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20

 

최장근은 기사장에게 조용히 지시하고 돌아섰다.

《저녁식사후에 협의회를 해야겠소. 책임부원급이상 다 참가시키오. 가양도에 알려서 당비서동무와 직장장이 건너오게 하오.》

지배인은 큰 키를 구부정하고 어깨를 처뜨린채 전투지휘부쪽으로 걸어갔다. 그의 맥빠진 모습으로 해서인지 며칠사이에 별로 더 늙어버린것 같았다.

정준하는 말없이 서있었다. 갑자기 협의회는 왜 열겠다고 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고압선 늘이는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일가. 그럴수도 있다. 무슨 좋은 방도를 찾자는것이겠지. 신통한 묘안이 나올수 있을가.

그는 바다가를 거닐며 지금껏 진행한 고압선넘기기작업에서 무엇이 잘못되였는가를 곰곰히 따져보았다.

협의회가 열렸다. 조형례국장도 참가했다. 그도 신중한 낯빛을 짓고 말이 없었다.

최장근이 자리에서 일어나 웅글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며칠동안 밤잠을 잊고 날바다우로 고압선을 넘기기 위한 전투를 벌렸소. 하지만 고생한 대가가 아무것도 없소. 아직 첫선도 늘이지 못했소. 과연 이 상태로 해서 우리의 전투가 성공할수 있겠는가가 의심되오. 공법을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오. 토론해봅시다.》

(공법을 바꾼다구?)

정준하의 막대기눈섭이 꿈틀했다.

누구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고개를 수굿하고 앉아있었다.

지배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내 생각을 먼저 말하겠소.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는 원래의 첫 설계안대로 시공하자는걸 제기하오!》

고요하던 수면우에 돌멩이가 떨어진듯 사람들이 놀라 떠들기 시작했다.

(또 중간철탑안을 들고나오는가?)

정준하는 눈을 감았다. 수정설계안대로 시공하여 공사가 수월히 되지 않으니 다시 중간철탑을 주장하는구나. 그는 최장근의 저력있는 목소리를 꿈속에서처럼 들었다.

《다들 생각해보시오. 중간철탑을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거요. 2 500메터나 되는 긴 바다물밑에 놓아준 고압선이 물결에 이리저리 밀리면서 왜 바위들에 걸리지 않겠소. 중간철탑이 있어 그것이 바다가운데서 잡아주었더라면 바위에 걸리지 않았을것이요. 또 고압선을 두대의 불도젤로 끌어당기다가 벌이줄로 맨 쇠바줄까지 끊어지지 않았소. 그러니 더 당겼더라면 고압선까지 끊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소. 그래서 내가 작업을 중지시켰던거요. 고압선의 높이를 보장하려면 더 세게 당겨야 했소. 그때 더 큰 힘으로 잡아끌었더라면 틀림없이 고압선도 끊어졌을거요. 아무리 고압선이라지만 그것이 무지한 힘으로 당기는데 끊어지지 않는다고 소리칠수 있는가. 그렇게 되면 고압선을 얼마나 많이 불량품으로 만들겠소. 중간철탑이 가운데서 잡아주면 그렇게 큰 힘으로 당기지 않아도 될거란 말입니다. 공사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또 송전선건설물의 장래 안전을 위해서도 중간철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오.》

흥분으로 하여 최장근의 기름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 지배인의 중간철탑안을 지지했다. 처음 설계안토론을 할 때부터 지배인의 편에 섰던 사람들이였다. 건설직장장과 운영부기사장을 비롯한 여럿이 일어나 중간철탑안을 반대했다. 갑론을박 떠들썩했다.

정준하가 일어섰다. 철색얼굴에 비낀 표정은 심각했지만 어성은 담담했다.

《제가 옳은 작전과 묘수를 찾아 전투지휘를 능숙히 하지 못해 아직 첫선도 넘기지 못한 결과를 빚어냈습니다. 제 죄가 큽니다. 그런것으로 해서 중간철탑문제가 또다시 상정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전투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저의 결심을 찍어 말하겠습니다. 중간철탑안은 받아들일수 없습니다! 이미전에 설계안토론을 할 때 다 말씀드렸지만 바다가운데 중간철탑을 세울 인공섬을 만든다는것은 아이보다 배꼽이 큰것으로서 실리에 맞지 않습니다. 더 반복하여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현재방법으로 그냥 공사를 내밀겠습니다.》

《무모한 배짱은 객기에 불과합니다.》

뒤좌석에서 울리는 웨침이였다.

정준하의 작을사하면서도 예리한 두눈에 불빛과도 같은것이 번쩍이였다.

《우리는 날바다를 건너 고압선을 넘기는 공사를 처음해봅니다. 그러다나니 경험이 부족하여 고압선이 바위에 걸려 끊어지는 결과를 빚어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을것입니다. 이번에 거석에 걸린 고압선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태평동무네 작업조가 바다밑의 안전한 물길을 새로 알아냈습니다. (여기서는 승호가 주동이 되여 탐색해냈다.) 불도젤 두대가 고압선을 끌어당기는데서도 너무 걱정할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알다싶이 우리는 선을 망탕 당기는것이 아닙니다. 수치계산대로 과학적인 표준을 가지고 합니다. 쇠바줄이 끊어진것은 경험이 없다나니 불도젤 두대가 서로 힘의 중심을 균일하게 잡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이것은 다 극복할수 있는 결함입니다. 저는 전투를 그대로 할것을 주장합니다.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정준하가 주대를 세워 강력하게 내밀었지만 중간철탑안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말 한마디없이 앉아있던 조형례국장이 조용히 일어섰다. 그의 무게있는 목소리가 장내를 꽉 누르는듯 했다.

《배사공이 많으면 배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사장동무의 주장대로 공사를 그대로 할것을 제기합니다. 더 론의할것이 없습니다.》

국장이 정준하를 지지하여 떠들썩하던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협의회는 끝났다. 사람들이 우르르 문밖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밖을 나선 정준하의 뒤로 장유상당비서가 따라나왔다. 그는 기사장의 손을 힘있게 쥐여주었다.

《배심있게 주장을 잘했습니다. 자기 힘을 믿는 사람만이 배짱있게 일을 내밀수 있습니다. 조금도 주저말고 전투를 대담하게 지휘하기 바랍니다.》

《비서동무,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어 고맙습니다.》

《날바다우로 고압선을 넘기는 일에 무슨 애로인들 없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지휘일군의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한편 전투지휘부에서도 조형례국장과 최장근지배인이 남아 심중한 대화를 나누고있었다. 조형례의 목소리는 낮으나 엄하게 울렸다.

《지배인동무가 이런 협의회를 조직한 자체가 벌써 패배주의표현이란 말이요. 신심이 없소. 2 500메터의 해협을 횡단하는 고압선작업이 아무러문 식은죽먹기일줄 알았소? 오늘 협의회는 기사장을 도와주는것이 아니라 그의 뒤다리를 잡아당기는것으로 되였소.》

《이 공사는 기사장만 책임지는것이 아니라 지배인도 같이 책임지게 돼있소.》

《그럼 책임이 두려워서 중간철탑안을 다시 들고나왔다는거요? 공사에 난관이 조성될수록 기사장에게 더 신심을 주고 뚫고나갈 길을 함께 모색했어야 옳았을게 아니겠소. 중간철탑을 세워야 건설물의 장래에도 안전하다고 보는것은 근시안적인 사고요. 바다의 무지한 파도와 해일에 중간철탑이 언제 무너질지 예측하지 못하오. 그러면 량좌우의 철탑들도 동시에 꺼꾸러지게 되오. 우리는 건설물이 어느때든 끄떡없이 천년만년을 책임지고 담보해야 하오. 이것이 조국앞에, 후대들앞에 책임지는 립장이요. 우리 마음을 합쳐 기사장을 더 잘 도와줍시다.》

이튿날부터 정준하는 전투조직을 더욱 치밀하게 짜고들었다. 두대의 불도젤들이 똑같이 힘을 합쳐 예술적으로 당기는 훈련을 했다. 지휘일군들의 작전에서 스쳐버릴수 있는 결함도 낱낱이 꼬집어 시정시켰다.

며칠후 드디여 첫 우측선걸기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건설장의 기세는 불길같이 타올랐다. 그다음은 좌측선걸기도 경험을 살려 큰 말썽없이 해제꼈다.

1호철탑의 좌우측팔들에 6만선고압선이 근감하게 날바다우로 넘어가 가양도의 2호철탑팔들에 련결되였다. 이제 남은것은 철탑의 가운데부분인 중심선걸기였다.

좌우측선걸기작업이 끝난 이튿날은 설명절이였다. 하여 중심선걸기작업은 설명절을 쇠고 하기로 했다. 다들 승리한 기분에 마음들이 둥 떠서 설을 즐겁게 쇠게 되였다.

좌우측선걸기를 성공적으로 끝내는것을 보고 조형례국장은 가뜬한 마음을 안고 성으로 올라갔다. 현장에 내려와있으면서 걸린 자재들도 풀어주고 송강림을 비롯한 혁신자들도 여럿 만나 고무해주었다.

최장근도 도송배전부로 들어갔다. 도인민위원회에서 조직한 회의가 있어서였다. 장유상당비서도 같이 떠났다.

조형례와 최장근은 떠나기 전에 바다가를 거닐며 설명절후에 해야 할 중심선걸기와 차후 변전소건설에 필요한 일련의 대책적문제들을 론의했다. 조형례는 이번에 좌우측선걸기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흥분에 넘쳐 이야기했다.

《이제 중심선걸기도 잘될거요. 기사장이 전투조직을 아주 잘했소. 대담하고 주대있게 내미는 드센 배짱이 있어 어려운 전투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었소. 지배인동문 이번 전투뿐만아니라 공사의 전반행정을 두고 깊이 생각하고 자신을 돌이켜봐야 하오.》

최장근은 시름에 잠긴 눈길로 바다물을 내다보며 저으기 맥풀린 어조로 뇌였다.

《기사장이 하는 일이 왜 그렇게 자꾸 불안하게 보이는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단 말이요.》

《나이탓이란거겠지. 자신의 정신적높이를 놓고 생각해봐야 하오. 그전에 공사를 당분간 중지했다 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던것이나 이번에 중간철탑안을 다시 들고나온것이 다 어데서부터 오는것이겠소. 지배인동무의 정신적나약성은 자그마한 소책자를 하나 보는데서도 표현되고있지 않소.》

《소책자? 그건 무슨 소리요?》

《〈낚시질〉이라는 얄팍한 책을 출장갈 때마다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면서?》

최장근은 혀를 낄― 찼다. 표정이 실쭉해졌다.

《반영도 빠르군. 정준하가 그런 소릴 한게로군.》

《기사장은 왜 거드오?》

《그 사람이 그걸 내 책상우에서 봤을수 있을거요.》

조형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사람을 함부로 의심하지 마우. 성에 회의왔던 각 도송배전부 지배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요. 최장근지배인은 성에 올 때마다 가방에 〈낚시질〉이라는 책을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말이요.》

《남의 말 하기는 참 좋아들 하누만. 먼 출장길에 심심풀이로 조금씩 보는걸 가지고 그렇게 시비질들이란 말이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좀 돌이켜보오. 그 소책자가 무엇을 말해주고있소? 지배인동무가 이제는 스스로 뒤전에 물러설 준빌 한다는걸 말없이 표현하는 증거가 아니요. 아무리 심심풀이로 본다 해도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단 말이요. 서둘러 물러날 생각을 했다면 패배주의요. 난 가슴이 아프오. 정준하동무와 손잡고 더 앞으로 내달릴 각오를 해야지. 그래야 몸도 마음도 젊어져 패기있게 일할수 있다는걸 동무가 모른단 말이요?》

《너무 속단하지 마우.》

최장근은 노여워 침울한 어조로 뇌이였다.

그 길로 두 일군은 각기 헤여져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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