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 회)
제 2 편
아름다운 밤
13
(2)
다음날부터 2호철탑조립을 더 부쩍 다그쳐내밀었다. 보조철탑들 조립도 동시에 밀고나갔다.
드디여 거창한 조립을 마무리짓는 날이 왔다. 아찔하게 솟은 요란한 거물이 솟아올랐다.
철탑조립이 끝나자 정준하는 즉시 돌아서서 기초묻기와 다지기작업을 련속공정으로 들이댔다. 다들 힘에 부쳐 헐떡헐떡했다.
어느날 기사장은 직장장한테 물었다.
《비상미를 좀 가지고있는게 없소?》
《왜 그러우?》
《기초묻기작업을 오늘로 끝내려면 밤을 꼬박 밝혀야 하오. 그럴려면 밤참이 필요하오. 먹어야 힘을 낼게 아니겠소.》
《거야 물론이지요. 예비로 국수를 좀 차고있는게 있수다.》
《그거면 됐구만, 다행이요.》
정준하는 한결 마음이 놓여 빙긋이 웃었다.
밤참을 먹이면서 불이 번쩍나게 기초묻기까지 해치웠다. 참으로 기사장의 지시가 쭉쭉 내려먹는 전투력있는 부대였다.
기초다지기작업까지 끝내놓고서야 완전히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명산포에서는 여전히 앉아뭉개기만 했다. 첫 단계부터 사개를 맞추지 못해 뜯었다붙였다 하는 사이 세월을 놓쳤다.
정준하는 가양도 2호철탑을 완성해놓은 그날로 섬을 떠나 명산포로 건너갔다.
그길로 도송배전부에 들려 몇가지 문제를 처리하고 저녁녘에야 집으로 들어갔다.
래일 아침 떠나려고 배낭을 꾸리던 승호가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들은 일이 참 공교롭게 된다고 생각한듯 얼굴을 붉혔다.
백순옥은 남편을 반갑게 맞았다. 그러지 않아도 갈아입을 내의를 승호한테 보내려고 했던 참이라고 했다.
정준하는 부릅뜬 눈으로 아들을 쏘아보았다.
《배낭은 뭘하려 꾸려?》
서리어린 목소리가 방안을 쩡― 하니 얼구었다.
《가양도에 나가려구요.》
《너같은걸 누가 받아준대?》
《아버지, 난 병원에 가겠다고 직장장동지한테 승인받았어요.》
승호는 뻐젓이 대꾸했다.
《도병원에 가보고 다음날로 오겠다는 녀석이 왜 아직 집구석에 엎드려있어?》
백순옥이 울상이 되여 말렸다.
《여보, 그사이 승호가 앓았어요. 이 애가 언제 그런 험한 일을 해봤어요.》
《듣기 싫소. 그 전투장에선 누구나 그만큼은 앓고있소. 격렬한 전투장에서 맨먼저 집으로 간건 이 기사장의 아들이요. 아버지의 얼굴에 흙칠을 해주는 너같은 자식은 백년 가야 구실을 못해. 제 아들 하나 교양 못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남들을 지시할테냐.
네가 집에 들어와 무슨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줄 아는가. 또 수룡강종합식당과 같은 그런 구멍수를 찾아다녔을테지. 네 머리통이 그렇게 돼먹었으니 무슨 전투원의 자격이 있냐.》
승호는 뻐꾹소리 한마디 못했다. 아버지의 넘겨짚는 말이 너무도 사실이기때문이다. 그는 두어곳을 찾아 옮겨앉을 자리를 탐문했으나 역시 실패하고말았다. 락심하여 가슴을 앓았다.
《강철이 용광로에서 단련된다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바로 가양도전투장이 그대로 용광로다. 남들은 그속에서 춥고 배고픈 모든 어려움을 참고 이기며 조국의 만년대계를 위해 헌신분투하고있다. 너만이 그것을 참고 이길 의지가 약하니 락오자로 될 길밖에 없는거다.
각오가 굳세지 못하면 누구나 패배자로 시대밖에 밀려나게 돼.
이 전투에서 필승의 신념을 가진 대바른 사람으로 자라나야 쓸모있는 인간이 돼서 강성대국건설에 이바지할수 있는거다. 너한테 그런 결심이 있는가? 다른게 없다. 네 스스로 그 대답을 찾아라, 제가 설 자리도.…》
정준하는 안해한테 저녁밥을 독촉했다.
《얼른 한술 주오. 한시간후에 후방물자를 실은 우리 화물자동차가 공사장에 나가오. 난 그 차로 돌아가야 하오.》
《하루밤 쉬지도 않구요?》
백순옥이 놀라와했다.
《집에서는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소.》
《그럼 그 차에 승호도 같이 데리고 가구려. 래일 아침 떠나려 했는데.》
《누가 받아준대? 신성한 전투장에 저런 녀석을 받아줄 자리는 없어. 있으나마나한것 하나 없다고 공사를 못하지 않아.》
정준하는 단호히 잘라버리였다. 정말 그는 혼자 떠나갔다. 쓰린 가슴을 달래며 묵묵히 대문밖을 나섰다.
(저것이 언제쯤 가야 진실한 사람이 될가.)
승호는 낯빛이 돌덩이처럼 굳어져 저녁도 먹지 않았다. 그는 자는둥마는둥 한밤을 지새우고 날이 밝자 가양도로 떠났다.
×
정준하는 1호철탑조립을 다그치는 한편 명산포 구배사에 큰 평배를 들이대고 2대의 불도젤을 실어 가양도로 건네가는 작업을 조직했다.
두 철탑이 완성되면 3상 고압선을 걸고 불도젤로 잡아당겨 끌기 위해서였다.
날은 몹시 추워지기 시작했다. 눈발이 세차게 날렸다. 그러나 가양도숙소는 뜨끈해서 좋았다. 이 집을 지을 때 탁수환이 그렇듯 일손이 여물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덕을 보았다.
선발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림시 몇달 있다 갈 집이니 대충 짓자고 또 구들까지 뭘 놓겠는가고 반대하는것을 탁수환이 우겼었다. 이 섬에 구들놓을 넙적돌이 많다며 무조건 놔야 한다고 고집하여 할수없이 따라했더니 이제와서 신세를 톡톡히 진다. 하긴 그가 발을 상하면서까지 져다놓은 구들돌이 아닌가.
겨울이 돼야 솔잎이 푸른줄을 안다더니 이렇듯 탁수환은 소문없이 큰일을 하는 사람이였다. 지금에 와서야 다들 탁수환을 고맙게 생각했다.
어느날 저녁녘.
바다가 태를 치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별안간 수평선너머 어디선가 일진광풍이 회오리치더니 그 바람꼬리로 무시무시한 물기둥들을 하늘천정으로 말아올렸다.
동시에 천지가 새까맣게 어두워지며 먹장구름이 바다일경을 가리우고 내려앉아 하늘이 무너지게 눈발을 들부어댔다.
누군가가 목갈린 소리로 웨쳤다.
《해일이다!》
우르르 꽝― 우르르 꽝!― 곤두선 물갈기가 벼랑산돌벽을 부서져라 들이쳤다.
돌격대 기본집단이 명산포에 처음 도착했던 날처럼 그렇게 미친 바다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날뛰였다. 명산포돌격대숙소의 새초이영이 또 날리고 한쪽켠구석이 태풍에 무너져내렸다.
이어 무엇이 넘어지는지 지심을 흔드는듯 한 굉음이 저물어가는 명산포구를 뒤흔들었다.
《쾅당당당당―》
산이 명동하는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였다.
정준하기사장의 목터지는 소리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철탑이 넘어졌다!―》
숙소에 몰켜서있던 사람들이 뛰쳐나갔다.
조립하다만 철탑은 통채로 꺼꾸러져 바다기슭의 물속에 반나마 처박혔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전률한 처녀들은 다들 주저앉아 울음을 터치였다.
정준하는 자연의 횡포한 도전에 넋을 잃고 방황했다. 눈앞이 새까매져 무엇이 더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바람질이 저으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가양도는 어떻게 됐을가?)
자기가 이미 철탑공사를 틀어쥐고내밀어 완공했고 숙소지붕작업도 다시 든든히 해놓아 일없으리라는 예감이 앞서긴 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오만가지 무서운 생각에 시달리며 간신히 휴대용전화기를 꺼내들고 건설직장장을 찾았다. 그는 무엇을 먹댔는지 입을 다시는 소리가 두어번 났다.
《무얼 먹고있소?》
정준하는 벌써 마음이 놓여 목소리가 안정됨을 느꼈다.
《무얼 먹다니요. 저녁을 먹습니다. 거기선 저녁을 안 자시우.》
기사장은 솟구쳐오르는 기쁨으로 하여 온몸이 달아올랐다.
《셈평이 좋구만요. 그래 거기선 철탑과 숙소가 무사하오?》
《별걱정을 다 합니다. 우리 철탑은 끄떡도 없습니다. 숙소엔 이영하나 날린것 없구요. 우린 지금 저녁을 먹으면서도 기사장동지에 대한 소릴 하던중이지요. 기사장동지가 틀어쥐고 철탑기초묻기작업도 끝내고 숙소지붕공사까지 고쳐하게 해준 덕에 태풍피해 하나 입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기사장동지한테서 또 하나 배웠습니다. 바다가 아무리 행패질을 해도 그것을 이길 억센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긴다고 말입니다. 제일 큰 힘은 사람의 사상정신이라는것을 또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것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정준하는 기뻐서 소리라도 지를번 했다. 곧 부기사장을 불러 전투원들을 다 모이게 했다.
부기사장도 두볼이 꺼지고 눈만 커졌다. 그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가양도조처럼 째이지 못한 집단인데다가 기능공들이 부족하여 여간 속을 썩이지 않았다.
세곳에 우등불을 피워놓고 전투원들이 모두 나와앉았다. 정준하는 기백있게 웨치였다.
《동무들, 피해는 큽니다. 하지만 락심할건 없습니다. 자연의 횡포에 조금도 두려워할것이 없습니다. 지금 가양도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건설직장장은 뜨뜻한 구들에 편안히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완성된 2호철탑도 숙소도 지붕도 그 무엇도 손상을 받은것이 없다고 합니다. 있다면 숙소뒤의 숲속에서 아름드리소나무 두대가 뿌리채 뽑혀 넘어진것뿐이라고 합니다. 보시오, 가양도조와 여기 륙지조가 무엇이 차입니까. 가양도사람들은 하루를 살아도 주인답게, 손끝이 여물게 꾸리고사니 어떤 자연피해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숙소도 날림식으로 지었고 구들도 놓지 않아 떨고있지 않습니까. 정신적차이가 벌써 하늘땅 차이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공사에서도 뒤떨어지지요. 지붕도 림시관념으로 하다나니 이런 고생을 하는것입니다. 가양도는 지금 방마다 구들이 절절 끓습니다. 천정까지 해서 웃바람 한점 없습니다. 탁수환동무가 무슨 일이나 제집일하듯 주인답게 잘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가양도가 편안하다는 소리에 다들 깜짝놀라 웅성웅성 끓었다. 누구나 얼굴에 자책의 빛들을 띄웠다.
정준하는 힘과 용기를 내여 다시 철탑도 세우고 숙소도 수리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밤 명산포사람들은 누구나 잠들지 못했다.
아침에 문밖에 나오니 눈이 하얗게 내렸다.

