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5. 뻐꾹새가 울었다

 

늦봄.

장끼란 놈은 울긋불긋 잘 차려입고 한창 물오르는 덤불사이로 기여다니다가 그것도 소리라고 때없이 《꿔, 꿔꿩.》 하고는 제법 날개짓까지 푸드득푸드득한다.

그에 비하면 뻐꾸기소리는 퉁소소리처럼 구성진데가 있었다.

《뻐꾹, 뻐꾹-》

산천의 풍경은 아무래도 이 뻐꾸기소리로 멋이 있었다.

산은 산마다 골은 골마다 풀과 나무잎으로 푸르러졌다. 산촌의 풍경은 멋대가리없는 장끼의 소리라든가 듣기 좋은 뻐꾸기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리없이 푸르러가는 풀과 나무잎들에 의해 눈으로 알렸다.

궁예는 한창 물올라 푸르러지는 산발들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다.

하슬라주의 군사들을 아흔아홉굽이 재에서 막고 삭주군사의 뒤를 쳐서 항복받은 뒤로 벌써 이태가 지나갔다. 그사이 궁예는 군사들을 훈련시키기만 하였다. 북원 촌주 량길이 그렇게 하라고 으름장놓아 그런다고 하지만 궁예는 또 궁예로서의 속심이 있어 그러는것이다.

그런데 올해 따라 마음이 울적해지는건 웬 까닭일가? 젊은이에게 꼼짝 말고 웅크리고있으라는것은 죽으라는 소리나 같다.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되였다.》 하고 궁예는 어깨에 힘을 주었다.

마침 모흔, 대검, 장귀평들이 궁예를 찾아왔다.

《장군, 훈련을 끝냈소이다.》 하고 모흔이 말했다.

《음.》

궁예는 시들하니 고개를 끄덕이였다.

궁예를 보던 장귀평이 물었다.

《장군, 무슨 일이 있었소이까?》

《왜?》

《글쎄…》

《별일없네. 그저 뻐꾸기소리를 들으니 생각이 많아지는걸.》

모흔이네는 저희들끼리 눈길을 마주치였다.

궁예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자네들 저 뻐꾸기가 뭐라고 하는지 아나?》

《뻐꾸기요? 갑자기…》

《뭐라고 하다니요. 그저 뻐꾹뻐꾹하지요.》

《하하, 뻐꾹뻐꾹하는게 아니야.》

《그럼 뭐라고 하오이까?》

《벗구 벗구 한다네.》

《벗구 벗구?》

《그래, 농사군들 옷벗구 씨뿌리라는거요. 또 남자, 녀자 벗구 벗구 하라는 소리야. 알겠나?》

《그러고보니 저놈의 새가 순 상소리새군요.》

《하하.》

젊은이들은 좋아라 웃어댔다.

그런데 대검이만은 낯을 찌프리며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대검, 왜 그러나?》

장귀평이 곁눈질하며 물었다.

《실없이 웃음나와 좋기도 하겠네.》

대검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도대체 이건 무슨 판인지 모르겠단 말이요. 이게 벌써 몇해째요? 우리가 두더지요 뭐요. 잔뜩 웅크리고 앉아서 말이야…》 하고 투덜거리던 대검은 궁예에게 물었다.

《장군, 도대체 어쩌자는것이오이까? 밤낮 훈련, 훈련 하는데 그저 이러다 말자는것이오이까? 이젠 군사들도 불평이 많아졌소이다.》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한참 있다가 장귀평이 나섰다.

《대검의 말이 옳소이다. 밤이 길면 꿈도 많아진다고… 장군! 이젠 무슨 마련이 있어야겠소이다. 장군이 벌써 말씀하지 않았소이까. 우리가 북원에서 들고일어나 힘을 뻗쳐 세력을 넓히지 못하면 기껏해서 도적패당이 되든가 전멸하고말것이라고…》

모흔이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했다.

《장군이 어련히 마련이 있지 않으리. 무턱대고 날뛰는게 아니지 않나. 우리가 뭐 살길막혀 들고일어난 도적패당이요? 생각도 그래, 움직이는것도 그래, 우리야 이젠 어엿한 군사들인데 군사라면 군사다운데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망탕 싸우는게 아니고 이를테면 병법이 있어야 한다는거지…》

《모흔이 뭘 말하자는건지 모르겠네. 촌주령감의 분부대로 잠자코 있어야 한다는건가 뭔가?》

대검이 따졌다.

《내가 말하자는건…》

《걷어치우게. 소죽은 귀신처럼 우물우물하는게 딱 질색이야. 죽든 살든 이건 뭐 끊고 맺는게 있어야지. 아니 그래 도대체 촌주의 속심이 뭔지 모르겠다니까. 이건 뭐 어쩌자는건지…》

대검의 말에 장귀평이 잔뜩 비웃음을 띠며 비꼬았다.

《모를게 뭐가 있어. 불보듯 뻔하지. 견훤의 비장노릇이 얼씨구 좋은 모양인데 그러다나면 또 알겠나. 임금님의 무슨 벼슬감투까지 내려지겠는지?》

《견훤의 비장.》

그 말에 궁예의 한눈이 무섭게 번쩍이였다.

얼마전 일이다. 뜻밖에 원회가 북원에 나타났다. 그는 견훤의 사신으로 왔다. 한참 나라의 서남방면에서 세력을 잡으며 임자(892)년에 완산주(전주)를 장악한 견훤은 무주(광주)를 쳐서 후백제건국을 선포하였다. 견훤은 북원의 량길을 비장으로 임명하였다. 힘을 합쳐 신라를 멸망시키자는것이다.

궁예로서는 멍청해있다가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견훤이 앞서가고있다! 그것도 후백제를 세운다는 통이 큰 목적을 가지고 말이다. 이건 여느 반란과는 다르다. 하다면 나는…》

궁예와 원회의 관계를 모르는 량길은 원회에 대한 대접을 아주 후하게 하였다. 그것이 궁예에게는 《견훤의 비장》이라는 임명에 량길이 아주 만족해하는것으로 비쳤다.

그렇다면 뭔가? 견훤의 비장 량길이라면 궁예는 견훤의 부하의 부하인것이다. 엄연히 그렇다. 정략적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세상은 그렇게 볼것이다. 이게 무슨 꼴인가? 고구려를 세운다고 뜻을 모은 궁예가 앉은방아 찧는 사이에 견훤은 멀리 앞질러가고있다.

《량길, 그 촌늙은이가 내 큰일을 망치고있다.》 하고 궁예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장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궁예의 뒤를 잡는것이 있었다.

부하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아야 한다. 부하들이 궁예의 군사들이라고는 하지만 촌주 량길에게서 빌린 군사들이라는 생각이 궁예를 괴롭혔다.

《장군! 어째서 말씀이 없으시오이까?》 하고 대검이 물었다.

궁예는 짐짓 한숨을 쉬였다.

《나라고 뭐 뾰족한 수가 있겠나? 우리야 촌주어른의…》

《그게 정말이시오?》

《대검!》

《그만하시오이다. 우리가 뭐 맹물단지요? 주천을 칠 때 들고일어났던 고구려기발은 어디 갔소? 한번 내들었던 기발을 그렇게 내리우고말겠다면 난 더 여기 있지 않겠소.》

《옳소, 대검의 말이 옳소. 이거야 어디 조막손이 닭알 주무르듯 한게…》

젊은이들은 열이 올랐다.

궁예가 일어났다.

《모흔, 어떻게 생각하나?》

《장군, 대검의 말이 군사들의 생각과 같소이다.》

궁예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네. 뻐꾹새가 울었으니 이젠 우리도 나서야지.》

궁예는 이때까지 다듬어온 하슬라싸움의 전략을 말했다.

이제 하슬라싸움은 아흔아홉굽이 재를 넘어가 벌려야 한다. 하슬라는 들어가기도 좁고 빠져나오기도 오불꼬불하고 멀어서 허술히 대할수 없는 지형이다. 자칫하면 오히려 함정에 빠질수 있다. 마땅히 기병(적이 마음을 놓고있을 때에 기묘한 전술로 갑자기 습격하는 군대)을 써야지 정병(잘 골라서 꾸린 정예로운 군대)은 적합치 않다. 또 속전속결해야지 지구전을 해서는 안된다. 수비하는 적은 흔히 매복을 사용할것이니 공격하는쪽은 림기응변해야 한다.

첫째 소리를 내지 말고 적을 될수록 안일하게 만들것, 둘째 가능한껏 많은 군사를 아흔아홉굽이 재너머 하슬라에 진출시킬것, 셋째 철저한 정찰을 진행하여 작전을 세울것.

궁예는 직접 하슬라에 대한 정찰을 하기로 하였다.

궁예의 작전은 벼락치듯 한데가 있었다. 궁예의 부하들은 이때껏 왜 궁예가 훈련만 시키고있었는지 조금 알게 되는듯 하였다.

그날로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짰다.

이미 하슬라를 점령하고저 하는 궁예네는 더는 옛다 못살겠다,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 하는 자포자기의 반란군이 아니였다.

사흘이 지나 궁예네는 제마끔 할바를 찾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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