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8

 

경애가 저녁밥을 지어놓고 구수한 무우시래기토장국을 끓일 때 하루구두수리를 끝낸 시어머니가 돌아왔다. 경애는 마주 달려갔다.

시어머니도 키가 늘씬하여 마주서면 경애와 비슷했다. 시어머니는 늘 웃는 낯이여서 인상이 좋았다. 그는 전실에 들어서며 토장국냄새가 좋다고 했다.

이 집에서는 강림은 물론 시어머니와 경애도 무우시래기를 푹 삶아 메주된장을 풀어두고 끓인 뜨끈한 토장국을 좋아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는 자주 토장국을 끓여먹었다.

《어머니, 추운데 수고많았겠어요.》

경애가 시어머니의 가방을 받아주었다.

《수고는 무슨 수고… 구두수리소가 뜨뜻해서 별로 힘든게 없다. 저녁을 벌써 지었냐? 내가 와서 지으려댔는데.》

《호호, 어머니두. 나야 놀고있지 않아요.》

《놀다니. 얘야, 그런 소리 말아. 녀성들의 산전산후휴가는 노는게 아니다. 귀중한 아이를 배안에서부터 잘 기르고 산모의 건강을 돌보라고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혜택이 아니냐.》

《그건 알아요.… 요즘은 글쎄 요것이 배안에서 발길질을 하는지 툭툭 차주는것 같애요.》

《허허허, 그게 축구선수가 되려는게 아니냐. 그러는걸 두고 아이가 배안에서 논다고 한단다.》

《그래요?… 어머니, 국이 다 끓었어요.》

《오, 내 세면을 좀 하구… 에그, 이렇게 추운 날 바다가에 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겠냐.》

시어머니는 아들에 대해 늘 걱정이 자심했다.

저녁을 먹고 설겆이까지 끝낸 경애가 방에 들어왔을 때 시어머니가 자기 가방안에서 뒤축높은 고급구두 한컬레를 내놓았다.

《자, 신어봐라.》

경애는 놀람과 기쁨이 어린 눈길로 신발을 집어들었다.

《아니, 내 신발을 또 사왔어요?》

《그게 어디 새 신발이냐. 네가 신던거지.》

《어마나― 내 터졌던 신발이 이렇게 새것처럼 됐어요? 어머니손은 정말 보배예요.》

며칠전에 시어머니가 경애의 터진 신발을 구두방에 가지고나가더니 이렇게 새것처럼 만들어왔다. 경애는 구두를 신어보았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앞에 앉아 발끝도 눌러보고 뒤축도 만져보면서 편안한가고 물었다.

《예, 발이 가뜬한게 기분이 좋아요. 다들 어머니한테 구두수리를 하는것이 좋다고들 해요. 어머닌 어떻게 돼서 젊어서부터 구두수리를 배우게 됐어요?》

경애는 언제부턴가 알고싶었던것을 오늘에야 물었다. 시어머니는 시름없이 웃으며 조용히 뇌였다.

《거기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단다. 나는 새색시적부터 최전연에서 중대장을 하는 남편과 살았다.》

그런데 그 지대는 읍과 멀리 떨어진 산골이여서 구두수리공이 없었다. 적지 않은 군관들과 가족들이 조금만 손질하면 새 신발이 될 구두들도 신지 못하는것이 많았다.

그래 자기가 결심하고 읍에 있는 오랜 구두수리공아바이한테 가서 배워왔다고 했다. 돌아와서 군관가족들은 물론 주변농장원들의 신발까지 다 수리해주니 여간만 좋아하지 않았다.

《그후 강림이 아버지가 원쑤들과의 결사전에서 전사한 다음 나는 본가가 있는 이 도시로 왔구나. 무슨 일을 하겠니.》

그래서 구두수리를 다시 시작했다. 편의봉사관리소에서 좋아하더라고 했다. 그 일을 하도 오래 해오다나니 이제는 고급기능공으로까지 떠받들리우게 되였다.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경애가 전실에 나가 출입문을 열었다.

연해군 송배전소 황소장이 빙긋이 웃으며 들어왔다.

《아이, 고모부가 오시네. 그동안 건강했어요?》

《어, 나야 늘 건강하지.》

황소장은 방으로 들어와 시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사돈님, 잘있었습니까.》

《오래간만에 오시누만요. 집에서랑은 다 무고합니까.》

《그럼요.》

경애가 부엌에 나가 저녁식사를 차리려는것을 본 고모부가 자기는 밥을 먹고왔다고 했다.

《그래요? 그럼 술이라도 한잔 하세요. 추운 밤에 오셨는데.》

《안하겠다. 네 본가집어머니가 밥도 술도 다 먹여줘서 잘 먹구왔다. 아무렴 처남댁이 이 맏매부를 소홀히 대접할테냐.》

고모부는 헌헌한 표정으로 담배갑을 꺼냈다. 그는 한대 붙여물고나서 강림이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을 꺼냈다.

두 녀인은 동시에 놀란 표정을 띄웠다. 경애가 물었다.

《무슨 병이래요?》

《병이 아니고 일이 좀 생겼더구나.… 어쨌든 강림인 아무 일 없으니 걱정할건 없다. 나도 어제야 알구 가봤지.》

고모부는 자기가 본 그대로 말했다. 경애와 시어머니는 낯빛이 질려 가슴들이 한줌만 해졌다.

경애가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모부, 사실대로 말해줘요. 진짜 몸이 일없어요?》

《일없다니까. 같이 일하던 사람이 내려오다 실수를 했더구나. 그래서 강림이가 동무를 사경에서 막아주고 자긴 제창 바다물로 뛰여들었다누나. 원래 물에 뛰여들기선수라면서? 그 좋은 재간이 이번에 큰 은을 냈더라. 쉽지 않은 사람이야. 동무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가 물속으로 들어가다니, 경앤 참 훌륭한 새서방을 만났다.》

시어머니가 아들의 건강이 일없다고 하는 사돈의 말을 재확인하듯 밥은 제대로 먹던가, 기분상태는 어떻던가 등등을 까끈까끈 물었다.

이튿날 경애는 서둘러 병원에 갈 준비를 갖춰가지고 시어머니와 함께 떠났다.

이 시각 송강림의 입원실에는 장유상당비서가 앉아있었다. 그는 회의에 참가하고있어서 가양도일을 모르고있다가 지배인을 통해서 알고 병원으로 왔었다. 장유상은 송강림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아픈데가 없다던데 사실이요?》

《사실입니다.》

《오늘까지 며칠짼가?》

《닷새 됐습니다.》

《진짜 일없으면 얼마나 좋겠소. 과장선생한테 물어보니 별다른 후유증은 있을것 같지 않다고 하더구만. 참 다행이요. 철탑에서 손을 놓는 순간 강철사재들에 머리를 쪼았다든가 무슨 타박을 받은 일도 없나?》

《없습니다.》

《그렇다면 좋아. 마음이 놓이누만. 다행이요.》

당비서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뒤말을 이었다.

《강림동문 이번 가양도공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였소. 위험에 처한 동무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 한몸 생각지 않고 나선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거던.》

장유상은 진정이 어린 눈길로 송강림의 곱살한 얼굴을 어루만지듯 살폈다.

《비서동지, 제가 무슨 귀감으로까지 되겠습니까. 그런 정황에서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동무가 위험하게 됐을 때 모르는척 하는 사람은 아마 우리 집단에 없을겁니다.

그런데 이러나저러나 이거 야단났습니다. 빨리 나가야 할텐데 퇴원시켜주지를 않습니다. 비서동지가 원장선생한테 좀 말씀드려주십시오, 아무 일도 없으니 이젠 내보내자고 말입니다.》

장유상은 웃었다.

《그건 안돼. 과장선생도 나한테 말했소. 좀더 두고 관찰해봐야 마음을 놓겠다고 말이요. 걱정말고 누워서 푹 안정하라구.》

《참, 비서동지두. 세끼 주는 밥 먹구 멍하니 누워만 있자니 이거야 갑갑해서 견디겠습니까. 아무렇지두 않은 사람을 붙잡아놓고… 저하나 일을 못하는것도 손핸데 또 저한테 병문안을 오느라고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랑비한단 말입니다. 보십시오, 오늘은 당비서동지가 오고 어제는 명산포돌격대에서 오고 그제는 우리 산줄작업반에서 오고 그그저께는 지배인동지와 우리 장인이 같이 오고… 손해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게 얼마나 좋소. 다 강림동무를 아끼는 심정이 아니요. 병문안 오느라고 설사 시간을 좀 랑비했다 해도 그것은 동지를 위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에 비하면 조금도 아까울게 없소.》

장유상은 퍽 오랜 시간 앉아 송강림의 말동무가 되여주었다.

당비서가 돌아간 다음 경애와 어머니가 입원실로 들어왔다. 송강림은 가족들까지 오자 오히려 제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어떻게 알고 오느냐고 물었다.

《연해군 송배전소에 있는 사돈님이 와서 알려주더구나. 경애 고모부 말이다.》

《하하, 이것참. 신수펀펀한 사람을 놓고 소동을 피웠구만.》

《방금 과장선생부터 먼저 만나 얘길 듣고 들어오는 길이다. 아무일 없다니 마음이 놓인다. 정말 천행이구나.》

송강림은 곁에 와서 자기를 찬찬히 살펴보는 경애의 두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괴여오르는것을 마주 올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그는 안해의 손을 잡아 앉히면서 짐짓 우스개소리로 말했다.

《오자마자 울기부터 하는가. 난 또 우리 경애가 이런 울보인줄 몰랐구만.》

《어제 밤 경앤 한잠도 못 잤단다.》

《허허 참, 고모부는 괜한 말을 해가지구.》

《그러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전해주는 말을 들으면 우리가 더 놀랄가봐 제가 본대로 직접 와서 말해준다고 하더라. 다 우리를 아껴주는 마음이지. 고모부도 네 칭찬을 하더라, 동무를 구원해준 쉽지 않은 사람이라구. 우린 네가 어디가나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지 않구 칭찬을 받으니 더없이 기쁘구나.》

《그래요? 어머니와 경애만 기쁘다면 난 더 기뻐요.》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집에서 가지고온 음식을 좀 먹어보라고 했다. 식당에 가서 빈그릇을 얻어오겠다고 잠간 밖으로 나갔다.

부부만이 남게 되자 경애는 남편의 얼굴을 두손으로 찬찬히 쓸어만져보았다.

《여보, 얼굴이 부은건 아니예요?》

《아니…》

《정말?》

《허허, 곧이 듣지 않누만.》

《혹시 밤에 잠을 못 자는건 아니예요?》

《너무 잠꾸러기가 돼서 걱정이요. 이따금 못 자는 날도 있소.》

《그건 왜요?》

《당신이 내곁에 없어서.》

《그 심정은 저도 같애요. 조금만 참으세요. 공사가 끝날 때까지만… 난 어쩐지 당신의 몸이 아무 일 없다는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아요.》

《믿으라구. 내가 아무러문 경애한테 거짓말을 하겠소?》

《진짜?…》

《진짜…》

강림은 환히 웃으며 경애의 오똑한 코를 한손으로 꼭 쥐여 흔들어주었다. 그때에야 경애는 눈물을 흘리면서 꽃처럼 방끗 웃었다.

강림은 경애의 불룩한 배를 슬쩍 보며 속삭이듯 물었다.

《고모부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보나마나 당신이 놀랐겠지? 그때 이 녀석도 덩달아 놀라지 않았을가?》

《글쎄요.… 그런것 같진 않아요. 지금도 배안에서 요것이 나를 툭툭 차주는데요 뭐. 어머니는 축구선수를 가진것 같다고 했어요.》

그들은 즐겁게 웃었다.

 

×

 

이날 밤 가양도 숙소에서…

저녁을 먼저 먹은 승호는 슬며시 밖으로 나와 식당안을 들여다보았다.

방처옥은 취사원을 도와 분주히 손을 놀리며 배식에 여념이 없었다. 아직은 좀더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한 승호는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처옥은 사흘전에 빨래를 해주러 또다시 이곳에 건너와있었다. 오늘까지 일을 끝내고 래일 아침엔 명산포로 건너간다.

처녀는 섬으로 건너오면 단지 빨래만 해주는것이 아니였다. 숙소안팎을 알뜰하게 거두어주고 식당안에 낀 때를 한벌 쭉― 벗겨내군 했다. 밥도 짓고 찬도 같이 만들었다.

태평이네들은 처옥이만 건너오면 다들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꼭 어머니가 어데 갔다온것만큼이나 반가와했다. 생활에는 역시 녀자가 있어야 되겠다고 다들 떠들었다. 처옥이가 해주는 밥은 더 맛있고 국도 더욱 달다고 했다.

직장장한테 다시는 처옥이를 명산포에 보내지 말자며 붙잡아두자고 했다. 그들은 끝없이 처옥이를 웃기였다.

얼마후 승호는 밖으로 나와 식당안을 또 들여다보았다. 방금 저녁식사를 끝낸 처옥이가 물을 마시며 입가심을 하고있었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시선이 마주치자 처녀를 눈짓으로 불러냈다.

처옥은 말없이 뒤따라왔다.

승호는 숙소를 벗어나 섬의 돌출부벼랑가에 서있는 2호철탑밑으로 갔다. 놋양푼같은 보름달이 대낮같아 그들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었다.

바람도 잦아 파도소리도 없었다. 고즈넉한 저녁이였다.

승호가 철탑을 등지고 서자 처옥은 그앞으로 다가가 왜 여기로 끌고오는가고 물었다.

《하고싶은 말이 있어 그러오,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서.》

《하고싶은 말이요?… 난 그 말을 다 알아요.》

처녀는 매큼한 눈길로 총각을 쏘아보았다.

《다 안다고? 어떻게?》

승호는 처옥의 야멸찬 눈길이 얼굴 따가와 그 시선을 피하며 우물쭈물 허파가 빈 소리로 물었다.

《뻔하죠 뭐. 〈처옥이,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던게 많소. 리해해주오. 지나간 날에 있었던 일은 다 잊자구.〉 이러겠지요. 틀리면 틀린다고 하세요.》

승호는 억이 막혀 긴숨을 후― 내쉬였다.

《탄식은 왜 해요?》

《내가 하려던 말을 처옥이가 너무도 신통스레 앞질러하니 두손 들었소. 어떻게 남의 속을 그렇게 말짱 알아맞히오?》

《이 며칠동안 가만보니 승호동문 내가 가양도에 건너온 순간부터 무슨 말인가 하고싶어하는 눈치더군요.》

(처옥이도 나를 여간만 주시하지 않았구나.)

《그래서?》

《난 매일 매시각 동무의 동태를 살펴봤지요 뭐. 그때마다 전 어제날의 다정다감하던 승호동무를 다시 보는것 같았어요. 그 열정적인 눈빛… 그래서 동무를 더 미워했어요.》

《뭐?… 그런데도 더 미워했다구?! 그건 무슨 심보루?》

《식어가던 내 가슴을 다시 달구고 불을 지펴주니 말이지요. 그래서 별렀어요. 조용히 만나기만 해봐라, 그동안 아팠던 마음까지 다 합쳐서 사정없이 꼬집어줄테다 하구 벼르고있었어요.》

《바로 그 시각은 지금 왔소. 자, 속이 후련하도록 꼬집으라구.》

승호는 열에 들떠 씨근덕거리며 처녀앞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는 흥분으로 높뛰는 가슴을 달랠수가 없어 처녀의 두손을 꽉 잡아쥐였다.

처옥은 달아오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승호는 열렬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처옥이, 정말 우리 어제날에 있었던 일은 다 잊자구. 나는 우리 매부가 동무를 위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댄 그 사실을 보고 많은것을 생각했소. 남들은 저렇게 정신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구나 하고 대비해보니 나는 자신에 대한 환멸감으로 해서 죽고싶은 심정이였소. 그럴수록 내가 어떤 인간인가 하고 자문하며 밑창까지 파보게 되였소.》

승호는 잠간 숨을 돌렸다. 처옥은 총각의 진정어린 목소리에 감동되여 끝없이 울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안은채 넋을 잃고 서있었다.

《나는 지금껏 좋은 부모님의 슬하에서 어자어자하며 고생을 모르고 자랐고 나라의 크나큰 혜택을 응당한것으로만 알았어. 처옥이를 비롯한 좋은 동무들의 방조와 사랑속에서 공부하면서도 너무나 많은걸 모르고 살아왔소. 그러다나니 어느덧 투정군이 되고말았지.

부모한테도 투정을 부리고 나라에도 투정을 부리고 처옥이한테도… 생각할수록 부끄럽소. 힘들고 괴로운건 많았어도 이번 이 가양도송전선공사는 나를 억센 로동계급으로 만들어주는 혁명대학과 같은것이라고 생각하오.

그럴수록 자나깨나 가슴무거웠던것은 처옥이가 나를 용서해주겠는가 하는것이였소. 그런데 오늘 이렇게 리해해주고 받아들이니 처옥이를 다시 얻은것만 같소.》

처옥은 승호의 애정으로 불타는 두눈을 올려다보았다. 처녀의 긴 속눈섭에 물기가 자르르 고여올랐다. 그 살눈섭끝에 촉촉히 맺힌 눈물방울이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을 뿌렸다.

처녀는 불붙는것 같은 심장을 안고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어 제스스로 총각의 품에 자신을 그대로 맡겼다.

승호는 속삭이듯 물었다.

《내가 미웠지?》

《아니… 그저 속탔지 뭐.》

그들은 마주보며 다시 웃었다.

《나는 이 가양도송전선전투를 두고두고 잊지 않겠소. 오늘 밤의 이 철탑도 잊지 않겠소!》

《우리 이 철탑처럼 든든히 뿌리내리자요!》

승호는 문득 처녀가 솜옷을 벗어놓은채 나왔다는것을 이제야 알아보았다. 부엌일을 도와주느라고 그랬던것 같다. 그는 자기의 두툼한 솜옷을 벗어 처녀에게 입혀주었다.

《아이, 춥지 않아요. 그냥 입으세요.》

《나야 아침마다 랭한극복훈련을 하는 사람이 아니요. 그게 처음 시작할 땐 끔찍스러워 하기 싫더니 정작 하니까 아주 좋구만. 처옥이, 우리 래일 매부한테 병문안을 같이 가지 않겠소?》

처옥은 반색을 지었다.

《그러자요. 저도 그 생각을 했댔어요.》

《난 사실 벌써 가보고싶었댔지만 처옥이와 함께 가고싶어서 기회를 보았던거요. 매부는 나 혼자보다 처옥이와 같이 오는걸 몇배 더 반가와할거요. 매부가 우리들의 일이 바로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오.》

《정말 고맙군요.》

그들은 온밤 철탑밑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둥근달이 두사람을 내려다보며 벙글벙글 웃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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