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6

 

명산포 1호철탑이 보조철탑들과 함께 거연히 일어섰다. 3개의 보조철탑들이 호위병들 같아보였다.

그사이 식량사정도 풀리고 콩까지 들어와 식사질이 한결 높아졌다.

숙소들도 불이 잘 들어 돌격대원들의 사기는 높았다.

정준하는 완성된 1호, 2호철탑들을 돌아보며 다음단계전투를 구상했다. 그의 생각은 깊었다.

철탑조립이 끝나는것과 함께 고도작업에서 난관이 조성되여 그를 애타게 했다. 미처 예견치 못했던 일이였다. 바다가여서 여전히 해풍은 세차다.

고도작업성원들은 아침에 올라가면 종일 철탑우에 있어야 했다. 다시 내려왔다 올라갈수가 없어 점심밥도 철탑에서 먹어야 했다.

처음엔 줴기밥을 만들어 광주리에 담아 바줄로 끌어올렸다. 올라가는 사이 밥은 돌덩이처럼 얼어 씹을수가 없었다. 할수 없어 다음엔 빵을 올려보냈더니 그것도 역시 쇠덩어리처럼 되고말았다.

그래도 제일 나은것이 수분기가 아예 없는 가마치였다. 철탑에서 종일 일하면서 가마치만 씹고 한다는것이 여간 힘든것이 아니였다.

정준하는 어떻게 해야 이들한테 유리한 작업조건을 지어줄수 있겠는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먹는 걱정은 후차라고 했다.

《기사장동지, 철탑우에서 배고픈것은 좀 참을수 있어도 추운것을 참기가 더 급합니다. 우선 손발이 시려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겠습니다.》

산줄작업반 김평반장이 말했다.

《여기 철탑들이 산에 있는 철탑들보다 오르기가 곱절 더 힘듭니다. 겨울의 산골철탑들은 철강재에 허옇게 성에나 끼는 정도지만 이 바다가물녘의 철탑들은 살얼음에 덮입니다. 낮에는 크나적으나 조금씩 증발되던 바다수증기가 밤사이 얼면서 철탑표면에 엷은 얼음층을 덮어줍니다. 때문에 매우 미끄럽고 지쳐서 신경을 바싹 도사려야 합니다.》

이런 철탑은 오르면서 벌써 맥을 다 뽑아 올라가서는 일할 기운이 없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67메터나 되는 높은 철탑에 올라가서도 일없게 추위를 막아줄수 있겠는가.

가뜩이나 바다가여서 바람이 세찬데다 높은 곳에 오르니 그 바람단련이 이만저만 아닐것이다.

화로에 불을 담아 몇번 올려가다 그것도 실패했다. 철탑우에 가닿기도 전에 불이 바람을 받아 다 날아났던것이다. 옷을 더 껴입는것도 그이상은 못한다고 했다. 지금 입고 올라가는것만도 비둔하여 작업시 몸을 놀리기가 자유롭지 못하다고 한다.

정준하는 시원한 방도를 찾지 못했다.

어느날 그가 가양도로 건너가 송전선건설에서 질을 높일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종업원회의를 끝냈을 때 송강림이 김평반장과 함께 전투지휘부로 들어왔다.

《우리가 철탑에 올라가 추위를 적게 느끼면서 일할수 있는 묘책을 찾았습니다.》

송강림이 날씬한 허리를 쭉 펴며 밝게 웃었다. 정준하는 강림의 명랑한 얼굴을 마주보며 《그래?》 하고 두눈에 호기심을 띄웠다.

《어떤거냐?》

《한마디로 몸을 얼구어 단련시키는 방법입니다.》

《몸을 얼군다구?》

《예, 우린 지금껏 옷을 더 껴입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아예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봤습니다.》

정준하는 머리를 기웃하며 미덥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사실 내가 새로 발견한것은 아닙니다. 이미 해군에 복무할 때 그런 훈련을 해봤으니까 그 경험을 살린겁니다. 요 며칠 가양도에서 새벽마다 몰래 밖에 나가 그런 훈련을 혼자 하고 철탑에 올라가니 추위를 별로 타지 않아 일하기가 아주 좋더란 말입니다.》

송강림은 설명했다.

아침에 랭한극복훈련을 강도높이 하고 철탑에 올라갔더니 온몸이 얼어들어 손을 쓸수 없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기상하여 웃동을 벗고 추위로부터 몸을 단련시키는 방법이였다. 몸을 불이 번쩍 나게 비비고 문지르고 두드리고 하여 피부가 벌겋게 되도록 때리면서 마찰시키는것이였다.

이렇게 충분히 단련하고 옷을 입으면 몸이 훈훈해지고 거뜬하여 날아갈것만 같다. 굳어진 오륙이 풀리고 몸동작이 유연해진다. 이렇게 하고 철탑에 오르면 종일 일해도 손이 과다져 작업공구를 떨구는 일이 없어졌다.

옆에서 김평이 송강림의 의견을 지지했다.

《기사장동지, 강림동무의 말대로 해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저도 이전에 군사복무할 때 그런 훈련을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좋은것이니 제꺽 받아들입시다.》

정준하는 난색을 지었다.

《그건 좋은 방법인것 같지 않구만. 그러다가 다들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쩔려구.》

김평이 한발 나서며 일없다고 력설했다.

《기사장동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모르는척 하고계십시오. 그 일은 우리가 실수없이 집행하겠습니다.》

두 젊은이는 그리 알고있으라는듯 어깨들을 살구고 전투지휘부를 뛰쳐나갔다.

이튿날부터 가양도에서 새벽마다 추위단련훈련이 시작되였다.

고도작업에는 적지 않은 인원이 필요했다.

산줄공들만으로는 인원이 모자라 건설직장에서 젊은 사람들이 뽑혔다. 거기에 승호와 기찬이가 빠질수 없었다. 제일 젊고 날파람있는 총각들이니까.

청년시절에 누구나 싫어하는것이 남한테 뒤지는것이였다. 남들이 척척 나서는 마당에 승호라고 안 나설수가 없었다. 그는 랭한극복훈련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지만 할수없이 마지못해 따라다녔다.

김평반장은 자기도 똑같이 웃동을 벗고나가 엄격하게 구령을 쳤다.

처음엔 운동장을 몇바퀴 뛰운다. 하나, 둘, 하나, 둘… 그의 청청한 목소리가 새벽공기를 흔들었다. 그런데 첫날 아침은 태평이로 하여 말썽이 일어났다.

그더러 제발 나오지 말라는데도 부득부득 웃동을 벗고 뛰쳐나오기때문이였다. 자기도 당당히 고도작업조라는것이였다. 김평이 눈살을 찌프렸다.

《태동문 소속도 모르나? 여긴 철탑작업조야.》

《나도 오늘부터는 철탑작업조요. 내가 요 며칠 강림이와 같이 철탑에 올라가 일한걸 모르우? 하긴 반장은 명산포에 건너가있었으니까.》

《그것때문에 송강림동무가 비판을 받았단 말이야, 동무같은 뚱뚱보를 어떻게 고도작업을 시키는가. 안돼.》

《뚱뚱한것도 죄요? 언젠가는 나한테 열번 죽었다 살아나도 산줄공은 못한다고 모욕을 주더니 오늘은 뭐 철탑작업까지도 못한다구?》

《그런 모험심리 하나만 가지고는 안돼. 그건 대담성이 아니야.》

《좋소. 내 복수하고야말겠다. 본때를 보여서 김평반장이 나를 산줄반으로 오라구 모셔가게 만드는걸 보우. 내 자존심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여줄테다.》

《어서 그러라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소.》

철탑작업조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태평이 울그락불그락 하며 다시 숙소로 달려가는것을 보며 다들 와하― 웃었다. 김평이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 모험하기를 좋아할가. 무모한 대담성은 백해무익하다는걸 모르거던.》

정준하는 이들이 새벽마다 하는 랭한극복훈련을 주의깊이 살펴보았다. 그중에서도 아들 승호의 모습에 더 시선이 갔다. 찌불서한 얼굴이였다.

(할수없어 따라나섰구나.)

승호가 집에서 다시 공사장으로 나온 다음 벌어진 일들을 정준하는 말짱 알고있었다.

…승호는 그날 아침 집을 떠나 저녁녘에야 명산포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배가 떠나는 부두가의 짐무지앞에 가 쭈그리고앉았다.

가양도로 건너가는 발동선을 기다리려는것이였다.

그때 누군가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탁수환이였다. 볼일이 있어 며칠전에 명산포에 왔다가 섬으로 돌아가는 길이였다.

그는 목수연장궤를 내려놓으며 승호곁에 앉았다.

《이제 오나?》

탁수환은 담배갑을 꺼내며 불만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승호는 가뜩이나 신경이 돋아 우거지상을 하고있는데다 탁수환의 고까와하는 목소리를 듣자 속이 울끈했다.

《아무때 오든 아바이가 무슨 상관이예요.》

툭 내쏘고는 돌아앉았다. 탁수환은 쿵― 코그루를 박았다. 담배를 붙여물더니 이어 노한 어성으로 다불러대기 시작했다.

《무슨 상관이냐구? 창피한줄도 모르는 덜된 녀석, 남들은 나라를 위해 뼈심바쳐 일하는데 너는 뭐냐. 다음날 오겠다는 녀석이 한주일만에야 와?》

승호는 아연하여 탁수환을 마주보았다. 늘 말없이 억척스럽게 일만 할줄 알던 꿋꿋한 아바이가 이렇게 노할줄은 몰랐다.

《난 몸이 아파 승인받고 갔댔어요.》

《제 날자에 와야지. 투정도 하리만큼 해야 리해를 받지 너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녀석은 지탄을 받아. 복속에서 복을 모른다고 너는 너무 행복해서 투정질이야. 훌륭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좋은 동무들, 좋은 세상에서 부러운것 없으니까 못되게 논단 말이야.

나무도 숲속에서 커야 곧게 자라듯이 사람은 집단속에서 살아야 쓸모있는 일군이 돼. 나라의 큰일을 하는 아버지의 속을 그렇게 태워주는 불효막심한 녀석. 부모한테 효도하는 사람이라야 나라에도 충실해. 부모를 속태우는 불효자가 나라에 제구실 했다는 말은 고금동서에 없어. 채심하려거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투신해라. 너한테는 청년다운 기개가 보이지 않아.》

승호는 씩씩거리며 대꾸질을 못했다.

《이제 가양도에 건너가면 동무들이 너를 용서치 않을게다. 잘못했다고 심심히 빌어라. 네가 비판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전투장에 있을수도 있고 쫓겨날수도 있다. 정신을 바로세우지 못하면 쓰레기가 된다. 나라를 받드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거든 집단속에서 단련돼야 한다.》

이윽고 두사람은 묵묵히 발동선을 타고 가양도로 건너갔다. 다들 탁수환이한테는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면서도 승호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날 저녁식사후 직장장은 종업원회의를 열고 승호를 내다세웠다.

승호는 동무들이 그렇게 분격할줄은 몰랐다. 비판의 화살이 아프게 온몸을 찔렀다. 저따위 교만방자해진 건달군 한명 없다고 전투를 못할게 없다면서 당장 내쫓자고들 윽윽했다. 승호는 눈앞이 아뜩했다.

회의가 있은 후부터 그는 누구와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뜬뜬한 표정으로 시키는 일이나 한다고 했다.

정준하는 아들의 일거일동에 매일 신경을 썼다. 비판을 받고 용서를 받았으면 이튿날부터 그런체없이 분발해서 일도 잘하고 동무들과 섭쓸리기도 잘하면 온 집단이 기뻐하겠는데 여전히 서푼짜리 자존심을 세워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는댔다.

(쭉정이가 되려는건 아닐가. 이 전투장에서 과연 한계단 올라설수 있을가.)

정준하는 이런 생각에 잠겨 아침달리기하는 씩씩한 대오를 한참이나 서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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