 미워한지 오랬소이다.》

외사정은 눈을 쪼프리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엉? 듣다 처음일세. 내가 알기엔 그 사람이 자네에게 섭섭치 않게 대해준다던데… 또 그래서 자네도 그 사람이 괜찮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랬습죠. 하지만 어디 수박이 겉과 속이 같소이까?》

《자네 다시 보게 되누만. 사람이 그러면 못쓰지. 안팎이 달라서는 안되네. 자고로 사람이라는게 남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결초보은…》

《소인은 그에게서 은혜를 입은것이 없소이다.》

《왜? 그 사람이 다달이 재물이랑 쌀이랑 보내주었다고 자네 입으로 자랑한걸로 아는데…》

《그야 그 작자가 챙기는데 비하면야 새발의 피지요.》

《그래서 싫다는건가?》

《그래서만이 아니오이다.》

《하면?》

《글쎄, 뭐라 해야 할지… 그놈은 무턱대고 싫소이다. 제가 무슨 임금이나 되는듯이 우쭐거리는 꼴이…》

《이 사람아! 그게 질투라는거야. 남 잘되는 일에 심술내는거… 자네야 직분이 외사정인데 공과 사를 헛갈려서는 안되지?》

《사사로 그런건 절대 아니오이다.》

《그럼?》

《도독어른, 그녀석은 뭔가 우리와 다르오이다.》

《근거가 있나?》

《냄새가 어딘가…》

《아스게. 왕륭은 좋은 사람일세. 까놓고 말해서 장사로 치부해서 그만큼 관헌들에게 례물을 푸는 사람이 어디 쉽나? 더구나 요즘같이 어수선한 세월에 다 제 속 꿍지느라 눈깔이 새빨개지는 판에… 자네 괜한 심술이네. 아예 그만두게. 그 사람이 알았다가는 자네도 무사치 못해. 그 사람 세력도 만만치 않다는걸 모르지 않을테지. 오죽했으면 나도 그와 튀는걸 좋아하지 않겠나?》

《어쨌든 가만있을수 없소이다.》

《가만있지 않으면?》

《뒤를 캐보겠소이다.》

《그야 자네 직분이니 맘대로 하게만 숙고하라구, 숙고…》

《만약시 그놈이 역적이라면?》

《뭐, 역적? 하면 역적아닌 사람 없게?》

《도독어른, 장보고를 모르시오이까? 왕륭은 어쩐지…》

《설마…》

《도독어른, 요즘같은 세월에 무턱대고 사람을 믿었다가는 큰코 다치오이다.》

《그럼 어쨌으면 좋겠다는건가?》

《그저 겉으로 웃어주면서 속으로 의심하는게 상책이오이다.》

《하여튼 좋네. 만약시 걸리는게 있으면 그때 가서 보지.》

《알겠소이다.》

외사정은 입을 옥물었다. 이쯤 도독을 몰아댔으면 됐다.

도독은 도독대로 외사정의 독사같은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이 물건짝이 왜 갑자기 독을 쓸가? 여느때는 왕륭이라면 나라님 모시듯 설설 기며 발라맞추던게… 사람이라는게 참 모를거야. 모두 미쳤나부다. 왕륭은커녕 나부터 조심해야겠다. 언제 날 물어메칠지 알게 뭔가?

도독은 쩝쩝 소리를 냈다.

 

왕륭은 자기를 맞아주는 안해의 낯빛을 보고 아들에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걸 감촉했다. 《오셨나이까?》 하며 눈길을 피하는데 그 눈은 눈물에 젖어있었다.

《음, 그새 별일 없었소, 다들?》

왕륭은 뻔한 소리를 하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첫눈에 자리펴고 누운 아들이 안겨왔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러나 태연한체 했다. 옷을 벗어 넘겨주며 아들쪽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건 자기를 속이는것이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딴전 편다.

《고뿔이나 앓으면서 그다지 쯧쯧…》 하면서 왕륭은 겉도는 생각에 파묻혔다.

도불의 말이 옳다. 난 너무 아들녀석에게 꼼짝 못하는것 같다. 안 그런다 안 그런다 하면서도 어쩔수 없거던. 그건 좋지 못해. 바라는것이 클수록 자식에게 더욱 대범해야지. 고생을 시키면서 키우는게 사내대장부야. 그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인정은 그렇지 못하지. 늙은 하늘소 새끼다루듯 한다니까. 안다. 보물이 귀할수록 대수롭지 않은듯 해야지 자꾸 맘을 못 놓으면 도적 맞히거던. 이래서야 어찌 나라 대들보감이 자라길 바라랴.

하면서도 왕륭의 가슴은 후두둑 뛴다. 아들의 병이 심상치 않다.

첫눈에 알린다.

《어찌다 이리 됐느냐?》 하는 왕륭의 말투에는 벌써 짜증이 묻어난다.

여느때 없던 일이다.

《조금 나은줄 알았는데…》 하고 집사가 얼버무린다. 왕륭에게 건이 나았다고 한데 대한 변명이다.

《낫다가는 더해지군 하나이다.》

안해는 눈물을 훔쳤다.

《의원에게 보였느냐?》

《보였소이다.》

《그런데?》

이때 딴 방에서 의원이 나와 엉거주춤 왕륭앞에 섰다.

《의원어른, 어떠하오이까?》

《사찬어른, 면목이 없소이다. 저로서는 애를 썼는데 도무지…》

왕륭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가망이 없소이까?》

《글쎄요.》

왕륭은 의원의 손을 잡았다.

《고쳐주시오이다. 그럼 무엇이든지…》

《다른 의원을 불러보심이 어떠하올지… 의원마다 서로 보는 눈이 다르니…》 하고 의원은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의원어른이 아니라면 또 다른 의원이 있소이까?》

《나보다 의술이 밝은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지요.》 하면서 의원은 누구누구 하며 손을 꼽았다.

왕륭은 집사에게 얼른 그 의원들을 찾아가라고 했다.

《그럼…》 하며 의원은 자리를 떴다.

왕륭은 아들의 머리맡에 앉았다.

웬만해서 앓은적이 없는 아들이다. 늘 씩씩하고 잘 놀더니 이게 웬 일인가.

참으로 사람의 일이란 모를것이다.

《뭐 괜찮겠지. 걱정마오. 아무려면… 사람이 나서자라느라면 앓기도 하고 그런거요.》

왕륭은 바로 자기를 위안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이제 용한 의원들을 불러보이면 인차 나을게요.》

안해는 또 눈물을 닦았다.

《상공께서 오셨으니 참으로 마음이 놓이오이다. 그러지 않아도 나흘전에 꿈을 꾸었나이다. 어찌나 무섭던지… 글쎄 우리 건이 높은 벼랑에서 떨어져 온통 피투성이 되여서 하는 말이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나이까?> 하지 않겠소이까?》

《공연한 걱정, 어서 좀 쉬오.》

왕륭은 속이 좋지 않아 안해에게 일렀다.

희비가 이렇듯 엇바뀌다니…

당나라에서 돌아오기 전날의 일이 떠올랐다. 왕륭이 당나라에 간것은 장사일도 장사일이지만 그곳 형편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아들 건이 벌써 열일곱이 되였다. 뜻을 이룰 나이다. 왕륭으로서는 이제 아들 건이 나래칠 하늘이 어떤지 보아야 했다. 왕륭은 바다건너 당나라의 형편이 이 나라 신라에 끼치는 영향을 모르지 않았다.

고구려이래 이 신라는 당나라에 철저히 아부하는지라 당나라에서 재채기하면 벌써 열이 나는것이다. 신라가 다 돼가는게 그저 먼 손끝, 발끝에 곪는것과 같은가? 당나라는 어쩌고있는가. 당나라가 건강하다면 신라의 병도 쉽게 꺼꾸러질만큼 위급한게 아니다. 때를 모르고 아들을 훌쩍 날려보낼수는 없는 왕륭이였다. 그래서 당나라에 간것이다. 날개를 폈다가 혹 꺾일수도 있다. 왕륭이 우려한것은 이제 이 나라 신라에서 본격적인 세력싸움이 벌어질터인데 당나라가 개입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이다. 그런데 왕륭이 보건대 이미 당나라도 갈만큼 갔다. 당나라형편도 어수선한 때에 바다건너 신라의 일에 간참할 겨를이 없을것이다.

왕륭은 기뻤다. 일은 바야흐로 제대로 되여간다.

그런데 정작 때가 되였는데 당사자인 건이 꺼꾸러진다면 이게 얼마나 통탄할 일이냐.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는게 아닌가.

왕륭의 슬픔과 괴로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왕륭은 도선스님의 가르침을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때만큼 걱정되는것이 없었다.

하늘의 뜻을 알수 없지 않는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시여! 이 왕륭을 보살펴주옵소서…》

왕륭이 합장하고 념불을 외우는데 안해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요?》

《저, 용한 무당을 한번 부르지 않겠나이까. 굿을 해서…》

왕륭은 이때껏 별로 무당의 푸닥거리를 믿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다르다. 건이 나을수만 있다면 지푸래기라도 잡을 판이다. 당장 눈섭에 불이 떨어졌는데 언제 시비 가리랴!

왕륭은 한숨을 쉬며 그러라 했다.

집사가 의원과 함께 나타났다.

제 말로는 송악일판에서 저밖에 없다는 의원이다. 의원은 건의 맥을 짚어보고 침통을 꺼냈다.

《걱정마시오이다. 이제 한대 맞고나면 툭툭 털고 일어날것이오이다.》

말만 들어도 살것 같았다.

왕륭은 제발 그러기를 바라며 의원이 침놓는것을 지켜보았다.

《무슨 탈이오이까?》

왕륭이 조심히 물었다.

《예, 그저 그러루한 탈이오이다.》

의원이 얼버무렸다.

왕륭은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이 사람에게 의지해보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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