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8. 보이지 않는 화살

 

아흔아홉굽이 재를 넘어선 말 한필이 북원관아를 향해 부리나케 달렸다. 말꼬리뒤로 먼지가 뽀얗게 일어났다.

미친듯 달리는 말을 피해선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몰라 수군거렸다.

《웬 일이요?》

《글쎄, 또 싸움이 터진게 아니요?》

의문과 불안을 안은 말은 곧장 관아에 이르렀다. 미처 말이 멎어서기도 전에 기수가 엎어진듯 뛰여내려 관아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금 있더니 관아에 일보러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왁작 떠들며 쏟아져나왔다.

《궁예대장이 하슬라를 점령했다!》 하는 소문이 날개달린듯 북원에 퍼졌다.

《뭐, 하슬라를?!》

군사의 보고를 들었을 때 량길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였다. 그는 손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오락가락했다.

《궁예가 하슬라를 먹었단 말이지? 그것 참…》

어쩔줄 모르며 한동안 서성거리던 량길이 문득 멎어섰다.

그의 입가에 피던 웃음이 사라졌다.

낯빛이 해토무렵 얼음처럼 변해버렸다. 나중에는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모여왔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량길을 쳐다보았다.

《다들 돌아가라고 하게. 오늘 일은 미루겠네.》 하고 량길은 집사에게 일렀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얼마후 한사람이 량길에게 왔다. 금대산 성주 마노였는데 그는 량길이 누구보다 믿는 사람이였다.

《두령님! 기쁘겠소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마노가 하는 말이였다.

《뭐가 기쁘다는건가?》

《뭐라니요? 궁예가 하슬라를…》

《응, 그거…》

량길은 눈을 올리뜨고 마노를 보다가 멋없이 턱방아를 찧었다.

마노는 량길을 보며 슬며시 웃었다.

《여보게, 그… 저… 궁예를 어떻게 봐야 할가?》

량길은 관자노리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 물었다.

《어떻게 보다니요. 기쁜 일이 아니오이까?》

《궁예가 내 령이 없이 하슬라를 쳤는데도?》

《그렇긴 한데… 어쨌든 하슬라를 먹지 않았소이까?》

《그게 문젠가? 궁예가 누군가? 내 부하지? 그런데 내 명령없이 제멋대로 싸워? 용서할수 있는가? 다들 궁예처럼 놀면 앞으로 일이 어찌된단 말인가?》

《하지만 두령님!》

《전번 삭주일도 그렇지. 궁예가 제멋대로 놀아나서 삭주에서 쳐나오지 않았나? 그간 잠잠해있다 했더니…》

《이번 일은 전번 일과는 다르오이다.》

《뭐가 다르다는건가?》

《하슬라를 먹음으로써 궁예의 세력이 커졌소이다. 서뿔리 다쳤다가는 오히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고약한…》

《두령님, 그럴것없이 고을 촌주, 원로들을 모아 의논해보시지요. 다들 두령님 생각대로라면 중지를 모아 하는 일이라 두령님 뜻대로 될수 있지 않겠소이까?》

량길은 이마살을 쪼프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궁예는 능순을 뒤에 달고 훈련하는 군사들을 돌아보았다. 궁예는 권능순에게 하슬라주의 군사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는것이 좋겠는가고 묻고 그대로 따랐다.

아무래도 하슬라주의 군사들은 정규군사훈련을 받았으니 북원의 군사들보다 난데가 있었다. 권능순은 물론 하슬라주를 지키려고 훈련을 주었지만 궁예에게 먹히우고나니 결국 궁예를 위해 힘써준것으로 되였다. 궁예는 권능순을 한칼에 베고싶은 감정을 누르고 앞날을 위해 용서해주고 언제 그랬냐싶게 권능순을 좋게 대해주었다. 거기에 대해서 본인인 권능순은 물론 권능순을 죽여야 한다고 하던 사람들도 궁예에게 감탄하였다.

《궁예대장은 확실히 너그럽고 통이 큰 사람이다.》 하고 궁예는 자기에 대해서 자부하게 되는것이였다.

한나절 군사훈련을 지켜보던 궁예는 관아로 돌아왔다.

모흔이 궁예를 맞아주었다.

《북원에 보낼것들은 어떻게 됐나?》

궁예가 물었다.

《그것때문에 장군에게 말씀드리자던 참이였소이다.》

《뭔데?》

《아무래도 변변치 못해서…어쨌든 이전보다 물건들이 쫄쫄하고 많아야겠는데…》

《그런데?》

《어디 있소이까?》

궁예는 입을 다셨다. 하슬라를 먹었을 때 궁예는 얻은 재물을 모조리 군사들과 백성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였다. 북원에 진상을 바쳐야 한다는걸 생각한것은 후였다.

《내것으로 차례진게 있겠지?》

《그야 있습지요.》

《그것까지 다 털어보태게.》 하고 궁예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야 어떻게…》

《괜찮아. 재물보고 싸우는건 아니니까. 난 그저 군사들만 있으면 돼.》

《달리 변통해보겠소이다.》

《내 말대로 하게! 빨리 보내야지 촌주령감이 또 딴 생각할수 있네.》

《알겠소이다.》 하고 모흔은 한숨을 쉬였다.

모흔은 그날로 궁예와 자기의것으로 차례진것까지 합쳐 북원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량길은 범가죽을 씌운 두령자리에 앉아 잠자코 있었다. 그의 옆에는 넙적한 칼을 찬 량길의 아들 서성과 마노가 서있었다.

촌주와 원로들이 찔금찔금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오는 차례로 자리에 앉아 궁예소리를 했다.

《들었소? 거 궁예가 하슬라를 먹어치웠다누만.》

《그러게 말이요. 그놈이 난놈은 난놈이요.》

《우리 고을 아이들은 궁예네 부대에 가겠다고 야단이요.》

《글쎄 말이우다. 세상이 어쩐지 궁예세상으로 돼가는것 같소다. 그것 참…》

한식경이 지나서야 거의 모였다.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건 궁예일로 해서요. 다 아시다싶이 궁예가 가을무천놀이가 끝나기 바쁘게 하슬라를 점령했소. 여러분은 이 일을 어떻게 보시오이까?》 하고 량길이 물었다.

《뭐 어떻게 보고말고가 있소이까? 궁예대장이 큰일을 했소이다. 이제 우리 북원이 한숨 쉬게 되지 않았소이까. 하슬라에서 쳐들어올가봐 마음을 조였는데 거꾸로 우리가 먹어치웠으니… 하, 그것 참…》

한 촌주가 수염을 쓸며 말하자 다른 촌주도 덩달아 따라했다.

《거, 일야미촌주 말씀이 옳소이다. 주천, 울오, 나성을 들이쳤을 땐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하슬라주면 어디오이까. 이번에 보니 궁예가 정말 큰일 칠 사람이웨다.》

판이 궁예를 쳐올리는쪽으로 기울어지자 량길은 입이 쓰거워났다.

그렇다고 내색은 할수 없어 꾹 참고있자니 속이 끓어올라 견디기 어려웠다.

량길의 낯빛을 살피던 마노가 슬그머니 말머리를 돌렸다.

《궁예가 하슬라를 먹은건 좋은데… 두령님의 명령이 없이 제멋대로 했다니 그게 탈이오이다.》

마노의 소리에 모두가 놀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요? 그럼, 궁예가 두령의 명령이 없이 하슬라를 공격했다는거요?》

《바로 그렇지요.》

《하, 그것 참. 별난 일이로군. 그러니 두령은 궁예가 하슬라를 공격하는걸 모르고있었다 그 말씀이요?》

《군사에서는 그럴수도 있는 일이요. 거 있지 않소, 임금을 속여 바다를 건는다던지… 자기편을 속이고 적을 속여 이기는게 어디 보통 꾀요?》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렇지. 군사라는게 엄한 규률을 생명으로 하는데 망탕 할수 있소? 하슬라가 무슨 부락이요 뭐요, 실패했다면 어쩔번 했소?》

량길은 칼자루를 잡고 방 한구석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일이 점점 엉뚱한데로 기울어지는것 같았다.

한가득 모여든 촌주와 원로들이 제마끔 떠들어댔다. 궁예가 잘했니 못했니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량길이 듣자 하니 궁예가 잘했다는쪽으로 무게가 실린다. 이게 무슨 맹꽁이판인가? 이런 일이 없었는데…

《조용들 하시오. 그래, 여러분은 도대체 어쩌자는거요. 궁예가 잘했다는거요, 못했다는거요?》

답답한노릇이다.

방안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거 뭐 령을 받고 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잘한 일이라고 보오이다.》

《옳수다. 자고로 이긴 군사에게는 죄를 따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크게 보면 그게 옳다. 하지만 량길에게는 궁예가 이겼다는것, 그래서 그를 칭찬해주어야 한다는쪽으로보다 잘못했다고 하는켠으로 돌아섰다. 아직 딱 부러지게 말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하슬라일로 해서 궁예가 량길보다 낫다는쪽으로 기울지 않는가. 그걸 놔두면 어떻게 되는가. 량길이란 존재가 우습게 된다.

량길은 매사에 판결이 공정하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 남의 일에 대해서는 그렇다. 하지만 정작 자기의 일에 대하고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자기가 잘못하는줄 뻔히 알면서도 량길은 거기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사심으로 그런다? 아니다. 앞으로의 큰일때문에 그런다. 이렇게 리유가 선다.

싸움에서 이긴 공을 론하느냐, 아니면 이긴 싸움의 있을수 있는 잘못을 론하느냐? 량길은 큰걸 제쳐놓고 작은것에 달라붙어있었다.

공론이 량길이 바라는대로 흐르기만 해도 량길의 마음이 이렇게 좁아질수는 없었다. 잘못을 덮어두고 잘한것만 떠드는것도 잘못이다.

《알았소. 이번 일은 내가 좀더 생각해보겠소. 여러분은 돌아들 가서 하슬라일로 들뜨지 말고 고을 방비들이나 더 잘해야겠소이다. 삭주, 국원(충주)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있으니만치 어느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오이다.》

그건 옳은 말이다.

촌주와 원로들은 돌아갔다.

량길과 아들 서성 그리고 마노만이 남았다.

버드나무로 만든 나막신을 딸깍거리며 돌아가는 촌주들을 지켜보던 서성이 투덜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들 같으니…》

량길은 아들을 힐끔 쏘아보며 말했다.

《닥쳐라!》

어쩐지 아들녀석이 아비인 저를 두고 하는 소리로 들려 속이 좋지 않았다.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소이까? 궁예에게 이웃고을을 치는걸 맡기지 말고 저에게 맡겨달라 했는데…》

《그만하지 못할가?》

량길은 팔짱을 끼고 방안을 거닐었다. 노전을 깐 방안에 먼지냄새가 풍겼다.

그러니 대세는 량길이 보는것과 다르다. 사벌주의 원종, 애노가 들고일어난 때와 또 다르다. 이제는 될대로 됐다는건가? 그때는 서울과 가까워서 군사를 파견해 진압했는가?

세월이 확실히 달라졌다.

량길은 혀를 깨물었다. 궁예라는 외눈깔녀석에게 어쩌면 밀려날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촌주들이 지껄이는걸 봐서 능히 그럴수 있지 않는가? 이래서는 안된다.

량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잘못 대세를 판단한 바람에 굴레벗은 망아지같은 궁예에게 벌써 한코 떼웠다.

《아버님, 이제라도 궁예에게서 군사를 거두고 그놈을 내쳐야 하오이다.》

서성이 흰자위를 번뜩거리며 말했다.

《안되오이다.》

마노가 반대했다.

《뭐요, 왜 안된다는거요?》

《지금 궁예의 군사가 얼마인지 아시오?》

《궁예의 군사?》

《그렇소. 궁예가 하슬라를 먹기 전에 그를 처치할수 있을런지는 모르나 지금은 안되오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범의 코등을 쑤셔놓는 격이 될수 있소이다.》

《기가 막히군그래. 우리 북원이 궁예보다 못하단 말씀이오이까?》

《그런게 아니지요. 내가 말하자는건 지금 궁예를 서뿔리 다쳐놓으면 우리에게 리롭지 못하다는거요. 궁예는 하슬라의 투항한 군사를 고스란히 자기의 군사로 만들었소이다. 그의 세력도 세력이지만 이 북원의 공기도 궁예를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됐소이다. 보지 못했소이까, 촌주들이 어떻게 노는지…》

《모르겠소이다. 마노의 말은…》

《마노성주의 말이 옳다.》

이때껏 듣고만 있던 량길이 미간을 찌프리며 서성을 나무랬다.

《어찌하면 좋겠나, 마노?》

《상을 주어야 하오이다.》

마노는 이미 생각했는지 단마디로 대답하였다.

《상?》

속이 울컥 뒤집히는 소리지만 량길은 참았다. 마노의 말이 옳다.

《어떤 상이 좋겠나?》

《궁예는 아직 우리 북원에 반기를 들지 않았소이다. 그의 태도를 보고 결심하시오이다. 어쨌든 하슬라를 점령한데 대해서 상을 주는것이 좋소이다. 그의 죄를 따지는건 다른 일이오이다. 상을 주되 그저 좋은 말이나 물건따위로 해서는 안되오이다. 궁예가 커졌으니 큰 상을 내릴수밖에 없소이다.》

《미운 놈에게 떡 한개 더 준다는 격이로구나. 일이 아주 우습게 됐다. 죄를 따져도 시원치 않겠는데 오히려 상을 준다? 이 량길의 처지가 가긍하구나.》

《바로 이것이 꾀라는것이오이다. 앞에서는 상을 주어 안심시키고 뒤에서는 그의 목을 치는것…》

《어쨌든 궁예라는 놈은 심상치 않아. 늦었거던, 늦었어. 더 크기 전에 없애버려야지…》

《그를 죽일 구실이 있소이까?》

《내 령이 없이 하슬라를 점령한것만 가지고도 능히…》

《그걸 가지고는 괜히 군사들과 백성들의 비난을 받기 쉽소이다.》

《그럼 어쩌면 좋나?》

《그를 이 북원에 불러들이시오이다.》

《오지 않으면?》

《올것이오이다. 상을 받으러 오라고 하면야… 일단 오게 해놓고 그를 처치해야 하오이다. 하슬라에 그냥 있게 해놓고는 어쩔수 없소이다.》

《상을 받으러 오라고 해?》

《제 생각에는 두령님이 큰맘을 먹어야 할줄 아오이다.》

《그건 무슨 말인가?》

《지금은 그가 딴맘을 먹지 않게 하는것이 상책이오이다. 그러자면 큼직한 상을 마련해야 하오이다.》

《뭘 아끼겠나, 어서 말하게.》

《두령님이 궁예에게 따님을 주겠다고 하는것이 어떻겠소이까?》

《뭣이? 궁예에게 내 딸을?》

량길이 펄쩍 뛰였다.

서성이 마노의 코앞에 이그러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마노어른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이까? 내 누이로 말하면 금지옥엽 외동딸인데…》

《모르지 않지요. 그건 두령님이 결심하시오이다. 하지만 뻔한건 이제 와서 궁예는 아주 큰 놈이 되였다는것이오이다. 큰 놈인것만큼 크게 써야지 작게 쓰다가는 오히려 랑패를 보오이다.》

《좀더 두고보세.》

량길이 맥이 빠져 중얼거렸다.

서성은 그러는 아비를 못마땅하게 보다가 소리쳤다.

《안되오이다. 궁예, 그 개같은자에게 우리 누이를 주다니 될말이오이까?》

마노는 차게 웃었다.

《그건 좋을대로 하시오이다.》

 

《잘하누만.》

며칠동안 군사들이 훈련하는걸 지켜본 궁예는 권능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이것 봐. 부대들이 벌판에서만 싸우게 훈련된것 같아?》

《예, 그건…》

《난 반대야. 벌판에서 싸우는 훈련만 해서는 안돼. 산에서 싸우는 훈련을 해야 해.》

《병법에는…》

권능순이 변명하려는걸 궁예는 손을 흔들어 막았다.

《이기는건 불의성이야. 우린 큰 무리 지어서 싸우는것보다 작은 부대들로 기동성을 발휘해야 해. 그래야 이겨, 알겠나? 14개 사상들이 독립적으로 싸울수 있게 하는것도 바로 그래서 그런거야.》

권능순은 벙벙해졌지만 궁예의 말뜻을 알아채려고 애썼다. 궁예의 말은 무엇이나 차근차근 설명하는 때가 없다. 그저 슬렁슬렁 넘어가는것 같은데 문제는 후에 가보면 그게 다 뜻이 있어서 그러는것이다. 앞질러가면서 생각하는걸 말하되 제가 생각한건 무조건 옳다고 내미니 듣는 사람이 떨떨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권능순은 처음 그걸 몰라 애먹었다.

궁예의 말을 들으면서 권능순은 앞으로 궁예가 서울로 내려가려는것이 아니라 북상하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딱히 알수 없는 궁예다.

《북원에서 사람이 왔소이다.》

전령이 궁예에게 말했다.

《알았다.》

궁예가 권능순에게 뭔가 더 말하려고 하는데 북원에서 온 사람이 궁예를 찾아왔다.

《마중하지 못해 안됐소이다.》

궁예가 인사를 차려 하는 말이였다.

궁예를 찾아온 사람은 마노였다. 마노는 인사따위는 개의치 않고 궁예에게 군사들의 훈련을 보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건 궁예에게 기쁜 일이였다.

궁예는 권능순에게 훈련을 계속하게 하였다.

마노는 궁예가 이 며칠사이에 군사들을 몰라보게 훈련시킨것을 보고 속으로 놀랐다. 원래 하슬라의 군사들이 잘 싸우기로 소문났지만 궁예의 손탁에 들어서는 더욱 날래고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어떻게 오셨소이까?》 하고 궁예가 물었다. 그는 갑자기 마노가 온 일이 궁금하였다.

《두령님이 보내서 왔소이다.》

《두령님께서는 편안하시오이까?》

《여전하시오이다.》

궁예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마노가 왔다고 크게 상을 차리게 했다.

마노는 궁예를 보았지만 별로 딴마음을 먹은것 같지 않아 우선 마음을 놓았다.

《두령님께서 궁예대장을 칭찬했소이다.》 하고 마노가 술을 마시며 슬그머니 찔러보았다.

궁예는 씩- 웃기만 하였다. 마치 천진한 아이와 같았다.

《두령님께서는 대장을 불렀소이다.》

《그래요? 가야지요.》

궁예의 선선한 대답에 마노는 어지간히 놀랐다. 마치도 무슨 장한 일을 하고 칭찬받는 아이와 같은 궁예였다. 정말 궁예는 량길에 대해서 꼬물만큼 한 의심도 없단 말인가?

궁예는 술자리에서 마노가 한 말을 그대로 내뱉았다.

《북원의 촌주어른께서 이 궁예를 부른다니 떠나야겠소.》

아주 자랑스럽게 하는 궁예의 말이였다.

《뭣때문이오이까?》

모흔이 물었다.

다른 부대장들도 알고싶어하였다.

《한바탕 싸워이겼으니 칭찬해주자는거겠지. 우리의 전승을 보고도 해야겠고… 어쨌든 량길나으리야 우리들의 두령이 아닌가…》

부하 대장들은 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신훤만이 달랐다.

《장군! 정말 북원에 가겠소이까?》 하고 신훤이 조용히 물었다.

《가야지.》

《다른 사람을 보내는것이 어떻소이까?》

《건 왜?》

《싸움이 끝난지 며칠 되지 않은데다가… 혹시…》

두사람을 건너다보던 마노가 웃으며 끼여들었다.

《이번 길은 꼭 대장이 가야 하오이다.》

신훤이 의심스럽게 마노를 보았다.

《왜 꼭 장군이 가야 하오이까?》

마노는 신훤에게 웃어보이고 궁예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뭐라고 수군거렸다.

궁예의 낯빛이 활짝 피였다.

《무슨 말씀이오이까?》

신훤이 따졌다.

《응, 별게 아니야! 두령님이 나에게 따로 큰 상을 내리겠다는거야. 마노어른! 우리 사람들에게 내게 한 말씀을 해주시오이다. 우린 서로 형제들인것만큼 나의 영광이자 곧 우리의 영광이니까…》

《그럼 좋소! 여러분! 두령님께서는 궁예대장을 사위로 삼으려고 하시오. 이건 이번 하슬라에서 큰 승리를 이룩한데 대한 두령님의 믿음이시오.》

젊은 부대장들은 환성을 질렀다.

신훤은 아무말없이 술상을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빠져나와 급히 서울의 고마에게 사람을 띄웠다.

다음날 신훤은 궁예에게 북원에 가는것을 며칠 미루어야겠다고 했다.

《건 무엇때문이요?》

마노가 좋지 않게 물었다.

《다른게 아니오이다. 량길촌주께서 우리 대장을 사위로 삼으시려고 하는건 누구나 바랄수 있는 행운이 아닌데… 그렇다고 얼씨구 좋다 그냥 냅다 달려가는게 아무래도 돼먹지 않은듯 하오이다. 우리 대장님이 그냥 가는것도 그렇고 또 명색이 부하들이라는게 그저 훌쩍 떠나보내는것도 인사가 아니오이다.

촌주어른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그래, 우리쪽에서 뭘 좀 준비가 있어야 할줄 아오이다.》

마노는 웬 일인지 꺼림직했으나 그렇다고 아니하면 더 의심을 살것 같아 궁예만 보았다.

《신훤이 참 속이 깊어. 내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구만. 하마트면 내가 거렁뱅이사위가 될번 했는걸.》

궁예가 껄껄 웃었다.

《하여튼 대장이 좋을대로 하시오이다. 하지만 기일을 늦추어서는 아니되오이다. 생각 같아서는 저도 대장과 함께 가고싶지만 두령님이 기다릴것 같아 먼저 떠나겠사오니 대장은 하루라도 지체하지 마시오이다.》

마노는 거듭 말하고 북원으로 떠났다.

궁예는 어딘가 으쓱거리길 좋아하는데가 있는 모양이다.

마노가 떠나간지 하루도 못 있어서 궁예는 참지 못하고 북원으로 떠나자고 독촉했다.

보다못해 신훤이 말했다.

《장군, 량길이 뭐가 곱다고 장군을 사위로 삼겠다고 하겠소이까? 장군은 하슬라를 차지한걸 두고 기뻐하지만 량길은 그걸 나쁘게 볼수도 있소이다.》

《왜?》

《장군은 하슬라를 점령하겠다는걸 량길에게 알리지 않았소이다.》

《그게 어째서? 전장의 장수는 임금의 허락을 받지 않고 싸우기도 하는거야.》

《량길이 그걸 안다면야 다르지요.》

《신훤, 너무 의심하는게 아니야?》

《제가 알기엔 량길에게 질투가 있소이다. 다들 그가 마음좋은 촌주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소이다. 전번 삭주군사가 쳐나올 때 일을 잊었소이까? 속이 트인 사람 같지 않소이다. 이번 하슬라 일을 놓고 말하면 제 생각에는 량길이 장군에 대해서 딴 생각을 할수 있소이다.》

《딴 생각이라니? …》

《장군이 혹시 량길 저보다 힘이 커지는걸 두려워할수 있지 않소이까?》

《하하,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가 뭘 그렇게까지 강짜를 부릴가?》

《장군, 나이들어 몸이 변해도 한번 깃든 질투는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소이다. 더구나 남이 잘되는걸 싫어하는 소인의 질투라는건 늙을수록 더 커지기만 하오이다. 그런 사람과는 애당초 대상하지 않는게 좋소이다.》

《신훤, 너무 지나치게 생각하는것 같애.》

궁예는 신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신훤은 처음으로 궁예가 이렇게 단순한 사람인가 하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마노가 떠난 뒤 사흘이 지나 궁예는 끝내 북원으로 떠났다. 이 핑게 저 핑게 신훤이 아무리 붙잡아놓으려 하였지만 촌주의 사위 된다는 생각에 몸살이난 궁예는 막무가내였다.

물론 궁예는 량길의 사위가 되는것이 기뻐서 그러는것만은 아니였다. 다만 북원에 가서 이 궁예가 어떤 사람인지 봐라 하고 뽐내고싶은 심정이 더 컸다.

그래서 뒤따르는 부하들을 특별히 잘 차려입게 하고 가져가는 례물도 요란스럽게 꾸몄다.

궁예의 일행이 싸리재를 넘어 어느 골짜기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머리우에서 산까마귀가 빙글빙글 돌았다.

궁예는 까마귀를 별로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까마귀는 그에게 길조를 주군 하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한참 까마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면서도 다행히 궁예의 귀는 자지 않았다. 궁예는 예민한 촉감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숙이였다.

《앗, 자객이다!》

궁예가 머리를 숙이는것과 함께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미처 궁예가 정신 차릴새없이 화살이 획획 날아왔다.

궁예를 겨누고 쏘는 화살인데 요행 궁예는 맞지 않고 부하 서넛이 엉뚱하게 살을 맞고 쓰러졌다.

부하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궁예는 피가 끓었다. 궁예는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나 활을 쏘는 사람은 어디서 숨어 쏘는지 보이지 않았다.

《비렬한 놈!》

화살이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궁예는 칼로 쳐버렸다.

그리고는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무작정 내달렸다.

갑자기 궁예는 소리를 지르며 칼을 떨구었다. 궁예의 왼쪽팔에 화살이 박혔다. 하늘이 빙그르 돌았다.

궁예는 말에서 떨어졌다.

골짜기는 고요해졌다.

달려온 부하들이 궁예를 일으켰다.

《장군!》

궁예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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