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5

(1)

 

정준하는 팔목시계를 보며 서둘러 행길에 나섰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다들 바쁘게 걸었다. 한가롭게 소풍삼아 거리에 나선 사람은 있는것 같지 않았다.

동평양백화점 앞길에 이른 정준하는 잠간 걸음발을 주춤거리였다. 어떻게 할가. 저쪽에 바라보이는 정류소에 가서 궤도전차를 탈것인가 그냥 걸을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내처 걷기로 했다. 찾아가는 목적지가 거리상 맞지 않아서였다.

그는 어제 밤차로 평양에 왔다. 늦게 도착하여 친구네 집에서 자고 지금 나오는 길이였다.

이날 아침 평양에 싸락눈이 내렸다. 찬바람이 불며 날은 추웠다. 대동교에 들어섰다. 시퍼런 강물이 굼닐며 거기서 회오리바람이 올라와 얼굴을 때리였다.

대동강물을 내려다보자 그의 눈앞에는 명산포앞바다의 산더미같은 물떼가 떠올랐다. 그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겨와 가슴이 무거웠다.

그래도 명산포숙소를 다시 개건하고 확장하여 이제는 뜨뜻한 구들에서 살게 한것이 한결 마음의 위안이 되였다. 생각할수록 탁수환은 목수로서 재간도 있고 무슨 일이나 대담하게 했다. 그가 며칠동안 달라붙어 해제끼니 그렇게 좋은 숙소로 되였다.

벌써 이렇게 했으면 고생도 덜하고 저 가양도조 부럽지 않게 배를 두드리며 살았을텐데… 태풍에 하루살이근성까지 싹 달아났다며 명산포사람들이 자신들을 자책했다고 한다.

문제는 식량이다. 정말 해결할수 없는 난감한것일가.…

제 생각에만 빠진 정준하는 자기곁에 와 서는 승용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차문이 열리고 우선우선한 목소리가 그를 불러세웠다.

《거 정준하기사장동무가 아니요?》

낯익은 부름에 고개를 돌린 정준하의 모습이 언제 근심에 잠겼던가싶이 대번에 환해졌다.

《아니, 책임비서동지.》

호남아형은 아니지만 그 인상적인 미소가 항상 얼굴에서 떠날줄 몰라 언제나 친근감을 준다.

《출장을 왔소? 차에 타오.》

두사람을 태운 승용차는 시내도로를 누벼나갔다

《이번 태풍에 명산포에 세운 철탑이 넘어졌다지.》

《예, 하지만 가양도에 세운건 끄떡없습니다.》

《그럼 명산포것두 일없을수 있다는게 아니요. 허허, 사람도 돌부리에 채워 넘어질 때가 있는건데…

문제는 넘어진데가 아니라 바로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데 있는거요.

맥을 놓지 말고 힘을 내오.》

이 순간 정준하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오르며 고맙다는 말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것을 그러면서도 선뜻 그 말이 나가지 않는지 자기로서도 알수 없었다.

《내 그새 자주 나가보지 못해 동무한테 미안하구만. 그래 제기되는건 없소?》

《저… 별로 없습니다.》

《있겠는데… 식량문제가 제일 난문제겠지.》

정준하는 놀라와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했다.

《왜 놀라오? 이 책임비서가 그걸 어떻게 알가 해서?》

《책임비서동진 심리학자 같습니다. 제 속을 어항 들여다보듯 환히 꿰뚫으니…》

《심리학자라, 하하. 그러다 동무때문에 이 차가 비행기가 되겠소.》

《하하…》

두사람의 웃음소리가 차안을 꽉 채웠다.

정준하를 어느 한 기관에 부려준 승용차는 어느새 시내를 벗어나 교외의 도로를 따라 달리였다.

(식량이라…)

차창으로 흘러가는 산천을 무심히 바라보는 책임비서의 눈앞에는 전혀 다른 광경, 가양도와 명산포의 건설장이 떠오르는듯싶었다.

방에 들어선 책임비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을 찾았다.

두 책임일군은 공사장에 식량을 해결해줄데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위원장동무, 공사장에 부식물도 변변치 않겠는데 식량과 함께 콩도 좀 보내줍시다.

수고많이 하는 돌격대원들에게 비지도 뜨끈하니 해먹이게 합시다.》

《알겠습니다. 도량정국장동무에게 이미 제기됐던 문제를 우리가 늦었습니다.

토론해서 식량도 가능한껏 해결해주고 콩도 넉넉히 보내주겠습니다.》

한편 도당책임비서와 헤여져 용무를 보고난 정준하는 그길로 통일거리에 있는 약전공학박사 문선생의 집을 찾아갔다. 몇달전에 룡산군 우승료양소에 찾아가 넘겨준 그 전압주파수조절기에 대한 기술방조를 받기 위해서였다.

이번에도 정준하를 맞아준 사람은 그전처럼 박사의 안늙은이였다. 아직 주인은 료양소에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새해에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이젠 새해가 가까와오니 그때 와서 만나시지요. 올적마다 령감님이 없어 안됐군요.》

부인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정준하는 승강기를 타고내려오며 어떻게 할가 하고 제나름의 타산을 세워보았다. 전번처럼 또 룡산군 우승리까지 찾아갈가? 그러면 또 며칠 걸리겠지. 공사장엔 운영부기사장과 건설직장장이 있으니 그들이 할바를 다 알고있지. 그러면 우승료양소까지 간다?

전압주파수조절기의 완성을 더이상 오래 끌수는 없지 않는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전력공업성으로 갔다.

다들 반갑게 맞아주며 가양도송전선공사를 하느라고 수고많겠다고 위로했다. 이어 국장방으로 갔다. 조형례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나오며 두손을 굳게 잡아주었다.

《기사장동무, 오래간만이요.》

그는 정준하를 데리고 들어가 쏘파에 앉혀주며 자기도 곁에 앉았다.

《얼굴이 많이 축갔소. 고생한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소, 힘들지?》

《힘듭니다. 하지만 그만큼도 힘들지 않으면 무슨 큰 공사라고 하겠습니까. 국장동지도 낯색이 좋지 않습니다.》

《뭐 요새 감기를 좀 되게 앓았더니… 우리야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바다가에서 고생하는 동무들에 대겠소. 그래 지금 어떻게 하고있소. 최장근지배인이 돌격대원들을 당분간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봄에 또 모여 공사를 하기로 했다던데… 기사장동무가 끝내 대답을 안하더라고 하두만. 나도 기사장동무의 심정이 리해되오. 지금 2호철탑은 완성했다지?》

《예.》

조형례국장은 정준하에게 담배를 권했다.

《국장동지가 저의 마음을 리해한다니 고맙습니다. 돌격대를 당분간 해산하는것은 정 막부득한 사정에나 할일입니다. 자그마한 난관에 겁을 먹고 서둘러 물러설 생각부터 앞세우면 어떤 일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혁명적군인정신이라는게 무엇입니까. 난관을 뚫고나가는 대담한 공격정신이 아닙니까. 결사관철의 정신이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래서 제 어제 서둘러 평양에 올라왔습니다.》

《역시 정준하동무답구만.》

국장은 자기도 한시름놓인다며 대견한 눈길로 기사장을 보았다.

정준하는 아예 내친 걸음에 룡산군 우승료양소까지 갔다와야 할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국장은 전압주파수조절기를 완성하는 일이 가양도공사와 꼭같이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조형례도 이미전부터 그 전압주파수조절기는 정준하와 같은 뛰여난 실력가만이 할수 있는것이라고 적극 지지해주었다. 그만큼 완성을 위해 밀어주며 기대를 크게 가지고있었다. 국장은 마침 잘되였다고 기꺼워했다.

《오후에 나와 같이 떠납시다. 내가 중동공업지구에 급히 갔다와야 될 일이 제기됐소.》

《그렇습니까? 그것참 안성맞춤이군요.》

중동공업지구는 룡산군 우승리 료양소에서 불과 20리 더 들어가있었다. 룡산은 공업지구로 가는 도중에 끼워있어 더욱 좋았다.

정준하는 생각지도 않던 일이 잘 맞아들어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이번 출장길은 행운이 열린 출장길 같았다.

오후에 조형례국장의 승용차가 떠났다. 정준하는 앞좌석에 앉아 국장과 가양도공사이야기를 줄곧 나누며 갔다.

지난 늦여름 무더운 날에 이 길을 혼자 걸어가던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던 그곳에 이르니 산골양어강물은 꽁꽁 얼어붙어 어린이들이 썰매를 타며 놀았다. 먹는 물을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지나가는 인민군대와 길손들에게 봉사해주던 기특한 학생들을 만났던 고개를 넘으면서는 그애들을 한번 더 봤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문박사는 정준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동안 도면들과 연구자료들을 오래동안 보고 생각했다면서 긴 의견을 주었다.

참고할것도 많고 혁신적인 의견도 적지 않지만 총체적으로는 실망했다. 정준하는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고 고맙다고, 수고 많았다고 인사를 했다. 룡산이라는 먼 산골길을 찾아다닌 고생이 별로 은을 내지 못했다.

정준하의 낯색이 흡족하게 피여나지 못하는것을 본 조형례국장은 달리는 차안에서 물었다.

《무엇이 만족하지 못하오?》

《예, 박사선생은 약전에서는 정말 귀신입니다. 그런데 강전은 깊이 모르는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와는 반대가 아닙니까. 저는 강전에서는 그래도 소리를 좀 치느라 하는데 약전이 약해서 박사선생의 도움을 받으려 했지요. 결론은 강전도 약전도 다 잘하는 만능박사선생을 찾아야겠습니다. 이 전압주파수조절기는 강전과 약전이 꼭같이 어울려서 된 계기이기때문입니다.》

정준하는 그길로 조형례국장과 함께 다시 평양으로 들어가 성 기술국의 도움으로 김책공업종합대학의 교수, 박사인 유선생을 찾아갔다.

유박사는 아직 나이가 젊은 사람이였다.

그는 정준하를 친절하게 맞아주며 전압주파수조절기의 도면들과 연구자료들을 쾌히 접수했다. 자기도 깊이 연구해보겠다면서 련계를 자주 가지자고 했다.

정준하는 한결 마음이 놓여 거뿐한 걸음으로 가양도 송전선건설장으로 내려갔다. 평양과 룡산을 거쳐오는 기간은 며칠밖에 안됐으나 여러달만에 오는것 같이 공사장으로 달리는 마음이 조급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없었을가, 자식많은 어머니처럼 걸음걸음 걱정도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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