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2. 아첨, 파멸의 독약

 

개산에서 고마, 궁예와 헤여진 신훤은 북원을 거쳐 하슬라주에 갔다. 거기서 다시 달홀(고성), 비렬홀(안변)까지 두루 돌아다니다 결국 하슬라에 자리잡았다. 그리고는 옛성터부근에 술집을 샀다. 신훤은 하슬라에만 아니고 나성, 달홀에도 술집을 세웠다. 신훤이 하슬라, 나성, 달홀에 술집을 사서 두루 오가며 벌이를 한다는것은 누구도 몰랐다. 다만 고마와 궁예만이 알고있었다. 나성에 들려서는 그간 술집에 쓸 물건을 마련하느라고 하슬라에 갔댔다고 하고 하슬라에서는 달홀에, 달홀에서는 나성에 간다고 하였다. 술집을 신훤이 직접 나서서 운영하는건 아니고 그는 다만 술집의 주인일뿐이고 운영은 그곳에서 이미 경험이 있는 과부라든지 그러루한 사람들을 썼다.

신훤이 원래 돈벌이나 하자고 술집을 산건 아닌데도 어찌된 일인지 벌이가 괜찮았다.

《주인 좋아서 온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훤이 어찌어찌하여 죽주의 도적 기훤의 부하였다는걸 알았다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제법 비단옷을 걸치고 《어서 오시오.》 하고 손님을 맞을 때는 세상 마음좋은 사나이였다.

신훤의 얼굴이 어디 막힌데 없이 툭툭 트인데다가 그 거동 또한 아주 듬직해서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마음 풀어놓게 하는데가 있었다.

《술도 안주도 좋아서…》 온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건 사실이였다. 아글타글 돈 좀 긁어모아보자고 술집을 연것도 아니고 그저 《산삼장사도 합네.》 하고 돌아다니며 고마, 궁예와 련결되여있는데다가 여기 좋은건 저기, 저기 좋은건 여기 하며 술과 안주를 내놓으니 과연 좋아하지 않을수 없는것이다.

신훤의 술집은 애당초 상놈들을 상대하는데가 아니였다. 술과 안주도 그래, 대접도 그래 뭔가 한다하는 놈들을 노려서 펼쳐놓은데였다. 그러니 참새, 메새축에 속하는것들은 웬만해서는 올수가 없고 대신 벼슬개나 하고 재물개나 있다는것들이 모여들었다. 《훠이, 잠뱅이들은 어디 막걸리 파는 곳에나 가거라. 여긴 나리님들이나 오는 곳이니라.》 하는 냄새가 풍겼다. 술집의 진짜 주인이 신훤이라는걸 알고있는 사람도 많지 못했다. 한번 와본치들이 입맛을 다시며 《거, 괜찮은데…》 하는 소리를 아끼지 않아서 신훤의 술집이 한입 건너 두입 건너 알려지게 되자 도독, 주조, 별가도 남의 눈에 띄우지 않게 이따금씩 슬그머니 신훤의 술집에 찾아들었다. 주의 꼭지들이 오는 날은 신훤이 나타나군 하였다. 신훤은 바로 이날을 노려 술집을 산것이였다. 수염이 석자래도 먹고봐야 하는거요, 먹는데서 남자들에게 술이 빠질수 없는것이다.

《북원보다는 하슬라를 쥐여야 한다. 그러니 하슬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야겠네. 될수록이면 웃대가리들의 동태를 손금보듯이 알아야겠네. 알겠나?》 하고 고마가 신훤에게 말했다.

신훤은 고마가 하는 말을 제꺽 알아챘다. 아래우가 한마디로 통하는 이른바 법이 있는 곳에서는 음주접대라는것이 별로 효과를 내지 못하지만 법이 없는 어스크레한 곳에서는 법이상으로 효과를 내는것이 바로 술대접이다. 기분이 둥 뜨게 들이민 술대접에 값나가는 재물 몇가지 안주로 섬기면 《장부일언중천금!》 하는 헛나발에 나라까지 팔수 있는 묘한 효과를 내는것이 술, 술이다.

《주인, 괜찮아! 우리 명주의 자랑일세.》 하고 언제인가 도독 안태가 신훤에게 말했다. 주조 구득도 《옳은 말씀이시오이다. 아마 서울 성골, 진골들도 한번 와보면 우리 명주가 나라의 구석이라 할수 없을것이오이다.》 하고 손벽을 쳤다. 물론 공짜술 먹은 뒤끝에 나온 소리였다.

《원, 별말씀. 그저 틈이 나는대로 우리 술집에 오셔서 바쁜 귀체나 푸시오이다.》 하고 공손히 개올리는 주인 신훤이 싫지도 않았다. 우아래 가릴줄 알아 나 잘났다 하게끔 대해주는게 나쁠리 없다.

신훤의 술집은 차츰 하슬라주관아의 뒤골방으로 되여갔다. 신훤이 노리던바였다.

신훤은 팔짱 끼고 누군가를 기다리고있었다.

마침내 주관아쪽에서 한사람이 말을 타고 왔다.

《별가나리!》

신훤이 마중나갔다.

별가 권능순은 말갈기에 눈길을 내리깔고 오다가 고개를 들었다.

《뭐야?》

신훤이 사람좋게 웃었다.

《별가나리를 기다리고있던 참이였소이다.》

《나를?》

《예.》

《왜?》

《오래간만에 산 노루 한마리가 들어왔습죠.》

《거 좋구만.》

별가는 귀등으로 들으며 어서 길 비켜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신훤은 오늘따라 권능순이 별스럽다 했다.

《별가나리, 좀 앉았다 가시오이다.》

《고맙네만 안되겠네. 내 오늘 바빠서… 그리고 난 자네도 아다싶이 쥔게 없네.》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한데요. 내가 언제 별가나리더러 값을 내라 한적이 있었소이까?》

《그렇긴 하네만… 난 워낙 공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세.》

《공짜로 술 마십쇼 하는 소리가 아니오이다.》

《그럼?》

《별가나리의 가르침을 받을게 있소이다.》

《뭔가?》

신훤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글쎄, 사방이 너무 환해서…》

권능순은 입을 실룩거리며 신훤을 내려다보다가 말에서 내렸다.

《좋네.》

신훤은 권능순을 술집으로 이끌었다.

《그래, 요새 벌이가 잘되나?》

《덕분에 그럭저럭…》

《왜, 도독께서 자주 오신다던데… 주조랑 함께…》

권능순은 오리주둥이를 쑥 내밀었다.

《원, 별가나리도 어찌다 있은 일을 두고…》

《흥.》

자리를 잡고 술 나오기를 기다리며 권능순은 신훤을 뚫어지게 쏘아보았다.

《암만 봐야 임자는 여사 사람이 아닌데… 수상하단 말이야. 내 눈은 못 속여.》

《역시 별가나리의 눈길은 다르오이다. 옳게 보셨소이다.》

능글능글하는 신훤이다. 그러나 낯에는 당황해하는 빛이 어렸다.

권능순은 비시시 웃었다.

《난 솔직한걸 좋아하네.》

신훤은 별가를 힐끔 보며 한숨을 지었다.

《사나이가 한번 나서 어찌 술집이나 거두며 살겠소이까? 장사를 해도 한번 크게 하자는건데… 저 옛적 장보고인지 궁복인지 하는 사람만큼 돈을 쥐자는게 제 소원입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 쉽소이까. 이럭저럭 밑돈이나 좀 쥐고 날아보자는건데 원쑤같은 세월만 자꾸 가고…》

《돈벌이라…》

권능순은 신훤에게서 눈길을 떼고 천정을 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오래하다가 다시 눈을 신훤에게 주었다.

《것도 괜찮지.》 하며 권능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는건 별 볼것 없는 놈입지요. 별가나리만큼 줄기가 귀하다면야… 말이 났으니 말이지 별가나리야 도독어른이나 주조에 비할 뼈대가 아니옵지요. 게다가 수단으로 보나 아, 이루고계신 품성으로 보나 참, 현세에 보기 드문분이시온데…》

신훤은 제 말이 좀 지나치는감이 들었다.

별가 권능순은 우두커니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신훤의 말을 듣고있었다.

《그런 세월이 됐어.》 하고 능순은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상에 그득히 술과 안주가 나왔다.

《자, 어서 드시오이다.》

신훤이 권했다.

능순은 상을 쭉 훑어보고나서 뒤팔 짚은 몸을 제쳤다.

《자네 아첨이란 말 들어봤나?》 하고 권능순이 눈을 쪼프리며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야릇한 웃음이 감돌았다.

《아첨이라뇨?》

《어쩐지 자네 말을 들으면 속이 요글요글해진단 말이야. 괜히… 그게 아첨이라는건데…》

《원, 별말씀. 별가나리에게는 내가 아첨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오이까?》

《그게 묘하다는거야. 사람의 속은 참 알수 없거던. 아첨은 그래서 알아보기 힘들다는거야. 약자가 하는 아첨은 때로 기분을 돋구어주는 때가 있지만 강자가 하는 아첨에는 독이 있거던. 자네를 보아하니 약자 부스러기는 아닌듯 한데 어쩐지 께름해. 도독이나 주조에게 아첨이 통한다고 나에게도 아첨 들인다 생각한다면 잘못일세.》

《과시 별가나리답소이다. 그걸 모른다면 별가나리의 눈에 띄울 제가 아니옵지요.》

《하긴 그래.》

권능순은 그쯤 접어두고 차츰 보자는지 술사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뭔가? 나에게 묻자는게…》

《어서 드시면서…》

《좋아.》

권능순은 단숨에 술을 쭉 들이켰다.

신훤도 술을 마셨다.

《죽일놈의 도적들때문에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겨우 여기 와서 자리잡은건 별가나리도 아시는게고… 이럭저럭 자리가 잡혀가니 좀더 크게 판을 벌려보고싶은게지 뭣이오이까? 헌데 이놈의 세월이 도무지 가닥 잡을수 없게 번지니 야단 아니오이까?》

《흐음.》

권능순은 그렇다는건지 아닌지 애매하게 낯빛을 지었다.

《별가나리, 어떻소이까? 들리는 소리가 이 하슬라주에도 도적들이 떼몰려든다던데요. 겨우 말뚝 박은거 뽑아 지고 달아나야 하지 않을가요? 잘못하다간 밑천 놓을것 같은데…》

신훤은 이마에 근심을 잔뜩 담고 물었다.

《왜, 도독어른이 술값으로 뭔가 귀띔하지 않던가?》

권능순이 비죽거리며 물었다.

《도독어른이야 맹물같아서 어디 술값이나 제대로 해야 말이지요. 주조나리도 같고같지요. 곶감 빼먹듯 하고는…》

《어흠, 자네 담이 꽤 크군. 내가 도독어른의 밑에 있는 별가라는걸 잊은게 아닌가?》

《그만합쇼. 세월이 하도 수상하니 나 같은것도 령리해졌습죠. 이래 뵈도 어느 산밑에 붙어야 불맞지 않겠는지 좀 압죠.》

능순은 눈을 껌벅거렸다.

《이봐, 마음놓게. 이 권능순이 있는 한 하슬라는 끄떡없어.》

《무슨 묘책이라도 있소이까?》

《있지!》

《뭣이오이까?》

《임자 같은 사람은 몰라도 돼. 그저 술이나 잘 팔게. 허허.》

능순은 처음 뻗치던것 봐서는 술을 많이 마셨다. 수작하면서 어딘가 마음이 풀어진 모양이였다. 하지만 신훤이 정작 알고저 하는 일은 하나도 말하지 않았다. 송충이 먹은 솔숲에도 퍼렇게 살아있는 나무가 있다는건가? 권능순은 별가이지만 도독이나 주조와 또 달랐다.

한창 술이 퍼져 기분이 좋아지던 능순이 불쑥 신훤에게 물었다.

《임자, 궁예라고 들어봤나?》

신훤은 입에 넣은 고기를 씹으며 되물었다.

《그건… 무슨 짐승이름인가요?》

《짐승이름? 하하, 그럴듯해. 그러니 모른다는건가? 내 듣기엔 자네가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아는것이 많다던데…》

《술하고 안주할것이면 내가 모를게 없죠만…》

권능순은 그러는 신훤을 보며 한바탕 웃어제꼈다.

《궁예라는 외눈깔이 있네. 북원도적의 선봉장이야.》

《그래요? 거 처음 듣는 소린데요?》

능순은 술에 취한것 같은데 말하는걸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궁예라는 녀석이 심상치 않아. 기발을 든것만 봐도 그래, 하는 잡도리가 여느 도적과는 다르거던. 그녀석이 뭘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권능순은 잘 안다. 녀석은 틀림없이 명주로 넘어오려고 할것이다. 어리석은 도독이나 주조는 그걸 열번 죽었다나도 모른다. 그럼 궁예가 왜 명주, 이 하슬라로 넘어오려고 하는가? 이 하슬라를 보라. 앞뒤, 옆구리에 무엇이 있는가. 우에는 달홀(고성), 비렬홀(안변)이 있다. 이곳은 원래 고구려땅인데다가 그곳 뒤로는 발해와 접하고있다. 옆구리에는 천험요새인 산맥을 끼고 한쪽에는 바다를 이었다. 궁예는 신라조정에 반역하려 할것이다. 그렇다면 이 하슬라를 차지하는것보다 더 요해처는 없다. 일단 타고앉기만 하면 그때는 나라에서 아무리 군사를 풀어 에워싸도 쉽게 깨치기 힘들것이다. 도독이나 주조가 어리석다는건 바로 그걸 모른다는데 있다.

권능순의 말을 들으며 신훤은 깜짝 놀랐다.

이 별가는 보통놈이 아니다. 제때에 죽여치우지 않는다면 큰일 나겠다고 신훤은 생각했다.

《별가어른이 그렇게까지 세상리치에 환한줄 몰랐소이다.》

신훤은 정색해서 말했다.

권능순은 한동안 신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쏘아보다가 껄껄 웃었다.

《마음놓게. 내가 아직 임자를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의심스러운건 많지만 아직은 내가 할 일이 많거던. 하하.》

《나 같은거야 뭐, 별가나으리가 죽으라면 죽어얍죠. 헌데 듣고보니 참 도독어른이 별가나리를 알아주지 못하는게 안타깝소이다. 나라님도 그렇고…》

권능순은 코웃음쳤다.

《이 권능순은 누가 알아주고말고 하는데 따라 죽었다살았다 하는 사람이 아니야. 조상의 나라에 대한 충성! 그것이 이 권능순의 변치 않는 마음일세!》

《과시 란세에 우뚝 솟은 충신이로소이다.》

《하하, 듣기 좋군. 자네는 어쨌든 아첨할줄 알아. 그 아첨두 병법에서는 하나의 무기지. 그렇다고 자네가 병법의 무기를 알리는 만무하고… 어 취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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