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6. 하슬라의 무천날

 

싸리재에서 아흔아홉굽이 재마루까지 거의 20리 남는다. 그런데 재마루에 닿기까지 10리 매 굽이마다 하슬라주의 군사들이 지키고있었다. 원래는 재마루에만 하슬라주의 군사들이 지키고있었는데 권능순이 마루에서 10리씩 내려와 매 굽이마다 군사들을 배치하게 하였던것이다. 하슬라주로 넘어가는 길손들은 매 굽이마다에서 단속을 받아야 했다.

부담마를 끄는 예닐곱명의 사람들이 한가하게 재마루로 오르고있었다. 재를 넘어가는 길이 10여리여도 길이 험하고 또 굽이마다 거치다나니 한겻이 걸려 재마루에 이르렀다.

《서라!》

재마루를 지키던 군사들이 여느 굽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일행을 멈춰세웠다.

길손들은 재마루에 다 올라왔기때문인지 아니면 이제는 시끄러워서인지 한숨들을 내쉬며 멈춰섰다.

《어딜 가시오?》 하고 재마루 지키는 군사의 대장이 나서며 물었다.

《하슬라에 가지 어디 가겠소이까?》

대답하는 사람들은 짜증을 부리였다.

단속하는 군사는 그따위에는 개의치 않는 꼴이다.

《짐들을 봐야겠소.》

대장이 눈짓하자 주런이 창자루를 땅에 대고 서있던 군사들이 우르르 길로 내려섰다. 하나같이 깃이 록색을 띤 군사들이다. 이들이 바로 기병위주의 5주서 부대이다.

길손들의 부담짝들은 여러번 닥달을 받아서 꾸려지지도 않았었다.

매 군사는 부담마를 맡아 짐을 뒤졌다. 짐이라야 옷가지들과 탈바가지따위들뿐이였다.

《병쟁기는 없소이다. 아래서 다 보였는뎁쇼.》

일행의 꼭지인듯 한 사람이 짜증을 털어버리지 못한채 말했다.

《우리가 병쟁기 보는지 어쩌는지 뭘루 아시오?》

《굽이마다 뒤지면서 말합디다요. 그런게 없는가고…》

《흥.》

대장은 애매하게 코방귀를 뀌였다.

짐을 뒤지던 군사들이 하나둘 물러섰다. 별게 없었다.

《하슬라에는 뭣하러 가시오?》

부하들이 일없이 물러나는것을 지켜보던 대장이 여전히 존대하는 투로 물었다. 대장의 체면을 지킨다는건지…

《무천놀이 가오이다.》

《무천놀이?》

《예, 이제 며칠 앞두지 않았소이까? 참 이번 무천놀이에도 군사들이 참가하오이까? 굉장하던데…》

《흥.》

코나발을 불군 하는건 아마 이곳 대장의 버릇인 모양이다. 그는 건들건들 길손들을 훑어보며 걸었다.

길손들은 군사들이 본 부담들을 다시 꾸리기도 하고 다 꾸린 사람들은 힘이 들어서인지 앉아있기도 했다.

대장이 뒤짐을 지고 길손들을 살피다가 한사람앞에 멈춰섰다.

그 길손은 참대로 엮은 방립을 쓰고있었다.

《거기 길손, 얼굴 좀 봅시다.》

길손은 방립을 쳐들었다.

대장은 흠칫 놀라며 허리에 찬 칼에 손을 뻗치였다.

《아니, 왜 그러시오이까?》 하고 방립이 오히려 공손히 물었다.

《넌 누구냐?》

물음에 날이 섰다.

그 소리에 짐뒤지기를 끝내고 하품하던 군사들이며 길손들의 눈길이 모아졌다.

《나말이요?》

《그래.》

《난 궁예라고 하오이다.》

《궁예?》

군사들은 깜짝 놀라 병쟁기들을 그러쥐며 긴장해졌다.

《군사나리, 왜 그렇게 놀라시오이까?》

방립이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북원도적 궁예다!》

대장은 벌써 칼을 뽑아들었다.

《허, 거 별일 다 있소이다. 도적이라니요?》

방립은 여전히 태연하게 말했다.

이때였다.

《하하!》

길손의 꼭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군사들이 이번에는 그 꼭지쪽을 보았다.

《뭐야?》

대장이 소리쳤다.

길손의 꼭지가 슬금슬금 대장쪽으로 걸어갔다.

《군사나리, 뭘 보고 저 사람이 북원도적 궁예라 하시오이까?》

《다 안다. 외눈에…》

《하하, 한눈 가진 사람은 다 북원도적 궁예라…》 하며 꼭지는 한쪽눈을 찔끔 감았다.

《나도 그럴듯하오이까? 헌데 나리, 저 사람보고 놀라면서 왜 나보고는 놀라지 않소이까?》

《무슨 소리요?》

 대장의 소리는 풀려있었다.

《저 사람이 북원도적 궁예라면 나는 고구려시조 주몽임금이오이다.》

《뭐? 허튼소리 마시오.》

《허튼소리라뇨? 내가 하슬라 무천놀이때 주몽임금으로 나서는걸요. 저 사람은 주몽임금인 내 노복이고요.》

대장은 록색깃을 주무르며 눈을 끔벅거렸다.

《누굴 놀리는거요 뭐요?》

《놀리다니요? 거참, 이상하오이다. 천하가 궁예 무서워 팔짝팔짝 뛰는걸 보니… 우리 삭주에서도 그저 한눈감은 사람만 봐도 궁예다 하니 참, 궁예라는 사람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지요?》

《삭주서 오나?》

《예, 그렇습죠.》

《흥, 삭주것들은 무서워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하슬라는 달라.》

대장은 흰목을 뽑았다.

《에, 모르겠소이다. 저 사람보고 화들짝 놀라는걸 보니 그런것 같지 않소이다…》

《아, 아 됐소, 됐소…》

대장은 칼을 집에 넣었다.

《그만 가시오. 무천놀이 잘하시오.》

《군사나리는 안 오시오이까?》

《건 알바 아니요. 어서 가시오.》

길손의 꼭지는 그만 시까스르고 일행에게 돌아섰다.

《자, 여보게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니 한결 쉽겠네. 더딘 걸음 당기세나. 얼른 가서 기운 얻어야 한바탕 무천뜀을 하지. …》

군사들은 우두커니 서서 재마루를 내리는 길손들의 뒤를 보고있었다.

한 군사가 대장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대대감나리, 제입으로 궁예라는 놈을 왜 고스란히 보내오이까?》

《흥!》

대장인 대대감은 또 코나발을 불었다.

《이봐, 진짜 궁예라면 이 재마루로 뻐젓이 오겠소,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글쎄 군대를 쳐몰아온다면 몰라라 저따위 놀이패나 끌고서…》

《그래도…》

《이봐 소감! 외눈깔이 궁예라 해서 야단법석 떤게 이 이태사이에 한두번인가?》

《하긴 그렇구만요. 전번에 난다긴다 하는 별가나리도 궁예를 잡았다고 소리치다가 알고보니 오대산 주지님의 상좌라면서요?》

《그렇다니까. 허허, 어떤 땐 궁예라고 잡았는데 캐보니 알짜 소금장수 천한 놈 아니였나. 허허.》

《표적이 뚜렷하니까 헛갈리는것도 많소이다.》

《바로 그렇다는거야. 한눈깔이 궁예다 하니까 한눈깔이면 다 궁예로 보이는거지. 어리석다는건…》

《대대감나리, 이거 배가 출출하군요. 점심때가 다 된것 같소이다.》

《응, 가세.》

재마루에서 하슬라, 어흘리까지는 내리막길이다.

군사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머리띠를 맨 길손의 꼭지가 멈추어서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장군! 어쩌자고 본명을 대시오이까?》 하고 그는 방립을 쓴 사람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허, 군사가 따져물으니 사실대로 말했지.》

《가슴이 철렁했소이다. 봤소이까? 이 재마루는 하서주군사들이 지키고있소이다.》

《그게 어쨌단 말인가? 까짓것들 꿈만해. 여차하면 제끼지 뭘 그래. 대검 자넨 겁이 나던가?》

《그런건 아니지만… 하여튼 장군의 그 담에는 손을 들었소이다.》

《난 오히려 대검 같은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던데. 어떻게나 재담 잘하는지 아까는 나도 정말 자네를 주몽임금으로 보았다니까. 대검에게 또 그런 재간도 있었군.》

《바쁘니까 저도 모르게 나온거지요.》

《그래서 더 감탄하는거네. 하하.》

《그만 놀리시오이다.》

궁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검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한 2년 끈을 풀어놓았는데도 재마루 지키는 군사들은 여전하구만. 듣던대로 이쪽으로 하슬라를 공격하기가 힘들겠는데…》

《하슬라주 별가놈이 그렇게 악질이랍니다. 그놈이 어찌나 닥달구는지 군사들이 풀어질 사이가 없다 하오이다.》

《닭알에도 뼈가 있다는건가? 그런 별가가 하슬라주에 있을줄이야…》

아래에서 한무리의 부담마를 끈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벌써 고기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는게 하슬라에서 수산물을 재너머로 날라가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부담마를 몰고 등에 싸리로 묶은 짐을 진 사람들이 비지땀을 철철 흘리며 재마루로 올라오고있었다.

궁예, 대검들이 그들을 마주 내려가고있는데 아래쪽에서 뿌연 먼지가 일며 한떼의 말이 나타났다.

《비켜라, 비켜! 별가어른이시다.》

소리치는 선두기마가 말채찍을 휘둘렀다.

부담군들이 황급히 길녘으로 비켜섰다.

궁예일행도 길 안턱으로 붙으며 말고삐를 바투 잡았다.

선두군사가 소리치는 기세로 봐서는 별가의 행차가 느렸다.

별가는 재마루로 오르는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걸 비웃기라도 하듯 느릿느릿 올라왔다.

《저런 죽일놈의 새끼를 봤나, 짐군들이 힘들겠는데…》

대검이 입안의 소리로 투덜거렸다.

궁예는 방립밑으로 별가를 살폈다. 별가 권능순을 말로만 들었지 이렇게 보기는 처음이다.

궁예의 옆을 지나며 권능순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방립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방립쓴 사나이에게서 떨어질줄 몰랐다.

별가가 마침내 지나가자 대검은 한숨을 내쉬였다. 그들은 다시 길을 걸었다.

궁예일행이 북바위마을에 닿았을 때는 벌써 저녁무렵이였다. 어흘리에서 대궁산 보현사까지 갔다오는 바람에 길이 늦어졌다. 궁예가 어흘리에서 북바위마을로 곧장 내려오지 않고 대궁산으로 간것은 거기에 돌로 쌓은 1 707자의 옛성이 있다 해서였다. 산우에 쌓은 성아래 바로 보현사가 있었다. 궁예는 하슬라를 칠 때 이 대궁산의 옛성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가 하여 겸사겸사 보러 간것인데 그것이 우연히 바쁜 목을 넘기게 해주었다는것을 꿈도 꾸지 못했다.

재마루에 올라 대대감에게서 궁예라는 외눈깔이 지나갔다는 소리를 들은 권능순은 방립쓴 사나이를 생각했다.

틀림없다. 그놈이 궁예다!

그길로 군사를 이끌고 재아래로 쫓아갔으나 대궁산으로 간 궁예를 잡을수 없었다. 권능순은 오늘따라 재마루로 느릿느릿 오른것을 탓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라져버린 방립에 대해서 더욱 의심했다.

한쪽은 내리고 한쪽은 오르면서 마주친 이 우연한 만남이 일생동안 두사람의 악연으로 남을줄은 누구도 몰랐다.

권능순은 그길로 하슬라주관아로 짓쳐내려갔고 궁예는 그보다 썩 늦어서 북바위마을에 닿았다. 재를 넘는 사람, 재를 넘어온 사람들이 바로 이 북바위마을에서 쉬여가는데 바로 이들을 위해서 생겨난 주막집이 꽤나 번창했다. 북바위마을은 주관아가 자리잡은 고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북쪽바다가 미로리, 그우의 방내리로 통하는 길이 합쳐지는 곳이기도 하여 사람들이 많았다.

저녁짓는 솔가지연기가 향긋하게 풍겨왔다.

어디선가 거문고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궁예는 저도 모르게 멎어섰다. 여태 노래라고는 산문에서 부르는 죽어가는 소리만 들어온 궁예에게는 자못 가슴을 울려주는 산골의 거문고소리였다.

참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그 거문고소리가 주막에서 울려오는게 이상야릇하였다.

길손들은 멎어서서 거문고소리를 듣고있었다.

《고구려 왕산악이 거문고를 잘 탔다던데 왕산악이 환생했나?》 대검이 하는 말이였다.

궁예는 눈을 쪼프리고 듣고만 있었다.

《주인계시오?》

궁예의 일행이 소리쳐부르자 거문고가락이 뚝 그쳤다. 문이 열리며 웬 아낙네가 머리를 내밀었다.

《재 넘어오는 사람들이오이다. 저녁이나 하고 쉬여갈가 하는데요…》

대검의 말에 아낙네는 반겨맞았다.

피뜩 궁예는 그 아낙네를 살피는데 두사람의 눈길이 딱 마주쳤다.

《우린 여기 무천놀이에 오는 패인데요, 주인아주머니, 좀 잘 차려주시오이다.》

대검이 말하는 사이에 궁예와 아낙네의 눈길은 여전히 굳어져있었다.

《네, 그러시죠. 뭐 집은 루추하지만 우리 하슬라 무천놀이에 오신다니 따로 잘 봐올려야 할가본데요.》

주인아낙네는 시원시원했다. 그는 밥을 시키고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방은 이 주막의 별채였다.

《좀 쉬세요. 인차 밥이 되니…》 하며 아낙네가 나가려는데 《주인아주머니, 참 아까 거문고소리 듣기 좋던데요. 아주머니가 타는가요?》 하고 대검이 물었다.

《뭘요, 그저 이따금 가락을 뜯어보는걸요. 잘은 못해요.》

주인아낙네는 손을 저었다.

한식경이 지나 밥과 국, 찬이 나왔다. 생각보다 풍성했다.

그런데 궁예는 말없이 밥상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뭐가 잘못되였소이까?》

대검이 조용히 물었다.

《술이 없나?》

《예, 술?!》

대검이 어지간히 놀랐다. 재 넘어오기 전에 궁예가 먼저 이번 길에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술 좀 마시세. 오늘 일은 끝났으니까. …》

《그야 어렵겠소만…》

《괜찮아.》

《알겠소이다.》 하고 대검은 저도 무슨 생각이 있어서인지 히죽 웃고나갔다.

궁예는 술을 마시면서 본채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문고소리를 듣고있었다.

밤은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궁예네는 떠났다.

《대접 잘 받았소이다.》 하고 궁예가 이례적으로 주인에게 말했다.

북바위마을을 떠나 고개를 넘어오는데 대검이 궁예의 귀에 대고 수군거렸다.

《장군, 주인아주머니가 우리쪽을 계속 보고있소이다.》

궁예는 아무말없이 고개를 넘었다.

고개마루에서 궁예는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옥녀금반형의 명당이로구나.》

궁예가 중얼거렸다.

《예, 옥녀?!》

대검이 귀바퀴에 손바닥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궁예는 웃었다.

《아니, 풍수소리일세. 저 아래마을이 그런 명당이라는 소리네.》

《오, 난 또…》 하고 대검은 비시시 웃었다.

궁예는 남대천을 건너 남산에 올랐다.

여기서 강건너 주관아가 자리잡은 성이 보였다.

이 하슬라의 성을 가리켜 어떤 사람들은 《예국의 성》이라고도 하였다. 둘레 3 484자, 높이 10여자, 너비 30여자 되는데 서북부와 중부는 돌로 쌓았고 그 나머지는 흙성이였다. 흙성우에 20자 사이를 두고 스무나무를 심었는데 여러 아름 실히 되였다.

《나무랄데 없는 성이다. 만약 관군이 저 성에 의지해서 지키면 깨뜨리기가 헐치 않겠다. 무슨 수를 써야겠다.》 하고 생각하며 궁예는 성을 살피였다.

이무렵 별가 권능순은 성안으로 들어오는 문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도독 안태에게 건의하여 병권을 새롭게 쥐고 삭주 도독을 부추겨 북원을 치게 하는 등 꾀를 써서 다행히 하슬라는 여태 편안하다. 하지만 권능순은 이게 잠시의 여가일뿐이지 결코 북원의 적들이 그대로 물러앉아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북원의 적들은 꼭 하슬라를 치려고 올것이다. 오늘, 래일? 그걸 모를뿐이다. 하여 권능순은 거의 도독을 위협하다싶이 하며 군사를 틀어쥐고 아흔아홉굽이 재를 넘어오는 길과 서울에서 올라오는 강동의 길 그리고 방내리를 거쳐 달홀(고성)로 가는 길을 지키기에 아득바득했다.

이태가 지나도록 북원의 적은커녕 다른 곳에서도 꼼짝 못했다. 권능순은 그것이 군사를 튼튼히 했기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조금이라도 지키기를 소홀히 하면 언제 적이 덮쳐들지 모른다는 소리를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권능순은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걸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도독의 고집으로 하여 공격은커녕 지키는것만도 힘들었다.

그러나 도독과 주조는 달랐다. 첫때는 그럴사하다고 따라주었지만 북원이 잠잠해지자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별가가 군사를 틀어쥐고 이 하슬라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싶어 그런다고 엉뚱하게 억측하기 시작하였다.

별가는 이래저래 조바심이 났다. 여러번 북원도적 궁예를 잡아들였지만 비슷할뿐 궁예는 아니여서 그때마다 신망이 떨어졌다.

이런 속에서도 권능순은 궁예가 이 하슬라주에 쳐들어온다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북원의 적이 이해 즉 갑인년에 그것도 무천놀이때 쳐들어올지도 모르니 방비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기는 그 무천놀이를 아예 그만두는것이다.

이즈음에 와서 별가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벌어진 도독이 입을 다시며 핀잔한다.

《허-어, 별가의 머리님이 어떻게 된게 아니요. 무천놀이를 못하게 하다니? 여태 나라에서도 막지 못한걸 나보고 하라 그거요? 그 무천놀이가 뭐 조세받이 하는건가 하는 모양이구려. 허허.》

도독이 뭘 안다고 주절거리는것보다 더 얄미운건 주조였다.

《그 무천놀이라는게 조상 잘 받들자는 백성의 갸륵한 마음인데 그걸 막다니? 도대체 별가어른은 조상도 없는것 같소그려…》 하고 야질거릴 때 별가의 관자노리에서는 피줄이 툭툭 뛰였다.

조상이 어쩌구 하지만 그게 무슨 신라의 조상이냐 뭐냐? 쌍 죽여치울것들, 그저 이때를 타서 풍청거리며 놀아보자는 심보를 내가 모르는줄 아느냐. 이 괘씸한것들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터져나오는걸 권능순은 겨우 참았다.

권능순은 씩씩거렸지만 별수없었다.

그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 하슬라의 무천놀이를 그만두게 하는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잘 안다. 이 하슬라는 형식상 신라의 땅이지 민심의 밑바닥은 말짱 옛 고구려였다. 다른건 모르지만 그 민심을 잘못 건드리는것은 위험하다. 무천놀이도 바로 그 하나다. 아무리 하슬라주에 군사가 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관청을 지키기 위한것이지 백성의 풍습까지 이래라저래라할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무천놀이를 통제할데 대한 의견은 퇴짜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능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왜서인지 륙감으로 이 무천놀이를 틈타서 북원의 적이 기여들수 있다고, 아니 어쩌면 이 하슬라를 아예 먹어치우려 할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제 재마루를 돌아보러 갔다가 제입으로 궁예라는 어떤 희떠운 외눈깔이 지나갔다는 보고를 들은 권능순이 그게 틀림없는 궁예라고 단정했다. 뒤를 쫓아 잡지는 못했어도 권능순의 마음은 불안했다. 그는 궁예가 틀림없이 이 예국성을 즉 관가가 자리잡은 성으로 들어올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군사를 엄격히 통제하여 방립쓴 외눈깔을 잡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지 않아도 이 성문으로 무천놀이를 앞두고 숱한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속에서 궁예를 잡는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기어코 잡아야 했다.

권능순은 새벽참 일어나 성문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직접 살피느라고 조반까지 건늬였다.

그런줄 모르는 궁예는 성밖 남대천건너 남산에서 성을 살피고있었다. 궁예는 방립을 벗어치우고 맨머리카락을 푸스스 내려뜨려 얼굴을 반쯤 가리웠다. 그는 머리칼사이로 성을 살피고나서 발길을 돌렸다. 궁예는 동쪽 안인진리쪽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서서 삿갓바위마을에 들어섰다. 삿갓바위마을뒤 들판은 바다가쪽으로 펼쳐져있었다. 궁예는 여기에 군사들을 매복시켰다가 룡의 목고개를 넘어 하슬라성을 포위할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궁예가 하슬라성을 바깥으로 에돌 때 별가 권능순은 성안에서 눈을 비비고 방립쓴 외눈깔을 잡느라고 피눈이 되였다. 그런줄 모르는 궁예는 얼핏 보면 혼나간 놈처럼 머리칼을 풀어뜨리고 쑥으로 만든 범을 여러개 허리에 주렁주렁 달고 흔들흔들 돌아다녔다.

벌써 사흘이 지나 어느덧 무천날이 왔다.

궁예는 무천놀이까지 구경하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슬라를 공격하는것으로 말하면 아직 일렀다. 그사이 하슬라의 군사들의 군기가 조금 해이되기는 했지만 아직 풀어지지는 않았다. 하슬라는 정면으로 공격해서는 점령할수 없다. 아흔아홉굽이 재를 넘는것도 그래, 성을 공격하는것도 그렇다. 그러니 련못에 소리없이 물이 차듯이 조금씩조금씩 군사를 하슬라성가까이에 접근시키고 성안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하여 안팎으로 협공하는수밖에 없다. 작전이 세워지자 일단 숨이 나왔다.

오냐, 이 봄은 그대로 넘겨라.

가을 가서 보자!

궁예는 구경하는걸 퍽 좋아하였다. 대검과 다른 군사들도 구경이라면 빡했다.

더구나 하슬라의 무천놀이라면 백리아근에 소문이 날만큼 굉장했다.

궁예는 대검과 함께 탈놀이패에 끼워 무천놀이를 구경하러 갔다.

무천날은 마침 쾌청한 날씨였다. 해뜰무렵부터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궁예는 사람들틈에 끼워 시니지라고 하는 신관이 신맞이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하슬라성에서 거의 오리가량 떨어진 나지막한 산이였다. 그 산은 태백산줄기에서 하슬라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한갈래였다. 주위는 보리밭이 푸르게 펼쳐져있었다. 끄트머리에 방울을 매단 열댓발 됨즉 한 장대가 네 귀에 꽂힌 가운데 장정 넷이 겨우 들 돌판이 놓여있는데 그것이 제단이다.

그 제단에는 통돼지와 보리, 쌀, 콩 등 낟알들이 담긴 네모그릇, 과일과 바다가에서 나는 물고기들을 담은 세모그릇 그리고 정갈한 샘이 담겨져있는 놋그릇이 놓여있었다.

쿵-쿵-

북소리가 사이뜨게 울리는 가운데 마침내 시니지라는 신관이 나섰다.

모여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였다.

북소리에 맞추어 시니지는 주문을 외웠다.

《하늘에 계시옵고 우주만물에 깃들어있는 환인, 환웅, 환검 세 밝은님이시여! 하슬라의 자손들이 정히 제상을 차리고 세 밝은님을 모시려 하오니 부디 굽어살피소서…

한뫼(백두산)에 성큼 내리시여 줄기줄기 꿰지르시여 우리 하슬라에 오시옵소서. 부디 비나이다.

어리석은 우리들이 세 밝은님의 은혜를 입어 올해에도 땅에 씨앗을 뿌리였사옵고 푸르게 싹이 텄사오니 낟알이 무럭무럭 커서 여물게 하시옵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상이 푸짐하게 하여 아들딸 많이 낳고 사는이 모두 병없이 즐겁게 오래오래 살도록 하여주옵소서.

세 밝은님을 지성으로 받들겠사오니 은혜를 내려주시오이다.》

시니지가 땅에 머리를 대였다. 그러자 장대가 흔들리지 않게 잡고있던 사람들도 시니지를 따라했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과연 신이 내리시겠는지…

숨소리조차 멎어섰다.

북소리가 둥-둥- 울렸다.

과연 신이 내리시겠는지… 신이 내리지 않아 하루종일 꿇어엎디여있던 때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속에 끼여 그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있는 궁예는 부디 신이 내리기를 비는 이 숱한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다.

그렇다, 다스림의 근본은 바로 넋이라고 하던 고마의 말이 옳다.

하늘에서 방울소리가 울렸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네 귀에 세워진 장대에서 방울이 딸랑, 딸랑 령롱하게 울렸다.

시니지가 일어났다. 그는 두손을 쳐들며 웨쳤다.

《아, 세 밝은님들이 내리신다.》

북소리가 잦게 울리였다.

《고맙소이다, 세 밝은님이시여!》

시니지의 말에 따라 꿇어앉았던 사람들도 한목소리로 받았다.

《고맙소이다-》

시니지는 사방에 깊이 절을 했다.

《세 밝은님이 하슬라에 내리셨다. 올해는 유난히 맑은 소리를 내시며 내리셨은즉 분명 하슬라에 복되는 일이 있을것이로다.》 하고 크게 웨친 시니지는 성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서로 마주잡고 즐겁게 웃으며 시니지의 뒤를 따랐다.

춤이, 춤판이 벌어졌다. 세 밝은님이 내린 이 하슬라의 벌이 온통 춤판으로 번져졌다. 춤판은 여기저기 달랐다. 한곳에서는 두레놀이춤이 벌어지고 다른 곳에서는 칼, 창을 휘두르는 무사들의 춤이 벌어졌다. 제일 볼만 한것은 탈놀이춤이였다. 궁예네 패는 이 탈놀이춤판에 끼였다. 궁예는 귀신의 탈을 쓰고 춤을 추었다. 대검도 탈을 쓰고 춤판에 끼여들었다. 문득 대검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궁예에게서 열댓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서성거리던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그는 탈춤을 구경하며 웃고있었는데 이따금 궁예에게 돌리는 눈길이 이상했다. 대검은 대뜸 그가 아흔아홉굽이 재를 내릴 때 보았던 별가라는것을 알았다. 별가는 탈을 쓰고 흥떡이며 돌아가는 궁예를 살피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대검은 바짝 긴장해졌다. 그의 눈길은 별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춤판은 짝짓기로 넘어갔다. 남녀가 이제부터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서로 짝을 뭇는다.

이때만은 탈을 벗기도 하였다.

궁예에게는 아는 짝이 있을리 만무하였다. 그런데 한 녀인이 나타났다. 궁예는 놀랐다. 그 녀인은 북바위마을 주막집 주인이였다. 아마도 그 녀인은 궁예를 미리 알아본 모양이였다.

이 춤판에서 상대에게 우물쭈물하는건 바보로 몰린다.

궁예는 그 녀인과 짝을 맞추어 춤을 추었다. 하늘의 세 밝은님을 맞이하는것으로 두손 높이 들고 손목을 까닥까닥 흔들다가 아래로 내리여 그 기쁨을 나타내듯 온몸을 흔들며 발을 들어 가볍게 구르기도 한다. 두팔을 뒤로 제치고 온몸으로 감사를 드리듯 절하는 동작도 있었다.

춤을 추며 녀인은 웃고있었다. 궁예도 웃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손을 부여잡으며 오래동안 거의 맥이 빠질 때까지 춤을 춘다. 맥이 빠지면 쌍쌍은 제 갈데로 갔다. 멀리 가지도 않는다.

이날은 마음껏 즐기는 날이다. 체면이나 옹친 마음이 있을수 없다. 이날은 그래서 과부들이 마음껏 활개치는 날이였다. 남의 눈치를 볼것도 없고 제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잡아 옹색을 풀면 그만이다.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승낙을 하는 날이다.

하슬라주의 이 무천놀이뒤끝에 벌어지는 일로 하여 후날 이날이 되면 《하슬라일대 보리밭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속담까지 생겼다.

서로 만난 두사람은 어두워질 때까지 볼장을 보았다.

밤은 밤대로 하슬라의 분위기는 둥 떴다. 어쩌면 낮보다 더 달아오른다. 여기저기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녀자는 궁예에게 술을 꺼내놓았다.

궁예는 그 녀자와 함께 술을 마셨다.

《아흔아홉굽이 재를 넘어오던 날 저녁에 난 거문고소리를 듣고 놀랐소. 평생처음 마음을 흔들어놓는 거문고소리였소.》

궁예가 껴안은 녀자에게 말했다.

《거기선 춤을 아주 잘 추던데요?》

《난 춤을 잘 추지 못하오. 춤이라는건 가락이 멋인데…》

《가락보다 힘과 정열이지요. 그래, 어디서 오셨지요?》

《북원에서 왔소. 궁예라고 하오.》

《나리들이 무서워 벌벌 떠는분이시군요.》 하고 그 녀자는 조용히 웃었다.

《남편은 있소?》

《무천놀이에 춤추러 나오는건 처녀들과 과부들이예요. 짝짓기 춤 말이예요. 남편은 몇년전에 돌아갔어요.》

《친척들은 없소?》

《아버지가 있어요.》

《아버지? 가까이 있소?》

《세 밝은님을 모시는 시니지, 그분이 제 아버지예요.》

《아, 그렇구만.》

갑자기 대검이 난데없이 뛰여들었다.

《장군, 피하셔야겠소이다. 군사들이 오고있소이다.》

《뭐?》

《저기…》

대검이 가리키는쪽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오는것이 불빛에 보였다. 병쟁기소리가 절그렁거렸다.

《별가놈이 아까부터 수상하다 했는데 설마 무천날에야 어쩌랴 했소이다.》

대검이 말했다.

궁예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때가 늦었다. 창과 칼을 쥔 군사들이 궁예를 둘러쌌다.

《북원도적 궁예! 곱게 묶이우는게 좋아.》

군사들뒤에서 권능순이 소리쳤다.

별안간 녀자가 궁예의 앞을 막아섰다.

《이 사람을 다치지 못해요. 이 사람은 내 사람이예요.》

권능순은 그 녀자를 밀쳤다.

《거짓말말아. 나쁜 년!》

녀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다시 궁예를 막아서며 큰소리 질렀다.

《누가 없어요? 나쁜 놈들이 내 사람을 잡아가려고 해요!》

어찌나 소리가 큰지 권능순과 군사들이 흠칫 물러섰다.

여기저기서 춤추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나쁜 놈들이 내 사람을 잡아가려고 해요!》

녀자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홰불을 쳐든 사람들이 군사들을 에워쌌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권능순은 당황했다.

《여러분! 물러들 서시오. 난 하슬라 별가요. 우린 도독어른의 령을 받고 북원의 도적을 잡으러 온 군사들이요!》

권능순이 소리쳤다.

《아니예요. 이 사람은 내 사람이예요!》

녀자가 반박했다.

한 젊은이가 홰불아래 나섰다.

《별가어른! 도적인지 뭔지 모르나 오늘은 무천날이오이다. 오늘 같은 날 군사들을 풀어 사람잡이하는건 좋지 못하지요. 우린 저 아주머니를 잘 아오이다. 그러니 저 아주머니가 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도 우리가 아는 사람이오이다. 그러니 물러들 가시오이다.》

그 젊은이의 말에는 여차하면 들이칠 기운이 내비치고있었다.

랑패다. 권능순은 이를 갈았다. 힘내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자칫하다간 흥분한 사람들에게 맞아죽을수 있었다. 권능순은 군사들을 물러서게 하였다.

《궁예! 오늘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하지만 내 꼭 너를 잡아 죽이고야말겠다.》

권능순이 나직이 말했다.

사람들은 군사들이 물러가게 자리를 내주었다.

군사들이 물러가자 사람들은 다시 웃어대며 춤을 추었다.

궁예와 녀자 두사람이 남았다.

《그래, 이름이 뭐요?》

《소금.》

《소금? 당신이 날 살려주었소.》

《아니예요. 무천날이 거길 살려주었어요.》

《군사들이 무섭지 않소?》

《무서워요.》

소금은 두팔로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떨었다.

《어서 여길 피하세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면 거길 빼내줄거예요.》

《시니지?》

《그래요. 아버님은 좋은분이세요.》

소금은 그날 밤으로 궁예를 시니지에게 데려갔다. 시니지는 사람을 시켜 궁예가 무사히 북원으로 갈수 있게 해주었다.

무천놀이하는 하슬라의 밤에는 별들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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