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4. 서라벌, 서라벌! 범의 굴이냐, 개의 굴이냐

 

고마는 천리길을 걸어 서라벌로 갔다. 그가 같이 있자고 붙잡는 궁예를 떼여놓고 부디 서라벌로 간것은 큰뜻을 위해서였다. 궁예와 같이 있는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건 일단 큰일을 해보자고 나선데 비추어보면 눈먼짓이다. 궁예는 자라나 틀림없이 범이 될것이라고 고마는 내다보았다. 하지만 아직은 강아지나 다름없는 새끼범이다. 이 새끼범을 키우자면 세월이 흘러야 하고 그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뜻밖의 일이 닥쳐 꺼꾸러지지 말아야 한다.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되 미리미리 앞을 내다보며 보호해주어야 한다. 바로 고마가 그걸 해야 한다. 궁예라는 새끼범이 어미범으로 될 때까지 뜻밖의 일 즉 나라에서 달라붙어 잡아죽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저절로 자라는 일은 고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제발로 해나갈것이다.

궁예는 그런 자립과 능력쯤은 갖추고있었다. 그리고 일단 궁예가 자라나 활개칠 때를 내다보고 나라일이 어떻게 돼가고있는지 고마로서는 두루 알아두는것이 꼭 필요하였다.

고마는 자기가 하려는 일, 궁예와 자기가 벌리려는 일의 장래가 변방주의 도독이나 그아래 나부랭이들이 아니라 신라라는 이 썩은 나라의 임금과 귀족들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범의 굴이라고 할수 있는 서라벌에 가야 했던것이다. 그런데다 마침 울고싶을 때 때려준다고 송악 사찬 왕륭이 한주 도독의 번살이로 서울에 가보지 않겠는가고 물어왔다. 고마는 두루 생각해보고 그에 응했다.

물론 고마는 자기의 생각을 낱낱이 궁예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한다면 궁예가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가 무슨 고마의 꼭두각시냐고 성낼것이 뻔하였다. 고마로서는 속 한구석에 그런 궁예의 성격이 늘 마음에 걸렸다. 궁예는 다 좋은데 그놈의 앵돌아지는 성격이 옥에 티면 티다. 사나이 같으면서도 이따금 사내답지 못한 성격, 그것도 뭐 그리 큰일도 아닌데 한번 맺혔다 하면 쉽사리 풀줄 모른다. 별치않은 일을 놓고도 무슨 큰일이나 되는듯이 옹치고 옹쳐 두고두고 벼를 때 보면 들었던 정이 딱 떨어지는 때를 고마는 여러번 당했다. 왜 그럴가? 속이 좁아서인가? 그런것 같지는 않다. 왜냐면 늘 그런건 아니니까. 기미처럼 박힌 대범하지 못한 성격, 차라리 없는것만 못하지만 그렇다고 크고 단 참외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참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꼭지는 쓴 법이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는 법이다. 차차 나아지겠지. 이제 큰일을 해나가느라면…

어느덧 서라벌이 가까워오고있었다. 이제 기껏 하루길이면 닿을것이다.

이놈의 서라벌이라는델 고마는 언제부터 와보고싶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나라의 서울로 거의 천년을 가까이 채우는 곳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곳이기에 여기서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것일가. 아름답고 더러운것도, 곱고 미운것도, 좋고 나쁜것도 이곳에서는 그치지 않는다. 참 묘한 곳이다.

고마는 내처 걸으면서도 보이는 산천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어느 한 곳에 이르러 고마는 걸음을 멈추었다. 길섶으로 보이는 골짜기가 이상하게 눈길을 끌었다.

호기심이 동한 고마가 어디 물어볼만 한 사람이 없을가 하여 둘러보는데 마침 그 묘하게 생긴 골짜기에서 한사람이 이쪽으로 오고있었다.

《여보시오, 말씀 좀 물읍시다!》 하고 소리치고보니 그 사람의 몸가짐이 말이 아니였다. 왔다갔다, 나간다들어간다 한다. 대낮에 도깨비장물에 취한 사람이다.

고마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도록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붙였다.

《말씀 좀 물읍시다.》

그 사람이 거슴츠레하니 고개를 들었다. 그 꼴에도 무슨 소리를 들은 모양이였다.

《뭐야?》

첫낯부터 걸고든다.

《저 골짜기를 뭐라고 부르는지요?》

고마가 빙긋 웃으며 물었다.

《뭐, 뭐라고?》

《저 골짜기말이요.》

《응, 난 또… 뭐긴 뭐야? 고… 골짜기지…》

이런 모주자루와 말을 붙인다는게 우습다. 고마는 가던 길을 가려 하였다.

《사… 사람 뭘로 알고 그래? 거기 서라!》

주정뱅이가 소리쳤다.

고마는 멎어섰다.

《골짜기가 뭔가 했지? 이름말이지?》

《그렇소.》

《흐, 흐…》

술취한 사람은 갑자기 웃어댔다. 한참 제풀에 웃더니 손가락으로 골짜기를 가리켰다.

《저 골짜기말이지? 흐, 거… 거 있잖아. 사내들이 좋아하는거, 응? 녀자들… 엥? 흐하하. 그렇다니까…》

고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점잖게 말해서 옥문곡(玉門谷)이다.

고마는 어딘가 야한 이름이 붙은 이 녀근곡(女根谷)에 대해서 이전에 알고있었다.

생기기도 신통히 생겼다. 이름이 그렇게 붙을만 하다. 녀자의 국부와 허벅지의 꼴을 그대로 보는듯 하다. 그렇다고 보아서 그런지 하필 신라 서울가까이에 이런 곳이 있다는것이 묘한 감정을 일으키였다.

이 신라라는 나라의 첫 녀자임금이였던 선덕녀왕의 이른바 《지기삼사》에 들어있는 골짜기이다. 그러니까 선덕녀왕 5년때의 일이다. 여름 5월 어느날 개구리떼가 대궐 서쪽 옥문지(玉門池)에 모여들었는데 녀왕이 측근들에게 이르기를 《개구리의 성난 눈은 군사들의 모습이다. 내가 일찌기 서남쪽변경에 옥문곡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웃군사가 거기에 있지 않는가싶다.》 하고 장군 알천과 필탄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그곳에 가서 수색하게 하였다. 그곳에는 백제장군이 독산성을 습격하기 위해 군사 5백명을 이끌고 와서 숨어있었다. 알천이 이들을 습격하여 모두 죽여버렸다.

력사에 버젓이 올라있는 일이다.

어떤 후세사람이 선덕녀왕에 대하여 제법 글을 갖추어 한 말이 있다.

《하늘의 원리로 말한다면 양(陽)은 강하고 음(陰)은 부드러운것이며 사람의 원리로 말한다면 남자는 존귀하고 녀자는 비천한것이다. 어찌 늙은 할미가 규방에서 나와 국가의 정사를 처리하는것을 허락할수 있을것인가. 신라는 녀자를 잡아일으켜 왕위에 앉게 하니 이는 실로 어지러운 세상에나 있는 일이니 나라가 망하지 않는것이 다행이였다. 〈서경〉에는 〈암닭이 새벽에 운다.〉 하고 〈주역〉에는 〈암돼지가 껑충거린다.〉 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수 있는가?》

그 사람 지독히도 녀자를 깔보며 무슨무슨 원리를 따지기 좋아하는 모양이다.

고마로 말하면 아직 이 사람(후날의 관리이며 자칭 시인이며 력사편찬도 한 고려의 김부식을 말함.)이 태여나기 몇백년전 사람이지만 하여튼 재미있는 일이긴 하였다. 고마가 살아가는 그때가 바로 선덕녀왕으로부터 썩 후의 세상이요, 그것도 마침 선덕녀왕이래 세번째 녀왕인 진성녀왕때이니 후세사람의 평가를 만약 그가 들었다면 어떠했겠는지. …

신라사람들은 어째서 녀왕을, 그것도 세번씩이나 추대했을가? 정말 그 어떤 사람이 말하듯이 《말세》여서 그랬을가? 녀자에 대해서 어머니나 안해처럼 생각한건 아닐가. 그것이 정치에 반영된것이 아닐가.

사람일반을 놓고볼 때 누구나 녀자의 몸에서 태여나는것이니 남녀차별이란 사실 불공평한것이다. 아무리 남자가 강하고 존귀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사람이 다만 녀자의 몸에서 태여나는것은 천한 몸을 빌어 강하고 존귀한 남자가 태여나게 하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느 한켠의 그럴듯한 리치를 억지로 세상만물에 고정시켜 해석하려고 하는, 편협과 안일, 자고자대에서 나온 인간지성의 어리석음의 하나가 남녀차별인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사람들은 나름대로 녀자를 존중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가. 그러나 남존녀비를 《천명》이라고 웨쳐대는 세상에서 신라사람들은 억울했는지 자기들이 내세운 녀왕의 현명함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선덕녀왕의 《지기삼사》 즉 세가지 지혜롭게 처리한 일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일것이다. …

《잘 알았소.》 하고 고마는 술취한 사람에게 말했다.

옥문곡을 지나고보니 서라벌은 곧 다 온것이다.

번살이란 일종의 인질노릇이다. 대개 인질 혹은 볼모라는것은 나라와 나라사이에 왕들이 《너를 믿지 못하겠으니 너를 대신할 녀석을 끌어다가 내옆에 놔라. 만일 네가 신용을 지키지 않고 못되게 놀면 이녀석을 죽여버릴테다.》 하는 위협이 깔려있는것으로서 이를테면 목숨을 저당잡히는노릇이다. 목숨으로 믿음에 갚음한다는 아주 극단한 표현방법이지만 그만큼 믿음을 지키지 않는데서 나온것이다.

목숨으로 믿음을 담보한다는데로부터 인질 혹은 볼모는 약속하는 상대들사이에서, 대체로는 약한 놈이 센 놈에게 담보하는 인질이 자기의 혈붙이거나 없어서는 안될 그런 사람이여야 하는것이다.

신라는 당나라 황제에게 《숙위》한다는 명목아래 볼모를 보내군하였는데 그를 본따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라의 9주 도독들에게 번살이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니 이 번살이노릇 하는 사람은 도독의 혈붙이거나 도독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여야 한다. 처음에는 그랬는지 모르나 진성녀왕때에 이르러 번살이라는것은 그렇지 못했다. 고마는 한주 도독의 혈붙이나 가까운 사람이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송악 사찬 왕륭의 추천을 받아 번살이하게 된것이다. 무릇 운동의 형태는 같을지라도 그 운동의 주체가 달라지면 운동의 본질도 어쨌든 변하기마련이다. 진성녀왕시기의 번살이라는것은 주 도독이 반란하거나 못되게 놀면 조정에서 죽여버리는 그런 인질이 아니라 일종의 매개물로 변해버렸다. 엄연히 나라의 기강이 한주 혹은 다른 도독들에게 뻗어나가는 체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이나 나리님들은 주 도독을 추궁하거나 졸라매는데 이 번살이하는것들을 곁들여서 다그쳐대는 경우가 많았다. 번살이를 잘해도 그랬지만 번살이를 비우거나 늦게 와도 그 값을 도독에게 받아냈다. 그때 받아내는 값이란 나라의 법에는 없어도 그렇다고 추궁을 면하게도 안되는 그런것이여서 오르락내리락 변동이 자못 심했다. 추궁하는 사람에 따라서, 더 정확히는 그 기분에 따라서 뻔한걸 가지고도 값이 올라갔다내려갔다 한다. 치외법적성격을 가진 이런것이란 성실한것만 가지고 안되고 어디까지나 눈치, 코치가 있어 잘 발라맞추는것이 기교다. 한편 도독들은 어쨌든 대개 번살이노릇 시키는자들에게서 조정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받군 하였다. 지금 임금이 여사여사하고 어느 나리가 머사머사하니 무슨 일을 어찌어찌해야겠다 하는것이다. 그것도 나라일에 관심이 있는 도독들에게나 그렇다. 뭐 특별히 서울에 올라가서 벼슬살이하려는 야심이 있는 도독이 아니고서는 별로 번살이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순 겉치레였다. 그저 시끄럽지 않게 적당히 처리해서 번살이인지 뭔지 하는것때문에 조정의 단련을 받지 않게 해라 하는따위가 보통이였다. 그러니 차츰 번살이보내는 녀석들을 팥알에 참기름 바른것처럼 반질반질한것들로 보내는것이 추세로 되여갔다.

신라의 서울이라는 곳에 번살이온 고마는 처음부터 쫄구기에 들었다.

《어느 주 어느 도독의 번살이온 아무개》 하는 이를테면 명함을 들이미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이건 빤하게 응당 등록해줄 번살이인데도 오늘 가면 래일 오시오, 래일 가면 모레 오시오 하고 미루었다.

이렇게 며칠이 걸렸다. 가만히 보니 뭐 틈이 없어서가 아니고 이건 구렝이 차돌 삭이는노릇이였다.

번살이들이 묵는 숙소에서 고마는 어느날 웅주 도독 번살이온 사람에게서 귀가 트이는 소리를 들었다.

《여보시오, 시중 준흥을 만나셨소?》 하고 묻기에 고마가 고개를 흔드니 그 사람이 딱하다고 한숨을 쉬였다.

그 사람 하는 말이 이 번살이등록이란것이 묘해놔서 시중 준흥에게 뭔가 들고 가서 알림하지 않으면 그게 힘들다는것이다. 나라에서 번살이하는것이 필요한 때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허울좋은 놀음을 통해서 벼슬아치들의 낯이나 내는 때이라 번살이등록날자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손해보는것은 번살이 올라온측이지 번살이 등록하는쪽은 아니기때문이란다.

《시중 준흥이 번살이에 무슨 상관이오이까?》 하고 고마가 물었다.

《아예 깜깜이시구려.》 하며 그는 이 서울이 지금 온통 시중 준흥의 판이라고 하였다.

한심한 판이다.

나라법이라는건 그시그시 내려먹이는 나리들의 무기이지 받아들이는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효력도 없다. 법이 공평성을 잃었다는 말이다. 권력을 쥔 놈이 법을 휘두르면 권력이 없는 놈은 까딱 못하고 얻어맞기마련이다. 나라일이 잘되는 법이라면 똑같이 약속하고 너나 할것없이 똑같이 지키고 똑같이 보호를 받아야 할테인데 어느 일방이 타방을 억누르기 위한 법으로 될 때는 나라일이 억망이요, 그 법은 악법으로 된다는것은 너무 뻔해 싫증나게끔 된 사실이다.

시중 준흥이 이런 하찮은 번살이등록까지 좌지우지할만큼 되였으니 멀리서 볼 때 서울이 썩었다는걸 알았지만 가까이 와보니 더욱 불보듯 뻔했다.

고마에게는 그것이 별로 가슴아픈 일이 아니였다. 이래서 일어났고 이래서 쳐없애야 할 신라였다.

《까짓거, 내 좋아서 하는 번살이도 아닌데 등록을 늦출테면 늦추라지…》 하고 고마가 말하자 웅주 도독 번살이는 혀를 찼다.

우연히 웅주 도독 번살이에게 들은 소리는 고마로 하여금 쾌재를 부르게 했다.

신라의 정사가 시중 준흥이 좌우지하게 되였다. 그건 법도 아니고 정상도 아니다. 나라일도 그래 여느 일도 그래, 어느 한사람에 의해 롱락된다면 그건 적수에게 최대의 리익이다. 왜냐면 그만큼 적수에게는 상대를 꺼꾸러뜨리기 좋은 기회로 되기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한자라고 하더라도 어리석은자들이 여럿 뭉쳐있으면 당하기 어렵다.

적과의 싸움에서 꼭지 하나 꺾어뜨리면 이길수 있다는 신심을 주는만큼 위험한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다. 꼭지에게도 약점이 있다. 그 약점을 잘 가려 그를 꺾어뜨리면 그밑에 숱한 무리들과 나라까지도 얻을수 있다는것은 해볼만 한 일이다. 싸우는데서는 그래서 여럿을 상대하지 말고 하나를 상대해서 싸우는자가 이기는것이다. 여럿이 달라붙어 하나를 치라, 이를테면 주먹으로 쳐라 하는것이다. 이것은 알게 모르게 싸우는데서 진리로 된 승리의 비결이다.

시중 준흥!

이 신라의 서울은 생각보다 헐하게 얻을수 있다고 고마는 생각하였다.

고마는 다음날부터 신라 서울을 돌아보러 나섰다. 일단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한주 도독의 번살이온 아무개요.》 하는걸 알렸으면 되였다.

고마는 팔자좋게 서울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고마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의 뒤에 그림자가 생긴것을 보고 한편 불안하기도 하였다. 역시 썩어빠진 곳이기는 하면서도 안심할수 없는 곳이다.

고마의 마음속에 한줄기 스쳐지나간 불안은 정 괜한것이 아니였다. 고마가 옥문곡에 대해서 술취한 사람에게 물었을 때부터 이미 물귀신작전에 들어있었다.

고마는 자기를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건 옳았다. 그러나 고마는 똑똑한 사람들가운데서 똑똑한 사람이지 사람 일반에 똑똑한 사람은 못되였다.

말하자면 고마가 어리석다고 보는 부류의 사람들은 고마를 똑똑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대개 차이가 너무 심하면 서로 배척하는쪽으로 기울기 쉽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존경을 받는건 아니고 어찌 보면 질투를 받는 때가 더 많은게 인생행로인지도 모른다. 외눈박이동네에서 두눈박이들이 병신으로 몰리지 않는가.

고마는 뭔가 해보려는 사람,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비해 게으르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 우물쭈물하며 공짜로 떡을 얻어먹으려는 사람들을 미워하는데 이것은 그가 이루려고 하는 뜻에 비추어볼 때 가끔 약점으로 되였다. 고마에게 너그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다 리해하고 다 양보하며 다 좋게 대해줄수는 없다. 고마는 너그러움이 크지 못한것을 자기의 약점으로 알고있었다. 하지만 뭐 어찌겠는가. 그렇다고 미운 놈에게까지 꼬리를 치고싶은 생각은 없고 또 그럴 짬도 없는데… 하는것이 고마의 생각이였다.

물귀신작전에 들었다는것을 짐작하면서도 고마는 까짓거 하고 억지로 무시하려들었다. 구경하면서 불쾌한 마음속 그늘을 가지고싶지 않았다.

고마는 남산에 올라 굽어보기도 하고 골목골목을 돌아보기도 하였다.

신라 서울의 성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처음 박혁거세 21년에 궁성을 쌓아 이름을 금성이라 하였다.

파사왕 22년에 금성 동남쪽에 성을 쌓아 월성 혹은 재성이라고 불렀는데 그 둘레가 1천 23보였다. 신월성 북쪽에 만월성이 있는데 둘레가 1천 8백 38보였다. 또한 신월성 동쪽에 명활성이 있는데 둘레가 1천 9백 6보였다. 또한 신월성 남쪽에 남산성이 있는데 둘레가 2천 8백 4보였다. 시조가 일찌기 금성에서 살았고 후세에 이르러 두월성에서 많이 살았다.》

뒤날에 신라 서울은 길이 3 075보, 너비 3 018보로서 35리 6부로 되여있었다. 신라전성기에 수도안에 17만 8 936호가 살고있었다고 하였다.

저 고구려 도읍지였던 평양성처럼 서울전체를 둘러싼 성은 없고 금성, 월성, 만월성, 명활성 같은 성들이 있었다. 구태여 평양성과 같은 점이 있다면 동서남북으로 곧게 난 길들인데 북성, 내성, 중성, 외성 이렇게 4성으로 나누이고 그안에 각각 큰길이 사방으로 뻗은 평양성에 비해보면 마치 평양성의 한 아낙을 보는듯 하였다.

서울안에는 대궁, 량궁, 사량궁 등 호화로운 왕궁이 솟아있고 그 사이사이에 큰 사찰들이 세워졌다.

이밖에 수많은 크고작은 사찰들, 관청건물들, 큰 부호귀족들의 집들인 금입댁들이 여기저기 들어앉았는데 그런 금입댁들이 서른대여섯 내지 마흔쯤 되였다.

도시는 전통적인 6부지역의 가운데 놓여있으며 도시안은 리, 방들로 나누어져있었다. 수도는 6부 전 지역을 포괄하고있으며 그것은 동시에 왕기를 이루었고 그 왕기안에 수많은 6부소속 각 촌들이 있었다. 여기에 수도방위를 위한 6기정이 설치되여있었고 부산성을 비롯한 산성들이 도시를 둘러싸고있었다.

헌강왕때인 9세기 중엽에 당시 신라봉건통치배들이 살던 곳은 호화하다 할만큼 번창하였으니 한마디로 성안에는 초가집이란 하나도 없었고 루대가 맞붙고 담장이 련달렸으며 노래와 풍류소리가 가득차서 밤낮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17만 8 936호 인구라면 평균 1호당 가족이 5명으로 볼 때 89만명이 넘는것으로 된다.

그러니 아글바글할수밖에 없다.

고마는 유명한 황룡사를 찾아갔다.

황룡사 9층탑은 나무탑이다. 상륜부가 42자, 본탑높이 183자, 총 225자라 하니 까마득히 올려다보인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질리게 하는 그 덩지 큰 탑도 탑이려니와 사찰경내가 총 3만평이라 하니 넓기도 꽤 넓다.

이 사찰을 완성하는데 거의 2백여명의 장공인들이 동원되여 세웠다 하니 정말 9층탑의 장관함을 엿볼수 있다. 신라라는 작은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황룡사로 비쳐졌다.

고마는 오래도록 아홉층의 나무탑을 올려다보았다. 백제건축가 아비지를 모셔다 지었다는 이 나무탑, 아홉 오랑캐의 침략을 막을수 있다고 층마다 나라를 말하면서도 고구려나 백제는 적지 않았다는 아홉층의 탑.

신라라는 나라는 참 재미있는 나라다. 고구려, 백제, 신라 세 나라가 어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티각태각하면서도 또 정치, 군사, 경제, 종교에 이르기까지 받아들일건 다 받아들이면서 커간 나라, 후세에까지 보물로 전해지는 금동미륵보살반가유상, 황룡사 9층탑, 분황사, 첨성대 등 다 그때 나온것이 아닌가.

고마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였다.

이 나라 신라, 백두겨레의 나라!

저 서해너머 오랑캐를 끌어들여 한겨레의 나라들을 멸망케 하지만 않았던들 오늘날의 치욕은 없었을 나라, 슬프다. 신라여! 너는 왜 그리 크지를 못했더냐, 너는 돌짬에 자란 도라지더냐, 메마른 땅에 우불구불 자란 솔나무더냐!

얼이 없는 나라, 녀자의 나라! 겨레의 창조물을 가엾게 만드는 작디작은 나라, 너에게서 자라면 어차피 작아질수밖에 없으니 아무리 나는 크다 해도 비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너는 그릇이 작았다. 겨레를 담기엔 너의 그릇이 너무나 작았다. 너는 노리개 담는 그릇은 될지언정 겨레의 얼을 담을 큰 가마는 못되였다.

황룡사를 돌아보고 온 저녁에 고마는 속이 답답하여 웅주 도독의 번살이와 마주하고 술을 마시였다. 고마와 대작하는 사람은 눈이 둥그렇고 싱아대처럼 키가 큰 사람인데 어쩐지 겁이 많아보였다.

웅주 도독이 의례히 뒤받침해줄 재물을 주지 않아 이 서울에 와서 눈치밥이나 얻어먹는다는 푸념, 그럴지언정 저도 뜻과 포부가 영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등 너스레를 떨면서도 술 먹여주는 신세갚음을 한다고 기껏 알려주는게 시중 준흥에게 뭘 좀 큼직이 찔러주면 번살이노릇도 괜찮다는것이였다.

《나 같은 사람을 시중나리가 알기나 하겠소?》라고 고마가 말하니 《모르는 말씀이요. 시중나리는 그래 뵈도 하늘에서 골짜기 내려다보는 독수리나 한가지요. 눈이 얼마나 많고 밝은지 모르오이다. 거기서 오늘 황룡사에 나갔을 때 그러지 않아도 웬 사람이 여기 와서 한주 도독 번살이온 사람이 어디 갔느냐고 묻습디다요. 시중 나리가 보냈다면서…》 한다.

그것 또 시중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것이다. 반월성 월지궁에 박혀있는 시중 준흥이 어떻게 천리길 내려온 고마에 대해서 알수 있겠느냐? 번살이 등록하는 사람이 알렸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

고마는 문득 어딘가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자기를 감시하는 거미의 눈이 떠올라 얼굴을 찡그렸다.

그저 륙감이 아니고 사실이란 말인가? 도대체 뭘 노리고 그러는걸가?

《하여튼 고맙소이다.》 하고 고마는 웅주사람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가?

고마가 이 서라벌에 구태여 내려온 리유는 바로 시중 준흥을 노려서였다.

녀왕을 뒤에서 조종한다는 왕거미같은 사람, 그 사람은 도대체 신라 9주에서 일어나는 반란이요, 도적이요 하는걸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 아는가 모르는가, 치려고 하는가 어쩌는가? 그 속궁냥을 알아야 궁예의 날개에 바람을 보태줄수 있다.

시중이 한주 도독 번살이에게 눈을 밝힌다는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명함을 들이밀 때는 이 피탈 저 피탈 미루면서 뒤로는 감시하는 그 속통은 무엇일가?

이런 때일수록 더 늦추자. 그러면 반드시 저쪽에서 움직일것이다고 고마는 생각하였다.

그 다음날 고마는 북천에 있는 봉덕사를 찾아갔다. 한것은 거기 종을 보기 위해서였다. 고마는 종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졌다.

소리를 내여 울리게 하는 사명때문인지 아니면 그 만드는 솜씨를 따로 보려고 하는것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고마는 종이라면 작은것이든 큰것이든 빡했다.

봉덕사는 경덕왕(742-764년)이 아비 성덕왕을 추모하여 마련하였다 한다. 그런것에 대해서 흥미있는건 아니고 구리 12만근으로 주조한 종을 보고싶었다. 이 봉덕사종은 들은바대로 다른 종보다 더 멋이 있었다.

종 몸체의 륜곽선을 봉긋하게 하여 풍만한감을 느끼게 한것이라든지, 종 아구리부분을 여느 종과 달리 구리거울의 테두리모양으로 8마름형으로 다듬은것이라든지, 어깨부분, 아구리부분에 섬세한 보상화꽃무늬를 새긴 띠를 두르고 어깨부분띠의 바로 아래에는 4개의 네모난 구획을 만들어 그 매 구획안에 9개의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한것도 그래, 당좌(종 망치가 닿는 자리)에 새긴 조화로운 련꽃무늬, 종허리에 새긴 4명의 비천이 련꽃우에 앉아 가벼운 옷자락을 휘날리며 날아가는 형상, 종머리에 우리 나라 종에서만 볼수 있는 삽기(소리통), 종을 매달수 있도록 고리로 된 룡틀임조각!

멋있구나, 멋있어. 고마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종에 대해서 뭘 좀 안다는 사람이 아니라도 종은 정말 아름다운 하나의 보물이였다.

얼이 나간 사람처럼 종을 바라보던 고마는 종의 몸체에 새겨진 명문을 읽기 시작하였다. 거의 천자가 된다는 종의 명문이였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눈에 보이는 형상이외의것도 포함하나니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그런고로 때와 사람에 따라 적절히 비유하여 진리를 알게 하듯이 신종(神鍾)을 달아 진리의 둥근소리(圓音)를 듣게 하였노라…》

《좋은 문장이다.》 하고 고마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우리 겨레 낳아 길러주신 환인, 환웅, 단군의 얼이신 한얼은 천지만물에 깃들어있나니, 눈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분명히 살아있나이다. 한얼이 깨우쳐주는 뜻을 깨닫지 못한자들 어찌 작은 벌레나 풀뿌리와 다르다 하리오. 해와 달이 무궁하여 제 궤도를 돌듯이, 그리하여 빛을 뿌려 진리를 나타내고 온갖 소리 만들어내듯이 한얼의 뜻을 헤아리여 몸과 마음을 바치는것이야말로 참되다 하리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나서 고마는 생각했다. 누가 한 말이던가? 스승께서 외우시던 주문의 한구절이다.

봉덕사의 명문을 짓고 새긴 사람은 누구일가? 그 사람은 분명 한얼의 뜻을 헤아린 사람일것이다.

고마는 명문에 새겨진 사람을 찾아보았다. 주종대박사 대마나 아무개를 비롯한 4명이 지휘해 만들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빌었든 뭐든 진리는 하나다.

고마는 종의 명문을 보면서 크게 깨닫는것이 있었다.

고마는 종소리를 들었다. 엄청나게 큰소리이면서도 령롱하고 맑은 소리다. 진리의 소리는 이렇듯 사람을 감동케 하는것이다.

《주지님, 어째서 이 종을 에밀레종이라 하오이까?》

고마가 물었다.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듯 하지 않소이까, 보살님! 이 종을 만들 때 시주받으러 나갔던 스님에게 어떤 집의 아낙이 하는 말이 <우리 집에는 아기밖에 없소이다.> 했다던지요. 후날 그 아기가 시주되였는데 그 아기의 목소리가 바로 에밀레, 에밀레 한다는것이오이다. 말하자면 에미탓으로 그리됐다는 원망이라는것이옵지요.》

《종은 참 좋은데 래력은 슬픈것이오이다.》

주지는 뭐라고 중얼거리였다.

에미탓으로… 그렇다면 이 소리는 저주의 소리란 말인가? 단순히 미련한 에미에 대한 저주일가? 가슴아픈 전설속에 가슴아픈 겨레의 진리가 있지 않는가. …

고마는 점도록 생각에 잠겨있었다. 신라제일의 에밀레종은 어리석은 에미를 저주하며 후날에도 울릴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과연 이 종소리를 들으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몇이나 될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이 아름다운 종은 페허에 뒹굴게 될게다.

아, 언제 가면 에미를 저주하는 그 종소리를 깨닫고 한얼을 되찾아 겨레의 복된 앞날을 맞이하게 될것인가.

어느덧 저물녘이 되여왔다.

고마가 산문을 나서려는데 어떤 사람이 산문안을 엿보다가 고마와 부딪쳤다.

《아, 한주 도독의 번살이오신 나리시군요.》 하고 그 사람은 말했다.

고마는 뗑해졌다. 전혀 낯모를 사람이 고마가 누구라는걸 찍어 말하는것이다. 산문안을 엿보는 좋지 못한 행실도 행실이지만 그 사람의 말이 더 놀라웠다.

《그쪽은 누구신데…》

《며칠전에 뵈웠습죠. 저 옥문곡을 묻지 않았소이까?》

고마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럼 술주정뱅이 이 사람이… 어딘가 눈에 흰자위가 많아보이는 사람이다.

《아, 그러시군요.》

고마는 경계심이 살아났다. 이 사람이 어떻게 날 알아볼가. 혹시 이 사람이 그 께름한 그림자가 아닌가.

《뭘 하시는분이시오?》

고마가 물었다.

《나말이오이까? 나야 9주강산 떠도는 사람이옵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딘가 수상하다.

《참 나리, 저 에밀레종을 보면서 뭐라 하시던데…》

《종에 새겨진 글을 읽었소.》

《네… 뭐라고 썼소이까?》

《당신도 읽어보시구려.》

《저는 글읽기 좋아하지 않소이다. 글을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면 몸에 해롭다 하지 않소이까? 글을 모르는게 차라리 낫소이다.》

《허허, 보아하니 베잠뱅이는 아닌듯 하온데 틀려도 크게 틀리는 말씀을 하시는구려.》

고마는 이런 놈팽이와 객적은 소리를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추근추근 달라붙는다.

《저 나리!》

《난 당신의 나리가 아니요.》

《그래도 나리야 나리지요.》

《왜 그러는거요?》

《나리는 어째서 시중어른을 뵙지 않소이까? 보건대 글도 아시고 제법 세상리치가 밝은듯 하온데… 혹시 가진것이 없어서 그러지 않소이까?》

이제야 알았다.

고마는 이 사람의 아래우를 훑어보았다. 이 사람은 첫낯에 어리숙해보이나 속은 그렇지 않았다. 시중의 끄나불인지도 모른다.

《시중어른이 그렇게 이르라 합디까?》

고마가 곧장 찌르자 그 사람은 당황해하였다.

《아니, 뭐 그런건 아니고…》

고마는 또 끈을 늦추었다.

《시중어른께 올릴것이 없어서가 아니요. 우리 한주는 땅이 넓고 또 서해너머 당나라의 물건도 적지 않소. 다만 안타까운건 시중어른 뵈울 기회가 없어서요.》

《그건 념려마시오이다. 제가 나서면 되지요. 그저 적당히 사례만 주시면…》

《그야 어렵겠소?》

그 사람은 헤헤 웃었다.

고마는 그 사람의 소개로 시중 준흥의 집에 직접 가게 되였다.

시중의 집은 이름그대로 금입댁의 하나였다. 고마는 집의 안팎을 보며 어느때인가 왕이 골품에 따라 의복, 주택, 수레장식리용에서 한도를 규제하였다는것을 돌이켜보고 속으로 웃었다. 사치를 제한하기 위하여 내려진 왕의 명령은 50년이 지나서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금입댁들은 경쟁적으로 사치를 뽐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시중 준흥의 집도 그가운데 하나였다. 고마가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재부들과 가구들로 으리으리하게 꾸려놓았다. 임금의 대궐인들 이리 요란하랴.

시중 준흥을 만나보니 생각보다 신수가 멀끔한 사람이였다.

《한주 도독 번살이 고마가 문안드리오이다.》 하고 인사를 올리자 준흥은 보던 문서를 옆에 놓고 곁눈질로 고마를 쏘아보았다.

《한주 도독 번살이가 왜 이제야 문안이냐?》

이마살을 찌프리며 준흥이 어성을 높였다.

《워낙 시골에서 살다보니 미련해서 문안인사가 늦었소이다.》

《괘씸한것들! 내 이제 한주 도독을 초달시키려던 참인지라 결단코 무사치 못할줄 알아라.》

《그저 너그럽게 보아주시오이다.》

《그래 한주관아의 형편이 어떠하지?》

《시중어른의 보살핌으로 별일없소이다.》 하고 말하며 고마는 준흥의 눈치를 가만히 살폈다. 원래 될 일이면 《임금의 성덕》 어쩌구 하며 편안함을 고해바쳐야겠으나 고마는 일부러 《시중어른》 어쩌구 해본것이다. 그런데 준흥은 고마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눈치였다.

(이 사람이 임금우에 저를 놓으니 될대로 된 사람이다.) 하고 고마는 생각했다.

고마는 가지고 간 꾸레미를 풀어 준흥에게 내밀었다. 큰 자개박이함속에 보석이 들어있었다. 고마가 왕륭이 말해서 알고있는 《슬슬》이란 보석이다. 그게 어디 쓰이는지 모르나 어쨌든 비싼것이라는걸 왕륭이 말해서 알았다.

그걸 본 준흥의 눈이 대뜸 빛을 뿌렸다.

《이게 <슬슬>이라는 보석이구나.》

제법 알아맞추며 그는 보석을 집어들었다. 그때부터 준흥의 낯빛은 언제 그랬더냐싶게 풀어졌다.

《오, 역시 한주 도독이 조정을 섬기는 법도가 돼먹었다. 가만 너희 한주에 군현이 몇이렷다고?》

《예, 스물일곱 군에 마흔여섯 현을 두고있소이다.》

《그래그래. 아마 나라 아홉주가운데 제일 많은 군현이랬지?》

《예, 그런줄 아오이다.》

《오, 한주의 번살이가 제법 똑똑하구나. …》

그 다음부터 거의 너나들이말투로 변하였다.

《사실 내 조카가 하나 있었는데 생각이 있어서 자네네 한주로 보냈었지.》 하고 준흥은 묻지도 않는 소리를 했다.

《녀석이 뭘 좀 한다 했는데 꺼떡 잘못됐다지 않겠나? 그래 어떻게 되였느냐니까 앓다 죽었다는거야. 뭔가 어스크레한데가 있어 내 한주놈들과 기어코 해보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자네네 도독이 극진히 조정을 섬기는걸 보니 내가 속이 좁다고 생각되네그려. 어찌겠나, 세월이 하두 어수선하니…》

준흥의 말을 들으며 고마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준흥의 조카 김계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는 바로 궁예에 의해 죽었다. 그런데 지금 준흥의 말을 들으면 도대체 진담인지 거짓인지 알수 없다. 조카가 죽은데 대해 별로 속타하지도 않는다. 보석이 아무리 귀한것이고 값나가는것이로서니 그럴수 있는가. 아니면 조카라는것에 대해서 애당초 관심이 없었던가. 하긴 김계진은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은셈이다.

《그래 자네네 한주는 도적들이 일어나지 않는단 말이겠다?》

준흥이 물었다.

《예, 시중어른이 혈육을 잃으시고도 그렇듯 너그럽게 보살펴주시오니 어찌 도적이 일어나겠소이까?》

《음, 그렇긴 그래. 나라를 보필하는 신하는 사리사욕, 사감이 없어야 하느니라. 그런데 삭주, 명주는 그렇지 못해. 도적들이…》

고마는 부쩍 머리털을 세웠다.

《시중어른, 이 한주 번살이 아무개의 소견에는…》

《그래, 자네 말을 어디 들어봅세.》

《그건 삭주, 명주 도독들이 게을러서 일어나는것이라 보오이다. 우리 한주 도독께서는 뭐니뭐니해도 조정에 바칠 조세를 마련하기 위해 심신을 바치고있소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도독들은 도적이요 뭐요 하는 핑게로 조세바치는걸 늦추고있소이다.》

《자네 정말 똑똑하네그려. 맞는 말일세. 나도 그렇게 본지 오랬네. 괘씸한건 도독들일세. 도적이요 뭐요 하는건 핑게고 그것들이 나라를 헐뜯지 못해 그러지. 문제는 도적이요, 반란이요 하는게 아니라 제 잘났다고 대가리를 쳐드는것들이야. 거 륙두품나부랭이 같은것들말일세. …》

혀끝싸움의 기본은 상대의 기분을 제때에 맞추는것이다. 고마는 시중의 속을 잘 맞추었다. 재미있는것은 준흥이였다. 례의상 그럴법하지도 않는데 준흥은 고마의 말에 맞장구치고 나섰다. 혹시 준흥도 우리와 같은 반란자가 아닌가?

시중 준흥은 입귀에 거품을 뿜으며 한바탕 욕질을 해댔다. 그러더니 곁에 놓았던 종이두루마리를 고마앞에 던졌다.

고마는 얼핏 거기 씌여진 글을 보았다.

 

여우는 미인으로 변하고

삵은 서생으로 나타나니

그 누가 알았으랴 짐승의 무리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세상을 유혹할줄을

 

《시중나리, 이게 누구의 시오이까?》

《제만 잘났다고 우쭐거리는 그런 놈이 있네. 고운이라고… 저 당나라에 가서 몇자 배워오더니 영 방자한게 이를데없네.》

《아니, 고운이라면 최치원?》

《그래, 아누만.》

《그 어른이야 헌강왕의 어명으로 지중대사(824-882년)비문을 짓고있다고 들었는데요.》

《자네 어떻게 자상히 아네그려?》

《하두 소문이 짜한분이라서…》

《소문은 무슨. 그놈이 아주 괴이쩍은 놈일세. 헌강왕의 어명을 받고도 무능하오, 게으르오 하면서 미루다가 이즈음 와서 써냈다고 하는데 그 비문에 아주 좋지 못한 글귀가 있단 말이야.》

《어떤 글귀오이까?》

《어흠, 에- 거 뭐랬드라… 옳지, 이렇게 됐네. <오호라, 별들은 하늘나라로 되돌아가고 달은 큰 바다에 빠졌다.> 이게 무슨 소린가?》

《뜻이 있어보이오이다.》

《있지. 아주 음흉한 뜻이 있네. 나라일을 빗대놓고 비난하는게 아닌가. 달, 달이라면 또 뭔가?》

준흥은 제나름대로 열을 올린다.

고마는 반쯤 준흥의 말을 흘려들으며 최치원이란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글이란 보는 사람의 됨됨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 옥과 돌을 갈라보지 못하는것은 옥과 돌에 대해서 잘 모르기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준흥은 최치원의 글을 보고 노발대발하고있으나 고마가 보건대 최치원의 글에는 준흥이 노여워할 그런 정도는 넘어서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이 시중이란 사람이 잔꾀나 겨우 부릴줄 아는 사람임을 알수 있다.

《그 륙두품나부랭이가 무슨 십여조목으로 된 시국의견서라는걸 써가지고 임금에게 올린다 어쩐다 하는것도 다 제 낯을 내려고 그러는것이란 말이야. 뼈가 다른것들이 제 잘난것만 믿고 우쭐렁거리는걸 보면 기가 막혀 슬픔을 금할수 없네그려. …》

고마는 준흥을 가만히 훔쳐보았다.

도대체 이 시중이란 사람 어떤 사람인가. 그렇게 천진하단 말인가, 시중이면 어딘가? 그런데 처음에는 으르딱딱거리더니 보석인지 뭔지 하는걸 보더니 활딱 뒤집어졌다. 한갖 번살이에게 있는 말, 없는 말 거침없이 해댄다.

이 사람 무척 고독한가? 그럴수도 있다. 어딘가 모자라는데가 있거나 너무 교활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고마가 보건대 시중이 왜서인지 몹시 초조해하며 때없이 고독해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적수들이 없어지면 속좁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조정은, 더 정확히는 시중 준흥은 나라의 9주에서 일어나는 반란이요, 도적이요 하는것따위를 별로 생각지 않는다. 원종, 애노의 란처럼 저절로 꺼져버리기 쉬운 그쯤한 일로 보았다.

문제는 서울안의 세력가들이다. 근래에 이르러 이 나라는 왕족들의 권력쟁탈전으로 하여 큰 골치를 앓으며 골병들었다. 시중 준흥에게는 이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였다. 그리하여 준흥은 녀왕의 측근에 자기 모르게 감도는 귀족들을 가차없이 제껴치웠다. 처음에는 아슬아슬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이즈음에 와서 준흥은 울타리를 단단히 쳐놓았다. 녀왕을 둘러싼 무리들은 다 준흥의 눈짓,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것들이였다. 준흥은 녀왕이 좋아하게 곱게 생긴 사내들을 심심치 않게 들여보내는것을 자기의 할 일로 보았다.

이를테면 녀왕할미의 뚜쟁이가 된셈이다. 준흥은 이러하고나서 나라의 일체를 거머쥐고 모든 일을 제가 가위질해댔다. 나야말로 임금의 충신이다. 그러니 나의 적수들을 꺼꾸러뜨리는것은 바로 임금을 위한것이다. 준흥이 왕을 보필하는 한 나라는 편안해진다. 이것이 시중 준흥의 안목이였다. 그런 안목으로 하여 최치원 같은 뭘 좀 안다는 무리들을 극도로 미워하며 그들을 상대로 물귀신작전을 펴는것이다. 절대로 맞대들이하지 않고 나타나지도 않으면서 우물우물하며 없애치우는것이다.

준흥은 고마와 작별하면서 마치 오랜 지기처럼 대해주었다. 번살이노릇은 걱정말란다. 자기는 결코 무지막지하지 않다, 엿에는 엿으로, 떡에는 떡으로 그리고 일단 적수가 되면 가차없다는 등 지지하게 늘어놓았다.

바다너머 굴러온 보석 한덩어리가 룡의 여의주인가? 고마는 준흥을 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옛글에 《신하된자는 장래를 도모해서는 안되나니 이러한 마음을 가진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준흥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러니 나라는 죽을것이다.

됐다! 고마는 손벽을 쳤다. 이제는 됐다. 고구려부활의 수리개는 자유롭게 죽지가 자라날것이다. 죽지가 자라나 날개를 펼칠 때면 제아무리 신라 9주의 군사가 달려들어도 어림없다.

어쨌든 신라는 망할것이다.

신라라는 나라는 이미전부터 겨레를 하나로 합칠만 한 능력이 없었다. 어렵게 바다너머 오랑캐를 끌어들여 겨레붙이나라인 고구려, 백제를 무너뜨린 대가로 겨우 땅뙈기 몇쪼박 얻기는 했어도, 그래서 이른바 삼국통일이요 뭐요 하지만 그건 앉은뱅이 뭘 자랑하는 격이다. 서울을 달라진 판도에 맞게 기껏 달구(대구)벌에라도 옮겨가지 못하는걸 보고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때가 오고있다. 닭대가리를 비틀어도 새벽은 가까워온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