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4
명산포에서 아침식사를 끝내자 정준하는 운영부기사장을 불러 지시했다.
돌격대장들은 물론 작업반장들과 작업조장들까지 포구의 배사에 모이도록 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다들 왔다.
이어 그들앞으로 발동선이 미끄러지듯 조용히 들이닿았다.
《타시오.》
정준하기사장이 먼저 오르며 지시했다. 가양도에 건너가 건설직장사람들이 살며 일하는 본때를 견학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가양도의 바위기슭에 내리자 하늘을 치받고 거연히 일떠선 완공된 2호철탑과 보조철탑들부터 먼저 보았다. 거물은 거물이였다. 보통 일반철탑은 대비할 정도가 아니였다. 하긴 열배나 크니까.
자리도 묘한 곳에 잡았다. 건너다보이는 명산포의 벼랑산중턱에 세우는 1호철탑과 자를 대고 그은듯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가양도의 2호철탑은 섬돌출부의 벼랑턱에 자리잡고있었다.
가양도가 길죽한 고구마알처럼 생겼다면 거기서 별스레 내민 주먹처럼 바다쪽으로 뻗은 나지막한 산줄기가 있었다. 지세는 오히려 평평하면서도 밑에는 굳은 바위여서 견고하기가 이를데 없었다.
철탑밑의 직선벼랑턱아래에는 항시 깊은 물이 차있어 출렁이였다.
이곳에는 물고기도 많다고 했다.
명산포사람들은 가양도의 숙소와 식당을 돌아보고 혀를 내둘렀다.
집도 탐탐하게 잘 지었고 지붕도 그 어떤 태풍에도 아무 일 없도록 해놓았다.
침실에 들어가보고는 더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기사장의 말대로 구들이 절절 끓었던것이다. 가양도에 빼곡 들어찬 원시림을 찍어 장작불을 땐 구들이여서 덥지 않을수가 없었다.
반반하게 닦아놓은 앞마당가에는 철봉, 평행봉대도 세웠고 창고, 동굴샘터, 위생실 등 어느 하나도 규모있게 해놓지 않은것이 없었다.
《멋있구만, 인민군중대가 들어와 사는것 같은게.》
《여긴 항일유격대식으로 살며 투쟁할데 대한 당의 구호가 현실로 구현된 곳이요.》
《정말 생각되는게 많소. 가양도조는 모든 면에서 인민군대를 따라배우라고 한 당의 사상과 의도를 심장으로 접수하고 좌우명으로 새겼단 말이요. 그러니 힘있는 집단이 됐구만. 우리 명산포조는 형식적으로만 하다나니 하루저녁 태풍에도 다 녹아났소. 정말 우린 오합지졸이요. 기사장동지 볼 낯이 없소.》
다들 개탄했다.
방처옥이가 이곳에 먼저 와보고 건너가 가양도를 침이 마르도록 자랑할 때 뭘 그렇게까지야 그러랴 하고 반신반의했던 그들이였다. 같은또래 처녀들은 《얘, 너 거기에 승호동무가 있어서 가양도를 칭찬하는구나.》 하고 까르르 웃었다.
정준하는 가양도조 사람들의 일본새를 닮으라고 한 말을 열번 들은것보다 동무들이 제 눈으로 와서 보니 어떤가고 했다.
《명산포조에서는 처음 선발대가 나와 준비건설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타발하며 그 모양대로만 살겠는가 대담하게 뜯어고치라고 조직사업을 해주었어도 역시 림시관념에 포로되여 생활을 되는대로 하고있단 말입니다. 생활질서가 바로 서지 못한 집단은 전투력이 높을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정신상태가 흐리터분하기때문입니다.》
정준하는 곧 조직사업을 했다.
건설직장장을 불러 오늘부터 가양도의 필요한 인원들이 명산포로 건너가 1호철탑조립을 맡으라는것, 탁수환을 파견하여 이제라도 명산포숙소를 다시 개건확장해야겠다고 했다. 숙식조건이 불편하면 작업에서 성과를 거둘수 없다.
발동선은 숱한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명산포로 건너왔다. 가양도혁신자들이 지원을 넘어오자 명산포에 절로 생신한 바람이 부는것 같았다.
송강림을 비롯한 김평작업반이 달라붙어 꺼꾸러진 1호철탑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철탑의 절반부분이 물에 잠겨있어 그들은 바다물에 뛰여들어 볼트,나트를 다시 풀었다.
한편 목수도구들을 다 갖춰가지고 건너온 탁수환은 기사장에게 말했다.
《저 숙소에 이제라도 구들을 놔야지 견디기 어렵수다. 랭방에서 자면 자꾸 환자들이 생깁니다.》
《꽤 구들을 놓을수 있을가요? 다 얼어놔서.》
《마음먹어서 안되는 일이 있나요. 달라붙으면 됩니다. 내가 다 하지요.》
운영부기사장의 지시에 따라 모자라는 숙소의 확장을 위해 언땅을 까고 집터를 넓히고 벼랑산뒤의 울창한 수림속에 들어가 재목감들을 마련해왔다.
정준하는 공사장실태를 먼저 전력공업성 조형례국장한테 보고했다.
그도 이곳 실태를 잘 알고있었다. 이미 현지조사도 왔댔고 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두차례나 다녀갔었다. 왔다가서는 필요한 갖가지 자재들을 앞서 뛰여다니며 풀어주었다.
불리한 조건에서도 송전선공사가 빨리 진척된것은 국장이 각종 자재들을 원만히 풀어주기 위해 애써준 덕이였다. 정준하는 이것을 무척 고맙게 생각했다.
태풍피해를 입었다는 보고를 받은 조형례는 기사장이 수고한다고 거듭 뇌이였다. 피해를 인차 가실수 있는가고 묻고 요구되는것은 다 제기하라고 했다.
《가능한껏 힘써 풀어주겠소. 전투원들의 사기는 어떻소?》
《걱정마십시오. 우리 전투원들은 투지만만합니다.》
《기사장동무의 청청한 목소리만 들어도 신심이 생기오. 준하동무와 같은 용감한 기사장이 강철기둥처럼 든든히 서있는데야 그까짓게 대수요. 제기한 자재들과 물자들을 인차 내려보내도록 하겠소.》
《고맙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았다. 이어 그는 장유상에게 태풍피해를 입었다는것을 알리였다. 공사장에 함께 있던 당비서가 일이 있어 며칠전에 기업소에 들어갔던것이다.
최장근지배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지배인은 얼마전부터 혈압이 오르고 신경통이 심해져 도병원에 입원했던것이다. 차도가 있어 퇴원하겠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준하는 병이 재발할가보아 지배인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전화를 받기 바쁘게 당비서가 달려나왔다. 장유상은 공사장을 돌아보고나서 정준하에게 차후 대책에 대해 물었다.
《기사장동무의 침착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전투원들이 지휘관의 얼굴을 본다는걸 잊지 맙시다.》
정준하는 장유상의 너부죽한 얼굴을 보며 웃었다.
《비서동무가 힘을 주니 저도 한결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렇다면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기사장동무도 인간인데 이런 고개길에서 어찌 당황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서로 기운을 부쩍 냅시다. 하늘이 무너져도 나갈 길은 있다 하고 배심을 든든히 가지면 이깁니다.》
《이기구말구요.》
그들은 마주 웃으며 담배를 한대씩 피웠다.
이어 장유상은 지휘일군들을 불러 전투원들의 사기가 저락되지 않도록 하면서 어려운 일의 앞장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길로 바다가기슭에 꺼꾸러진 철탑을 해체하고있는 김평산줄작업조로 갔다. 한바탕 전투를 하고나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앞에서 언발을 녹이고있는 김평이네들에게 담배를 한대씩 권했다.
《제일 어려운 전투를 맡았구만.》
《괜찮습니다. 철탑해체는 우리가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김평이 대답했다.
《옳소. 산줄작업반이야말로 용맹한 사람들의 집단이지. 몸이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소?》
누군가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박달나무를 쓰는 좀도 여기 왔다가 줄행랑을 놨습니다.》
다들 웃었다.
《그 말이 마음에 드누만. 난 산줄반동무들만 보면 절로 마음이 젊어지는것 같아. 하나같이 씩씩하고 날파람있어 나도 모르게 산줄공이 된 기분이야. 자― 그럼 나도 동무들을 따라서 좀 해볼가.》
장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철탑이 잠겨있는 물가로 들어갔다. 김평, 송강림을 비롯한 여럿이 당비서를 말렸다. 찬물에는 들어서지 말고 기슭에서 해체해내오는 철강재들을 받아만 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장유상은 들은척도 안했다.
《이 사람들이 내가 나이 좀 들었다고 따돌리누만.》
장유상은 념려말라며 번개같은 솜씨로 철탑을 해체했다. 산줄공들은 언제보나 어려운 일에 먼저 뛰여들어 도와주는 당비서와 함께 있는것이 즐거워 손들을 재게 놀렸다. 장유상은 송강림을 돌아보며 부추겼다.
《이런 때는 노래를 불러야 힘이 더 솟는다구. 강림동무, 선창을 떼오.》
《알았습니다.》
가는 길 험난하다해도 시련의 고비 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천금주고 살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다들 따라불렀다. 우렁찬 노래소리는 바다가 멀리로 울려퍼져 사람들의 가슴속에 새로운 신심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이때 최장근지배인이 탄 승용차가 공사장으로 쑥 들어왔다. 그는 곧장 전투지휘부로 들어갔다. 전화를 받던 정준하는 서둘러 송수화기를 놓았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입니까?》
《그렇소.》
《입원치료를 받고있어서 지배인동지한테는 우정 태풍피해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건 큰 문제가 아니요. 스스로 알게 되니까.》
지배인의 목소리는 침울하게 울리였다. 낯빛도 무거웠다.
전투지휘부도 추워서 떠다놓은 대야의 물이 얼어붙었다. 그들은 딱딱하고 차디찬 나무걸상에 앉기가 싫어 두손을 커다란 솜옷주머니에 찌르고 서성거리였다.
《현장부터 보자구.》
지배인이 먼저 긴 허리를 꼿꼿이 펴고 출입문가로 걸어갔다. 철탑기초부터 올라가보았다.
기초는 4개가 다 굉장히 넓고 절벽우에 선것처럼 구뎅이가 까맣게 내려다보였다.
《기초는 설계의 요구대로 잘 팠는데…》
지배인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이어 다시 내려와 바다가에 꺼꾸러진 철탑쪽으로 갔다. 김평이네가 물속에 들어서서 해체작업하는것을 말없이 측은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장유상이 방금 떼낸 철장을 메고 지배인앞으로 왔다.
《병원에 그냥 있었을걸 그랬습니다. 일은 우리가 바로잡습니다.》
《어디 속이 편안해야 누워있지요. 비서동무, 물엔 들어서지 마우. 그 나이에…》
《괜찮습니다. 청년들과 같이 일하니 절로 젊어지는것 같습니다.》
당비서는 지배인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이어 최장근은 바다가에서 떠났다.
《기사장, 가양도 2호철탑은 다 완성한것인데도 태풍에 아무 일 없다지?》
《예, 끄떡도 없습니다.》
《그런데 1호철탑은 절반도 조립하지 못한 키낮은것인데도 넘어졌다?… 원인은 간단하구만. 기초를 묻지 않아서겠지? 무서운 힘을 가진 강한 태풍이 그 넓고 깊은 기초밑으로 파고들어가 최고속의 회오리를 일으켜 넘어뜨렸구만.》
지배인도 송전선건설물계에 기사장 못지 않게 밝은 기술자였다. 하긴 전기전문학교 교원까지 했으니까.
《옳습니다.》
최장근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발길을 숙소개건장으로 돌렸다.
어제 저녁 태풍에 지붕이 녹아난데다 또 옆에 확장할 집터를 닦고 게다가 이미 있는 방들엔 구들장을 놓기 위해 밭고랑같이 헤쳐놓아 한심해보이였다.
《하는 일들이 이렇다니까. 미리 구들을 놓지 않구. 이건 말 태워놓고 버선 깁기로구만.》
정준하는 할말이 없었다.
《며칠 참으면 숙소조건은 바로 잡힐겁니다.》
최장근은 들은척도 안하고 식당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는 지붕이 벗겨져 해살이 어설프게 비쳐드는 식당으로 들어가 큰 가마에서 끓고있는것을 들여다보았다.
이어 지배인은 아무 소리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걸어가면서 물었다.
《식량을 언제까지 보장할수 있소?》
뒤따라가던 경리과장이 대답했다.
《보름쯤밖에 견지할수 없습니다.》
다음 지배인과 함께 전투지휘부에 들어와앉았다. 최장근은 묵묵히 담배만 피웠다.
《감기환자들이 자꾸 나온다지.》
《예.》
정준하가 대답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난관은 몇배로 늘어날거요. 그래 기사장은 어떤 결심을 가지고있나? 이 공사를 그대로 계속 내밀수 있겠는가 하는거요.》
《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현실태를 보면서도 그러오?》
《그렇다고 중도반단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럼 지금 처한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한다?》
《난관은 일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야 물론 일시적이고말고… 계속 이렇기야 하겠소.》
《현재 여기 명산포에서는 준비사업을 잘하지 못해서 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인차 극복할수 있습니다. 가양도에서는 생활을 잘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래… 공사를 계속 내밀고 난관을 극복할 결심인데 그건 좋아. 하다면 무얼 먹고 일하겠나? 이게 난문제가 아니요. 내 그래서 얼마전에 도량정국장한테 식량문제를 건의해봤댔소. 난감해하더라구. 참, 나도 딱하오. 아무리 우리 집단이 준비된 사람들이라고 해도 먹어야 힘을 쓸게 아니요.》
정준하는 아무 대답도 못했다. 이마에서 진땀이 솟는것 같았다. 최장근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절충안을 찾아냈소. 건설을 몇달 중지하자는거요. 제일 추운 대목만은 다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날이 좀 풀린 다음에 다시 하는게 어떻소? 그사이 식량을 비롯한 모든 준비를 잘 갖췄다가 전격적으로 와닥닥 해제끼자는것이요.》
정준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이 없었다.
(절충안?!…)
그는 저도 모르게 두눈을 스르시 감았다.
(이건 후퇴다. 벌써 나올 때부터 그런 안을 생각한것 같다. 절충안 결심이 확고한 사람한테 무슨 말을 더 할게 있는가. 입을 열었댔자 감정이나 상할것밖에 없다.)
정준하는 싸늘한 낯빛을 짓고 한본새로 말이 없었다. 지심깊이 박힌 철탑마냥 움직이지 않고있는 기사장을 주시하던 최장근은 다시한번 힘주어 강조했다.
《기사장, 그렇게 하자구. 추운 대목 몇달 중지한다고 해서 크게 후퇴하는건 없소. 현실에 맞게 신축성있는 전술을 쓸줄 알아야 곤난을 웃으면서 헤칠수 있소.》
정준하는 두툼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꼭 불난 집에 키질하는것 같아 속이 끓었다. 그는 얼굴이 붉어져 말을 못했다.
잠시후에야 자기의 격한 감정을 달래려 애썼다. 하긴 지배인도 오죽했으면 그런 소릴 했을가.
물론 돌격대식량이 해결되지 않아 막부득한 경우에 몰리면 지배인의 안대로 할수밖에 별도리가 없을것이다. 하지만 노력도 해보지 않고 주저앉기부터 할수는 없다. 목전의 곤난만 생각하면 뚫고나갈 길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대답이 없는 기사장이 아무래도 미타한지 최장근은 정준하를 리해시키려고 애썼다.
《기사장, 나도 생각을 많이 굴려봤소. 지금형편에서 절충안은 누구한테나 접수되고 리해를 받을수 있는 안이요. 어서 조직사업을 하기요. 사람들을 집에 보냈다가 다시 모이면 작업능률이 더 오를거요. 충분히 휴식을 시켰으니까. 공사를 일시 중단한 그 기간에 시간을 얻어서 돌격대식량을 마련하면 되지 않소.》
《지배인동지의 심정은 리해됩니다. 절충안을 내놓는것도 리해가 되구요.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는 맙시다. 저도 생각이 있으니까요. 지금 헤쳤다가 이 겨울이나 지나서 공사를 다시 하자고 하는건 부득이한 경우입니다. 사실 대오를 헤쳤다가 다시 모인다는것이 말처럼 쉬운것이 아닙니다. 그땐 열의가 다 떨어져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을 지펴주기가 어렵습니다. 대중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으면 무슨 일에서나 실패합니다. 공사를 중도반단하는것은 정신적으로 굴복하는것으로서 두말할것 없는 패배주의입니다!》
정준하는 참을수 없어 쿡 내질렀다.
순간 최장근지배인의 얼굴에 피기가 가시여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되게 언성을 높였다.
《기사장, 너무 독선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지배인은 자기 입에서 불쑥 큰소리가 터져나간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감정을 갑자기 묵새길수는 없어 꿋꿋이 내밀었다.
《오후에 회의가 있어 들어가겠소. 인차 결심해서 전화로 알려주오. 이제 보니 돌심장 한가지구만. 그래 아래사람들이 고생하는게 가슴아프지도 않소? 이런 난관앞에서도 끄떡하지 않는 기사장의 굽힘없는 정신이 부럽소. 물론 큰일을 하는 일군들은 그래야 하오. 하지만 그럴수록 인정이 더 깊어야 하는거요.》
정준하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여직 살면서 인정이 없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속이 아파나는게 절로 눈물이 날것 같아 고개를 돌리였다. 순간 참을수 없는 울분이 고패쳐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만싶었다.
(제가 돌심장이라구요? 인간성이 없다는거지요?… 좋습니다. 별별 감투를 다 쓸 준비가 돼있습니다.)
최장근이 간 다음에도 정준하는 앉은자리에서 담배만 자꾸 피웠다.
《이만한 시련앞에 당황해서는 안된다.》
그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까딱하다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킬수 있는 계기점에 도달할수 있다. 주저앉느냐, 뚫고나가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
이것은 나의 의지의 시험이기도 하다. 공사를 일시 중단하자고? 이것이 변절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조그마한 난관앞에 굴복한다면 내가 무슨 일군이란 말인가.
우리들의 수고를 값높이 평가해주시며 애국자들이라고 뜨겁게 불러주신 어버이장군님이 아니신가. 몸소 비행기까지 보내주신 그 사랑을 잠시라도 잊는다면 내가 무슨 그이의 전사라 하랴.
시련은 일시적이다. 흔들리지 말자. 내가 강철기둥처럼 든든히 서있어야 사람들의 마음도 굳세질게다. 옳다. 고난을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패자가 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 바깥마당에서 귀에 설은 자동차 경적소리가 났다. 얼른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웬 반짐차 한대가 서서히 굴러들어오고있었다. 차가 서자 거기서 뜻밖에도 경애와 그의 시어머니가 내렸다.
《아버지, 건강했어요?》
《오, 네가 어떻게…》
정준하는 사돈앞으로 다가갔다.
《추운데 어머니까지 오시는구만요.》
《예, 고생이 많겠습니다.》
뒤이어 연해군송배전소 소장인 맏매부가 내렸다. 처남한테 수고가 많겠다고 하며 언제부터 와본다고 벼르기만 하다가 오늘에야 왔노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들 다 모여서 왔소?》
《경애가 어머니와 함께 날 찾아오지 않았겠나. 흰쌀 한마대를 가지구서… 집에서 연해군 읍까지 가는 자동차를 탔다누만. 그래 나도 자네를 한번 찾아가려구 벼르던차라 이 반짐차를 얻어 같이 싣고왔네. 뭐 많지는 못해. 부업지에서 가을한 강냉이 백서른키로하구 흰쌀 일흔키로밖에 안되네. 여기서 제일 걸린게 식량이라는걸 알면서 그이상은 더 없네.》
《정말 성의가 대단하군요. 식량은 누구나 다 바른데… 경애도 그래서 쌀을 가지고 떠났구나.》
《며늘애가 아버지를 도와주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해서 겨우 조금 마련했습니다. 너무 적어서 부끄럽습니다.》
《사돈어머니까지 찾아와서 힘을 주니 정말 고맙습니다.… 오겠으면 경애 너 혼자 오지 나이든 어머니까지 고생을 시키냐.》
어머니는 그런게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경애 혼자 보내려다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아 저도 따라나섰지요. 경애가 이제는 홀몸이 아닙니다.》
《예?… 그럼? 오― 내가 이젠 외할아버지가 될 차롄가. 기쁜 소식입니다.》
경애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승호와 처옥이가 일을 잘하는가고 물었다.
《다 잘한다. 네 새서방도 늘 혁신하구.》
정준하는 뜻밖에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니 무겁던 가슴이 봄눈녹듯 스러지는것 같아 한동안 시름을 잊고 웃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